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트프로젝트보라 〈인공낙원〉
자연과 지각의 공생을 향한 묵시록적 무대
김채현_춤비평가

 자연은 존재한다. 인간 활동이 가능한 것은 자연 덕분이다. 인간이 대하는 자연은 자연 그대로인가, 아니면 인간을 경유해서 재구성된 자연인가. 인간은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김보라의 공연작 〈인공낙원〉(아트프로젝트 보라, 3월 24-26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환기되는 물음들이다.
 제목인 인공낙원을 영어로 artificial nature로 표기해둔 데서는 인공의 자연, 즉 인위적 손길이 닿은 자연이 낙원과 상통한다는 취지가 읽혀진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몸, 인간에게서 생성되는 것을 제2의 자연, 생긴 그대로의 자연을 제1의 자연으로 상정한다. 〈인공낙원〉은 두 가지 자연의 상호작용을 인간의 존재 조건으로 인식한다.


 



 〈인공낙원〉에서는 썬팅 필름을 부착한 대형 패널이 거울처럼 공연 내내 무대 위의 전체 동향을 되비추는 장치가 무대 배경으로 설치되었다. 시각적으로 우선 이색적인 느낌을 유발하는 이 거울 패널은 무대 위 상황을 그대로 담아두는 묵시록 같아 보인다. 공연 도중 느리게 앞뒤로 또는 대각선으로 각도가 기울어져서 변화를 주긴 하되 거울의 각도 변화와 공연의 흐름 사이의 상관관계는 낮다.
 무대 위 대형 포클레인(굴착기) 장난감이 암전 속에서 사방으로 이리저리 라이트를 비추는 것으로 공연은 시작한다. 이 장면은 인공의 자연을 환기하는 첫 순간으로 포클레인의 불빛을 따라 일행들이 뻣뻣한 걸음으로 입장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과도한 인공이 지배하는 제2의 자연을 시사하는 장면으로 수용됨직하다. 인간들인 아홉 명의 출연진에게서 근사한, 역동적인 부류의 움직임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들은 대개 마비된 듯이 정지한 상태로 서서 낮은 굉음에 아주 미세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공연에서 무용수들 사이의 교류가 거의 부재한 상태에서 개별적으로들 움직여나갔고, 차림새에서도 통일성이 없다. 이 같은 설정에서 부각되는 것은 과도한 인공에 물든 문명의 동맥경화증과 소외를 경계하는 메시지이다.
 〈인공낙원〉에서 겨눠지는 것은 메마른 문명이다. 굳은 상태로 길들여진 문명에서 핏기도 없는 인간들이 감정마저 상실한 듯한 모습으로 일관하는 것을 거울 패널은 묵묵히 담는다. 선풍기 바람, 페트병 속의 생수, 산소 호흡기처럼 얼굴에 매달린 페트병 같은 소도구들은 자연을 대체하는 인공으로 풀이된다. 〈인공낙원〉이 객석과 공유하려는 것은 인공과 자연 어느 한쪽을 타기하기보다는 둘의 상호작용을 존재 조건으로 인식하는 전제에서 과도한 인공이 해소되어야 한다는 판단이라 생각된다.


 



 후반부에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들이 천장에서 하강해서 무대 공중에 드리워지고, 나뭇가지 아래에서 출연진들은 함께 씹던 풍선껌을 바닥의 중앙 지점에 한 사람씩 붙여나간다. 공연에서 그들이 집단행동을 보인 유일한 이 대목은 나무와의 교감, 다시 말해 자연과의 조화를 자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자연과의 조화가 사람들 서로간의 감정이 살아나도록 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껌을 바닥에 붙이는 연기는 자연의 회생(回生)과 연관이 깊어 보였다.
 〈인공낙원〉은 대형 패널로써 무대의 입체감을 살려 근래 드물게 스펙터클한 공연 무대를 접할 수 있었다. 또한 전시형의 움직임을 배제한 점에서는 매우 과감하였다. 전반적으로 인간의 마비된 장면들은 과도하게 설정된 것 같고 자연과 교류하는 인간의 모습을 약간은 다양하게 보완할 필요도 있어 보였다.


 



 메를로-퐁티는 인간은 지각하는 존재이며 행동(판단)에는 이미 지각(知覺, perception)이 전제되어 있다고 하여 지각의 우선권을 깨우쳐준 바 있다. 〈인공낙원〉은 지각하는 존재에서 ‘자연’과의 상호작용이 요체라는 것을 환기한다. 지각과 자연이 멀리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나(존재)의 안팎에서 공존한다는 점을 감지하려면 〈인공낙원〉에 가보는 방법도 있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7. 04.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