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주도립무용단 〈지달립서〉
역사 리얼리티에 참여한 역사특정 춤극
김채현_춤비평가
올해 4월 3일이 역사의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는 기대가 높다. 이날은 제주 4·3 70주년 기념일로서 특히 올해는 제주 4·3을 기억하는 물결이 전국으로 퍼져가는 추세를 보여주었다. 그 일환으로서, 4월 3일 오후 4시 3분부터 43분간 403명의 자발적 참가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403명의 함성’ 퍼포먼스 행사를 진행했다. 퍼포먼스는 배우, 춤꾼, 일반인들이 얼굴과 겉옷을 잿빛으로 분장하여 4·3 희생자들의 영령이 깨어나 광화문에서 시민들과 만나는 내용으로 펼쳐졌다.


 

 

 제주도 이외 지역에서 제주 4·3의 경위나 성격에 대해 이해가 있는 일반인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 엄청난 피해 규모에 비해 제주 4·3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1947년 삼일절 그날 제주시에서 있은 거리행진 도중, 기마경찰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채여 넘어진 사고를 지나치는 경찰에 돌멩이를 던지며 항의하는 군중들에게 경찰이 총을 쏘아 6명이 숨졌다. 제주 4·3은 여기서 발단하였다. 당시 미군정 경찰은 책임자 처벌은커녕 그날부터 제주에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삼일절 참가자 검거에 들어갔다. 이에 민심이 파업으로 대응하자 경찰은 대대적 검거로 맞서는 등 사태가 날로 악화하면서 제주 전역은 1947년 내내 혼돈에 휩싸였다. 이런 상황에서 1948년 4월 3일 제주 남로당은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선거’ 반대를 내세워 무장봉기를 일으켰고(이 선거를 통해 이승만 정권의 대한민국 정부가 그해 8월 15일 출범하였다), 이후 1954년까지 제주에서는 전체 20만 도민의 무려 10%가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4·3의 역사가 이어진다.
 제주 4·3은 아직 중립적 이름으로 불릴 뿐 그 성격을 명시적으로 나타내는 공식 명칭이 없다. 그것은 제주 4·3의 주요인이 미국의 반공 전략, 남한 내 해방 정국에서의 좌우익 대립, 남한 극우 반공 세력의 준동 등으로 정리되다시피 그 진상을 밝히는 작업부터 이전 정권들에 의해 근 50년간 속박당한 때문이다. 제주 4·3은 그동안 침묵을 강요받은 세월이 매우 길었다. 이렇듯 한국 현대사의 비극은 제주 4·3에 압축되어 있고, 이는 제주 4·3이 특정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이 감싸 안고 풀어야 할 과제임을 의미한다. 제주 4·3의 유족, 제주도민, 연구자, 사회단체의 끈질긴 노력이 아니었더라면 제주 4·3은 영영 묻혔을 것이다. 민주 정부가 들어서고부터 정부 차원에서 진상 규명이 진척되고 2003년에 정부는 제주 4·3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이라 일단 명명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제는 촛불 민주주의에 힘입어 제주 4·3은 새로운 전향적 인식을 재촉하고 있다.


 

 

 제주도립무용단의 〈지달립서〉(2018. 3. 29~30. 제주문예회관)는 4·3 70주년 특별공연작이다. 이 공연은 제주 4·3을 추념하는 의의와 함께 제주 4·3의 실상을 널리 함께 공유해야 할 필요성을 환기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제주 4·3의 역사적 실체에 대한 전국적 인식이 요청되는 오늘의 현실을 배경으로 〈지달립서〉는 손인영의 안무로 무대화되었다. ‘지달립서’는 ‘기다리고 계세요’ 뜻의 제주 토속어이다. 4·3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족, 친척, 친구, 지인과 헤어져야 했던 사람들이 남겼을 지달립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유언이 되었을 것이다. 돌아오지 않고 영영 이별하고 말은 그 사람들의 사연과 당대 역사 현장을 〈지달립서〉는 한국무용과 풍부한 영상 이미지로 형상화하였다.
 무용극 양식의 〈지달립서〉에서 축을 이루는 것은 순이네 가족의 비극이다. 농사짓는 할아버지, 우편배달부 아버지와 해녀 어머니로 이뤄진 가족은 당시 제주의 여느 가정에 속할 것이다. 당시 2만~3만 명의 희생자 가운데 여성이 20% 남짓이었고 노인과 아동 청소년의 희생도 컸다는 점을 배경으로 하면, 순이네들의 비극은 곧 제주의 비극이었다. 전체 줄거리는 할아버지와 부모를 모두 잃은 소녀 순이가 당대의 비극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며, 그 사이 사이에 4·3의 순간들이 다수 재현된다.


