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14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클래식에서 컨템포러리 발레까지, 세대와 지역 초월
문애령_무용평론가
 매년 여름 휴가철이면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이 떠오른다. 2001년 시작해 14회째를 맞은 올해(7월 21-22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는 이지영. 정한솔. 진세현을 새롭게 소개했고, '다시 보고 싶은 해외스타' 강효정과 김세연을 초청해 무게감의 균형을 맞췄다. 출연자 대부분이 적절한 작품선정을 통해 개성적 인상을 남겼고, 예년에 비해 파격적 작품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기교적 감각이 통일된 장점이 돋보였다.



 

 
 개막작으로 초청된 코리아유스발레스타즈(단장 조미송)의 군무 〈인 어 로우(In a row)〉는 “오리들의 자연스러운 행렬”을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에 담은 김건중의 작품이다. 발레 기초가 잘 잡힌 중. 고등학생들이 고유한 멜로디에 역동성을 부여하니 독창적 ‘볼레로’가 완성되었다. 남녀 모두 흰색 바지 정장을 입은 군무의 행진과 도약, 힙합의 손동작과 꼬임이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신선한 생동감을 연출했다. 전국 각 지역 학원에 적을 둔 청소년발레단의 이번 무대는 한국발레의 폭넓은 성장을 입증했다.

 

 
 미국 컬럼비아클래시컬발레단 수석 진세현은 워싱턴발레단 주역 브루클린 맥과 함께 출연했다. 1부에서는 볼쇼이발레단 안무가 아사프 메세러가 1956년경 안무한 소품 〈샘물(Spring Waters)〉을, 2부에서는 고전발레 〈해적〉 그랑 파드되를 공연했다. 정형적이고 화려한 발레기교를 선보인 측면에서는 주인공 커플이다
 짧은 곡예적 2인무 〈샘물〉은 빠른 회전과 높은 도약 이상의 기교를 담고 있다. 여성이 몸을 던지면 남성은 그 받은 몸을 돌려 공중에 올리고, 결국 한 손으로 둔부를 받쳐 들고 뛰어 나가는 활력으로 마무리한다. 〈해적〉에서는 해맑은 메도라와 배역에 몰입한 알리를 만났다. 브루클린 맥은 공중회전 같은 특유의 기량 연기도 잘했지만 음악의 느낌을 완벽하게 활용하는 감수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또한 마지막 인사에서까지 자신이 맡은 멋진 노예 역을 강조하는 모습에 경탄했다.

 

 
 프랑스 마르세유발레단원 이지영과 겐 이소미는 에미오 그레코와 피터 숄텐의 두 작품을 선보였다. 첫 작품 〈엑스트르말리즘(Extremalism)〉은 extreme(극단적)과 minimalism(미니멀리즘)의 합성어다. 극단적 상황에 반응하는 신체를 탐구하는 내용으로 마르세유발레단원 24명과 암스테르담 국제안무센터 단원 6명이 20년 만에 새롭게 재현했었다. 남녀 동질성을 추구하는 30개의 몸, 30개의 문화, 사회적 몸을 추구한다고 안무가는 말한다.
 30개를 2개로, 장편을 소품으로 크게 축소시킨 이지영의 무대는 비발디의 ‘여름’ 3악장 부분이 중심이다. 연자주색 얇은 천의 긴팔 원피스를 입고 등장하며, 추임새 같은 목소리, 부레 스텝에서 무릎 걷기까지의 자연스럽고 명쾌한 연계가 흥미로웠다. 2부에서 공연한 〈크리시(Crisi)〉 역시 대작 〈헬(Hell)〉의 일부라고 한다. 〈헬〉은 단테의 ‘지옥’과 베토벤의 ‘운명’에서 주로 영감을 받았는데, 원작은 합창부터 극적 묘사까지 방대한 규모다. 〈크리시〉는 검정 천으로 얼굴을 감싼 남성과 긴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함께 혹은 따로 춤추며 시작된다. 남성이 얼굴을 드러낸 이후 두 사람은 다시 베토벤 교향곡 1악장 멜로디에 절대적으로 일치하는 움직임을 강조하며 빠른 회전과 굴신, 고양이처럼 뛰어 이동하는 소드샤(saut de chat) 등을 주요 기교로 삼았다.

