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남현우 〈척하면 척〉
사회적 가면을 후각으로 치환하다
방희망_춤비평가
 두산아트센터가 만 40세 이하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두산아트랩 2018에서 무용 분야에 선정된 남현우의 〈척하면 척〉(1월 4~6일,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평자 6일 관람)은 일상에서 간과하기 쉬운 사람들의 심리와 태도를 포착해냈다는 점에서 자못 흥미로운 작품이다.

 


 ‘척하면 척’은 괜찮은 척, 아는 척, 좋은 척 등 국어사전에서 ‘그럴듯하게 꾸미는 거짓 태도나 모양’이라 정의하는 ‘척’에서 출발한다. 티켓을 찾을 때 같이 받은 안내지에는 남현우가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165명의 지인들에게 설문조사한 결과가 적혀 있었다. 그것을 읽어보니, 좁은 땅덩이 위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사회생활의 편리를 위해 수시로 썼다 벗었다 하는 이 사회적 가면이 과연 진즉 한 번쯤은 진지하게 다루어볼 만한 주제였구나 싶었다. 
 이 제목은 중의적으로 느껴진다. 누군가 먼저 ‘척’을 하게 되면 그에 대한 응수로써 이쪽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척’을 하게 마련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특히 안내지의 이 부분을 읽게 되면 그런 예상이 더욱 발전하게 된다.
- 전반적으로 친하지 않은 사람의 ‘척’은 가볍고 관대하게 반응하고, 친한 사람일수록 ‘척’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 반면에 자신이 괜찮은 척할 때는 친구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주는 것이 고맙다는 답변이 많았다.
 이미 스스로 ‘척’이 습관화된 우리는 상대방의 수를 읽어내기도 하며 특히 자주 만나고 부딪히게 되는 사이일수록 그 빈도가 증가할 것이기에 ‘척하면 척’하고 자동으로 통(通)하기도 하는 법이다.


 

 

 남현우가 주제를 풀어가기 위해 핵심적으로 사용한 소재는 ‘향(香)’이다. 그가 무대 뒤에 자리한 캐비닛에서 향수병을 꺼내든 횟수는 세 번쯤 된다. 향수에 그다지 취미가 없는 평자로서는 병 모양만 보고 이름을 알아차릴 재간은 없었지만, 맨 처음 부채와 함께 꺼내들어 얼굴을 가리며 전통춤의 점잖은 동작과 함께 뿌렸던 향수와 두 번째 발레의 기본동작을 넣어 젠 체 할 때 뿌렸던 묵직한 향수, 세 번째 귀여움을 있는 대로 끌어 모으며 뿌려댔던 향수가 춤의 분위기에 맞게 제각기 다른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에티켓으로 허용 가능한 정도를 넘어 향수를 과장되게 칙칙 뿌려대는 행위에서부터 이 작품이 유쾌하게 풍자하려는 상황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공연장을 가득 메우며 매캐하게 뒤섞인 강한 향들은 눈에 보이는 물건으로 드러나지 않는 ‘척’이라는 가면들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악취를 가리고 고급 취향을 자랑하기 위해 쓰였던 향수가 이제는 각자의 이미지 메이킹에 소비되는 짧지 않은 역사가 환기되는 한편, 머리가 아플 정도로 억세게 부딪혀오는 인공적인 향내 속에 사람 본연의 솔직한 체취와 땀내가 저절로 그리워지는 효과가 있었다.


 

 

 각종 향들의 시간차 공격, 번쩍이는 조명과 디제잉 속에 래퍼 조성근이 등장해 요즘 말로 ‘스웨그’ 있는 협연을 선사한 후 남현우가 준비한 것은 탈의다. 그는 상체를 가득 수놓은 문신을 드러내고, 입었던 재킷과 바지를 벗어 섬유유연제를 두 통이나 들이부은 대야에 넣고 밟다가 건져 그대로 입고 춤을 춘다. 한국무용을 기반으로 한 이답게,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이리저리 몸을 틀며 흥을 돋워 올리는 뽕짝끼 다분한 춤이다.
 ‘고급진 척’하는 향수를 일순간 덮어버리며 무대 위에서 진동하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섬유유연제의 일차원적인 향. 남현우가 팔다리를 움직이고 엉덩이를 흔들 때마다 섬유유연제가 뚝뚝 떨어지고 바닥 위에서 미끌거려 이질감을 드러낸다. 끝끝내 ‘척’을 포기하지 못하고 그것이라도 덮어 쓰려는 욕구를 풍자하는 듯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제의에서 향유를 들이부어 다시 태어남을 도모하는 것과 흡사해 보이는 장면이다. 어차피 인공적이기로는 향수나 섬유유연제나 거기서 거기, 좀 더 솔직해지자는 말 같다.


 

 

 남현우가 또 하나 동원한 수단은 공연 시작 전 입구에서 나누어준 작은 투명 필름이다. 사진과 짧은 해시태그 위주로 행복하고 좋은 일상의 단면만 자랑한다 하여 역시 ‘허세’와 맥락을 같이 하기도 한다는 SNS의 프레임을 빌려와 그것으로 공연 중간 중간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공연 중에 한쪽 눈을 감고 필름을 대보았을 때는 어둠 속이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었다(나중에서야 밝은 곳에서 두 눈을 멀쩡하게 뜨고 거리를 둔 채 프레임의 글씨를 읽으면 막상 가운데 화면은 흐릿해 상이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보다도, 관객들로 하여금 어떤 매개체-말 그대로 프레임-를 개입시켜 상대를 관찰하는 행위 자체를 경험하게 한 것이 실질적인 의도였으리라 본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1998)에서 춘희가 손가락으로 프레임을 만들어 바깥을 보며 “이렇게 하면 다 의미가 있어보여.” 했던 시절은 너무나 순수했다고 느껴질 정도로, 이제는 프레임 안의 대상에 특별하고 귀한 의미를 부여할 시간도 없이 프레임들만 넘쳐나기 때문이다.


 

 

 〈척하면 척〉은 60분에 약간 못 미치는 쇼케이스라, 장면과 장면의 연결이 엉성하고 무대를 혼자 채우기에는 춤의 역동성이 적어(남현우라는 기대치에 비하면) 주제를 몸으로 풀어가는 방식이 소극적이라 느껴진 것이 아쉽기는 하였다. 하지만, 흥미로운 소재를 강렬한 후각체험으로 치환시킨 아이디어가 돋보여 후속작업을 기대하게 한다.  
방희망
2013년 제1회 한국춤비평가협회 춤비평신인상을 통해 춤비평가로 등단했다. 현장 비평가로 다양한 춤 공연에 대한 비평작업을 하고 있으며, 한국춤비평가협회 정회원, <춤웹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8. 01.
사진제공_두산아트센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