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성용ㆍ한창호ㆍ도유ㆍ배준용
관객과 더불어 노는 방법
김채현_춤비평가
관객과 더불어 놀아가는 모습은 문화계 전반의 두드러진 양상으로 자리잡는 중이다. 관객이 작품을 공유하는 것은 관람의 기본이되, 그에 더하여 관객이 작품과 함께 노는 일은 몇몇 속성을 추가할 것이다. 번거롭게 논하기보다, 그 같은 속성을 압축하는 바로서 관객의 관심사와 창작자의 관심사가 부합하는 현상이 들어진다. 다만 유의할 점으로서, 예술을 놀이의 한 부문으로 치는 관점에서는 놀이가 감각적 만족으로 시종하는 것은 아니며, 특히 관심사 부합의 측면에서 노는 일은 때때로 심각해지기도 한다.


 댄스컴퍼니무이 〈Sign: 폭력의 전조〉
 
 김성용댄스컴퍼니무이는 최근 몇 해 사이 폭력을 주제로 〈무빙 바이얼런스〉 〈린치〉 같은 작품들을 선보였다. 폭력의 연작(連作)이라 불러도 좋을 이들 작품은 최근에 이를수록 문명사회를 비웃으면서 폭력이 증식하고 확대 재생산되는 사회, 한마디로 폭력 사회의 단면들을 집요하게 환기하였다. 최근작인 〈Sign: 폭력의 전조〉는 폭력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7월 20-21일,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우리 사회에서 비단 사회 양극화, 여혐, 인권 유린, 댓글 조작, 국정 농단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유무형의 폭력이 만연해 있다는 인상은 상식적 시민이라면 품음직한 정서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시민으로서 관객은 공연 관람보다는 (자신이 겪을) 폭력에 훨씬 더 관심을 기울일지도 모른다. 언뜻 멀어 보이는 공연 관람과 폭력이라는 두 관심사가 하나로 엮인 〈폭력의 전조〉에서 관객은 다소 힘겨운 놀이를 겪게 된다.

 

 
 〈폭력의 전조>는, 안무자의 소개에 따르면, 폭력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가해지는 폭력과 폭력이 구체적으로 가해지기 이전의 불안감을 소재화하였다. 여기서는 폭력이 잘 식별되지 않는 상태에서 폭력에 대한 불안감과 심적 피해를 재현하는 이미지들이 쉬지 않고 제시된다. 특정 폭력이 작품의 라이트모티브로 상정되는 것은 아니어서 제시된 이미지들 또한 불안감과 심적 피해를 포괄적으로 은유한다. 폭력이 특정되지 않아도, 폭력은 오히려 정체불명의 익명성에 편승해서 그 폭력의 폭력성이 강화되기 마련이다.
 〈폭력의 전조〉 출연진과 대부분의 공연 정경은 어둡고 음산한 무채색조로 처리되었다. 뭔가 보이지 않는 동력에 조종되는 듯한 움직임들은 활달하지도 능동적이지도 않으며 출연진들 사이의 교류도 활발하지 않다. 이로써 폭력의 불안감(곧 폭력)은 어디나 편재(遍在)하는 것으로 수용된다. 이를 바탕으로 〈폭력의 전조〉에서 주목할 바는 관객의 실존적이며 현실적인 트라우마나 불안감을 건드렸을 가능성이다. 심신을 움츠린 군상들이 가위눌린 것 같은 폭력의 강박이나 고립감을 지속적으로 환기해내는 것을 관객은 자신의 관심사로 되새기며 공감하겠고, 공감의 정도는 폭력에 대한 기억에 따라 차이나겠다.
 폭력을 집요하게 환기하는 무이무용단의 작업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는 커갈 것이다. 이 작품에서 소품 테이블의 다양한 활용은 상황 구성에 잦은 변화를 주었다. 반면에 불안한 심리 내지 트라우마 묘사를 추상적으로 일관하기보다는 예컨대 몇몇 대목에서 구체성을 투입하였더라면 관객과의 소통이 더 원활했을 것으로 보인다.

