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탄츠테아터 부퍼탈 〈스위트 맘보〉
달콤, 쌉싸름한 맘보
방희망_춤비평가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장국영이 홀로 추는 맘보로 유명한 영화 〈아비정전〉(1990)의 대사다. LG아트센터가 초청한 피나 바우쉬의 유작 〈스위트 맘보〉(3월 24~27일, 평자 27일 관람)를 보면서, 그 자유를 꿈꾸는 새와 그를 보듬었던 바람의 숨결, 그리고 어쩔 수 없는 피나의 부재를 확인하게 된다.


 



 7명의 여성 무용수와 3명의 남성 무용수가 출연하는 이번 작품은 손아귀에 잡힐 듯 잡힐 수 없는 여성들의 다면성, 그녀들의 사랑과 생애에 관한 꼴라쥬였다. 탄츠테아터 부퍼탈의 여성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치장했다.
 클리비지가 노출되도록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은 채 양팔을 하늘로 뻗어 올리고 고개를 늘어뜨린, 그리고 한쪽 골반을 뒤로 보낸 채 비스듬하게 서 있는 포즈는 그 어떤 작품보다 피나 바우쉬의 것 안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 뛰고 구르고 바삐 움직여야 하는 다리는 드레스 자락 안에 숨긴 채, 그저 이상을 향해 날아오르려는 두 팔과 앞으로 나아가려고 내민 가슴이 그 자체로 강한 메시지를 전한다. 나의 눈, 코, 입이 가족 중 누구로부터 유래한 것인지 설명하고,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주며 무대가 현실의 연장임을 확인시키면서 ‘나를 잊지 말라’고 강조하는 그녀들은 단체에 소속된 일원으로서의 무용수가 아니라 그저 완전한 나름의 자아, 우리의 모습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랑은 녹록치 않다. 시종일관 검은 옷만 입고 등장하는 남성 무용수들은 그녀들을 괴롭히고 방해하고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그들이 치맛자락을 들추고 등을 벗기고 입을 맞추어도, 정작 그녀들이 원하는 눈높이의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가장 의미심장한 소품은 하이힐일 텐데, 새틴 드레스의 성장(盛裝)을 완성시켜야 할 구두는 이내 ‘나랑 얘기하자’며 남자를 쫓아다닐 때 걸리적거리는 소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한 마디로 ‘신데렐라는 없다’. 배경의 커튼에 투사된 흑백영화 〈파란 여우〉에서 남녀의 시선이 내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엇갈렸던 것처럼(영화는 남편의 무관심에 지친 여인이 다른 남자와 도망가려는 소동을 다룬 코미디이다), 〈스위트 맘보〉는 사랑하고 사랑받고픈 욕구는 넘치나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관계의 지독한 쓸쓸함을 가벼운 농담조로 조롱한다.


 


 
1부에 제시된 작은 에피소드─이를테면 줄리 섀너헌이 자신을 부르는 이름에 달려 나갈 때마다 가로막히는─가 조금 더 증폭되어 반복된 2부는 딱히 화해나 해결을 모색하지 않는다. 1부보다 남성무용수들이 전면에 나서기는 했지만, 커튼을 사이에 둔 채 서로의 실루엣을 비밀스럽게 탐색하고 즐기는데 그치는 등 남과 여의 보이지 않는 단절은 여전하다. 그래서일까, 보조적인 역할에 그칠 뻔한 남성 무용수들의 솔로가 두 번 제시되는데도 군더더기처럼 느껴질 뿐 맥락 없이 공허하다.
 꽤 오랜 시간 배경에 머무른 꽃핀 나뭇가지들의 고요한 풍경. 한 손으로 드레스 자락을 들어 올리고서 무대를 메운 여성 무용수들의 자태는 마침 그 나뭇가지들의 실루엣과 정확히 일치하면서, 더할 나위 없이 고고하다. 2부의 종반부에 가서야 짧고 굵게 반짝이듯 흘러간 맘보. 결국 사랑과 이별도 길고 긴 삶에서 그저 한때 스쳐가는 에피소드일 뿐이니 우리는 홀로 그러나 느슨한 연대 속에 나아가야만 한다고 일러주는 것 같다.


 



 이번〈스위트 맘보〉무대에서 피나 바우쉬의 스타일을 같이 완성해왔던 탄츠테아터 부퍼탈 멤버들의 여전한 모습, 대담하고 선 굵은 미장센으로 피나의 그 숨결을 똑같이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 작품 전반에 깔린, 열정을 식히고 삶을 관조하듯 한 발짝 물러난 쓸쓸하고 나지막한 웃음은 나이가 든다는 것 그리고 죽음이 무엇인지도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거장은 떠났고, 이제 우리는 탄츠테아터의 저돌적인 정신조차도 지나간 시대의 센세이셔널한 패션을 다루는 잡지의 한 꼭지 화보처럼 그저 스타일로써만 즐기게 된 건 아닌가 싶다. 

방희망
2013년 제1회 한국춤비평가협회 춤비평신인상을 통해 춤비평가로 등단했다. 현장 비평가로 다양한 춤 공연에 대한 비평작업을 하고 있으며, 한국춤비평가협회 정회원, <춤웹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7. 04.
사진제공_LG아트센터/JD Woo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