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8 국립무용단 젊은 창작 프로젝트 ‘Next Step’
‘탈(脫)신파조’의 확실한 변화, 이런 창작이 ‘다반사(茶飯事)’가 되어야
이지현_춤비평가
국립무용단 내에서 안무가를 발굴하려는 프로젝트가 올해 타이틀과 제작방식에서 완전히 새옷을 갈아입었다. ‘넥스트 스텝’은 지난 9월부터 기획에 들어가 6개월 이상을 준비한 무대로 그간 단원에게 창작 기회를 제공하는 정도의 의미에서 확장되어 ‘안무가를 육성하겠다’는 선언을 또렷하게 드러내며 제작의 과정과 속도에 공을 들인 무대였다.(3월 15-17일, 달오름 극장)
 그간 한국춤기반 창작춤의 창작 이슈는 많지만, 최근까지도 대작에서 뚜렷하게 발견된 ‘신파조의 감정표현에 국한된 상투적 무대언어와 그 구성’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는 많은 안무가의 고민일 것이다. 허나 국립무용단의 경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현대무용 안무가 초청, 유럽 안무가들과의 작업이 2015년 〈시간의 나이〉까지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었기에 적어도 그 작업에 참여한 무용수들은 자신이 배우고 경험한 한국춤과는 매우 다른 경험에 노출됐고, 그 경험이 기존의 고민을 새롭게 풀어낼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하였다. 이번에 참여한 3명의 안무가 김병조, 정소연, 이재화 단원은 바로 이 과정에 매우 중심적으로 왕성하게 참여한 인물로 그들의 안무에서 이 고민이 어떻게 구체화될 지는 이 공연이 주목을 끄는 이유일 것이다.


 

 

 김병조의 〈어;린 봄 Every Spring〉은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매년 맞이하는 봄_Every spring을 ‘어;린 봄’으로 적으면서, 의미를 전달하는 한글을 감성이 들어간 ‘보는 글’로 변화시키며 어떤 암시를 시작한다. 작품이 시작되며 이 글자들은 무대의 중앙에 자막으로 춤과 더불어 하나의 인격으로 점차 모습을 드러낸다. 1인칭의 내레이션을 자막화한 이 글들은 출근길 버스정류장까지 가면서 느낀 것이거나 속내에 있는 사소한 개인적 감성이 묻은 것이지만, 청년이 추는 한량춤의 날갯짓 속에서, 완숙한 여성의 독무 뒤에서 춤에 가려질지언정 존재감을 감퇴시키지는 않으며 ‘어떤 한 개인’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김병조는 자신의 가까운 생활, 무용단 생활과 무용수들의 연배에 따른 삶을 바라보기 시작한 듯 보인다. 젊은 단원부터 나이든 단원이 춤을 중심에 놓고 공존하는 무용단 생활에서 사계절이 흐르는 것처럼 시간을 따라 나이를 먹고, 가족을 갖게 되는 변화가 있지만 그 속에서 결코 변하지 않는 그들의 ‘중심’인 춤은 이 작품에서도 멈춰지지 않는 ‘배경그림’의 역설로 존재한다. 그리고 춤을 추는 이들은 계절을 따라 시간의 켜를 쌓아가며 사진인 듯 현실인 듯 들고 나고 김병조는 이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린 봄 Every Spring〉은 사진과 같이 실물 그대로를 미리 찍어놓은 영상을 사용하여 무대 위 무용수들과 공존시킨다. 사진에서 걸어 나온 듯, 혹은 복제인 듯 그들은 차원에 구애받지 않고 함께 춤춘다. 문자로 인격화된 1인칭의 인물과 여러 몸체를 가진 등장인물이 현실을 현실 아닌 것으로 무대 위에서 재연시키는데 성공하였고, 안무가의 감성과 인격을 살아있는 것으로 다가오게 하는데 성공하였다. 사소한 소재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자신의 감성으로 끌고 나간 것의 힘은 역시나 컸다. 선배의 꽹과리 소리와 어울린 한량춤이 그렇게 아름답게 현재적 맥락 속에서 살아난 것은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여느 날과 똑같은 출근길을 걸으며 느낀 것의 문장이 무대의 모든 것을 다르게 보이게 만들었다. 그 외의 장면에서 상투적으로 춤을 배치하는 부분을 걸러내고 더 시적으로 압축시킨다면 춤이 여운이 긴 새로운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될 거 같다.


 

 

 정소연의 〈싱커페이션〉은 그간 보여준 안무의 유려함을 맘껏 보여주었다. 〈깊은 문_arari〉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정소연의 무대는 무언가 매우 끈적한 것이 기습적으로 탄생하고 그것 때문에 숨이 가끔씩 막힌다. 매우 색다른 감각, 특히 현란한 춤의 속도와 구성의 입체성이 매우 빠르게 감각을 점령한다. 한국춤에서 이런 구성을 누가 할 수 있는지 아직은 발견하지 못했다. 뮤지션의 몸 역시 정소연에게는 중요한 요소로 건반, 소리는 중요하게 작품을 끌고 나갈 뿐 아니라 대금, 아쟁, 타악주자 2명 역시 무대 위 존재감이 매우 크다.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음악과 춤이 경계짓지 않는다.


