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차진엽 + 대런 존스톤 〈미인〉
비혼(非婚) 현실에 메스를 가하다
김채현_춤비평가
 남녀 동권의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근자의 대표적 사례로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 혐오가 꼽힌다. 인터넷 공간의 익명성에 기대어 여혐을 노골적으로 토로하는 행태가 일상 현장에서 여혐을 부추기는 악순환도 감지된다. 비단 여혐이 아니더라도 여성이 비혼(非婚)을 작심하는 정도가 날로 커가는 현상에서 여성의 팍팍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아마도 여혐은 여성의 그런 현실을 극단적으로 대변하는 것 같다.
 차진엽의 근작 〈미인〉에서 출연자의 독백은 이러하였다. “... 전 모성애가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애기를 봐도 예쁘거나 귀엽지 않아요. 사람들이 그래요. ‘너가 애를 안 낳아봐서 그래.’ 전 영원히 낳고 싶지 않아요. 너무 아플 것 같고, 지금 내 몸 챙기기도 어려운데, 애까지 어떻게 챙겨요. 내 모든 걸 희생해야 하는 것도 끔찍해요... 전 결혼하기 싫어요...”
 〈미인〉은 차진엽과 대런 존스톤, 두 안무자가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한국-영국의 합작 프로젝트로 진행하였다(10월 14-18일, 서울 문화비축기지). 10월초 개장한 상암동 소재 문화비축기지의 첫 공연물이며, 이곳은 70년대 중동 오일 파동을 겪은 정부가 유사시에 대비하여 건설한 석유비축기지가 2000년 이래 용도 폐기된 끝에 이번에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 개장하게 되었다.
 두 안무자는 ‘미인’을 주제로 각자의 독자적 안무를 독립된 두 곳의 공간에서 진행하였고, 관객은 두 공간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안무작 2편을 순서 없이 2부작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즉, 〈미인〉은 하루 저녁에 차진엽의 〈Body to Body〉(40분간), 대런 존스톤의 〈Plasticity〉(30분간)를 두번씩 공연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6곳의 공간을 갖춘 문화비축기지의 이점을 활용하여 〈미인〉은 인접한 두 공간에서 동시에 공연되는 색다른 면을 보여주었다.


 

 

 문화비축기지의 시멘트 맨바닥에 모래로 둥근 춤판을 조성해서 진행된 〈Body to Body〉는 그 시멘트 바닥에 못지않게 강고한 앞서의 독백으로 시작하며, 공연 내내 이 독백의 관점이 유지된다. 살아가는 낙(樂)의 상실이 여성성의 포기를 부른다는 뜻을 이 작품은 환기한다. 공연 개시부에서 여성이 머리를 수그려 선자세로 모래를 한 움큼 쥐고선 손 사이로 모래를 흘려보내는 무언의 상실감이 이후에도 작품의 전반적인 정서로 흐른다. 그리고 전통 복식의 단속곳과 가리개를 몸에 두른 다섯 여자들은 더러 속살을 노출함으로써 여성 자체를 내보인다.
 모래 바닥에 주저앉아 하체를 꿈틀대며 이동하고 모래 바닥을 더듬어가며 발로써 모래를 뒤로 차거나 모래 바닥을 기어가며 몸부림치는 여성들은 넋 잃은 인간 군상으로 다가온다. 바닥에서 조신한 자세를 감내하는 여성들과 저돌적 자세를 마다 않는 여성들의 모습이 겉으론 대조적일지라도 사실상 여성을 지배해온 그리고 지배하는 멍에에서 기인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는 것을 작품은 시사한다.


