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대구시립무용단 〈군중〉
현실 밀착 서사, 손질 필요한 구성 방식
김채현_춤비평가
대구시립무용단의 최근작 〈군중〉은 연초 부임한 신임 단장이 발표한 첫 작품이다(3. 14~15.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군중의 집단 심리를 겨냥한 이번 공연은 군중의 양면성을 부각시키며 관객의 동감을 환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방관자가 흔한 오늘의 사회 세태를 춤화하여 관객 스스로 군중의 속성을 자문하도록 유도하려 한 점은 〈군중〉 속에 담긴 현실적 문제의식을 나타낸다.
 군중의 집단 심리는 무수하게 거론될 수 있다. 그 가운데 〈군중〉의 단서로 작용한 것은 어느 사건의 목격자가 많을수록 사건에 대한 책임을 다른 목격자에게 미루고 자신은 방관자로 남는 다음의 현상이다. 1964년 어느 심야에 한 여성이 뉴욕 퀸스 동네 골목에서 귀가 도중 어떤 남자에게 습격당해 죽어갔다. 그 현장을 자기 집 창밖으로 목격한 사람이 수십 명이었으나 그 누구도 말리지 않았고 경찰에 신고조차 않았다는 보도는 사회의 경악을 불러일으키면서 대중의 무책임한 방관자적 행태를 재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다.(그 보도는 세간의 관심을 극적으로 모을 수 있었지만, 실은 현장 목격자가 서너 명이었고 피해자를 보호한 사람이 있은 사실이 밝혀져, 오보로 드러났다.)


 

 

 관객이 입장할 동안 〈군중〉의 무대는 열려 있다. 후드를 걸친 남자가 커다란 원을 그리며 조깅하듯이 무대를 뛰어다닌다. 무대 한편에선 그에 무관심한 두어 남자가 앉아 자기들끼리 이야기한다. 무관심과 방관을 암시하는 이 분위기는 무대에 덩그러니 놓인 성모마리아상으로 강조된다. 객석이 암전되면 헤드셋을 쓴 소녀가 예지의 〈drink i’m sippin on〉(‘그게 아니야’ 부분이 도드라지게 들린다)에 열중하며 남자는 조깅을 멈추어 도시의 ‘외로운 늑대’처럼 영어 대사를 선동하듯이 내뱉으며 포효한다.
 〈군중〉에서는 옆으로 도열한 많은 사람들 앞뒤에서 몇몇 사람이 각자 또는 무리를 지어 움직임에 몰두하는 장면이 좀 길게 연출되고 또 그들은 주로 행렬을 지어다니며 서로 뒤섞인다. 그 와중에 어느 남자가 성모마리아상을 어루만지다가 어느 여성에게 빠르게 접근하자 여성은 비명을 지르고 남자는 여성을 안고 나가버리며 사람들은 흩어진다.


 

 

 이후 무대에 놓인 정육면체의 철제 프레임 박스 속에 두 남녀가 갇혀 몸을 비적대는 움직임을 보이며 그 다음에는 성모마리아상이 프레임 속에 넣어지고 또 다음에는 여성들이 그 박스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모습이 한참 연출된다. 아직 박스엘 들어가지 않은 몇몇 여성들이 박스 옆에 멍한 모습으로 앉는다. 이 순간에 딜런 토마스의 시 〈Do not gentle into that good night〉를 교대로 낭송하는 남녀 목소리가 들린다. 이 시에서 반복되는 ‘좋아 보이는 야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말라, 빛이 꺼져가는 데 분노하라’ 시구(詩句)가 영어로 강조된다. 동시에 망연하게 앉은 여성들의 상반신이 대형 영상 이미지로 무대에 라이브로 투사된다.
 이어 〈군중〉은 군중의 모습을 몇 가지 더 펼쳐 보인다. 〈drink i’m sippin on〉의 ‘그게 아니야’가 울려퍼질 동안 아크릴 판에 클럽의 춤추는 모습이 실루엣으로 비춰지다가 한 여성이 쓰러져 돌고래(떠다니는 풍선으로 재현) 같은 이미지에 엮여 수족관 같은 곳에서 허우적대는 모습, 바이올리니스트의 지휘에 따라 이합집산을 보이는 무리들, 장려한 음색의 교향악과 함께 분위기를 일변하여 사람들이 배회하며 후회 또는 참회하는 듯한 모습, 작품의 도입부에서 조깅하던 남자가 어느 쓰러진 여성을 부축하는 모습, 재현된 야구 연습장에서 정면의 표적을 향해 공을 날리는 남자와 표적 앞을 사람들이 서성대다 쓰러지는 모습, 마지막으로 남성의 양팔 사이에서 목이 끼워져 버둥대듯 떠는 여성의 모습.


 

 

 〈군중〉은 현실 속의 현상을 춤 속으로 끌어들이고 이를 서사화하였다. 춤이 현실과 동떨어져도 무감각하고, 현실과 연관을 맺었다 할지어도 전개가 추상적이어서 현실과의 연관이 희미한 경향으로부터 〈군중〉은 거리를 둔다. 안무자의 예술적 지향에서 발단하는 〈군중〉의 이 같은 주제 의식을 말해주는 부분은 적지 않다.
 그 가운데서도 옆으로 죽 늘어선 수십 명의 사람들의 흔치 않은 양태에서 이 주제 의식은 명료하게 짚어질 것이다. 이런 양태를 바탕으로 이어가는 안무 연출법은 퍽 드물었고, 이번 공연에서 인상적인 부분으로 꼽아진다. 감정적 교류가 일체 배제된 상태에서 군중들은 특히 여기서 익명성을 보호막으로 방관을 일삼는다. 그 극단적인 폐해를 안무자는 군중들이 모조리 쓰러진 어둠 속에서 어느 여성이 남성의 양팔 사이에서 버둥대는 마지막 그 모습에다 압축한 것으로 보인다.


 

 

 〈군중〉에서 군중은 암묵적 폭력과 반성적 구원 사이를 오가는 미심쩍은 존재로 소개되며 안무자의 시선은 일단 중립적이다. 그러나 방관과 폭력이 전염병 같다는 안무자의 진단은 중립을 벗어나며, 안무자는 내심 군중이 그리고 관객이 익명성을 벗어나 자발적으로 손을 내미는 변화를 의도하였다.
 전반적으로 말해, 〈군중〉은 무대 장면과 음악, 대사 등 많은 것을 다양하게 담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효과를 산출해내려 한다면 많은 것들 사이에서 연결 고리도 그 만큼 더 필요해 보였다. 이런 점에서 〈군중〉은 무엇보다 조리 있는 전달 면에서 미흡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같은 맥락에서 영어 대사나 시구로 진행되는 두 부분은 이미지로는 전달될지 몰라도 그 대사를 수용한 관객이 얼마나 있을까. 혹시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굳이 영어를 삽입해야 한다면 그 내용을 팜플렛에 다시 수록하는 배려가 따랐어야 옳았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8. 04.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