 

 

 김미애, 이의영 같은 탁월한 존재감을 갖는 무용수는 삶에서 만나는 “예상치 못한 싱커페이션-죽음, 욕정, 인내”의 축을 끌고 가는 중심인물이다. 정소연의 매우 개성적인 안무력과 방식이 뮤지션과 음악, 군무를 다룰 때는 펄펄 날다가 한국춤의 공식에 들어오면 바로 경직되거나 막혀버리거나 그러다 상투적인 것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지점 때문에 매우 현대적이고 무대적인 탁월함이 순간 진부해진다. 죽음, 욕정, 인내… 이런 추상적인 것들을 다루는 소재의 선택부터 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옛날 방식이다.


 

 

 이재화의 〈가무악칠채〉는 칠채장단을 가지고 집요하게 가무악으로 확장시키겠다는 의도를 명확하게 보인다. 어릴 때부터 몸에 장착된 장단을 다시 꺼내서 보는 행위는 자신의 역사를, 그 안에 겹쳐져 있는 춤과 장단의 역사를 불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과거의 것들을 불러내는 무대는 바로 지금, 이재화의 몸이 존재하는 곳임을 이재화는 잊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음악으로서의 칠채와 칠채를 타는 몸이 드럼이 중심에 있는 무대에 불려나와 한바탕 춤추고 사라지는 완벽한 새로운 공간이 된다.
 마치 발레 〈호두까기 인형〉에서 서랍 속 달그락 거리가 모든 상상의 출발이듯, 이재화가 칠채 장단을 단순리듬으로 연주해 녹음하고 그 위에 한 켜씩 더해가는 첫 장면은 매우 기발하고 신선하다. 그 이후 칠채의 황홀한 꿈은 한 번도 끊어진 적도, 한 번도 지루해진 적 없이 신나고 유쾌하다. 이재화와 송설, 조용진, 박혜지, 조승엽이 함께 어떤 거리낌도 없이 달리는 무대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살아있는 무대’였다. 사유로, 감성으로 빠지지 않으며 거침없이 장단에 펄떡거리는 몸과 춤의 향연을 채우는 그들의 열정이 데일 정도로 뜨거웠다.
 이 뜨거운 무대의 에너지는 현대무용에서도 쉽게 올리기 어려운 수준이라 가히 놀랍다. 따뜻한 동료애가 흐르면서 유희적이기도 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에너지를 나누며 만든 이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상태를 후유증 없이 반복공연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여러 질문이 마구 생겨난다.
 또 하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 힘의 저변에 감동을 줄 수 있는 ‘인식론적인 깊이감’을 어떻게 넣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이재화에게 넘기고 싶다. 그라면, 그와 함께한 무용수들이라면 이것에 매우 유쾌하게 도전할 수 있을 거 같다. 젊고 솔직한 춤, 군더더기 없는 춤의 꽃이 오랜만에 무대 위에 만발하였다.


 

 

 이번 〈넥스트 스텝〉의 세 작품은 모두 한국춤을 현대화하겠다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무대의 볼만한 공연물, 관객과 함께하는 춤작품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보여준 작품들의 완성도는 이런 지향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립무용단원으로서의 자연스레 갖추게 된 프로로서의 능력 아닐까 싶다. 한국춤을 ‘지금, 여기’에 데리고 오겠다는 의지가 뚜렷하게 보였고 그것을 위한 다양한 실험 정신 역시 살아있다.
 한국춤이 현대적 극장무대를 채우기 위해 빨리 벗어날 필요가 있는 것은 세 작품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듯이 과거의 선생님, 선배들이 관행적으로 했던 것들_ 그 클리쉐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다. 매우 신선한 사고방식을 가진 3명의 안무가들 역시도 아직은 이 관행으로부터는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춤 안무가를 육성하려는 프로젝트는 더 자주,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부여하며 진행되어야 한다. 무용단 내에서 뿐 아니라 밖에서 기회가 닿는다면 어떤 기회를 활용해서라도 새로운 세대를 성장시켜야 한다. 이는 시스템과 안무가 개인 양측의 문제이다. 제작환경은 환경대로 더 자주,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하고, 개인은 준비된 기회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소한 기회라도 새로운 실험을 해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처럼. 
이지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춤비평가로 등단했다. 2011년 한국춤비평가협회의 정회원이 되었으며, 최근 비평집 『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 왕성한 비평 작업과 함께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강사, 서울무용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8. 04.
사진제공_국립극장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