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임진호 〈구제〉
현실에 발 딛고 죽을힘 다해 죽음에 입수(入水)하기
이지현_춤비평가

 죽음은 삶의 당위이자 결어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삶의 행위들은 죽음이라는 한정됨 속에서나 죽음과 맞바꿨을 때 빛을 발한다. 삶은 죽음을 전제로 반짝이는 것이 되고 죽음은 소중하게 삶을 받쳐주지만, 삶은 결국 죽음에게 거부할 수 없는 패배가 예정되어 있다. 주검을 보거나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죽음은 쉽사리 자신의 전모를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는 결코 죽음을 삶의 시간 속에서 체험할 수 없으며 예술을 통해서만 죽음을 상상하고, 죽음을 노래하고, 죽음을 사유하며, 죽음을 파고들어 죽음을 음미할 수 있다. 특히 가장 진한 생명의 언어인 춤으로 가장 반대항의 죽음을 얘기하는 것은 흥미로운 역설적 탐구이다.
 서울무용센터 1층 로비에서 양복을 입고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선 이경구(연출)가 인사와 더불어 죽음을 연작 형태로 공연해 온 안무자 임진호의 3번째가 되는 이 작품 〈구제〉(2월 17-18일)에 대한 진지한 마음을 전하는 편지글을 대신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곧이어 2층 로비로 올라가니 새롭게 제작된 단으로 된 좌석이 2층 데크를 마주하고 놓여있다. 좁으나마 50여명의 관객들은 빼곡히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야외 데크를 향해 앉았다.




 유리창 앞에 롤스크린이 수동으로 올라가면 임진호가 흰색바지에 남방차림으로 솔로를 추기 시작한다. 1층 로비에 전시된 노트북 영상으로도 보인 이 춤은 거의 선채로 방향만 예각으로 바꾸면서 작고 빠른 동작들로 움직임 논리에 충실한 춤이나 임진호의 비장한 표정과 더불어 무게 있는 ‘죽음을 위한 서무’가 된다.
 그렇게 풀려나온 춤은 이제까지 고블린파티의 작품의 개성이 되어 온 ‘깨알 같은’ 동작들이 모이고 모여 작은 풍자와 은유를 쏟아내는 방식을 더 압축하고 더 적확한 은유로 뽑아내어 정수를 보여준다. 지경민과 임진호의 듀엣과 역할 바꾸기가 야외용 가스버너, 바람막이, 냄비, 작은 페트 물병 등을 가지고 물을 넣고 끓이고 뚜껑을 덮는 하나하나의 과정을 듀엣으로 주고받으며 흐름을 이어간다. 그 모든 과정은 실제 라면을 끓이는 과정이자 동시에 제사의 세리머니가 된다.




 비루한 일상의 라면 끓이기는 죽음과 삶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할 뿐 아니라 임진호가 보여주려는 죽음의 구체성을 아주 자연스럽게 확보한다. 그는 죽음을 상상하거나 비현실적인 것으로 그리지 않는다. 혼자 자취방에서 라면 끓이는 고독을 알고 있는 평범한 삶들의 죽음으로 그 연상은 어렵지 않고, 중간에 등장한 국방색 예비군복 무늬의 장우산은 실제 비를 막다가 총기가 되고 그 총에 죽여지는 어떤 죽음의 그럴듯한 무덤이 된다. 전반부의 ‘라면 에피소드’와 후반부의 ‘우산 에피소드’는 탁월하게 죽음을 현실의 익숙한 장면과 연결지음으로써 죽음을 우리와 아주 가깝게 가져다 놓아 준다.
 라면과 총기는 매우 질 다른 에피소드이면서도 어쩌면 한국의 청년을 읽는 중요한 코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이 지경민과 임진호 두 댄서가 보여주는 격렬하게 맞물리고 엉키는 브로-댄스(Bro-dance) 역시 현실의 청년들이 겪고 느끼는 삶의 격정과 아주 가까이 있다. 그래서인지 임진호가 그리는 죽음은 역설적이게도 젊고 힘차다. 꾹꾹 삼켜진 격렬함이 심장이 터질 때까지 계속된다. 그는 분명 그런 청춘의 죽음을 그려내지만 깨알같이 박힌 촌철살인의 감각과 서로를 부여잡는 힘으로 관객의 입안에 매우 강렬한 것이 톡톡 터지는 죽음의 맛을 밀어 넣는다.




 중반부터 무대에는 비가 내린다. 두 젊은이는 이 비로 그들의 격렬함을 식히는 상황이 되지만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빗발은 이내 눈물처럼 두 몸을 초라하게 적신다. 반대편 빌라 계단에서 정조준 되는 초록빛 레이저가 한 명을 죽이는 장면도 재치 있다.
 라면과 우산 에피소드가 주제를 구심적인(centripetal) 방식으로 풀었다면, ‘정조준 에피소드’는 관객의 시선을 원심적으로(centrifugal) 확장시킨다. 주제는 더욱 구심적으로 밀도가 높아지고, 관객의 상상력은 원심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무대에는 걷힐 것 같지 않은 어둠의 비가 내리고 삶은 처연하게 젖어 들어가는데 관객의 앞에는 유리벽이 완강하여 우리는 그들의 죽음에 한 치도 가까이 갈 수 없다.
 마지막에 관객이 상상하지 못한 일, 주의력 깊은 관객이 아니라면 느끼지 못했을 또는 뒤편의 관객은 잘 느낄 수 없었던 에피소드는 둘이 서로를 끌어안아 엉켜진 한 덩이의 몸과 머리로 그 유리벽을 마치 뚫고 들어올 것처럼 유리벽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줬다는 것이다. 종결로 가면서 듀엣에서 터져 나오는 격렬한 에너지가 결국 하나의 에너지 덩어리가 되고 그 덩어리는 유리벽을 뚫고 나올 것처럼 머리를 유리벽에 짓이긴다. 그리고 저 뒤로 가 결국 죽는다(멈춘다). 그러자 끝난 것 같은 상황에서 이경구가 등장해 우산이 다 해체될 정도로 그들을 두들겨 패고 깨우고 일으켜 내쫓는다.




 차근히 쌓아 올린과 현실과 죽음의 관계, 수렴과 확산을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을 다루는 솜씨, 그리고 심장이 터질 듯한 삶의 열망이 곧 죽음이 되는 역설, 그리고 그 진지함을 다 부숴 무대에서 내쫓는 위트.
 어느새 고블린파티와 임진호가 죽음 연작을 하는 사이 자칫 죽음에 딸려갈 정도로 힘든 우리를 죽을힘을 다해 〈구제(salvation)〉하는 경지에 도달하였다.

이지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춤비평가로 등단했다. 2011년 한국춤비평가협회의 정회원이 되었으며, 최근 비평집『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 왕성한 비평 작업과 함께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강사, 서울무용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7. 03.
사진제공_임진호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