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고블린파티 〈눈〉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방희망_춤비평가
 우리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처음부터 쉽고 익숙한 일은 아니다. 그야말로 그저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노력을 할 뿐, 그 노력 끝에 마음이 맞는 사람과 내게 편한 물건을 만나게 되는 건 가히 행운이라 불릴 만한 일인 것이다.
 사람들이 보통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예술가들, 그 중에서도 무대 위에서 관객의 호흡을 먹고 사는 공연예술인들은 흔히 남의 시선을 받는 것을 ‘즐긴다’고들 여겨진다. 물론 얼마간은 진실이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내면의 어떤 끌림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 길을 걷고 있기는 해도, 암전 후 자신에게 쏟아지는 조명이 오히려 번다한 일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켜 오롯이 혼자 있게 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더 편하다고 여기는 매우 수줍은 성격의 소유자들도 적지 않다는 것을 무대 위에 서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고블린파티의 이주성은 관객의 시선뿐만 아니라 무대 위 조명과 포그머신의 둥그런 구멍까지 다 ‘눈’으로 보여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가 이번에 안무자가 되어 발표한 고블린파티의 신작 〈눈〉(11월 28~29일, SAC 아트홀, 평자 29일 관람)은 그의 이러한 자기고백과 새로운 관계 맺기 노력에 지경민과 명규민이 힘을 보탠 우정 어린 무대다.




 먼저 나와 안무가가 이 작품을 안무한 의도를 소개하는 지경민의 인사를 듣지 않았더라도 맨 나중에 등장한 이주성의 시선이 다른 무용수들과 어딘가 다르다는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워낙에 능청스러운 지경민이나 저돌적인 명규민이 보이는 과감한 몸짓을 똑같이 수행하면서도 이주성의 시선은 자기 눈높이에서 반쯤은 내리깔려 있다. 어쩌다 얼굴이 객석을 정면으로 향하는 찰나의 순간에도 그는 관객과 눈 마주침을 피하고 있으며, 오직 이 놀이 같은 험난한 몸싸움을 함께 하는 동생들에게만 신뢰가 담긴 눈빛을 보낸다는 점이 간간이 포착된다.
 고블린파티를 좋아해서 그들의 공연을 보러 간 관객들만 모아 놓았다 하더라도, 사실 무대 위 공연자에게 관객은 낯설고 대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 가라앉은 불특정 다수’가 될 수밖에 없다. 대화를 나눠보거나 같이 밥을 먹은 적도 없는, 한마디로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한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춤이란 자체가 무용수의 온몸을 고스란히 내보여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 끌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관객은 그러한 재능을 갖지 못한 입장에서 순수히 선망과 동경의 눈길로만 바라본다 하더라도, 대사나 노래 같은 부수적인 기술을 동원하지 않고 오직 몸과 그 움직임만을 관찰감으로 내놓아야 하는 ‘정직한’ 행위는 무용수에게 매사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올 듯하다. 이주성이 조명과 포그 머신에조차도 두려움을 느낀 지점이 있다면, 그것이 상호소통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 그로부터 일방적인 ‘바라봄’을 당한다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주성은 이 난관을 ‘셋’의 놀이로 헤쳐 나가기로 한 듯하다. 다시 말해 어떤 대상과 자신이 일대일의 긴장관계에 놓이는 것을 슬쩍 피해가기로 한 것이다. 지경민의 솔로에 명규민이 합세하면서 대칭적인 짝춤이 완성되는가 싶더니, 이주성이 들어와 셋이 어울리며 춤에 복잡다단한 재미가 붙을 때부터 그런 기류가 감지된다. 외모와 분위기가 각자 다른 셋의 결합은 찰떡같이 경쾌하다.
 굴러들어온 스티로폼 공을 각자 한 개씩 맡아 후후 불어서 다뤄보려다 수백 개가 물밀 듯이 밀려오면서 포기하게 되는 장면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핵심적이었을 것이다. 크기가 제각각인 스티로폼 공들의 모양새와 그들끼리의 예측 불가능한 부딪힘- 우리가 무슨 수로 그것을 일일이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살살 입으로 불어 조심스레 다루길 포기한 후 세 무용수가 각자 두 개씩의 공을 쥐고 눈에 대면서 엉덩이를 흔들다가 때로 던지기도 하면서 말 그대로 도깨비처럼 갖고 노는 장면에 이르면, 우리는 그토록 부담을 주던 ‘눈’이라는 게 실은 별 것이 아니라(그냥 눈알일 뿐인데!) 우습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심지어 두 개로 짝을 이룬 모습이 그다지 예쁘지 않을뿐더러 재미도 없다(세 개로 저글링을 할 수 있지만 두 개로는 영 그림이 나오지 않으니까).
 백현진의 곡 ‘여름바람’에 중간 중간 총소리를 삽입한 마지막 장면에서 무용수들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더듬거리다 나자빠지면서도 그들 나름의 놀이를 계속한다. 노래의 분위기도 그렇거니와 보고 듣는 관객의 마음도 저절로 유해진다. 분명 앞서 분초마다 철저히 계산된 움직임을 차곡차곡 집어넣어 정교한 움직임을 선보였던 고블린파티로서는 느슨하기 짝이 없게 풀어지는 장면이다. 비록 퇴장할 때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눈을 가리면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삶을 즐기는 데에는 누가 지켜보는 것이 전혀 중요치 않으니.


 

 

 새로 개관한 SAC아트홀은 전문 공연장이라기보다 다목적 강당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번 고블린파티의 〈눈〉에서는 그런 무심한 듯 평범한 분위기가 잘 맞아떨어졌다. 검은 커튼으로 가장자리를 둘러친 마룻바닥은 고블린파티의 놀이장으로 어울렸다. 검은 피케 셔츠에 등산복처럼 보이는 바지 그리고 정장벨트에 흰 양말이라니, 촌스러운 듯한 의상도 무대에 일부러 맞춘 것 같았으며 한편으로 꾸며낼 줄 모르는 안무가의 소박한 성정 같기도 해 친근함이 있었다.
 소위 잘나가는 신진안무가들이 어느덧 중견 아닌 중견이 되면서 작품의 색채에 정체기가 찾아오는 듯한 시점에 고블린파티처럼 구성원이 고루 안무 작업을 하는 단체는 한 사람의 재능에만 의존하지 않는 것 같아 반갑다. 고블린파티 특유의 중첩된 움직임과 익살스러움은 공유하지만, 초심자의 마음으로 개인의 내적인 고민에서 출발한 이야기라 더욱 솔직하게 다가온 것이 신선하기도 하다. 삶에서 경험한 것을 작품에 녹여내어 고블린파티의 레퍼토리에 어떤 관조적인 여유로움을 안긴 것이 좋다. 안무가로서 이주성의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한다. 
방희망
2013년 제1회 한국춤비평가협회 춤비평신인상을 통해 춤비평가로 등단했다. 현장 비평가로 다양한 춤 공연에 대한 비평작업을 하고 있으며, 한국춤비평가협회 정회원, <춤웹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7. 12.
사진제공_고블린파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