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엔디에이 국제페스티벌
초점 맞춘 정조준에 나서야
김채현_춤비평가

2018 엔디에이(NDA · New Dance for Asia)가 8월에 있었다(8. 16~25., 서강대 메리홀). 2011년 광진국제여름무용축제에서 연유하여 2015년에 NDA 국제 페스티벌로 전환한 행사이다. 아시아의 컨템퍼러리 댄스를 축으로 한국과 아시아 간의 국제 교류에 그치지 않고 아시아 내의 국제 교류, 아시아와 유럽 간의 국제 교류 창구로서 역할을 점차 넓혀가는 양상이 올해 엔디에이에서도 발견된다. 국제 행사로서의 입지를 다져 가는 품새가 엿보인다.
 지난 몇 해처럼 올해도 동북·동남아시아의 새 안무 소품들을 무대에 소개하는 이벤트들을 주축으로 동북·동남아시아 무용인들의 협업 안무작, 아시아·유럽 안무자의 공동 안무작이 올려졌고, 이와 동시에 동북·동남아시아 무용가들이 엔디에이 안무 경연 대회(챌린지)에서 스페인 마스단자 춤축제에 참가할 자격을 부여받았다. 국내에만 안주하지 않는 춤계 전반의 기류를 반영하여 엔디에이도 국제 교류에서 코리아 버전의 네트워크와 베이스캠프로서 한몫 하고 있음을 쉽사리 직감하게 된다.
 엔디에이는 아시아의 컨템퍼러리 댄스를 집중 소개하는 장이다. 올해 축제에 참여한 무용인들은 한국, 일본, 중국, 태국, 싱가폴, 대만, 홍콩, 마카오, 말레이시아, 베트남, 라오스, 폴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등 12개국 60명에다, 참가작은 모두 32편이었다. 특히 축제 기간 내내 각국의 춤 이벤트나 페스티벌을 주관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프로듀서들이 10명 남짓 엔디에이의 게스트로 다수 상주해서 네트워크의 실질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엔디에이는 일본의 후쿠오카 댄스 프린지 페스티벌(Fukuoka Dance Fringe Festival), 일본 도쿄의 세션하우스 극장, 스페인 MASDANZA, 싱가폴 M1CONTACT 컨템포러리 댄스 페스티벌(M1CONTACT Contemporary Dance Festival), 삿포로 뉴챌린지 페스티벌, 홍콩 H.D.X Festival, 마카오 CDE Springbaord 축제, 라오스 Fang Mae Khong International Dance Festival과 폴란드 자위로와니아 댄스 씨어터 페스티벌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엔디에이의 32편 출품작 가운데 한국 안무자들의 것은 14편이다. 이들 참가작의 작품 양식이나 경향을 한 마디로 정리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다만 아시아 각국의 컨템퍼러리 댄스 가운데 인디 계열의 소품들로 정리되는 참가작들에서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의 컨템퍼러리 댄스 흐름을 보게 된다.

 




 지난해 엔디에이 안무 경연 챌린지에서 수상한 〈나르는 새들〉은 일본과 스페인출신 두 안무자(노부요시 아사이 · 루치아 바스케스)의 공동작으로 올해 무대에 재연되었다. 올해 엔디에이에서도 〈나르는 새들〉은 주목작으로서 손색없음이 재확인되었다. 두 사람의 듀오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간략히 말하자면, 해와 달의 이야기를 컨템퍼러리 댄스로 그려낸다. 연오랑과 세오녀, 나뭇꾼과 선녀 부류의 옛날 옛적 설화가 아니라 신화와 정서의 차원에서 연상됨직한 해와 달의 관계가 ‘컨템퍼러리 댄스의 시각’으로 풀이된다.
 물론 두 안무자-출연자의 의중이 배합되었을 이 작품은 공간 배열이 간결하면서도 움직임의 집약도가 매우 높은 특성을 보였다. 남녀 각각의 태양 같은, 달 같은 힘이 은연중에 발휘되고 서로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텅빈 공간’을 점차 ‘관계의 공간’으로 이어가는 솜씨가 부각된다. 〈나르는 새들〉에서 춤 공간은 격조 있게 처리되고, 이를 배경으로 두 남녀 사이의 교감은 영묘(靈妙)한 울림을 전한다. 해와 달이 메말라진 시대에 보내는 초대장 같기도 하다.
 


