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울산시립무용단의 정기공연
새로운 도약을 향한 〈수작〉
송성아_춤 이론, 부산대 강사

지난 6월 29일 울산시립무용단의 제38회 정기공연이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펼쳐졌다. 작품은 지난 2월 취임한 홍은주 예술감독의 신작 〈수작〉(水作)이다. 일반 언어에서 수작은 남의 말이나 행동을 하찮고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 이르는 말로 사용된다. 또는 말이나 술 따위를 대거리하며 주고받는 것이다. 작가는 일반적 쓰임새와 달리 고려를 방문한 이방인이 이 땅 광대를 수작이라고 한 인용구(唱曰水作)를 빌려 광대의 또 다른 이름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들의 시선으로 물의 여정을 이미지화하고자 한다.




 〈수작〉은 세 개의 장면으로 구성되며, 앞과 뒤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둔다. 싱그러운 물방울 하나가 영상으로 나타나면, 춤꾼 하나가 그 속에서 춤을 춘다. 팔을 앞으로 둥글게 모았다가 이내 풀어 사뿐히 도는 단순한 동작구(phrase)를 반복하고, 하나 둘 모여든 춤꾼들이 동일한 패턴의 움직임을 지속한다. 그러다 오케스트라 박스에서 한 여인이 등장하여 천천히 무대 뒤로 걸어가고, 그녀의 거대한 치맛단이 무대 전체를 뒤덮는다. 프롤로그는 물의 시작인 동시에 세상만물을 감싸 안는 수신(水神)의 이미지를 묘사한다고 할 수 있다.
 ‘장면 1’은 조명 하나가 어둠을 뚫고 직선으로 뚝 떨어지는 것에서 출발한다. 아래에 있던 댄서들은 떨어지는 물을 받듯 두 손을 내민다. 그리고 프롤로그와 유사한 동작구를 반복한다. 다소간 지루하게 이어지던 움직임은 타악기소리와 함께 빨라지고, 남녀로 짝을 이룬 몇몇이 등장한다. 남자는 여자를 목말 태우고, 올라선 여자는 손춤을 추는데, 무대 뒤를 가득 메운 연꽃 영상과 오버랩되면서 마무리된다. ‘장면 1’은 물방울이 모여 어여쁜 연꽃을 피우는 연못이 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장면 2’는 무미건조한 남녀 이인무에서 시작되고, 새 모양의 모자를 쓴 사람들의 춤, 검은 두건을 쓴 사람들의 춤, 검은 옷자락을 휘날리는 사람들의 춤들로 이어진다. 좌우로 이동하는 경로는 단순하고, 작가의 언표를 엿볼 수 있는 특정 동작구는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무대 좌우에서 겹겹이 내려오는 긴 천들과 무대장치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가는 줄을 이어 만든 장치는 춤의 진행과 더불어 무대 중간과 후면에서 두 번 내려오는데, 화려한 배경 막의 구실을 하는 동시에 빈약한 경로와 동작을 보완한다.
 ‘장면 2’의 말미에 창우 역할의 춤꾼이 등장한다. 덩그러니 홀로 추는 춤은 고통과 눈물을 암시하고, 그녀의 발등에 서서히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작가는 ‘장면 2’가 인간 삶의 고난과 역경을 함께 하는 강의 이미지를 묘사한 부분이라고 밝히고 있다. 분명 물 위에서 춤추는 창우는 애달프다. 그러나 삶의 고난과 역경이 무엇인지 찾아 볼 수 없는 까닭에 작고 가녀린 슬픔은 나의 것이 되지 못한 채, 이미지로만 부류(浮流)한다.
 하수 뒤편에서 흘러나오던 물이 무대 전체로 확산되면서 ‘장면 3’이 시작된다. 프롤로그에 등장하였던 수신이 재등장하여 창우를 위로하듯 어루만지고, 바다를 상징하는 남성 군무가 시작된다. 일본 사무라이처럼 절도 넘치는 일련의 프레이즈가 물 위에서 반복되고, 중간 중간에 드라마틱한 효과를 노리는 솔로 춤이 삽입된다. 상수 뒤에서 중앙을 향해 돌진하듯 슬라이딩하는 남성 독무는 광고의 한 장면처럼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럽다. 이윽고 배경 막에 휘영청 밝은 달이 뜨면, 춤꾼들은 달을 향해 사선으로 도열하며 바닷길을 만든다. 남성군무를 주축으로 한 ‘장면 3’은 바다의 힘찬 기상을 이미지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진 에필로그는 다양한 대형을 지으며 반복되는 긴 무대인사라고 할 수 있다. 물속에서 제 멋대로 노는 재기발랄함은 없다. 그러나 성실하게 준비하고, 열심히 노력한 댄서들의 정중한 인사와 관객들의 박수가 꽤 오랜 동안 이어졌다.

