리뷰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차세대 열전 2016!’
상상력 충전과 전달력 함양이 과제
김채현_춤비평가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의 〈차세대 열전 2016!〉 춤 분야 최종 행사가 지난 연말부터 올 2월까지 일곱 안무자의 공연으로 진행되었다. 이 창작아카데미는 차세대 예술가의 발굴과 창작 역량 향상을 위해 새로운 창작 주제 및 소재의 조사 연구와 창작화 과정을 지원하는 것이 목표이다.
 무용 분야 〈차세대 열전 2016!〉에는 애초 선발된 10명 가운데 7명이 최종 결과물을 제각기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서강대메리홀, 문화역서울284에서 2회씩의 일정으로 선보였다.




 비평을 통한 소개를 비롯하여 차세대 예술가의 발굴은 춤계에서 여러 경로로 이뤄진다. 이들 경로 가운데 예술창작아카데미가 주목 받는 이유라면 참가자의 역량 향상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창작 과정까지 후원하는 등 지원 범위가 포괄적이라는 데 있다. 역량 향상 면에서 대학원 과정의 일부를 차용해서 공공의 발표 기회로 연결시키는 것은 창작아카데미가 국내 유일할 것이다.
 이 같은 운영 내용에 준해, 선발된 창작자들은 아카데미 강좌를 수강하는 동시에 독자적으로 제안한 조사 연구를 진행하고 최종 발표회를 가졌다. 그 사이에 멘토링 과정도 있다. 최종 무대화에 이르기까지의 전체 과정에 비추어 〈차세대 열전 2016!〉 무대는 개인의 일반적 창작 무대와는 얼마간 차이가 있다.
 아카데미의 목표로 설정된 새 주제 및 소재의 조사 연구와 무대화는 물론 창작자의 관심사에 따라 진행되었다. 주제와 소재, 무대화를 제한하지 않고 온갖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차세대 즉 신진 창작자를 다면적으로 발굴하려는 취지가 짙어 보인다. 수월한 창작 역량 또는 참신한 창작 경향을 갖춘 신진 창작자를 더 충원하는 일은 춤계의 평소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한 신진 창작자를 통해 춤계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춤적,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 받기를 기대한다.




 우선 〈차세대 열전 2016!〉 춤 공연을 일별해 본다. 〈먹지도 말라〉(이세승 안무)는 7포 세대 예술인들이 직면하는 질곡(桎梏)을 개신교 예배와 객석에서의 스탠딩 형식을 빌려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개성을 보였다. 〈어디로부터 시작되었나〉(손나예 안무)에서 나의 실존은 실존을 그 연유에서 탐문하는 양상의 농밀한 움직임, 거울과 밧줄 울타리 등의 장치로 밀도있게 처리되었다. 극장 공간을 인체로 상정하는 〈스페이스십〉(허윤경 안무)에서는 발상에 비해 극장과 출연진, 관람자 간의 관계가 모호한 편이었다. 프로시니엄 무대에다 객석과 둥근 무대를 함께 설치해서 진행한 〈도깨비가 나타났다〉(공영선 안무)는 도깨비를 낯선 감각으로 치환해서 모종의 실체를 환기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불안정한 유동적 움직임들로 몸의 실제 감각을 객석에 전달하는 모습들은 내러티브 없는 콘텍스트 면에서 신선하였다. 〈in the beginning〉(태초에, 김영찬 안무)은 한국 마당춤과 서아프리카 민속춤이 공유하는 신명의 근원을 찾아나섰다. 두 문화권의 다른 춤태가 신명을 기조로 하나의 몸에 용해되는 모습을 이처럼 리드미컬한 열정으로 소화하는 일은 흔치 않다. 강요된 페르소나를 부정하는〈The Sense of Self〉(김수진 안무)와 지식의 추락을 딛고 일어나는 양상들을 환기하는 〈지평선 아래 솟구치는 것들〉(김희중 안무)에서는 보다 조밀한 춤 전개가 요청되었다.




 〈차세대 열전 2016!〉의 공연 면면에서 나타나는 춤 의식(意識)은 시대에 부응하는 적절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창작아카데미 선발자들뿐 아니라 차세대 창작자들의 상당수가 춤 의식에서 전향적이라는 것을 대변한다. 비유컨대, 국내의 웬만한 공공 무용단보다 시대 적절성 면에서 이들이 우월해 보일 정도이다. 춤계가 어려운 와중에서도 시대 추세와 문명사의 분위기, 다양한 장르간, 국제간 교류 등의 흐름에 힘입어 춤에 관한 관점이 상당히 호전되었음을 재확인시키는 대목이다.
 창작아카데미가 목표로 설정한 주제와 소재의 조사 연구 및 무대화 작업은 창작 역량 축적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여기서 주제와 소재가 각각 무엇인가고 묻는 것은 진부하다. 소재의 개념도 논자에 따라 달라지며, 소재가 주제로 채택되기도 한다. 패러디나 메타 작업에서 이런 경향은 더 농후해진다.
 예컨대, 일반적으로 스토리텔링이 소재에 해당할 테지만, 스토리텔링을 주제 면에서 재탐색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이 엮이는 방식이 주제일 경우 스토리텔링은 주제와 분리가 불가능해진다. 주제와 소재가 한 덩어리를 이루는 경우는 흔하고, 무대화 작업 또한 주제 면에서 재탐색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뿐만 아니라 무대화 작업에서 개별 매체의 운용 방식, 여러 매체 결합 방식은 소재인 동시에 주제로 채택될 수 있다. 소재가 주제를 견인하고 주제가 소재를 불러들인다. 상상력은 이 소재들이 결합함으로써, 혹은 제각각에서 구현된다.




 〈차세대 열전 2016!〉의 공연작들 간에 편차가 있긴 하였으나 관객을 향한 전달력은 높지 않았다. 춤 공연의 개선 현안의 하나로 꼽히는 작품 전달력은, 작품의 수준 정도와는 별개로, 작품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 가운데 뜻을 간파해내기 어려운 것들 때문에 저하되기 일쑤다.
 일례로, 은유를 특성으로 하는 춤의 속성에서 은유의 내용 또는 뜻마저 모호한 폐단이 이번에도 여럿 발견되어 작품-관객의 공감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창작 형상화 작업에서 작품을 관객의 눈으로 수용하는 드라마투르기 역량을 함양할 일이 시급하며 향후 창작아카데미의 춤 분야 심화 연구 작업에 반영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7. 03.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