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故 한상근 선생 추모 특집
마지막 안무작 리뷰 : 한 지역 무용단의 아홉 개의 꿈, 거창 M&S무용단의 <구운몽>
김태원

 현재 한국무용협회 경상남도 지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거창 소재로 M&S무용단을 만들어 활동 중인 이명선 씨가 지난해 전국무용제 금상 수상작인 <구운몽(九雲夢)>을 중견 창작무용단 한상근 씨(전 대전 및 창원시립무용단 예술감독)를 초빙, 재구성·연출로 거창문화센터에서 다시 올렸다.(5월 24일) 전혀 예산적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지역 지도자들과 군민의 춤예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시도한 이 공연은 서울에서 한상근 씨 외에 출연을 도왔던 현대무용가 이영일,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한예종 한국무용 실기전공 출신의 정지은 등이 다시 합세해 군(群) 단위의 지역 문화 공간에서 보기 힘든 스케일의 작품을 보여주었다.
 서포 김만중의 한문소설 소재로 주인공 양소유(이영일)가 진채봉(정은미)·정경패(정지은) 등 8인의 여성을 자신의 인생의 여정 속에서 만나면서, 매 인생의 고비 때마다 그녀들로부터 도움을 얻고 인간적 연(緣)을 맞은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실제 천상계에서 인간세계로 내려온 성진(양소유)이 결국 여러 인생의 계기를 겪게 되면서 세속적 입신양명의 출세는 ‘한낱 물거품임을’ 알게 되는 도가적(道家的) 혹은 불가적(佛家的) 주제성을 갖고 있다 하겠다. 그런 가운데 유가적(儒家的) 세속적 질서가 존재함은 인정하고 있다.
 공연은 그러한 성진/양소유의 천상/지상계의 이중적(二重的) 구조 속에 능란한 몸 움직임으로 여성 상대자를 리드해가는 이영일이 공연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가운데, 특히 첫 번째 여인 진채봉 역(실제 그녀는 천상계의 ‘팔선녀’ 중 하나다)의 정은비, 그리고 양소유의 정실부인이 되는 정경패 역의 정지은의 춤이 부지런한 동작선과 낮은 몸자세의 듀엣 등을 통해 공연의 분위기를 쾌활하고 유머러스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과감한 곡예적 애정 장면도 삽입해 한국무용적 동작의 제한성을 탈피했다. 이 중 특히 정지은은 공연의 중반 이후 살가운 몸동작과 표정으로 춤에 흥미를 더했다. 그와 함께 지역에서 활동 중인 박철홍의 음악, 흑색 배경 위에 흰색 선으로 신비로운 동양적 산수를 그린 김치현의 이색적인 무대미술, 컬러풀한 미스터리의 의상이 합세, 이 무용극의 종합적인 참예술성을 높이고 있었다. 한상근의 연출은 천상계/지상계 상하 공간의 분할을 꾀하면서, 극적 리듬감을 줄곧 조였다.
 양소유가 8인의 애인들(정은비·정지은 외 신명분·박은지·김현주·구은혜·김선아·천시영)과 각각 정분을 쌓는 것은 일부다처제의 긍정으로 볼 수 있지만, 공연예술의 입장에서는 2인무(듀엣)의 많은 변주(바리에이션)가 꾀해질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게 된다. 따라서 어쩌면 이 같은 작품의 구조는 우리의 창작무용극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2인무의 미학’(거의 유일하게 있는 것이 <춘향전> 속 성춘향·이몽룡의 춤이다)을 증진시킬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하겠다. 더불어 이 작품 속 미덕은 정경패를 만나기 위해 여장으로 변신한 양소유의 모습, 정경패의 시녀인 가춘운과의 양소유의 우스꽝스러운 사랑, 또 전쟁터에서의 심요연과의 만남 등, 여러 상황이 설정되어 있으므로 단순히 이 소재가 남녀 간의 애정에만 초점을 맞춰질 수는 없다고 보겠다.
 아홉 개의 구름, 즉 구운몽은 인생의 여러 고비에 대한 것이고, 결국 우리가 그 고비 때마다 어떤 인간적 연(緣)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라 하겠다. 이것은 삶의 알레고리요, 그 속에 또 얼마쯤 삶의 교훈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요인물들의 이름이나 소재의 상황(세팅)이 지나치게 중국 문학과 가깝지만 않다면, <구운몽>은 우리의 고전 중 매우 풍부한 이야기와 상황의 변화를 갖고 있다 하겠다.
 사족으로 덕유산·지리산과 연관되는 거창의 골 깊은 자연환경과 <구운몽>은 그 이미지에 있어서 너무나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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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운몽>이 실제 고 한상근의 마지막 안무작으로 보인다. 고인이 창원시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 활동했던 관계로 경남지역무용단의 예술활동을 진작시키기 위해 거창소재 M&S무용단(대표 이명선)의 작품소재 구운몽을 제공하면서 큰 틀에서 안무와 연출을 해준 것 같다. 그 기간 중에 한남대학교에서 고전문학의 콘텐츠화에 대한 박사연구를 해왔다. 그래서 서포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이란 소재가 선택된 것 같다. 

​김태원
​본 협회 공동대표, 「공연과 리뷰」편집인, 춤비평
2013. 0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