 


 온앤오프무용단 〈춤추는 무지개〉
 
 관객의 관심사 가운데 동심(童心)의 세계는 우리 춤 무대에서 흔치 않고 소외되는 것이 관행이다시피 한다. 〈호두까기 인형〉 〈신데렐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즈의 마법사〉 류에 해당하는 국내 창작품을 접하기란 쉽지 않다. 온앤오프무용단의 〈춤추는 무지개〉는 일단 이런 통례를 벗어난다(7월 14-23일, 동숭무대 소극장). 무지개를 찾아 떠난 천사들의 천방지축에서 그들은 동심의 세계를 찾았다. 온앤오프무용단은 한창호·김은정 커플의 2인 무용단으로 각인될 만큼 공연작들은 거의 대부분 두 사람의 출연으로 진행되었고(이와 유사한 사례가 일본계로서 뉴욕에서 40여년 활동해온 에이코·코마 커플이다), 이번에도 그러하였다.

 

 
 〈춤추는 무지개〉의 줄거리는, 하늘나라의 두 천사가 춤을 너무 사랑한 탓에 신의 노여움을 사며 그 벌로서 무지개를 구해 오라는 신의 처분을 받고 인간 세상에 떨어지지만 지상에서도 신기한 볼거리에 한 눈 파는 사이에 지구 중력 때문에 천사 능력을 잃게 되자 깨닫는 바 있어 스스로 무지개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춤에 몰두한 데 따르는 불행은 〈분홍신〉이 짚은 것과 엇비슷해 보이지만 〈춤추는 무지개〉에서는 무지개를 만들어내는 전화위복을 부른다. 지상에서 무지개를 만들어내다가 남자가 죽음을 맞게 되자 장미 다발의 기운으로 되살아나는 반전은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와 다른 점이다.
 온앤오프무용단은 〈춤추는 무지개〉를 현대무용의 사위에다 디스코, 막춤 등의 사위를 혼합하여 펼쳤다. 무대 소품으로는 대형 물통이 다수 등장하며, 마지막에 흐드러지듯 출렁이는 무지개는 넓은 고무줄로 형상화되었다. 전반적으로 현대무용의 일반적 패턴을 벗어나는 〈춤추는 무지개〉가 추구한 것은 동심의 눈높이에서 꿈찾기이다. 무지개가 상징하는 꿈의 세계는 웬만한 환상을 가능케 하며, 그래서 〈춤추는 무지개〉는 동심의 세계에 자유로이 다다를 수 있었다. 동심의 세계를 구현하는 데 있어 일반적인 현대무용 스텝을 그대로 적용한 때문에 〈춤추는 무지개〉의 관람 대상층은 아동에 국한되지 않으며 그러므로 〈춤추는 무지개〉는 정규 현대무용 작품에 속할 수 있었다.
 과문의 탓인지 몰라도, 동심의 세계를 터치하는 창작물이 장수하는 경우는 드물다. 2008년부터 몇해 연말마다 인천시립무용단이 전래동화들을 한국무용 버전으로 각색해서 올린 〈호두까기 인형〉 같은 예외도 있다. 민간 극장들에서 자체 기획으로 개발한 아동극 류의 춤 창작물도 더러 있을 것이나, 대부분 정규 춤 작품에서 제외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를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아동들에게 어필할 수준의 춤 스텝에 맴돌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춤추는 무지개〉는 아이들의 놀이와 환상을 현대무용으로 끌어올렸고, 이것이 〈춤추는 무지개〉의 강점이다.
 이에 따라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발상을 뒷받침할 경이로움과 묘기를 더 개발해야 하는 과제가 제기되었다. 기왕 내친걸음으로 아동과 성인 가족이 함께 놀아보는 세계를 재미나게 버전업하기를 기대한다.

