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ASAC 기획공연,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단원화무도〉
김홍도를 향한 힙합의 오마주
김채현_춤비평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한 걸음 성큼 내디뎠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 이미지들을 춤으로 수용하는 작업을 〈단원화무도〉(檀園畵舞道)로 수행하였다(5월 19-20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해돋이극장). 힙합 장르의 대형 무대를 선도해온 여세를 넓혀 이번에는 김홍도의 세계를 콘텐츠화하는 데 동참했다.




 수도권 지하철 4호선 안산역엘 가면 지하도가 김홍도의 온갖 풍속화로 치장되어 있고 인근 고잔역에서도 김홍도의 풍속화 〈씨름〉과 고기잡이 등 이미지들을 보게 된다. 예술 작품으로 장식된 역이 아직은 드문 가운데서도 손꼽아지는 이런 장치들로써 오늘도 안산에선 김홍도 오마주가 이어진다.
 화가 김홍도는 경기도 안산 출신이다. 예술가와 출신 지역의 관련성은 그의 예술적 성과에 의해 그 깊이가 좌우된다. 예술적 성과가 돋보일수록 그 출신 지역도 부각되는 것이 상례이다. 김홍도의 고향이 안산이라는 사실이 우리들의 관심을 잠시나마 붙잡는다면 그가 지금도 풍속화로써 공감을 사는 국민화가인 때문일 것이다. 그가 풍속화가였다는 데서 더 나아가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대가였고 신선도에서도 뛰어났다는 사실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관심이 배가될 것이다.
 그 김홍도가 올봄 우리 곁에서 힙합의 타임머신과 함께 유유히 환생하였다. 힙합 중심의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의 상주단체여서 김홍도를 위한 ‘힙합’ 타임머신이 출현할 것은 어쩌면 시간 문제였을 것 같다.
 〈단원화무도〉는 김홍도의 풍속화·진경산수화·신선도 가운데 9편의 화폭을 처리한 대형 디지털 이미지를 소재로 전개된다. 각기 화풍에서 차이가 나며 소재도 상이한 이들 9편이 무대 배경 이미지로 흐르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단원이 이다지도 넓이와 깊이를 갖춘 화가인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공연은 어느 고등학생이 고잔역 지하도의 김홍도 벽화들을 보고 지나가서 바로 옆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김홍도 특별전을 관람하는 영상으로 시작한다. 맨 먼저 등장하는 〈소림명월도〉(疏林明月圖)는 보름달 밝은 속에 듬성듬성한 나무가 어슴푸레 보이는 적요한 이미지가 탁월한 그림이다. 〈소림명월도〉 대형 이미지가 무대 배경과 샤막에 동시에 투사되면 무대는 컴컴한 숲이 되고 그 속에서 고등학생 관람자는 어떤 환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작품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숲 속의 환상계에는 허깨비 같은 사람들이 출몰하는데, 기실 그들은 앞으로 전개될 세계를 맘껏 놀아볼 사람들이었다.
 이후 시차를 두고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8편의 그림들은 관람자가 접하는 환상의 세계를 이룬다. 서당, 씨름, 소나무 아래 호랑이 그림을 비롯하여 꾀꼬리 지저귀는 모습을 나귀를 타고 쳐다보는 선비, 장생불로의 복숭아를 훔쳐 먹는 동방삭, 곤륜산 서왕모를 찾아 바다를 건너가는 신선들, 달 밝은 밤에 시를 지으며 주연을 즐기는 선비들의 그림이 펼쳐질 적마다 그림 속 세계를 힙합 춤꾼들은 자기들의 세계처럼 갖고 논다. 그 8가지 세계 사이에 연결성은 없이 공연은 옴니버스 양식으로 펼쳐지며, 따라서 기승전결 식의 이야기 구조는 배제된다. 공연 말미에는 래퍼가 등장하여 어른들의 세상을 거하게 야유하는 분위기가 잠시 조성된다.




 〈단원화무도〉에서는 김홍도가 그려내는 여러 가지 세계에 동참하되 이 세계를 자기들대로 소화해내는 익살이 두드러진다. 김홍도 풍의 멋과 해학을 힙합의 역동성으로 각색하면서 디지털과 홀로그램 이미지들로써 입체감 있게 처리하였다. 그림 텍스트, 반주 음악, 창, 보컬, 영상을 버무리는 중심축 구실을 한 힙합은 김홍도의 해학을 흐드러지게 만드는 특성을 발휘하였다. 이에 힘입어 〈단원화무도〉는 특히 청소년과 가족 단위의 관객들에게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김홍도라는 콘텐츠를 소재로 이른바 융복합 공연을 의욕적으로 진행하면서 관객의 눈높이를 배려하여 공감대를 높일 수 있었다.
 〈단원화무도〉의 영상 이미지들은 비교적 정밀하며 숲과 동방삭 부분에서는 무대 전체를 휘감은 아름다움의 정도가 상당하였다. 반면에 호랑이 이미지는 너무 짧았고 그 직전의 불꽃이 튀는 긴장된 순간은 너무 길었다. 스토리텔링에 구애받지 않는 전개 구조를 취하는 이 공연에서 8편의 그림들 또는 8가지의 세계들 사이에 연결성이 부재하거나 매우 희박한 탓에 산만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하여 익살과 역동성을 수시로 환기한 힙합 춤들은 각각의 세계에서 제 각각의 모양으로 연출되어 오히려 집중성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우리 주위에서는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에 대한 관심이 쌓여가는 중이며, 그 비슷한 시기에 정조 어진뿐 아니라 원행을묘 행차(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위해 추진한 한양-화성 간의 8일간 축제 행차) 의궤 삽화 제작을 총지휘한 김홍도 역시 재조명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날 김홍도의 인기가 국민화가로서 변함없는 데 비해 예술에서건 어디에서건 아직까지 김홍도의 현대적 수용을 접해본 기억이 없다. 김홍도의 명성에 비해 이는 뜻밖의 현상일지도 모른다. 김홍도의 그림을 힙합으로 리드미컬하게 터치해서 그 세계와 독특하게 소통한 〈단원화무도〉는 김홍도를 위한 색다른 오마주이자 김홍도 마니아들이 기억해야 할 이벤트이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7. 06.
사진제공_김채현, 안산문화재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