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7 SIDance 러셀 말리펀트 & 라 베로날
20년을 단위로 선을 긋는 놀라운 스케일
이지현_춤비평가
 시댄스(SIDance)가 시작된 게 1998년이고 내가 비평을 하기 시작한 것이 1999년이니 난 이미 시댄스 20년을 거리감을 갖고 논하기에는 바라본 세월과 각도가 모자란다.
 물론 난 대학시절 인기 많았던 미남 기자였던 이종호 예술감독이 이화여대의 교수, 강사, 선배님들과 어울리는 자리에 있었던 모습을 어깨너머로 본 풋풋한 기억을 갖고 있으며, 뒤늦게 석사를 마치고(1993-95) ‘현대무용단 탐’에서 활동(1996-1999)을 하다가 비평가로 데뷔를 했던 그 때쯤 젊은 이종호 기자는 지금까지 지속될 시댄스를 준비하고 실행에 발동을 걸고 있었을 것이다.
 창작현장에서 비평현장으로 적을 옮기면서는 나와 활동 시기가 엇갈렸기에 비평계의 선배로서 이종호 비평가의 모습은 약하지만, 그보다는 민간에서 축제를 이어가던 예술감독으로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던 모습과 그 와중에도 SPAC포럼(공연저널리즘 서울포럼, 2008-2013)을 기획하여 비평이 국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발언을 하고 무용가, 기획자들과 함께 춤을, 춤문화를, 춤과 사회를 논하는 신선한 장면에서 중후한 사회자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연배에서나 경륜에서 너무나 많은 차이가 나기에 한 자리에 앉기도 어려운 시절이 조금 지났을 때, 한번은 그간 궁금했던 시댄스는 왜 ‘세계무용축제’인가를 물어 본 적이 있다. 보통은 international로 쓰고 국제라고 번역을 하거나 세계라면 world라고 통상 쓰기 때문이다.
 정확한 답변이 기억나지 않지만 문학을 접하고 시를 쓰던 문학소년 시절부터 문학 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음악에 관심을 갖고 상당한 조예를 갖춘 배경에서 문학과 음악을 바라보던 시선을 춤에 확장하여 다분히 춤을 지리적,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보는 깊이 있고 통합적인 시선을 느꼈었다.
 국제교류라는 말이 난무 하는 요즘 ‘국제’라는 단어는 문화용어라기 보다는 행정용어에 가깝고 세계무용축제의 ‘세계’라는 단어에는 그의 문화로써의 춤을 풍성하게 다뤄보고자 하는 의도가 잘 묻어있다고 생각한다.
 리플렛에 ‘시댄스 20년을 중간정리하며’에 나와 있듯이, 그리고 그것을 조금 더 길게 써서 이번 시댄스 개막식에서 꼼꼼히 읽어내려 간 모습에서, 아직도 그에게 남아있는 기자의 감각과 자기를 바라보는 비평가의 시선에 놀랐고 그리고 아무리 그런다 한들 거기에 절대 담아지지 않을 그간의 못 다한 말과 못 다한 심정이 있음이 느껴졌다.


 

 

 개막작인 러셀 말리펀트의 〈숨기다/드러내다〉의 공연이 끝나고 많은 외국손님이 있는 가운데 오랜 시간 고민하고 결정한 듯 결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약 20분간) 때론 웃음을, 때론 애잔한 공감을 느끼게 한 낭독은 한 켠에서 준비한 음식이 식어가고, 긴 낭독에 손님이 조금씩 빠져 나갔음에도 모든 것은 20년이 정리되는 시간으로는 모자라게 느껴졌다.
 그저 넋두리인가 했을 때, 기다린 자에게 선물 하듯 그는 마지막에 이제 20년을 잘 끝냈으니 다음 20년은 여태까지 해왔던 것은 “헌신짝처럼 버리고” “좀 더 자신의 취향을 존중하며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하겠다”는 폭탄선언으로 마무리를 했으니 참 여러 가지로 난감하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20주년 개막식이었다...


