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선미 〈달하2-월광〉
달빛에 물든 인생월령가
이만주_춤비평가
 돈도 안 생기는데 지극정성으로 춤을 추었다. 춤바람 난 여자는 춤에 미쳐 있었다. 춤이 존재의 이유였다. 그녀 자신이 춤이었다.
 달이 밤을 비춘다. 달이 바닷물을 당겼다 놓았다 한다. 달 덕택에 농사를 짓는다. 과학문명이 오늘날처럼 발달하기 전에는 인간에게 있어 달은 해보다 더 중요했다. 가장 영적이었던 인간은 달을 멀리하면서 영적 능력을 잃었다. 하지만 달은 아직 그녀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녀는 달빛에 물든 춤을 추었다.
 김선미의 춤 〈달하2-월광〉(9월 26-27일. 서강대 메리 홀). 첫날 공연에 평자는 20분 늦어 다음날 다시 가야 했다. 전반적인 흐름을 알 수 있었기에 굳이 다시 안 볼 수도 있었지만 왠지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그래 두 번을 본 셈이고 후회하지 않았다. 창작춤에 녹아든 우리 춤사위를 다시금 살펴 볼 수 있었다. 작품은 예술가로 불리어지기를 원하는 한 춤꾼의 인생월령가(人生月令歌)였다.

 

 

 나는 사실 그간 김선미의 ‘월령 시리즈’를 한 편도 보지 못했고 그녀의 또 다른 작업의 한 갈래인 ‘한국창작 솔로춤 시리즈’ 중에서 2009년인가에 했던 창작춤 〈볼레로〉만을 우연히 보았을 뿐이다. 그녀의 〈볼레로〉는 모리스 베자르가 안무하고 발레리나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던 실비 길렘(Sylvie Guillem)이 춘 〈볼레로〉의 감동에 못지않았다. 길렘의 것이 여성의 춤이면서도 남성성을 느끼게 했다면 김선미의 〈볼레로〉에서는 여성성이 느껴졌다. 힘든 투병에서 이긴 탓인지 환희의 춤으로 휘몰아가던 나아감이 인상적이었고 더욱이 한국춤의 춤사위로 발레를 필적한다는 것이 큰 여운으로 남았다.
 이번 〈달하2-월광〉은 ‘삶과 죽음, 이를 연결하는 여정으로의 인생’을 춤으로 풀어내는 김선미 ‘월령 시리즈’의 13번째 작품이라고 했다. 짧은 춤 작품 속에 그녀의 인생역정이 압축되어 있다. 그녀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 불교에서 말하는 업(Karma)을 춤으로 지우고 풀고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녀에게 있어 춤은 종교이자 신앙이다.

 

 

 무대 아래에서는 한없이 겸손하던 여인이 무대에 올라 춤꾼이 되자 온 몸에서 오만이 느껴졌다. 오만이란 자신감이자 자존감이다. 인간은 겸손해야 하지만 예술가는 자기 작품 세계에서만은 겸손과 오만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기 예술에 대한 자존감 없이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 “나는 할 수 있어, 나만이 할 수 있어,” 하는 오만에서 큰 예술이 탄생한다. 그러나 오만만 해선 추락하기에 겸손한 마음으로 되돌아보는 끝없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지만.
 춤이 시작되자 한없이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느낌을 줘 오만감은 사라졌다. 심장의 리듬에 의존해 모멘텀(Momentum)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서양춤과는 달리 한국춤은 호흡에 의존하기에 부드럽다. 김선미의 춤에는 그 부드러움 위에 전통무예의 수련에서 비롯되는 특이한 나긋나긋함이 있다.
 서양의 무용가들이 춤의 확장을 위해 요가에 관심을 가진지 오래되었고 요즘은 동양의 무예를 차용해 춤언어에 활용한다. 동양무예란 신비스런 영역이 아니라 몸의 움직임과 기(氣)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타며 운용되는 신체과학이다. 무예는 고수가 될수록 몸을 가볍게 움직인다. 일찌감치 무예의 움직임을 춤에 대입한 김선미의 춤은 다양한 몸짓을 보여주면서도 가볍고 자연스럽다. 그러면서 한국춤과 전통무예의 동작이 어우러진 그녀 특유의 춤사위를 형성한다.
 ‘달빛을 안고 있는 손’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달빛을 흉내 내는 걸음’이라고 했다. 혼자 추는 춤이 실로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다양한 춤사위가 구사되었다. 자유자재의 춤, 신들린 발광. 뛰는가 하면 누워서도 엎드려서도 춤을 추었다. 누운 채로 손, 팔, 발, 다리가 한몫을 했다. 가슴을 치는 동작을 반복했다. 빈사의 백조가 되었다가 부활했다. 발랄함과 분방함, 천진난만함이 어우러졌다-해방과 무애(無碍)의 춤.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끝나는 마지막 장면도 맥락이 닿았다. 무엇보다 한국의 춤사위가 바탕을 이루어 편안했다. 긴 팔, 긴 손가락들. 한국춤을 추려 태어난 몸에 한국춤의 춤사위와 미감이 녹아들었다. 우리 춤의 미학이 체화(體化)되어 있다.

