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안영준 〈가족놀이〉
무표정한 주변 현실을 향한 문제 제기
김채현_춤비평가
 ‘혼밥’ ‘혼술’뿐 아니라 ‘혼족’이 일상 언어로 떠오른 지 좀 된다. 제 홀로의 생활 양식과 활동 양식을 추구하는 사람을 모두 혼족이라 일컬으므로 그 의미가 1인 가족보다 더 넓고 1인 가족은 혼족의 부분을 이룬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지금 일본의 40대 여성 가운데 17%가 혼인한 적이 없다는 말이고 보면, 일본의 40대 여성에서 혼족은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가족의 개념과 양태가 변한다는 엄연한 상식 앞에서 누가 가족을 정의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가족 하면 맨 먼저 떠올려질 것에 관한 의견들은 갈수록 종잡을 수 없어지는 추세를 보인다.
 사실상 회피하기 어려운 가족 ‘문제’는 춤의 소재로서 지속되어 왔다. 남녀 차별, 억압, 갈등의 시각에서 가족을 춤화하는 작업은 드물지 않다. 지난달 있은 안영준의 〈가족놀이〉는 이런 경향에서 사뭇 비켜서서 가족 문제를 다루어서 생각할 여지를 더하였다(12월 29~30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가족놀이〉에서 표면적으로 내세워지는 가족은 이른바 유사(類似) 가족이다. 혈연으로나 가족법으로 맺어지지 않은 가족, 일테면 직장처럼 가족과 엇비슷한 유대나 관계를 지향하는 집단이 유사 가족에 든다. 안영준이 우선 우려하는 바는 가족을 빙자하여 가족적 정서를 악용하는 유사 가족의 행패이다. 직장에서 가족을 내세워 업무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이 그가 예시하는 대표적 행패이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직장과 작업에서의 엄청 부당한 처우나 인간관계에 시달리는 청년층들의 정서를 안영준은 〈가족놀이〉에서 삭여낸 것으로 생각된다.
 잠옷 차림의 남자가 큼지막한 개집 지붕에 쪼그려 앉아 생각에 골몰하는 모습으로 〈가족놀이〉는 시작한다. 그(안영준)가 홀로 한참 펼쳐내는 몸부림 같은 움직임은 에너지가 충만하고 유연하되 난삽하지 않은 다양성을 보여준다. 아마도 직장에서의 어려움을 속으로만 감내해야 할 어느 사람을 또렷이 연상시키는 움직임들이다. 이어 그가 개집에서 끌어내는 예닐곱 사람들은 일단 한 가족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인 같은 연령의 그들이 부모와 자식들 같은 캐주얼 차림새에다 특정한 이유도 없이 엉켜 붙고 무언의 갈등을 소란스레 빚어나가는 과정에서 관객은 그들이 ‘가족놀이’를 하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이처럼 이번 공연 〈가족놀이〉는 일반 가정의 가족과 유사 가족에 대해 동시에 메스를 가하였다.


 

 

 가족놀이를 한답시고 하는, 그러면서도 도무지 무표정한 그들은 전혀 가족 같지도 직장 동료 같지도 않다. 장시간 집단적으로 엉켜 붙다 나뒹굴기를 거듭하고 때로 바닥을 기어야 하는 그들에게서 가족의 정이 느껴질 리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어쩌다 지시에 따라 개집 하나에 대여섯 명이 기어오르는 모습은 난민들로 꽉 찬 구조선에서 간신히 자기 몸이라도 건사해보자는 신세들이다.
 이와 엇비슷한 관계와 모습이 집중적으로 펼쳐지는 〈가족놀이〉는 날렵하거나 순발력 있는 맵시와는 전혀 무관하되 체력을 요하는 열성적인 움직임들로 채색된다. 이 가운데서도 엉킴으로써 정서를 강조하는 방식이 〈가족놀이〉의 축을 이루었던 것은 작품을 더욱 이색적인 것으로 부각시켰다. 김유정과 김기헌 듀엣의 엉켜붙음과 매달림의 움직임은 상당히 길게 펼쳐진 그 시간에 값하는 효과가 있었다.
 작품 말미에 등장하는 정글 놀이터 모양의 철제 대형 구조물은 우선 뼈대만 남은 모더니즘 건물을 연상시킨다. 그것이 사무용 건축물인지 아파트인지 크게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어느 쪽인지 단정할 수 없는 이유는 출연진 집단이 구조물 속에서 속옷 차림으로 대체로 저마다 홀로 공간을 배회하는 때문이다. 그것도 일종의 가족놀이인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가족놀이는 끝내 ‘가족’ 놀이가 되기를 포기한 편이었다. 그들은 오늘도 사이 좋음으로 위장막을 치고 동료들 사이를, 가족들 사이를 우물댈 것이다.


 

 

 〈가족놀이〉는 공감 정서가 사라진 유사 가족을 파헤치면서 그에 못지않게 공감 정서가 사라진 가정의 가족도 진단하는 측면에서 중의성(重義性)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하나로써 두 가지 집단을 표현하기가 말처럼 용이치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가족놀이〉를 주목하게 된다. 살아가는 주변 현실을 담백하게 목도하면서 그 문제를 춤으로 제기하는 자연스러움이 그 같은 중의성을 무리 없이 포착하도록 한 듯하다. 아울러, 안무자가 신체 움직임을 공간 속에서 축조해내는 방식을 끈기 있게 추구하며 몸 (움직임) 디자인 착상을 다듬어온 것 또한 〈가족놀이〉를 견인한 중요 요인이라 보고 싶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8. 02.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