 

 

 영국특집 개막공연에서 러셀 자신의 아내를 위한 〈both, and〉, 〈2☓3〉와 자신의 솔로 〈One part 2〉, 자신을 포함한 5명이 출연한 〈Piece No. 43〉 등 4개의 소품을 들고 온 러셀 말리펀트는 마이클 헐스의 조명으로 유명해진 작품들을 자신의 안무데뷔 20주년(2015)을 기념하기 위해 구성한 프로그램으로 선보였다.
 무용수로서 적지 않은 나이(1961년생)임에도 자신의 특징인 롤핑 등 바디워크로 다져진 훈련된 신체를 가지고 자신만의 호흡과 동작흐름으로 흐트러짐 없이 움직임의 순간을 새롭게 창출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폐막작 라 베로날의 〈죽은 새들〉은 개막작이 소품 중심으로 어두운 분위기였던 것의 아쉬움을 시원하게 날려주었다. 안무, 연출 마르코스 모라우는 2009년 피카소 박물관의 의뢰로 이 작품을 구상하였고 피카소의 시선으로 20세기의 서사를 다룬다. 그 안에는 독재와 전쟁, 죽음과 그것을 무수히 생산해내면서도 지칠 줄 모르고 솟아오는 집단적 에너지가 때론 반복적으로 때론 난삽하게 펼쳐진다.
 무용단 이름을 버지니아 울프가 자살시도에 썼던 항우울제 이름-라 베로날을 사용할 정도로 울프를 사랑하는 여성주의자인 마르코스는 단 1명의 남성무용수를 등장시키고 7명의 자신의 여성무용수와 경희대무용과 학생 13명을 등장시켜 ‘볼레로’에 20명의 여성 군무를 보여주었다.
 색상은 검은색을 통일하고 반짝이는 장식과 망사재질로 변형을 준 다양한 의상과 눈썹과 입술을 강조한 약간은 괴기스러운 강한 메이크업, 그리고 매우 빠르고 강하게 관절의 각도를 꺾는 동작을 하는 매우 유연하고 춤을 잘 추는 보석 같은 여성무용수들이 20세기 여성상을 상징하며 이 작품을 시종일관 끌고 나간다.


 

 

 피카소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담배를 피우며 몽환적으로 프랑스와 스페인의 동시대 예술가 이름을 불러들이고, 두 나라의 동시대 음악을 주로 사용했으며, 현대사의 한 축으로 러시아를 상징하기 위해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을 사용한 이 작품은 젊은 연출자인 만큼 자극적인 장면을 힘을 빼지 않고 연속적으로 반복하거나 전개하는 방식이 거칠지만 20세기를 여성 집단 중심으로 그려낸 것은 탁월한 선택으로 기억될 것이다. 특히 많은 안무가가 작업한 ‘볼레로’ 중, 여성을 부각시키는 라인댄스 같은 안무로 매우 역동적이고 빠르며 재치 있는 볼레로 장면은 그 신선함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그간의 관행과 달리 30분간 진행된 마르코스 모라우와 안무가의 대화에 이종호 감독이 직접 사회로 나서 이 젊은 연출가에게 매우 애정 어린 관심을 갖고 개인적 취향을 서슴없이 드러내며 대화를 진행해나갔다. 마르코스 역시 지리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었고, 세기를 바라보는 거시적 관점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 젊은 안무가를 눈여겨보는 이종호 감독의 시선에서 개막식 때 느꼈던, 앞으로 예술감독으로서 개인취향을 담아서 하고 싶었던 것을 하겠다는 선언이 무엇일까를 조금은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었다면 그건 너무 비약일까.
 앞으로 시댄스의 20년은 어떤 모습일까. 앞의 20년은 겨우 터를 마련하고 시작할 준비를 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한 호흡이 20년이라니 참 긴 호흡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지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춤비평가로 등단했다. 2011년 한국춤비평가협회의 정회원이 되었으며, 최근 비평집 『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 왕성한 비평 작업과 함께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강사, 서울무용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7. 11.
사진제공_박상윤/서울세계무용축제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