 

 

 그녀의 음악을 사용하는 방식이 특이하다. 앞서 쓴 대로 언젠가는 라벨의 ‘볼레로’를 사용하더니 이번에는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선곡하여 국악과 양악이 어우러진 생음악으로 연주케 했다. 거기에 자신만의 춤사위가 만나는 실험을 했다. 시나브로 배경음으로 사용된 복합적인 이상한 음향과 피아노 연주도 무리 없이 어울렸다.
 무대미술로 띄워 놓은 달 하나, 달무리 같은 조명, 무대 장식으로 앉혀 놓은 한 명의 여인. 단순한 미장센이지만 작품의 제목인 〈달하2-월광〉과 잘 어울렸다. 지나간 100년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영상으로 처리해 전반부와 후반부에 두 번 사용했는데 스크린의 크기를 작게 해, 정감 있게 느껴졌다. 흑백으로 처리된 영상들은 ‘인생을 하나의 시간 여행’으로 해석하는 작품의 주제와도 맞았다. 공간과 무대 공간에 대한 사유, 춤이 내면 의식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춤을 추므로서 생각과 의식이 생성될 수도 있다는 몸현상학적인 믿음도 느껴졌다. 관객과 소통하는 춤을 추려는 노력도 돋보였다.

 

 

 작품에 모든 것을 다 담으려는 의욕이 지나쳐 연출에 몇 가지 의문점을 제기시켰다. 춤 작품이라고 하기엔 주제와 내용을 알리는 대사가 지나치게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음악과 음향 없이 오래 끌고 가다가 생음악 연주가 이어지면 좋기는 한데, 너무 튀면서 길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단절적인 암전도 의아심을 자아냈다. 그러나 다행히 마지막에 그 같은 의문들이 걷혔다. 〈달하2-월광〉은 독무 작품이지만 실험의식이 충일한 일종의 융복합예술(Convergence Performing Art, Multi Genre)로 보면 될 것 같았다. 억지로 장르 이름을 붙이자면 ‘모노드라마-음악춤’이 되겠다. 요즘 세태에 최면 당한 사람들은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차피 예술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모두를 다 만족시키고 즐겁게 하는 것은 연예오락이지 예술이 아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간다 ---”

 에필로그에 튀어나온 대중가요, ‘서른 즈음에’ 전곡 사용이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우리 대중가요야말로 심금을 울리는 명곡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달하2-월광〉의 줄거리는 블랙유머 내지는 슬픔이 깃든 애잔한 유머였다. 감동을 주는 무대를 만난다는 것은 관객에게는 행운이다. 작품이 끝날 때, 관객의 가슴이 찡하고 짠했다(실제로 관객에게서 들은 말을 옮김). 김선미의 혼자 추는 춤은 부드러움 속에 깃들어 있는 에너지로 시종일관 무대를 장악했는데 관객의 마음을 장악하는 저력도 있었다.
 과거 작품의 자료들을 살펴보면 〈아우라지〉를 발견할 수 있고 ‘천불천탑’과 ‘와불’의 화순 운주사를 다루었으되 제목은 ‘천부경’을 연상케 하는 〈월영 일·시·무/月影 一·始·無)〉 같은 것도 있다. 우리 문화의 뿌리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좋게 보인다. 이번 춤에는 동양사상에서 만물의 근원이라 여기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철학이 담겨 있고 우주의 은하수와 블랙홀에 대한 사유가 곁들여 있는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그 스케일이 커서 마음에 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한마디. “진정성이 느껴지는 예술가, 춤꾼 김선미! 못 먹어도 고(Go)의 정신으로 언제까지나.” 
이만주
공연예술 사진작가. 현 서울문화재단 무용 전문평가위원. 무역업, 건설업 등 여러 직업에 종사했고, 터키항공 한국 CEO를 지냈다. 여행작가로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글을 썼고 사진을 찍었다. 2015년, 시집 「다시 맺어야 할 사회계약」을 출간했다.
2017. 10.
사진제공_김정엽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