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광화문 블랙텐트 '몸, 외치다!'
시민 사회와 동행하는 춤
김채현_ 춤비평가

 2017년 3월 대통령 탄핵 판결로써 이 땅은 민주 헌법 및 국정의 정상화로 가는 큰 걸음을 내디뎠다. 탄핵 인용에 이르기까지 절대 다수 시민의 여론과 행동이 거국적으로 표출되었고 예술인들 또한 이른바 블랙리스트 통치에 맞서며 탄핵 인용의 정당성을 견인하였다.
 지난 11월 초순 250인의 춤 시국선언이 있은 이래 국정 파탄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1인 춤판이 매주 목요일 정오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되었다. 이후 공연예술인들의 여론을 좇아 1월 7일 천막형 광장극장 블랙텐트가 광화문광장에 세워졌고, 2월 27일부터 4일간 블랙텐트 춤 공연이 ‘몸, 외치다!’ 이름 아래 진행되었다.
 ‘몸, 외치다!’에서 김혜연의 〈개구리〉, 그룹 14피트(feet)의 〈묵음〉, 오후의예술공방의 〈슬픔 속으로〉, 프로젝트그룹 정오의1인의 〈유랑-이름 없음의 이름〉, 두댄스씨어터의 〈퍼즐〉, 최지연의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보결댄스라이프 무용단의 〈물의 꿈: 빛을 향하여〉, 한국민족춤협의회의 전통춤 모듬판이 광장 시민들과 만났다(평자는 사정상 이틀에 걸쳐 〈유랑-이름 없음의 이름〉과 〈퍼즐〉,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물의 꿈: 빛을 향하여〉를 관람하였다).
 블랙텐트는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서 발단된, 태생이 특이한 공간이다. 철골 구조물에 두꺼운 검정 천막을 두른 블랙텐트의 바깥 플래카드는 ‘빼앗긴 극장, 여기 다시 세우다’라고 알린다.


 



 국정 농단의 실체가 만천하에 밝혀지기 훨씬 전부터 공공연하게 자행되다가 지난 가을 국정 농단 사태와 함께 그 경위를 드러내기 시작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는 공공 문화 정책의 참으로 수치스런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예술 보호와 진흥은커녕 광범위한 범위의 예술인들을 겨냥해서 공공 지원 배제는 물론 표현의 장마저 박탈하기를 서슴지 않은 그 검은 명단은 예술에 대한 공안 통치를 확고히 증명한다. 이의 극복을 위한 방책의 하나로 추진된 블랙텐트를 예술인들은 광화문캠핑촌을 비롯 시민들과 함께 세웠다.
 ‘몸, 외치다!’ 공연 소개에 따르면 공연작들은 10편의 전통춤 그리고 N포 세대의 모순, 졸아드는 생의 조건, 세월호 참사, 박탈감, 절대 빈곤, 만남 등 오늘과 현시국 어디에서나 직면할 삶의 양상을 블랙텐트로 끌어들였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현장의 정중앙 공간에서 펼쳐진 춤들은 탄핵 정국에 즈음한 무용인들의 결기를 오롯이 구현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수개월간 광화문 집회 참가자들이 헌법과 민주주의 수호를 줄기차게 외쳐온 실제 상황을 배경으로 ‘몸, 외치다!’는 춤의 공감대를 능동적으로 확장하는 방향으로 펼쳐졌다.
 작품은 그것이 실제 행해지는 위치와 수용자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공연 예술의 경우 이런 요인에 더 민감한 편이며 춤은 더욱 그러하다. 춤이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은 그만큼 다양하며, ‘몸, 외치다!’는 춤이 시민과 민주주의 관점에서 수행해내는 역할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퍼즐〉은 무음악으로 진행될 동안 천막극장 바깥의 온갖 소음과 구호들이 무작위로 음향 구실을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발을 끄는 동작 위주로 옆으로나 앞으로 미끄러지고 상체 젖히기와 약간의 앉았다 일어서기, 오리걸음, 쓰러지기를 섞어 조용히 느리게 배회하는 춤꾼들은 어떤 묵시적인 약속에 따라 이런저런 조각들로 전체를 맞춰가는 모습을 보인다. 약간의 경련을 수반하는 장면에서 암전되지만, 무한정 진행될 법한 이 퍼즐 맞추기에서는 일테면 조용한 사람들의 강한 침묵의 항변 같은 것이 감지되었다.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는 탈북 시인의 작품 제목으로 북한의 어느 시장에서 굶주림으로 딸과 이별해야 하는 모성애를 절절한 독무로 대변하였다. 커뮤니티댄스의 소통 방식을 살린 〈물의 꿈: 빛을 향하여〉는 세월호 참사에서 받은 착상을 소재로 한다. 구원이 절실한 생명들은 혼돈의 갈등 속에서 서로를 생명으로 부둥켜안고선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아간다. 여기서 일련의 몸짓들은 생명력을 갈구하는 어떤 정화(淨化) 의식으로 수용되기에 충분하였다.


