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7 대한민국발레축제 화제의 공연들
작품 성격 다양, 관객공감 공연 늘어나
장광열_춤비평가
 춤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 모두가 참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 적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무대 위로 붙잡혀(?) 올라간 관객들이나 객석에서 그들이 댄서들과 함께 춤추는 것을 지켜본 관객들이나 조금은 들 떠 있어 보였고, 또 묘한 흥분감에 젖어 있어 보였다. 6월 10일 오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유니버설발레단 〈MINUS 7〉공연이 끝나자 만면에 웃음을 가득 담은 관객들의 환호와 큰 박수가 꽤 길게 이어졌다.
 올해로 7회 째를 맞은 대한민국발레축제(6월 8-2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토월·자유소극장)는 그 어느 해보다 다양한 성격의 작품으로 관객들을 맞았다. 특히 몇몇 초연 작품들은 내용적인 면에서나 공연을 풀어나가는 양식 면에서 분명한 차별성이 있었다.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의 〈MINUS 7〉은 뛰어난 안무가, 독창적인 색깔의 작품, 그리고 그것을 레퍼토리로 보유한 단체와의 연계성을 생각하게 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세계 정상급 안무가의 특별한 작품을 발 빠르게 레퍼토리로 확보했고, 그 덕분에 발레단의 이미지 고양은 물론 관객 확보에도 적지 않은 이득을 보았다. 안무가의 특별한 창작물이 관객들에게 더 없이 즐거움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미래의 무용예술에 대한 밝은 전망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하게 했다.

 

 
 국립발레단의 갈라 공연 (6월 17-18일 오페라극장, 평자 17일 관람)에서 선보인 〈트로이 게임(Troy Game)〉은 별미였다. 남성 무용수들을 전면에 내세운 이 작품은 태권도·합기도·카포에이라 등 동서양의 무술을 차용한 움직임 구성과 코믹적인 요소를 버무려 기존의 발레 레퍼토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안무가인 로버트 노스가 런던컨템포러리댄스시어터 출신인 점을 감안하면 발레 동작에서 보다 댄서의 몸에서 생성될 수 있는 움직임 그 자체를 탐구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작품과 함께 오랜 만에 국내 무대에 선보인 조지 발란신의 군무 작품 〈세레나데〉에서는 국립발레단 군무 무용수들의 성장된 모습을 확연하게 볼 수 있었다. 국립발레단 솔리스트급 무용수와 군무 무용수들의 기량 차이가 체격적인 면에서나 춤의 질에서 많이 좁혀졌음을, 군무 무용수들의 앙상블이 단순히 줄 맞추기와 대형 만들기의 조합에서 벗어나 하나의 예술춤으로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진보되었음을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국립발레단 군무진들이 보여 준 앙상블의 별미는 폐막 공연으로 마련된 〈스파르타쿠스〉(6월 23-25일, 오페라극장, 평자 25일 관람)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노예와 로마병사로 분한 남성무용수들의 역동적인 군무 외에도 여성 무용수들의 군무에서 도 댄서들 스스로가 스토리를 따라가며 춤을 즐기는 모습은 전체적으로 작품의 완성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더 깊게 자신의 캐릭터 창출에 몰입해야하는 아쉬움을 남기긴 했지만, 프리기아 역을 맡은 박슬기와 스파르타쿠스 정영재, 크라수스 변성환, 아이기나 박예은B의 안정된 춤 기량은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즈음 들어 공연을 하면 할수록 빠르게 성장하는 박슬기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중견 안무가들의 신작 무대는 자주 접할 수 없는 창작발레 작업이란 점에서 평자들의 관심이 모아진다. 올해 초청된 조주현과 김세연은 모두 해외 유명 발레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데다 조주현의 경우 적지 않은 작품을 통해 이미 만만치 않은 안무력이 검증되었고, 김세연의 경우도 2007년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에서 선보인 소품 〈베토벤 프리즈(Beethoven-Frieze)〉를 통해 안무가로서의 감각을 보여준바 있어 더욱 기대를 모았다. 조주현 안무의 〈동행〉과 김세연 안무의 〈죽음과 여인〉은 공교롭게도 ‘여인의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었다.
 <동행>에서 안무가 조주현은 한 남자의 여인으로, 아이들의 어머니로, 대가족의 할머니로 살아온 한 여인의 삶을 토대로 누구에게나 다가올 ‘죽음’이라는 순간을 담아냈다. 작품은 안무가 특유의 움직임 조합 능력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무대 전면을 감싼 백색 천의 시각적 활용, 이전까지 보여주었던 춤과 결합된 세련된 이미지의 합일은 약간의 이야기와 맞물린 유희적인, 놀이적인 요소가 결합되면서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아틀랜타발레단에서 주역 무용수로 활동했던 김유미와 유니버설발레단 수석 무용수 이동탁의 춤이 적지 않은 군무진들의 춤 속에서 중심을 잡았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많은 댄서들로 인한 앙상블의 편차는 옥의 티였다.

