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성훈 〈Green Eye〉 & 이나현 〈시선의 온도〉
강렬한 비주얼, 집요한 움직임 탐구
장광열_춤비평가
 춤 공연의 유형과 공연장소가 다양해지고 있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한국 춤계에서는 새로운 양상이 아니다. 특정한 공간과 춤, 타 장르와 춤, 테크놀로지와 결합한 춤 등 장소 특정형, 융복합 공연 등은 기획공연의 확장과 함께 한국 춤계의 다양성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전문 춤 단체를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는 무용가들의 신작 무대는 그들의 전작 작업을 지켜본 평자의 입장에서는 지속적인 안무 스타일의 견지 혹은 또 다른 변신이란 측면에서 주목하게 된다.



 김성훈 댄스 프로젝트 〈Green Eye〉

 김성훈은 전문 춤 단체 LDP에서 활동하다 영국으로 진출, 아크람 칸 무용단에서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유럽의 춤을 경험한 배경을 갖고 있다. 김성훈댄스프로젝트의 〈Green Eye〉(8월 16-17일, 서강대메리홀, 평자 16일 관람)는 몇 개의 에피소드들이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무가는 4개의 에피소드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인간의 어두운 내면에 대한 탐구’를 시도했다.

 


 8개의 블랙 테이블과 블랙 의상을 착용한 8명 댄서들이 만들어내는 비주얼은 시작부터 그 인상이 강렬했다. 제스쳐를 곁들인 무용수들의, 마치 연설문을 낭독하는 듯한 사운드는 청각적 자극 또한 만만치 않았다. 무대 전면을 장식한 수묵화 느낌으로 터치한 듯한 무대미술, 샌드백을 야구 방망이로 때리고 역기가 등장하는 등 일상과 연계된 움직임과 오브제가 주는 이미지들이 난무했다.
 무대 위에서 내려 온 20여 개 정도의 갓 전등과 그 사이사이를 누비는 여성 무용수의 솔로 춤, 가슴을 드러낸 여성 무용수의 2인무 등 댄서들의 거친, 때론 소박한 느낌의 움직임들이 무대를 가로 질렀다.

 

 

 안무가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를 모티브로 한 무용극을 표방했다. 주인공 오셀로와 등장인물들 간의 원망, 시기, 질투의 감정과 결국 파멸에 이른다는 원작의 내용은 그러나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관객들은 전체적으로 무겁게 조합된, 다소 거친 이미지의 파편들을 만나게 될 뿐이다.
 장치 사이를 오가는 움직임의 조율, 비주얼을 만들어내는 시각적 감각과 무용수들의 만만치 않은 기량과 표현력 등이 나쁘지 않았으나 50분 길이의 작품을 새로운 움직임과 함께 특정 캐릭터의 설정과 표출로 세련되게 조율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유사한 스타일의 반복은 자칫 그 유사함이 군더더기로 비쳐질 수도 있다. 장편 작품의 전개를 위한 안무가의 또 다른 장치가 필요해 보였다.

 


 UBIN Dance 〈시선의 온도〉

 이나현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직업무용단에서 활동 후 귀국, 프로젝트 무용단 체제의 전문 춤 단체를 이끌고 있다. UBIN Dance의 정기공연 무대로 마련된 〈시선의 온도〉(8월 26-27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평자 27일 관람)는 작품 전편에 걸쳐 안무가에 의한 8명 댄서들의 몸을 통한 움직임 탐구란 색채가 짙었다.
 55분 길이의 작품은 모두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안무가는 각 장마다 오브제의 사용이나 서로 다른 분위기의 춤 구성으로 이를 차별화시켰다. 사회에서 만나는 타인의 시선, 그 속에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과 그 답 찾기가 작품 속에 함축되어 있었다.

 

 

 이나현의 안무 작업은 2008년 〈텅빈 혼잡〉에서부터 한 작품 안에 몇 개의 프레임을 설정하고 이를 각기 다른 질감의 움직임으로 터치하는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춤을 끊임없는 움직임의 탐구에서 찾는 안무가의 감각은 이번 작업에서도 작품 전편에 걸쳐 빛을 발했다. 8명 댄서들의 2인무와 군무 등으로 조합된 움직임은 진지함과 함께 개개 댄서들의 움직임의 질을 음미할 정도로 밀도 높은 앙상블로 정제되어 있다.
 1장 ‘암흑 에너지’는 백색으로 정돈된 깔끔한 댄스 플로어 위에서 펼쳐지는 3명 남성 무용수와 1명의 여성 무용수가 만들어내는 움직임 변주, 두 팔과 두 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는 반복되는 동작에서 조합되는 움직임의 매칭과 변주가 춤을 보는 재미를 더한다.
 2장 ‘나는 아닙니다’에서 안무가는 다양한 유형의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육감적인 댄서의 솔로 춤과 순차적으로 배치된 군무의 대비, 나레이션과 함께 여러 명의 댄서들이 사람 형상의 마네킹을 들고 등장하는 장면 설정은 사회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가 꽤 선명하게 부각된다.
 이전작들에서 보여주었듯이 이나현은 음악과 움직임의 매칭에서 특유의 감각을 발휘한다. 〈텅빈 혼잡〉에서 이나현이 황병기의 음악을 온몸으로 튜닝 했던 것처럼 〈시선의 온도〉 2장에서도 초반부의 감미로운 음악과 나레이션을 통한 음향적 효과, 소음과 타악기와 접목된 2인무, 금속성의 음악에 맞춘 솔로 춤 등에서 안무가는 다채롭게 몸과 음악을 조합시키고 있다. 남녀 무용수들의 2인무에서는 리프팅 등 움직임의 테크닉을 음미하는 묘미도 쏠쏠했다.

 

 

 3장 〈결혼〉은 안무가 이나현이 직접 출연한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관습적 제도적 차별을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드러내고자 한 안무가의 시도는 꽤 상징적인 몇몇 장치와 연계되어 2인무로 표출되었다.
 두 무용수의 블랙 & 화잇으로 대비된 의상. 붉은색 테이프로 무대 바닥을 테이핑 하는 설정은 색채의 대비도 강렬하지만 여성, 장애인, 이국 노동자 등 사회의 약자들을 향한 불편한, 차별적인 시선에 대한 강한 응징으로 희화된다. 그 숨겨진 메시지 사이에서 거의 몸이 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이어지는 움직임의 변주, 접촉 즉흥의 묘미를 음미할 수 있음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3개의 프레임으로 나뉘어진 〈시선의 온도〉는 전체적으로 너무 무거워 보였다. 2인무의 반복되는 패턴 역시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들에게는 인내심을 요구했다. 3장 ‘결혼’이 좀 더 다른 색깔로 펼쳐낼 수 있었더라면 극장예술로서의 춤이 갖는 묘미도 더욱 배가되었을 것이다.
 손끝, 발끝 하나까지 에너지가 미치도록 사지를 순간적으로 팽창시키는, 마치 몸 전체를 스트레칭 시키는 듯한 움직임 구사와 머리, 두 팔, 하체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탄성을 활용한 안무가의 움직임 만들기는 이나현 만의 독창적인 메소드로 평가할 만하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춤웹진〉 편집장,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2017. 09.
사진제공_김성훈댄스프로젝트/박귀섭, UBIN Dance/주성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