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3회 노원국제코믹댄스페스티벌
역발상과 재미의 작렬
김채현_춤비평가
 2010년대 들어 춤계에서는 새로운 조짐으로 코믹한 춤들을 더러 접할 수 있었다. 그런 춤들은 이색적 발상을 조리있게 펼침으로써 재미난 웃음을 유발하는 특성을 보였다. 노원코믹댄스페스티벌은 이런 추세를 뒷받침하려는 듯이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하였다(6월 5-9일, 노원문화예술회관). 산발적으로 출현하는 코믹한 춤들을 집약하는 페스티벌 형식으로 새 기류를 다지는 촉매 역할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말하자면, 코믹댄스가 오고 있다.
 노원코믹댄스페스티벌의 전체 일정은 참가 단체들의 워크숍과 공연으로 펼쳐지며, 닷새 진행된 올해에는 2일간의 대공연장 공연을 비롯해서 하루의 소공연장 공연 및 3일간의 워크숍으로 구성되었다. 국내외 16개 단체가 참가한 가운데, 해외 단체들이 제공한 워크숍은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동 작업, 저글링 실습, 움직임 놀이 지도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코믹댄스라면 유쾌한 상상력을 예기치 않게 ‘작렬’시키는 특권이 있다. 올해 페스티벌에서 일본의 가오루 노리마츠의 〈The Virgin〉은 그 특권을 강렬하게 행사하였다. 자신을 포함한 여성 2인무 〈The Virgin〉에서 노리마츠는 미혼녀들의 비만증 갈등을 솔직하게 대변한다. 축 처졌다고 해도 좋을 뱃살을 맨살 그대로 들춰 보이면서부터 객석을 압도하는 두 여성은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을 거리낌없이 채우면서도 비만과 다이어트 사이에서 갈등을 보인다.
 굵직한 나무 둥치 같은 양다리의 움직임으로 발산되는 파워는 그 같은 고민을 은유하는 동시에 비만의 몸집이 오히려 파워의 발원지라는 점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춤꾼의 표준형 몸매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때문에 열등한 것으로 치부되는 몸매를 두 여성은 춤으로 아주 과감하게 살려내었고, 세태를 거스르는 그들의 발상은 한 마디로 저돌적이어서 창의적이다. 올해 노원코믹댄스페스티벌의 가장 인상적인 주목작(注目作)을 들자면 〈The Virgin〉이다.

 


 
 웃음은 코믹댄스의 주특기이다. 코믹한 공연들에서는 유머, 익살, 풍자, 패러디, 넌센스, 난기교, 과장법, 어긋나는 템포 같은 내용과 형식들이 장치로서 구사된다. 이번 행사에서 일정상 대공연장 공연들만을 관람한 결과에 비추어, 그런 장치들은 고루 거론될 수 있다.
 과장법과 패러디의 대표적인 예로 〈The Virgin〉이 들어진다. 패러디의 예로서, 먼저 국립발레단원 하지석이 연기한 〈발레 101〉(에릭 고티에 안무작)은 101가지 발레 동작을 숫자 구령에 맞춰 해내는 미련스런 끈기로 웃음을 자아낸다. 일본 남스트롭스(Namstrops)의 〈3개의 허들〉 또한 육상 허들 경기에 얽힌 선수들의 갖가지 모습을 패러디하였다.

 


 익살 또는 유머 범주에 해당하는 공연작의 일부만 들어본다. 홍콩의 안무가 옹용록이 20명 남짓 남녀노소 시민들과함께 라벨의 음악 ‘볼레로’에 맞춰 구성한 〈볼레로〉는 무대 현장의 즉석 반응을 소소한 익살로 소화해내어 객석과 교감하는 정도가 높았다.
 앰비규어스무용단의 〈공존〉 2인무에서 김보람은 두 사람의 갈등을 유머스럽게 터치하였다. 이종현의 〈잠에서 깨어나세요〉는 잠자리에서 뒤척이는 두 청년의 움직임들을 춤으로 조합하고 과거에 방송에 따라 하던 아침체조를 곁들여 과장함으로써 익살스런 웃음을 유도하였다. 이번에 작품의 일부를 발췌해 올린 앰비규어스무용단의 〈얼토당토〉, 고블린파티의 〈옛날 옛적에〉 또한 이 범주에 속할 것이다.

 

 
 저글러로서의 특기를 십분 발휘한 일본의 히사시 와타나베(Hisashi Watanabe)의 연기는 말 그대로 객석의 경탄(驚歎)을 마음껏 불러일으켰다. 그냥 서서 숙련된 묘기를 자랑하는 단순 저글링이 아니라 그가 야구공 크기의 물렁하며 찰진 흰색 공을 ‘온몸으로’ 갖고 놀음으로써 그의 퍼포먼스는 춤으로 급전한다. 공을 갖고 온몸으로 놀 동안 그는 저글링을 변형시켜 가면서 공중제비를 넘는 등 순발력 있는 다양한 움직임을 저글링과 결합해 보였다.

 

 
 그의 〈거꾸로 박힌 나무〉에서는 하얀 공을 입으로 물어 어깨 뒤로 던져 척추 위로 가지런히 정렬시키는 묘기가 저글링의 절정 그리고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해 서울국제즉흥춤축제에서 선보인 비슷한 스타일의 공연작보다 훨씬 정교하면서 기교가 복잡해져서 그가 1년 동안 추가로 공력을 투입했음을 짐작케 하였다. 서서 하는 저글링의 상식적 묘기를 초월하는 그만의 저글링은 바로 박힌 나무를 거꾸로 세워두는 듯한 역발상을 마음껏 발산하였다. 통쾌무비라 할까, 난기교로써 재미를 극대화한 코믹댄스에 속한다.
 코믹댄스가 아직 익숙한 장르가 아닐지라도 그에 대한 대중의 호응은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쾌한 웃음이 메마른 정도를 넘어 그와 담쌓다시피 한 춤계 풍토에서 무대 공연에 대한 엄숙주의는 지금도 상당한 듯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코믹댄스에서 유쾌한 상상력과 함께 유쾌한 웃음이 작렬할 것은 자연스럽다.

 
 


 코믹댄스는 그냥 웃음이 헤픈 춤이 아니다. 그것은 표현 영역과 표현 기법의 확대를 전제로 하는 동시에 거꾸로 자극할 가능성도 크다. 앰비규어스무용단과 고블린파티 등 국내 일부 청년 단체들이 이 방향의 흐름을 보이고 해외 사례로는 모믹스, 발레 보이즈 등등 무수히 들어질 것이다.
 한국무용·현대무용·발레 삼분법의 와해에 따라 새 대안 모색이 다원예술에 맴돌되 더 이상은 지지부진한 춤계 현상에 대해 코믹댄스가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굳이 모두가 코믹댄스에 흥미를 가져야 할 것은 아니지만, 춤 표현 영역과 표현 기법이 쇄신되어야 할 것을 시사한다. 3년째 열린 노원코믹댄스페스티벌의 의의는 이처럼 다면적이다. 다만 코믹과는 거리가 먼 공연이 몇몇 눈에 띈 것은 올해 행사에서 옥의 티였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7. 07.
사진제공_김채현/박상윤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