 

 
 미국 조프리발레단원 정한솔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생 조희원을 파트너로 〈파리의 불꽃〉 그랑 파드되와 모던테이블 예술감독 김재덕이 안무한 〈아리아(Aria)〉를 공연했다. 〈파리의 불꽃〉은 프랑스 혁명기를 다룬 러시아 작품으로 1932년 바실리 바이노넨이 안무했다. 주인공들이 의상에서 프랑스기 색깔이 보이고, 2인무는 승리의 춤답게 진취적이다. 정한솔은 도약에서 조희원은 회전기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냈다. 헬싱키발레콩쿠르에서 안무상을 수상한 〈아리아〉는 차분한 멜로디에 서로 몸을 지탱하다가 밀치고 구르는 점층적 2인무다. 남녀 모두 한복 라인이 연상되는 흰색 의상을 입고 동양적 느낌을 은연중 드러낸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 강효정은 올해의 중심 스타였으나 약속된 파트너의 불참으로 순서 배정을 비롯한 상당한 문제를 겪었다. 특히 예정에 없던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장면’에 제이슨 레일리와 함께 출연했는데, 무대세트가 없어 로미오가 줄리엣을 발코니에서 안아 내리고 들어 올려 보내는 고유한 해석본을 볼 수 없었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존 크랑코 전공단체 주역이라 춤의 전개나 감정 이입에서는 훌륭했다. 2부의 〈바이트(Bite)〉는 수년 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안무가로 데뷔한 폴랜드 출신 카시아 코지엘스카의 2인무다. 포인트 슈즈 위에 앉은 회전, 허리와 등이 강조된 여러 포즈를 통해 곡예적이고 현대적이며 강한 느낌을 만들어갔다.

 

 
 스페인 국립발레단 수석 김세연은 안무가 킨순 찬(Kinsun Chan)의 신작 〈언더 마이 스킨(Under My Skin)〉과 롤랑 프티의 1973년 작 〈라 로즈 말라드(La Rose Malade)〉를 같은 무용단 수석 에스테반 벨랑가와 공연했다. 〈언더 마이 스킨〉은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 가사에서 따온 제목으로 1980년대에 바리시니코프가 출연했던 〈시나트라 조곡〉의 후속 판 같다.
 커튼 속에서 얼굴만 내놓은 남성이 가수처럼 립싱크하며 시작된 춤은 박력과 즐거운 분위기를 강조했다. 발레리나 마야 플리세츠카야를 위해 안무된 〈라 로즈 말라드〉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에 발레화 했다. 병든 장미와 젊은이의 2인무가 몽롱한 분위기 속에서 연결되는데, 장미 역 여성은 부유하듯 서정성과 섬세한 라인에 집중한다. 발끝으로 빠르게 물러서다 능청이며 몸을 맡겨 비틀고 꽈는 포즈는 끊임없이 남성의 힘을 요구한다. 김세연과 에스테반 벨랑가의 조화가 아름다웠다.

 

 
 이번 공연의 예술감독 김용걸 역시 출연했다. 〈인사이드 오브 라이프(Inside of Life)〉 중 2인무 부분은 영상으로 의미를 전한다. 죽어가는 물고기, 철조망, 묘지, 바람개비 등이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상기시킨다. 국립발레단 주역 김지영이 출연해 초연 무대 이상의 효과를 끌어내며 한때 한국을 대표했던 파트너십을 재연해 인상 깊었다. 
​문애령
이화여대 및 동대학원에서 발레를 전공했고. 미국 조프리발레스쿨 등지에서  수학했다. 월간 '객석'의 예술평론가상 공모를 통해 무용평론가로 등단했다. 현장 비평가로 <객석> <몸> <춤웹진>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비평작업을 하고 있다. 
2017.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