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기획_ 공공재단 기획형 지원사업 진단(2)리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세대 열전’
편차 큰 작품, 단계적 제작기회 부여 필요
장광열_춤비평가
 젊은 안무가들을 위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 사업은 오래 전부터 시행되어 왔다. 안무가 육성을 표방, 일정 시간의 교육 프로그램 수료 후 참가자들이 최종적으로 공연을 선보이는 병행 프로그램도 있었다.
 ‘차세대열전 2017!’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대표적인 신진 예술가 지원사업인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의 성과를 발표하는 공연이다. ‘차세대열전 2017!’의 무용분야에 선정된 차세대 안무가 6명이 더블빌 형태로 1월 20일부터 28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과 대극장에서 차례로 공연을 가졌다.
 안무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신진 안무가들이란 점에서 평자의 관람 포인트는 작품의 예술적인 완성도보다는 소재나 작품을 풀어내는 아이디어, 안무가로 성장할 수 있는 재능을 발견하는 쪽으로 맞추어졌다.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 천종원의 〈CAVE〉와 손은교의 〈숨은 가족찾기〉(1월 20~21일, 평자 21일 관람)는 작품의 성격이나 구조 등에서 비교적 그 콘셉트가 분명했다.
 천종원의 〈CAVE〉는 남성 무용수 임종경 홀로 30분을 끌어간다. 온통 백색으로 치장된 작은 방을 배경으로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움직임과 심리적인 감정의 변이를 통해 보여준다.
 안무가는 조금씩 드러나도록 조율한 주인공의 캐릭터와 기교적으로 뛰어난 춤, 그리고 몇 개의 상황설정을 통해 담담하게 그려냈다. 물건을 담은 방안 식탁을 중심으로 비닐봉지 접히는 소리, 구매한 상품을 던지는 소리, 물 엎지르기 등 일상생활 속에서 맞닥뜨리는 리얼한 장면은 관객들과의 소통성을 더욱 강화한다. 스타카토로 잘라져 조금씩 고양되는 임종경의 빼어난 춤과 감정 표출은 무용예술이 어쩔 수 없는 움직임을 매개로 하는 예술임을 충실히 증명해 보인다.


 

 

 손은교의 〈숨은 가족찾기〉는 주인공으로 변신한 주부와 남편, 딸 사이의 관계를 집 안의 공간을 중심으로 펼쳐낸다. 가족이지만 각자의 일과 생활에 바쁜 현실 속 가족들의 이야기를 공동의 공간과 개인의 공간 속에서 조망한다. 안무가의 숨은 가족찾기는 엄마와 딸의 관계는 옷과 빨래‧책상을, 아내와 남편과의 관계는 소파와 서류 뭉치를 활용해 다채롭게 전개되고, 이는 가족 속의 나를 찾기 위한 주인공의 몸부림으로 귀결된다.
 세 사람이 마주한 작은 밥상은 유일한 공동의 방이 형성되는 순간이다. 안무가는 이 접점에서 이후 3인무로 풀어내는 재치를 보여준다. 각 캐릭터 사이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걸레나 테이블, 의상 등의 소품을 활용해 움직임을 발전시켜가는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김서윤의 〈찰나〉와 김래혁의 〈MY CODON〉(1월 24~25일, 평자 24일 관람)은 장소를 옮겨 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찰나〉는 각기 다른 크기의 사각형 구조물과 매트리스 등을 이동시키면서 만들어진, 수직 때로는 수평적으로 변하는 다면체를 활용하면서 사이사이에 댄서의 다채로운 춤을 병합시켰다. 구조물을 이용한 뛰어내리기, 걸터앉기, 뛰어오르기 등의 동작들은 움직임에 스피드를 더하고, 구조물 위에서의 춤추기는 댄서들의 움직임의 함량과 질을 비교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움직이는 무대미술과 각기 다른 진폭으로 조율된 댄서들의 움직임이 뒤엉키면서 생겨나는 거칠고 정리되지 않은 모양새는 댄서들의 빼어난 기량이 어느 정도 커버해준다. 특히 하미라와 김서윤의 서로 다른 질감의 춤 매칭은 그 자체만으로도 눈을 즐겁게 했다.


 

 

 김래혁이 안무한 〈MY CODON〉은 유전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작품의 제목으로 가져왔다. 출연자 3명의 이야기들이, 안무가에 의해 계산된, 어떤 구조적인 장치 없이 무대 위로 난무한다. 각자 타고난 유전자가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한 설정은 그 의도는 희미하게 읽히지만 동래학춤 음악의 갑작스런 등장 장면에서는 안무가의 의도 등을 유추하는데 있어 지극히 혼란스러움을 가중시켰다.


 

 

 박상미의 〈Home:홈〉과 양호식의 〈저항〉(1월 27~28 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 평자 27일 관람)은 작품의 내용과 전개구도가 확연한 대조를 이루었다.
 박상미의 작업은 무대 전면에 수직으로 세워진 두 개의 박스를 포개놓은 듯한 세련된 무대미술과 바닥의 장식을 음악과 빛으로 치밀하게 조합시키고 이에 맞추어 움직임의 전개구도를 달리하는 세밀한 콘셉트가 돋보였다.
 최소영과 박상미의 움직임은 시종 느린 톤으로 전개된다. 공간을 점하면서 정지와 반복을 이어가는 구도와 초반부 무대 미술에 투사되는, 작고 따뜻한 색감의 영상 이미지, 이와 중첩된 댄서들의 느린 움직임은 마치 한없는 사유와 자유를 만끽하는 자연인처럼 보인다. 중간에 강한 비트의 음악이 치고 들어오면서 마치 문이 열리듯 한번 살짝 오픈된 무대미술의 변화는 백색 플로어를 점한 댄서들의 움직임을 더욱 시적으로 치환한다.
 반면에 〈저항〉에서 안무가 양호식의 색깔은 전체적으로 빠르고 거칠다. 대중무용을 기저로 한, 천장에 매달린 마이크를 중심으로 한 움직임 조합이나 수직으로 내려진 플라스틱 보드 위 페인트던지기, 흘러내려 바닥을 흥건히 적신 페인트 위에서의 움직임 등은 퍼포먼스에 가까웠다.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는 이전의 차세대예술가지원사업 AYAF을 개편한 사업으로문학, 시각예술, 연극, 무용, 음악, 오페라, 기획, 무대예술 분야의 만35세 이하 신진예술가 93명을 대상으로 창작연구와 작품제작 활동을 지원, 차세대 예술가들에게 보다 안정적인 창작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시행하고 있다.
 2017 무용 부문에 선정된 6명의 안무가들 작품은 예술적인 완성도에서는 그 편차가 컸다. 전체적인 작업의 성과에서 보면 미흡 보통 우수가 골고루 분포되었다. 무엇보다 신진 안무가들의 작업에서 볼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나 실험적인 시도 면에서 소극적이었던 것이 쉬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신진 안무가들에게 제공한 공연장은 작품의 규모나 전개 구조에 비해 지나차게 커서 오히려 장애가 되었다. 이는 큰 무대를 채우기 위한 과도한 무대미술과 소품의 남발, 넘쳐나는 움직임을 제어하지 못하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대극장 30분 길이의 공연보다 소극장이나 중극장에서 20분 길이 정도로 창작의 터를 제공하고, 우수 작품의 경우 재공연 기회 제공을 통해 단계적으로 지속적인 지원을 해나가는 방안도 보완책의 하나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겠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2018. 02.
사진제공_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김근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