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무용단 〈춘상〉
춘(향)의 함량 미달이 부른 춤과 서사의 불균형
김채현_춤비평가
 국립무용단은 변화의 선상에 있다. 무용단의 변화는 작품으로 제시되며, 국립무용단의 최근 몇 무대에서도 그 같은 변화는 관측된다. 안정된 체제의 구축과 고양된 작품성의 구현을 국립무용단의 당면 현안으로 강조하는 춤계의 중론 속에서, 근래의 변화상은 더욱 국립무용단의 위상을 배경으로 관심사가 되어왔다. 이번의 〈춘상(春想)〉(9월 21-24일, 해오름극장) 또한 무용단의 변화를 모색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수용된다.
 〈춘상〉은 춘향전을 모티브로 하되 그것을 벗어난다. 고교 졸업 파티에서 눈이 맞은 춘(향)과 몽(룡)은 연인이 되지만 부모의 강압으로 몽이 해외로 떠나며 둘 간의 사랑은 슬픔으로 남으며 몽이 사고사(事故死)했다는 오보 같은 약간의 에피소드들이 있은 몇 해가 지나 귀국한 몽이 거리 횡단보도에서 춘과 재회하여 둘 간의 사랑은 가약(佳約)으로 맺어진다.

 

 

 그 무대는 미니멀적이다. 직선의 사각형 형태가 또렷한 2층 구조물은 아래층 가운데를 비우고 아래 위를 잇는 계단만 덧붙여져서 흰색으로 마감되었다. 구조물 자체는 매우 단출하며 회전 무대 위에서 상황에 따라 놓이는 각도가 달라지므로 그 용도는 미니멀한 겉보기와는 대조적으로 복합적이다. 음향은 최신 인기 대중음악으로만 구성된다. ‘Just Before’(염신혜·선우정아), ‘Hey Bae’(정기고, feat. 팔로알토)’, ‘우주를 줄게’(볼빨간사춘기)와 ‘이 지금’(아이유), ‘백야’(넬) 등의 원곡이 서양 클래식 음색의 춤곡으로 편곡되어 춤의 동반자 구실을 해내었다.
 〈춘상〉에서 춤들은 근접 거리의 전경(前景) 이미지들처럼 밀려온다. 춤계 원로 배정혜 안무의 춤들은 8장으로 나눠진 〈춘상〉의 고비와 길목들에서 작품의 서사를 견인하며 두루 방점을 찍어나갔다. 전신을 관통하는 호흡에서 표출되는 녹진한 바디 라인들은 미니멀적 배경과 축제적 음향에 의해 클로즈업되었다.
 마지막 장에서 자주색으로 색깔이 바뀌는 의상은 옅은 살구색조가 주조를 이룬 단색 바탕의 심플한 도안으로 춤꾼들의 다채로운 움직임 동선과 바디 라인을 선명하게 살려내는 효과가 컸다. 2층 구조물의 흰색과 살구색조의 의상은 멋으로서 서로 어울렸다. 또한 이전에 비하여 탭 댄스 풍과 머리채 춤 같은 포즈를 덧붙인 것은 국립무용단으로서는 이색적인 일이다.
 시각적으로 매우 간결한 〈춘상〉의 무대에서 춤들은 매우 도드라진다. 이번에 국립무용단은 대중음악의 편곡과 함께 일반 관객의 감성에 밀착하는 기법으로서 일부 뮤지컬 춤 양식을 〈춘상〉으로 수렴하였다. 무대의 넓은 마당을 수놓는 뮤지컬 식의 군무가 속도감을 앞세워 역동감 있게 펼쳐진다. 동작량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춤에로의 집중성이라는 목표를 위해 이번에는 뮤지컬 양식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때때로 국립무용단의 무대에서 춤 기근(饑饉)이 우려되곤 했던 경우들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춘상〉의 무대는 그러한 우려가 안무 역량에 따라서는 무리 없이 해소될 수 있음을 말해주었다. 이런 점에서 춤-무대-음악의 3박자가 〈춘상〉에서 효력을 발휘한 것은 물론이다.

 

 

 부모가 내놓는 은색 캐리어 앞에서 몽은 위축되고 이어 공항 출국장이 설정되며 춘과는 속절없이 이별한다. 해외와 국내에서 제각각 동떨어진 상태에서 춘과 몽은 오보와 오해에 시달린 듯 하다가 곧장 횡단보도에서 재회한다. 이별과 재회, 그 사이를 구성하는 춘과 몽의 사연은 딱히 기억할 것이 없을 만큼 소략하다. 이런 까닭에 ‘춘향전’에서 춘향의 시련이 간략했더라면 과연 세상이 공감하는 춘향일 수 있었겠는가 하는 가상의 물음을 여기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춘향은 왜 춘향일까? 시련에 굽히지 않고 마음(사랑)을 고수하는 결기는 춘향을 줄리엣(또는 로미오)에 못지않게 공감을 사는 춘향으로 떠오르게 하는 핵심으로 보인다. 춘향의 (전통 사회 속의) 행적에 연연할 일은 아니지만, 시대 배경이 전혀 다른 〈춘상〉에서 춘향의 결기에 대응할 만한 서사 내용은 앞서 소개한 대로 사실상 허약하다. 춘향전에서 춘향의 결기를 구성하는 내용을 지나칠 정도로 생략하거나 소거함으로써 〈춘상〉의 춘은 춘향의 정체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맹점은 몽에게서도 있었다.
 〈춘상〉은 춘향전을 모티브로 하되 그것을 벗어나므로, 〈춘상〉이 춘향전의 서사를 충실히 따라야 할 이유도 없다. 둘은 이제 독자적 작품으로 제각각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러나 〈춘상〉의 설득력은 ‘춘향전’의 그것에 비해 함량미달이다. 곁가지로서, 횡단보도에서의 만남이라는 우연 그리고 단순하게 처리된 오해와 풍문 같은 대목들이 〈춘상〉의 서사를 독자적인 것으로 내세우기에는 한계가 컸다.

 

 

 주지하듯이, 등장인물은 서사에 의해 성격이 형성되며 운명마저 갈린다. 근래에 작품 경향이 더러 다양해지고 있어도 그간 국립무용단의 작품은 기승전결 서사를 축으로 해왔다. 기승전결 식의 교과서 같은 전개를 2선으로 돌릴 경우에도 무용극에서 서사의 중요성은 인정되는 바다. 전세계적으로 공립 무용단들이 이야기 내용이 비교적 선명한 서사를 선호하는 것은 대중적 교감을 확보하기 용이한 이점 때문일 것이다. 국립무용단이 다중을 상대로 하는 ‘국립’이기 때문에 서사는 조탁(彫琢)되어야 하겠지만 아무튼 〈춘상〉의 서사로는 미흡하다.
 〈춘상〉에서는 춤과 서사 사이에 불균형이 뚜렷하다. 이번 작업과 연관하여 국립무용단은 모던 클래식 무용극을 표방한 것 같다. 그 자체로 수긍이 가는 모던 클래식을 위해서도 이러한 불균형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이번 무대가 춤에 급급하는 듯한 인상을 준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춘상〉의 서사를 구성하는 대목이 부실했던 지점은 서사 설정 단계에서부터 일종의 삭제나 소거가 과도했던 것은 아닌지 되묻게 한다. 무대와 의상에서 군더더기를 용납지 않는 간결함의 미니멀리즘이 춘향전에 메스를 들이댄 〈춘상〉의 서사에서도 조리 있게 살려졌더라면 하는 것이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7. 10.
사진제공_국립극장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