 

 


 〈수작〉은 작은 물방울이 모여 연못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는 일반적 통념을 따라 3개의 장면을 배치한다. ‘장면 1’의 어여쁜 연꽃을 피우는 연못, ‘장면 2’의 인간의 굴곡진 삶과 더불어 흘러가는 강, ‘장면 3’의 힘찬 기상의 바다 등이 그것이다. 풍경화처럼 이미지 전달에 주력한 세 장면은 복잡한 인과관계로 얽혀 있지 않다. 다만, 물의 변화과정을 물의 여정으로 치환(置換)시켜 하나로 묶고 있을 뿐이다. 이 점에서 〈수작〉은 물의 여정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비교적 독립적인 3개의 장면이 대등하게 이어진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을 감싸 안는 수신의 이미지와 긴 커튼콜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각각 위치한다.
 일반적으로 작가는 작품 전체의 짜임새를 선택한 다음, 장면구성에 들어간다. 주요 과제는 핵심적 이미지나 정서 창출을 위한 동작구성과 관계짓기이다. 동작구성법의 기본은 일정한 표현의 내용을 갖는 동작구를 만들고, 이것을 단순 반복하거나 변형 반복한 동작구문(phrase sentence)을 장면 곳곳에 배치하는 것이다. 구어언어(spoken language)와 달리 비음성적 언어(nonverbal language)인 춤은 의미전달에 있어 모호한 측면이 있다. 이것을 보안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동작구와 동작구문이다.
 〈수작〉에서 두드러지는 동작구는 프롤로그와 ‘장면 1’에서 빈번히 나타난 것으로, 물방울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팔을 앞으로 둥글게 모았다가 이내 풀어 사뿐히 도는 동작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장면 3’의 남성군무에서 반복되는 것으로, 바다의 힘찬 기상을 형상화한 것이다. 좌우로 팔을 뻗었다가 칼을 잡듯 모우고, 제자리에서 회전하며 도약하는 동작들로 구성된다. 1시간 20분가량의 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뇌리에 각인되는 동작구가 적고, 별다른 베리에이션(variation) 없이 단순 반복된다는 점에서 다소간 치밀하지 못한 동작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작가는 장면구성의 또 다른 축인 관계짓기를 위해 일인무, 이인무, 삼인무, 군무, 소품, 장치, 의상 따위에서 몇몇을 선택한다. 그리고 부분의 합 이상으로 총합된 이미지나 정서창출(Gestalt)을 위해 이들 간의 다양한 관계짓기를 시도한다. 〈수작〉에는 여러 형태의 솔로, 듀엣, 트리오, 군무가 등장한다. 그런데 파편화된 채 스쳐 지나갈 뿐,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지 않는다. 대신, 의상이나 무대장치를 활용하여 핵심적 이미지를 창출해 낸다. 프롤로그의 거대한 치맛단에 의해 부각된 수신의 이미지, ‘장면 1’의 연꽃 영상에 의해 부각된 연못의 이미지, ‘장면 2’의 창우 발밑에 흐르는 물에 의해 부각된 강의 이미지, ‘장면 3’의 무대 바닥 전체에 출렁이는 물에 의해 부각된 바다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수작〉의 작품구성과 장면구성에서 제기해 볼 수 있는 문제는 주제의 빈약이다. 3개 장면에서 핵심적으로 부각되는 것은 연꽃을 피운 연못, 고통 받는 창우의 발밑에서 흐르는 강, 남성적인 바다와 같은 이미지이다. 이들은 이미지로만 존재할 뿐, 해석의 여지가 많지 않다. 물론 민초의 삶을 대변하는 창우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고통의 몸짓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원인에 대해서는 끝끝내 침묵한다. 이로써 물의 여정을 통해 확보되는 주제는 빈약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또 다른 문제는 매체인 움직임과 관련된 짜임새가 치밀하지 못하고, 주변부인 장치와 의상에 의존하여 각 장면의 핵심적인 이미지를 창출해 낸다는 점이다.