 



 〈유랑-이름 없음의 이름〉은 프로젝트그룹 정오의1인의 공동작이다. 이 그룹은 지난 가을 목요일 정오마다 이심전심으로 광화문에서 1인 춤판 시위를 벌인 춤꾼들 일부가 구성하였다. 장은정·김혜숙·댄스시어터틱(김윤규·서진욱)·더무브(윤성은·홍은주)·박소정·송주원·프로젝트락교가 옴니버스 양식을 취하되 서로 연접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유랑〉의 메시지는 상당히 복합적이다. 그중에서도 상실과 박탈, 저주처럼 지금의 사회 현안으로 분출되는 어두운 정서들이 주축을 이룬다.
 춤계의 중견 춤꾼들이 모여 현대무용과 한국무용을 뒤섞고 도약이나 질주보다는 뻗침과 엉킴, 떨림, 드러눕기, 쓰러지기의 움직임들이 주도하는 〈유랑〉에서 확정적인 스토리텔링은 없을지라도 앞서 언급된 정서와 함께 가위눌림, 허무, 처연함, 비감 같은 정서가 다소 결연하게 표현되었다. 이와 같은 정서들은 공연 무대에서나 발견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도처에서 일상적으로 목격되는 것이기도 해서 설득력이 크다.
 


 



 그래서 공연 제목의 ‘이름 없음의 이름’도 다의성을 띤다. 우선, 그것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텅빈 이름이다. 텅빈 이름과 같은 차원에서의 존재감 상실이 공연예술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현저하다는 점을 여기서 먼저 상기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블랙리스트에 수록된 이름들도, 그 주모자들이 자리를 유지할 경우, 언젠가 그들 식의 공권력에 의해 텅빈 기호 같은 이름이 되고 말 그런 운명이었다. 즉, 블랙리스트는 소리 없이 은밀히 거세되어야 할 표적들(이름만 있을 뿐 예술 활동은 보잘 것 없도록 정권이 거세해야 할 예술인들)을 정리해둔 명단이다. 〈유랑〉이 전하는 것은 살아 있으면서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그런 대우를 감내해야 하는) 중음신(中陰身)의 세계이다.
 〈유랑〉을 탄생시킨 정오의 춤판은 블랙텐트와 마찬가지로 탄핵 판결로 종결될 것이다. 그러나 〈유랑〉과 ‘몸, 외치다!’에서 실천된 미적 인식은 향후 다각도로 재생산될 소지가 다분하다. 사회 현안에 임하는 춤꾼들의 인식이 능동적 적극성을 발휘한 사례로서 〈유랑〉과 ‘몸, 외치다!’는 춤을 사회와의 동행자로 진전시켰다.


 



 한편 ‘몸, 외치다!’가 있은 그 주말 오후에 무용인과 연극인들은 광화문광장 세월호 설치미술 현장과 사다리 위에서 우리 헌법의 9개 조항을 조목조목 확인시킨 〈우리가 헌법이다: 헌법 퍼포먼스〉를 합동으로 펼쳤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7. 03.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