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박은화 〈tuning-몸soma〉
춤, 삶을 치유하다
권옥희_춤비평가
 모든 것이었다. 몰입한 상태의 무용수와 박은화의 춤이 만들어낸 〈몸soma〉(11월 27~28일,부산대학교아트센터)은 자연과 생명의 이치를 보며, 그 경구를 몸으로 다듬어낸 예술(치유)로 관객들에게 절대적인 권리를 행사했다. 관객을 경전이 바람에 날리는 티베트의 산 정상에다 옮겨놓는가 하면, 조율한 춤(몸)을 봄으로써 슬픔이 소멸되는 내적 체험을 하게 한 작품 〈몸soma〉.
 극장이 아닌 미술전시를 하는 다소 협소한 갤러리 공간. 입구 왼편으로 직사각형과 가운데 둥근, 그리고 건너편 좀 더 작은 직사각형의 틀 아래 동 주물로 만든 700개의 작은 종, 그 아래 길게 달려있는 알록달록한 색 한지 끈(종이)의 설치미술, 그 공간을 웅웅 떠다니는 명상음악(차크라), 이채로웠다.
 오색 한지가 만들어내는 고요한 색의 숲. 티베트의 경전을 써놓은 오색천, 그 천이 바람에 날릴 때마다 경전의 내용이 세상에 널리 퍼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타르초를 연상케 한다. 색 한지의 숲, 어떤 바람을 일으키고(風) 담아낼지(願). 무용수들, 천천히 걸어 나와 종이 숲 아래 비스듬하게 앉거나 눕거나 팔을 뻗고 엎드려 있다. 우리 전통음악 ‘수제천’이 시작된다. 의외의 음악선택, 놀랍다. 다양한 음색을 가진 관현악과 타악 연주가 주는 강렬하고도 장중하고 유장한 음악 수제천과 오색 한지 숲 아래에서 일렁이고 있는 춤, 환상이 산출되어 만나는 자리다.




 길고 느리게 일어나는 움직임… 기다린다. 관객들의 마음이 더 가라앉길 기다리는지 혹은 가라앉았던 무용수의 마음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지. 호흡을 깊게 고르면서 겉도는 감각의 분란을 가라앉히고 정신의 주파수를 한껏 낮추는 절차. 앉아 있던 무용수는 차츰 더 가라앉고 누워있던 무용수가 겨우 일어나 앉는 정도의 느린 움직임. 10여분이 그렇게 흐른다. 이윽고 박을 치자 무음, 무용수가 종이 숲을 지나는 움직임에 소리를 내는 작고 맑은 종소리. 땅(속)과 물, 불과 바람으로 만들어진 종, 바람의 움직임이다. 무용수가 종이 숲을 내달리니 바람이 일어나고 바람에 날리는 한지가 종을 울린다. 거듭 울리는 종소리, 아름답다.
 바람의 숲. 바람은 영(靈)이다. 우주의 호흡을 상징하고 생명을 유지하며 분열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영의 힘을 상징하는 바람. 바람 숲에 일렁이는 종소리, 춤. 가슴이 서늘해진다. 한지 끈, 바람이 일어나는 곳. 그 끈은 바람과 같으며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연결한다. 관객의 세계와 〈몸soma〉이 만들어지는 춤의 공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연결한다.


 

 

 무용수가 한 명씩 걸어 나온다, 둥근 숲에서 춤을 추는 박근태. 타악기. 숨이 차도록 발로 바닥을 울리더니 붉은 색 종이 끈 한 자락을 잡고 서 있다. ‘지나간 기억의 한 가닥’이 어지럽히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 눈을 감고 조용히 서 있다가 종이 숲 한 가운데로 달려 나간다. 종이 숲에 바람이 인다. 상의 후드를 뒤집어쓴 채 추는 춤, 슬픔이 가득 고인 몸(춤)이다.
 사각형의 숲을 거쳐 나오는 안선희의 몸에 춤의 에너지가 가득 실렸다. 무당이 요령을 손에 잡고 흔들 듯, 한지 끈을 손으로 놓고 잡고 흔들기를 거듭한다. 종이 끈 뭉텅이를 손으로 그러잡고 흔드니 ‘몸 안의 수천 개의 혈관’ 이 일제히 소리를 낸다. 묶은 종이가닥이 푸르륵 소리를 낸다. 춤으로 ’새로운 땅을 만들며 다지는 ‘열정적인 춤(몸)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춤의 조절능력 또한 뛰어난 무용수다. 첼로음악으로 바뀐다.
 설치물 안에 서 있던 무용수들이 종이끈을 잡고 춤을 춘 잔해는 삶과 시간의 매듭이다. 조현배가 손바닥을 펴서 세우고는 숲을 향해 달린다. 손바닥과 몸을 납작하게 펴고 숲(삶) 사이를 뚫는다. 젊은 혈관이다. 춤이 다르다. 매듭에다 손을 집어넣고 툭 치니, 울리는 종. 삶의 매듭. 그에게 아직 삶(춤)은 놀이이자 강렬한 에너지로 부딪는 만남이다. 그 매듭 아래를 이언주가 발뒤꿈치를 들고 엎드려서 바닥을 긴다. 그녀에게 삶(춤)은 이렇게 온 몸으로 ‘소리를 듣고, 또는 듣지 않기를 원하는, 손바닥으로’ 바닥을 더듬어야 춤(삶)의 기미를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기도.
 가느다란 빨강색 댕기로 머리를 땋아 내린 진영아의 춤. 바람의 숲으로 들어선다. 종이끈을 한 움큼씩 잡아 흔들고 돌고 뿌리자 매듭이 풀어졌다 다시 엉키는 끈, 삶(춤)과 닮았다. 춤의 ‘길로 들어서’ 춤으로 ‘길을 찾고’ 인연을 따라 춤을 추다 보니 춤 길(삶) 위에 서 있다는 춤으로 읽힌다. 오랜 시간동안 춤을 추면서 내려앉은 춤(삶)의 더께, 그 굳은살이 만들어내는 춤의 서정, 가볍지 않다.