 

 

 〈지달립서〉는 객석으로 입장하는 피난민 행렬에서 시작한다. 궤짝 등속을 등에 메고 등장하는 수십 명의 출연진들이 향하는 목적지는 뚜렷하지 않다. 정해둔 은신처도 없이 섬 안의 어디론가 가야 했던 그 만큼 당시 제주 전역은 사람들에게 황망할 뿐이었다. 서로 ‘지달립서’를 말하고 언제인지 모를 재회를 기약한 채 막막히 무리 지어 길 떠나는 이 장면은 사람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면 한라산 기슭 중산간 어디에서건 은신해야 했던 당대의 처지를 생생하게 전한다.
 순이가 할아버지, 가족들과 함께 하는 소박하며 평화로운 일상과 4·3의 비극상은 〈지달립서〉에서 번갈아 그려진다. 배경 막에 비춰지는 전투 자료 동영상과 4·3을 보도한 신문 지면의 무수한 헤드라인들은 당시 제주의 사회·정치적 현실을 되살리며, 가족의 귀염둥이이자 한 동네의 정다운 친구인 순이의 평화는 제주의 격동 속에서 정지된다. 순이의 기억을 쫓아 펼쳐지는 것처럼 〈지달립서〉의 줄거리는 전반적으로 순이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이는 제주 4·3이 무고한 양민들을 헤아릴 수 없이 희생시킨 사건임을 암시하는 대목으로 읽혀진다. 그리고 하얀 상여 행렬이 희생자들을 위령하는 끝 대목에 이르러 〈지달립서〉는 아직도 이름 없이 위로받지도 못한 이들이 수없이 떠돈다는 점을 환기한다.


 

 

 〈지달립서〉는 순이의 시선으로 그 역사를 재현한다. 이 역사를 남녀노소 모든 연령과 계층의 관객을 대상으로 하면서 〈지달립서〉는 춤극 양식을 취하였다. 공연의 의도에 맞추어 객석에서의 공감이 용이한 묘사적 움직임들과 당시의 현실을 담은 구체적 이미지들이 줄거리를 충실히 뒷받침하였다. 다만 줄거리를 옴니버스 양식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앞뒤 연결이 부자연스런 점이 없지 않고 움직임 형상에서 다양성을 더 높여나갈 여지는 있어 보였다. 덧붙여, 무대를 넓게 활용하며 시각적 인상을 강조하는 기법은 역사 재현 작업에 호소력을 더하였다.
 제주 4·3은 좌우익을 막론하고 제주도민 전체의 희생을 초래하였고, 지금도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 정당한 해결이 지속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춤극 〈지달립서〉는 역사 재현과 역사적 과제 참여라는 복합적 의도를 일반 관객들 사이에서 환기하는 효과를 낳은 듯하다. 특정 장소를 이슈화하는 예술을 장소특정(site-specific) 예술이라 칭하듯이 〈지달립서〉는 역사특정 춤극(history-specific dance drama)으로 분류된다.


 

 

 제주 4·3뿐만 아니라 관객의 절절한 현재와 맞닿은 역사 현실을 무대화하는 선례가 그간 국내 공공 무용단에서 얼마나 있었는지 새삼 생각해볼 일이다. 이 같은 관행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제주도립무용단은 이번에 유다른 걸음을 성큼 내디딘 것으로 평가된다. 이 지점에서, 이즈음의 춤들에서 역사가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남은 사람들의 굳센 결기가 제주 4·3의 망각을 막았고, 제주도립무용단이 춤을 통해 역사 살리기와 희생자들의 해원(解寃)에 적극 동참한 사실은 사회적으로 요청되는 춤 작업이 역사 리얼리티 측면에서 적지 않다는 것을 여실하게 나타낸다. 〈지달립서〉의 제주도립무용단은 당대의 역사 리얼리티를 형상화한 작업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8. 04.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