 



 주제의 부재, 타 장르와의 크로스 오버 등은 현대예술의 특징이다. 이 점에서 〈수작〉의 문제는 한계가 아니라, 현대성의 반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오늘 예술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직간접적으로 이어져 있다. 196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이것은 인류의 보편적 신념체계인 진리를 부정하고,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느끼는 순간순간의 진실을 강조한다. 이 점에서 작품의 주제가 부재하거나 모호한 경우가 많다. 대신, 세태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민감한 감수성과 제 멋대로 놀아 제치는 유희성이 강조된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장르간의 크로스 오버이고, 대표적인 기법이 혼성모방이다.
 〈수작〉의 주제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에 기초한 물의 변화 과정 혹은 운동과정의 이미지화이다. 통념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작품에서 보이는 주제 빈곤은 현대예술과 궤를 달리한다고 할 것이다. 또한 의상, 영상, 물 따위의 활용을 유희성에 기반을 둔 장르 간의 크로스 오버로 간주하기에도 무리가 따른다. 춤과 결합한 방식이 지극히 단순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관객은 이미 긴 치맛단과 영상을 활용한 작품을 수 없이 보아왔고, 무대 바닥에 흐르는 물 또한 피나 바우쉬의 〈Full Moon〉을 통해 경험한 바가 있다. 만약, 작가가 다른 작품의 표현양식을 빌려와 제멋대로 모방하고 수정하는 혼성모방을 의도했다면, 〈수작〉의 치마, 영상, 물 등은 보다 재기발랄하게 변용되었어야 했다.

 



 울산에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큰 강이 있다. 1990년대 후반까지도 각종 폐수로 죽어가던 태화강은 시민‧활동가‧행정가의 노력으로 물고기가 노니는 생명수가 되었다. 새로 취임한 홍은주 감독은 지역민의 자긍심이 된 태화강을 모티브로 삼았다. 그리고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무용단과 국악반주단을 새롭게 정비하여 〈수작〉을 무대에 올렸다.
 작품 중후반에 등장한 엄청난 양의 물로 인해 춤추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 하나 실수하지 않았고, 국내 유일의 전속국악반주단과 정확한 합을 맞추며 무대의 열기를 돋우었다. 그리고 작품에 등장하는 거대한 의상, 각종 영상, 무대 전체를 뒤덮은 물, 중간 중간에 내려오는 여러 무대장치 등도 오차 없이 적확하게 배치되었다. 이와 같은 미덕으로 인해 〈수작〉의 외관은 매우 견고하게 조직되었다. 그러나 작품으로서 〈수작〉은 주제가 미흡하고, 움직임과 관련된 짜임새가 부실하며, 각종 무대장치의 활용이 진부하다.
 여타의 국공립단체의 작품과 비교할 때, 〈수작〉은 결코 뒤처지는 작품이 아니다. 오늘날 적지 않은 작가들이 전통적인 안무법이 갖는 진부함을 벗어나기 위해 현대예술의 여러 방법론을 수렴하여 다각적인 실험을 거듭한다. 또는 이미지에서 이미지로 부류하는 현대예술의 공허함을 극복하기 위해 고전과 전통을 재탐색한다는 것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수작〉에서 보여주었던 열정과 단합된 힘을 발판 삼아 새로운 단계로 비상하는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송성아
춤이론가. 무용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전통춤 형식의 체계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2016)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와 경상대학교에서 현대문화이론과 전통춤분석론을 강의하고 있다.

2018. 08.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