 

 

 무용수들이 원형 틀의 종이 숲을 돈다. 경전이 쓰인 마니차를 돌리는 것처럼. 남자 스텝이 나와 가위로 종이끈을 자른다. 썩둑썩둑. 바람이 머물렀던 시간을, 매듭진 상처를. 겨울 숲이 깡총해졌다.
 공간, 세 면에서 감상하던 관객의 이동, 두 면에서 본다. 안무가 박은화, 검정색 의상, 맨발로 걸어 나온 뒤 깡총해진 종이 숲 아래에 서서, 짧아진 종이끈을 올려다보곤 입으로 후~ 불어본다. 바람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 잡아두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일러주듯. 짧은 파동으로 일어나는 바람, 신들의 사자(使者)이다.
 절제된 춤, 절제가 작은 낙원을 만들 듯이, 모든 것을 거두어들이는 담담하면서도 고양된 춤.
 잘려진 종이 무더기를 모아 뿌리고, 그 위에 엎드려 소리를 듣는다. 죽어버린, 바람의 소리, 바람의 넋, 바람신의 현존이기도. 온 몸의 에너지를 모아, 바람의 넋을 공중에다 뿌린다. 이미 그녀는(춤) 공기처럼 가볍다. 걸음도, 숨도. 바람을 안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돌아가는 중.
 박은화의 춤(몸)은 현실이다. 현실의 고통을 말하면서 고통스런 현실을 충전된 춤의 언어로 들어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충전된 춤의 언어에서 발휘되는 힘이 바로 현실 위에 떠오르는 또 하나의 현실이며, 춤으로 바람이 일어나고 종이 울리는 ‘바람의 숲’이라고 할 때의 그 곳의 바람에 해당된다. 하여 박은화의 몸(춤)이 내는 소리는 질이 다르고 기운이 다르다. 소리가 나는 몸은 악기의 신이고 우주이다. 이러한 박은화의 소리와 춤(몸)은 보는 이의 춤의 이해도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나는 춤(몸)을 일반적 춤을 이해하는 정도로 환원시킬 것이며 그 춤에 이미 알고 있는 이름을 붙일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춤(몸)이 하나의 감정(춤)으로 되는, 또는 감정이 하나의 춤으로 되는 특별한 순간을 여러 일반적 감정 위로 들어 올릴 것이며 위험한 감정을 일으켰다가 그 감정을 다시 정화한다는 점에서 박은화의 춤은 예술로, 현실을 위무하는 춤의 힘을 자신의 예술체험으로 이해하려고할 것이다.
 마지막, 뒤 쪽 가벽이 열리자 광섬유 의상을 입고 가부좌를 하고 앉은 여자무용수. 팔을 천천히 움직이며 원을 그린다. 전자 부처? 홀리듯 관객들이 일제히 그 앞으로 모여든다. 한참을 그렇게.




 공연 뒤, 관객들과의 대화에서 쏟아져 나오는 현장의 다양한 느낌과 감동, 안무자와의 대화를 들으면서 예술이 주술적이고 마술적인, 치료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오래된 사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가 무엇을 한 것인지 알았다. 자연(몸)에 대한 지혜로운 시선으로 아름답게 짠 〈몸soma〉이라는 예술작품으로 이들을 치유한 것이었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 대구, 부산 공연을 많이 보고 있다.
2017. 12.
사진제공_박병민, 이경희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