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금배섭춤판야무
새 발상의 조형적 안무와 탈북 주민을 향한 춤적 배려
김채현_춤비평가

 정치인은 국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출마자들의 국가 안보관을 묻는 일은 선거에서 일반적이다. 북한과 대치하면서도 통일을 함께 이뤄내야 하는 남한의 현실에서는 대치에 대한 방비, 통일을 위한 협력 가운데 어느 것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출마자의 안보관이 평가되곤 한다. 이에 편승하여 안보에 무능한 정치인이라 매도하여 상대방의 낙선을 유도하는 풍조를 겨냥해서 안보(安保) 장사라는 신조어까지 나타났다. 그러나 최근 몇 해 선거들에서 안보 장사가 통하지 않았던 흐름이 이번 대선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같이 북한은 우리 사회의 여러 부면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이다. 남한 내 북한 이탈 주민이 지난해 3만 명을 넘어섰다. 북한 이탈 주민이 남한에 유입되는 것은 늘 있는 일이 되었다. 이런 추세 속에서 북한 이탈 주민의 처지는 잊히기 십상이고, 예술에서 그들을 거론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 북한 이탈 주민을 배려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을지 모른다. 이런 세태에도 불구하고 금배섭은 굳이 북한 이탈 주민을 염두에 두고 독무 <섬>을 발표하였다(2월 10-12일.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북한의 벌목공들은 지금도 외화벌이를 위해 러시아로 파견된다. 그 가운데 어떤 이가 북한 이탈 주민이 되어 남한이 아닌 딴 나라를 정착지로 택한 사연이 <섬>의 배경이다. 그 벌목공은 남한에 가서 같은 민족의 눈에 나서 살 바에야 제3국으로 갔다. 금배섭은 북한 이탈 주민이 남한에서 감내해야 하는 차별을 고립감으로 재해석하여 <섬>을 펼쳐 보인다.
 공연 시작 부분에서 금배섭이 마이크로 수차례 내뱉는 나지막한 ‘들리세요?’ 육성에 답은 없다. 이와 동시에 돌멩이들 위에서 한참 발을 굴러내는 소음이 그 답인 것처럼 보인다. 이 육성과 소음에 이어 소독 분무기에서 안개 같은 것을 자욱이 뿜어내어 이탈 주민이 한치 앞을 가늠키 힘든 상황에서 무작정 달아나야 하는 막막한 상황 속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이러한 도입부를 단서로 <섬>은 탈주(脫走), 사선(死線) 넘기, 기진맥진, 고립무원의 모습으로 해석됨직한 움직임들을 구사하며 탈북 주민을 비롯하여 이탈 주민의 심경을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북한 이탈 주민을 소재로 한 공연일 경우 왜인지 재현적 묘사 일색의 공연일 것이라는 짐작부터 들지 모른다. 그런 짐작은 북한 또는 북한 이탈과 결부된 다른 작품들이 대개 (다큐멘터리 식의) 재현적 묘사에 안주하는 풍조에서 기인할 것이다. <섬>은 이 같은 풍조를 완전히 탈피하였다는 점에서 북한 이탈 주민을 새로운 시각에서 소재화한 공연으로 평가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섬>에서 움직임들과 몸의 모양새들은 그 각각이 이탈 주민의 어느 구체적인 상황을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공연 제목의 섬이 일반적으로 고립 상황을 은유하는 것과 유사한 맥락에서 이탈 주민 각자가 어디서나 직면할 가능성이 있는 고립무원의 처지를 폭넓게 암시하는 용도로 쓰였다.




 신발 없이 양말만 신은 채 노란색 후드 자켓에 헐렁한 바지를 착용한 그는 <섬>에서 시종일관 노련한 움직임을 정교하게 구사하였다. 발을 바닥에서 떼지 않은 채 두 발을 같은 방향으로 바꾸어 가며 이동한다든가 들개 같은 네 발 동물처럼 사지를 바닥에 대고 잽싸게 돌아다니는 모습, 하체 불구자가 땅바닥 곳곳을 상체의 힘에 의지해서 기어다니는 그런 모습(우리는 시장통에서 그런 모습을 어쩌다 접하곤 한다), 기계적 로봇을 연상시키는 반복되는 기형적 동작 등에서 연상되다시피 금배섭은 몸으로 형체를 만들어가는 데 상당한 공력을 발휘하였다. 일테면 몸의 조형적 가능성을 캐묻는 집요함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섬> 공연 시작부터 바닥에 가지런히 놓인 긴 막대기 각목들은 어느 부분에선 탈주하는 철로처럼 받아들여졌다. 이 각목들을 갖고 # 모양으로 층층이 쌓아 올려 구성되는 70센티미터 가량 높이의 피라미드는 섬이 된다. 자칫 허물어뜨려지기 쉬운 섬 속에 들어감으로써 궁극에는 고립이나 감금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각목 피라미드 속에 몸 전신을 넣어 피라미드와 몸이 동시에 이동하는 데서는 아무 조력도 받지 못한 채 탈주나 회피를 거듭해야 하는 불안한 신세가 암시된다. 또한 자켓 속으로 머리를 숨긴 상태에서 아슬아슬한 피라미드 섬 위에 서서 상체를 발을 향해 숙인 채 후드를 피라미드에 거듭해서 내리치는 모습은 극한에 처한 이탈 주민의 여러 가지를 환기하는 효과가 있다. 몸뿐만 아니라 각목에 대해서도 이처럼 금배섭은 마치 곡예를 진행하는 모습을 투입하여 조형성을 살려내었다.




 <섬> 공연 객석에서는 아마도 탈북 주민인 듯한 관객들이 간간이 목격되었다. 스토리가 뚜렷하지 않은 이 공연을 그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생각하면 자못 흥미롭다. 북한을 다룬 현대춤이 전무하다시피 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안무자는 자신의 소견대로 한국 사회에서 비빌 곳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끌어안았다. 공연 말미에 각목 피라미드의 윗부분 30센티미터 가량을 어깨에 걸치고 일어나서 이동하는 사이에 피라미드 전체가 어그러짐으로써 섬은 그 형체가 망가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탈북 주민이 망가지고 있다는 것처럼.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7. 05.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