 

 
 김세연의 〈죽음과 여인〉은 〈동행〉과는 색깔이 완전히 다르다. 두 명의 여성 솔리스트(임혜경 김성민)가 작품의 축을 이루고 여기에 유니버설발레단 엄재용과 스페인국립무용단 4명 남성무용수와 여성 군무가 결합된다. 윤심덕을 연상하는 ‘사의 찬미’, 박단아의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 등 1930년대 대중가요를 차용한 것이나 스페인국립무용단 소속 남성 무용수들의 춤을 통해 드라마성을 부각시키는 시도는 관객들의 의표를 찌른다. 죽음에 사로잡힌 한 여인으로 출연한 무용수 김성민의 개성을 확연하게 끌어낸 점은 안무가로서 김세연의 감각을 가늠하게 했다. 안무가에 의한 임혜경의 강렬한 캐릭터 창출, 엄재용과 김성민의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조우가 있었음에도 솔로춤이든 2인무이든 좀 긴 호흡으로 춤 그 자체를 음미할 만한 구성이 없었던 점은 두고두고 아쉬웠다.

 

 
 이번 축제에 공연된 작품 중에서 가장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내고 공연 전후에 도 TV 등 대중매체에 노출되면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은 김용걸댄스시어터의 〈step by step〉이었다.
 프리마 발레 무용수를 꿈꾸다 군무 무용수로 결국 은퇴해야만 했던 전 국립발레단 단원 이향조가 출연한 이 작품은 캐스팅이 나오지 않아 직업 발레단을 떠나야 했던 한 군무 무용수의 자전적 이야기를 토대로 실제 그 주인공을 등장시켜 소망했던 주역 무용수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했다.
 주인공이 직접 등장해 이야기와 춤을 보여주고, 자신이 직접 나레이션을 곁들인 영상을 실연과 적절하게 결합시킨 구성이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프로페셔널한 무용수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는, 그런 경쟁 속에서 살아남지 못한 딸과 부모와의 이야기가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실제로 공연 도중 눈물을 훔치고 훌쩍이는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갈채 받는 직업 발레단 무용수의 화려한 모습, 그 뒤에 감춰진 치열한 경쟁의 면면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발레 축제의 공공성을 생각해 보게 되는 공연이었다. 이런 소재의 작업에 눈을 돌린 안무가 김용걸의 감각은, 안무가 자신이 치열한 경쟁이 난무하는 외국의 메이저 발레단에서 프로 무용수로서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다크서클즈컨템포러리댄스는 전문 무용단체로서는 드물게 쉽고 대중적인 성향의 작품을 중심으로 평균점 이상의 질을 보여주고 있는 단체이다. 그리고 이런 점이 평가되어 지난해에 이어 다시 초청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연 작품 〈평범한 남자들〉(안무 조현상)은 아쉽게도 이 단체의 전작에 비해 다소 함량이 떨어졌다. 자유로운 일탈을 즐기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리려 했으나 군무 무용수들의 춤과 역할이 주인공의 춤과 연기와 맞물리지 못하고 겉돌았던 점, 이미 예측 가능한 다소 식상할 수 있는 설정 등 작품을 풀러나가는 아이디어의 부족도 그 요인 중 하나였다.

 

 
 예술의전당과 대한민국발레축제조직위원회가 공동 주최하는 올해 대한민국발레축제는 지난해 예술의전당의 대극장 · 중극장 · 소극장‧ 야외무대까지 여러 공간에서 다양한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한 시도에 이어 발레 체험, 발레 강좌 등 일반 대중들을 향한 눈높이 프로그램이 적절하게 짜여 져 있다.
 국립발레단이 스페셜 갈라를 통해 선보인 작품 중 지난해 명장 존 크랑코 안무의 〈오마주 더 볼쇼이(Hommage à Bolshoi)〉에 이어 이번 〈트로이 게임〉과 같은 독창적인 안무가의 색깔이 묻어난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나 해외에서 활동하는 경험 많은 한국 무용수의 안무 작품을 볼 기회를 부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여기에 국내를 대표하는 3개의 직업발레단이 모두 참여하고 있고, 우수 작품의 재공연을 통한 유통 확대와 비교적 저렴한 입장료 책정 등은 공공성을 담보한 시도란 점에서 칭찬받을 만하다.
 향후 대한민국발레축제는 예술감독을 선임, 조직위원회와 긴밀한 관계 설정을 통해 프로그래밍과 운영 체계를 강화, 전 국민이 함께 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발레 축제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오늘날 문화 다양성에 관한 논의가 중요하게 부각되고, 국민을 더 이상 문화소비자가 아닌 문화 생산자 혹은 창작의 주체로 보는 흐름은 순수예술의 가치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여러 춤 장르 중에서 가장 대중들과 가까운 발레는 그런 점에서 축제를 통한 일반인들과의 소통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발레축제가 발레 전문가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아우르는 축제로, 서울 중심이 아닌 전국의 발레인들과 국민들의 축제로, 그리고 발레를 중심으로 한 국제교류의 중요한 창구로 성장되길 기대한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춤웹진〉 편집장,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2017. 07.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