 


 배준용 〈팝 아트 피나〉
 
 관객의 관심사로서 대중문화의 기세는 이즈음 등등하다. 언론 지면에서도 대중문화의 비중은 날로 높아간다. 언론이 이래도 좋을까 하는 우려는 오히려 푸념으로 여겨질 성싶다. 배준용은 자신의 안무작 〈팝 아트 피나〉에서 순수예술이 대중문화에 밀리는 세태를 진단하였다(7월 14-15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문화예술계의 동향 자체를 춤 소재로 거론한 사례가 아마도 전무했던 사실을 염두에 두면 무용인 스스로 그 동향에 대해 작품으로 발언한 점에서 우선 눈길을 끈다.
 〈팝 아트 피나〉는 ‘세계적’ 안무가라 칭송받는 피나 바우쉬(2009년 타계)가 세상을 뜬 지 120년 후 미래 사회(그때는 예술이 생활 속에서 보편화된 사회이다)에서 이미 대중들의 아이콘으로 군림하는 가상 상황 속에서 전개된다. 그 50년 전에 이미 팝 피나 랜드(Pop Pina Land, 이름하여 창조문화테마파크)가 세워져 피나를 아이콘화하는 작업이 엄청나게 진척되었고, 이번 공연 당일은 랜드 설립 50주년 기념일로서 피나의 유품들을 경매하는 장이 펼쳐진다. 관객들은 그 기념일에 특별히 부름을 받은 브이아이피 초대객들이다.

 

 
 피나 생전에 춤 스튜디오에서 지도하는 모습을 기록한 영상이 무대 왼켠에 수시로 비쳐지고 무대 주변에 원색조의 화려한 구조물이 여럿 배치되었다. 더욱 눈길을 끈 것은 객석에 덧입혀진 푹신한 좌식 쿠션 소파(bean bag 의자)이다. 국내 춤 객석을 모두 빈백으로 대체한 것은 초유의 일인 동시에 오늘의 트렌드를 감각적으로 드러낸 사례로 꼽아진다.
 피나의 〈카페 뮐러〉에서, 뭇사람들에게서 인상적 순간으로 수용된, 한 여자를 한 남자가 안았다가 떨어뜨리는 자세가 거듭되는 장면, 피나가 봉사처럼 서성대는 장면 등 피나의 여러 작품을 〈팝 아트 피나〉는 일부 차용 각색하고 배준용의 현대무용으로 전개하였다. 여기에 사회자 역할자가 상당한 분량의 대사로써 미래 사회에서 피나가 아이콘이 된 상황과 의의를 조금은 코믹하게 소개하고 마지막 경매 행사도 진행한다. 공연의 마무리 부분에서 팝 피나 랜드 이사장 역의 배준용이 김민기의 〈가을 편지〉를 부르며 물신화(物神化) 세태를 꼬집듯이 경매를 계속한다.

 

 
 피나가 춤에서는 역사적 사건이었으나 대중문화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안무자의 문제의식은 문제의식으로서 유효해 보인다. 20세기에 들어서고부터 구미와 아시아권에서 순수예술이 위축되는 데 반비례하여 대중예술이 팽창하였으며 더욱 지난 20여 년간 이 흐름은 가속화되고 있다. 이런 판국에 순수예술의 진로를 탐문하는 것은 정당하며, 〈팝 아트 피나〉는 순수예술에 갇힌 우물 안 개구리 의식에 나름 경종을 울리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피나 같은) 순수예술과 춤이 지금 그리고 미래에 대중들에게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팝 아트 피나〉의 안무자가 시사하는 답은 명확치 않으나 아마도 대중예술의 동향을 참조해야 한다는 정도로 정리될 듯하다.
 〈팝 아트 피나〉는 대본의 압축, 산재한 춤들 간의 유기적 연결, 패러디의 초점 맞추기, 대사 발성 및 가창력 등의 면에서 손질을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더러 노출하였다. 그럴지라도, 대중예술의 트렌드를 춤에 도입하고 이를 관객들과 즐기면서 인터랙티브한 교감을 행하고 순수예술의 오늘을 새김질하는 〈팝 아트 피나〉의 발상은 참신하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7.8.1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