 

 

 작품 전반부에서 태아와의 교감, 여성들 간의 공감이 바닥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진다. 섬세한 움직임의 남성이 느린 몸짓으로 여자들의 심경에 가담하고 어느 여자를 지탱하며 의지처가 된다. 그렇더라도 그들의 트라우마는 좀체 해소되지 않는다. 이를 벗어나 모두들 로비로 이동하여 벽을 박차는 등으로 우왕좌왕하는 순간을 시도하지만 그마저 짧게 그친다. 다시 원래의 자리로 복귀할 수밖에 없는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카오스이다. 금속성 메탈 사운드가 미니멀 뮤직처럼 반복되는 와중에 그래픽 디자인된 형형색색의 둥근 영상이 바닥을 비추는 비정형적인 조명에 최면이 걸린 듯이 여자들은 빠른 움직임으로 반응하였다.
 맨살을 드러내는 느낌으로 차려 입은 여자들의 모습과 바닥 조명 이미지, 그리고 계속 웅웅 대는 금속성 음향과 여기에 합세하는 거문고의 퉁퉁 뜯겨지는 저음에서 〈Body to Body〉의 센슈얼한 감각이 두드러진다. 센슈얼한 몸과 여성의 두 측면을 새삼스럽게 하나로 묶어 〈Body to Body〉는 여성성이 처한 위기의 상황을 환기한다. 오늘의 세태에서, 인간의 몸 가운데서도 특히 두드러지게 여성의 몸이 사회적 구성체로 예시되곤 하는 현상은 여성의 주체성이 그만큼 억압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듯, 〈Body to Body〉는 여성 억압을 남다른 시청각적 매체와 움직임으로 구현해나가면서 우리 곁 젊은 세대의 심경을 여실하게 대변하여 현실감이 높다.


 

 

 대런 존스톤의 〈Plasticity〉는 여성 몸의 조형성, 가소성(可塑性)에 대해 묻는다. 몸의 변형 즉 성형 현상을 염두에 두고 안무자는 여성 이미지를 클로즈업하였다. 이 공연은 크게 두 부분으로 진행된다. 사각형 수영장처럼 무대에 설치된 얕은 풀장을 중심으로 한 여성 출연자가 관객 앞에서 뒤로 물러나며 풀장 너머로 사라지는 부분에 이어 다른 여성 출연자가 등장하여 풀장에서 포즈를 취하는 부분이 전개된다. 단색조의 심플한 무대와 조명은 몸의 곡선미를 강조한다. 바디 라인이 뚜렷한 두 출연자의 움직임들은 매우 느려서 완만한 포즈라 지칭해도 무방하다.


 

 

 출연자들의 과도하게 느린 움직임들은 강한 조명에 힙입어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두 출연자의 캐릭터는 화장품과 성형 등의 광고에 흔한 여성으로 다가온다. 무표정하며 익명적인 그들은 자신들의 겉모습을 드러내는 데 혼신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아주 냉정한 분위기 속에서 관객은 상당한 참을성을 갖고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한다. 춤보다는 느린 시각적 퍼포먼스의 성격이 앞서는 〈Plasticity〉에서 받는 인상만큼은 강렬하다.
 그런 광고 속 여성 이미지를 클로즈업하는 안무자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여성의 인위적 조형을 재촉하는 모종의 산업들에 대해 그리고 외모에의 과도한 집착에 대해 관객의 생각을 묻는다. 미니멀한 움직임과 환각적 일루전을 통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해서 〈Plasticity〉는 여성의 개성과 주체성을 제어하는 지금의 문명을 도마에 올렸다.


 

 

 비혼을 마냥 힐난할 일이 아닌 현실에 대해 〈Body to Body〉는 메스를 들이댄다. 성형이 편재하는 현실을 〈Plasticity〉는 클로즈업한다. 이와 같이 〈미인〉은 여성에 관해 문제시하는 측면이 서로 다른 두 편의 옴니버스작으로 구성되었다. 오늘날 여성이 도처에서 감당해야 하는 실체에 비추어 이런 구성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두 편 사이의 연결 고리는 〈미인〉이고 여성의 아름다움을 묻는 의도가 두 편에 흐르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두 편의 관계가 이번처럼 상당히 느슨한 때문에 얻는 이점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두 편의 연결 고리가 단단한 데서 오는 이점도 상상할 수 있다. 확정할 수는 없는 두 방안 사이에서 상당한 연결 고리로 두 편이 〈미인〉의 의도를 공유하는 정도를 높일 필요는 있어 보였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7. 11.
사진제공_김채현, Darren Johnston, KIMWOLF/콜렉티브에이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