 


 올해 엔디에이의 흥미작으로 일본의 〈약장수〉를 꼽고 싶다. 같은 이름의 가부키 〈약장수〉(外郞賣)의 대사를 활용한 이 작품에서 눈여볼 점은 대사와 움직임을 연결시키는 발상이다. 가부키 〈약장수〉는 가부키 18번 가운데 하나로 일본에서 성우들의 발성 연습 교재로 널리 활용되고 있고 그것이 춤에서 활용된다고 하여 굳이 특이한 일은 아니다. 다만 국내에서 이 같은 발상이 전무한 상항에서 더 참신하게 여겨졌겠지만, 그래도 올해 일본의 Next One Dance Festival에서도 이 작품은 주목받은 바 있으므로 그리 가볍게 여길 작품은 아닐 듯하다.
 흔히 무대에서 대사를 감칠 맛나게 읊조린다면 신파(조)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춤 〈약장수〉를 보고 있노라면 신파조 이외의 접근도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신파가 춤에서 다른 옷을 입듯이 세상은 썩 달라지고 있다. 캐주얼 차림의 두 여성은 가부키 〈약장수〉의 대사에 제각각 몰입하며 움직임으로써 그 분위기를 돋우는 방법을 택하였다. 두 무용수가 말장난에 치운 음절을 또랑또랑 물 흐르듯 읊으면서 어떤 음절은 동영상의 줌인처럼 자주 반복해대는 상황 속에서, 유려한 음절들은 움직임과 어느새 하나가 되어 관객은 어느듯 ‘언어와 움직임의 물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약장수〉의 공동 안무자(히나코 타이라 · 사토코 후쿠다)가 지난해나 지지난해에 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들이고 발레 또는 현대무용 전공자들이라는 점은 강조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두 안무자가 공동 작업한 지 아직 1년도 채 안 된 점 또한 참조사항이겠다.
 폴란드 자위로와니아 댄스씨어터의 〈런웨이〉(카롤리나 크로작 안무)는 패션쇼 무대에서 행동이 기계적인 것처럼 어느 커플이 사적인 관계에서 갈등을 겪으면서도 갈등을 헤쳐 나가기보다는 상대에게서 파생되는 정서에 동화되면서 안도감을 갖고 갈등의 씨앗은 그대로인 관계를 끈끈한 움직임으로 그렸다. 홍콩의 휴조탁포의 〈Along〉은 여섯 남자가 운동적 특성에 집중한 움직임을 격투기 수련을 소재로 전개한다. 이소룡의 격투기 영화 장면을 광동 지방의 경극 지쿠와 섞어 재현하면서 캐리커처(戱畵)를 연출해서 객석의 호응을 일으켰다.
 




 국내 참가작들은 신진들이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이제이브로-모므로의 〈밥상〉은 빈곤의 생활상을 기계처럼 정확한 움직임으로 구성해냈으며, 이동하는 〈게르니카 어게인〉에서 전쟁의 상처를 가녀린 독무로 제기하는 창의성을 발휘하였다. 〈무인도〉를 재공연한 정재우는 개인의 생존기를 격한 움직임으로 형상화해냈고, 이경구와 이언주는 〈숨구멍〉에서 잔잔한 움직임들로 생명을 싹틔우는 과정을 조직적인 움직임으로써 소담하게 전개하였다.
 




 엔디에이의 마지막날 열리는 챌린지 프로그램은 독무 또는 듀오 참가작 가운데 일부를 스페인의 마스단자 페스티발 등지에 참가할 자격을 부여하는 경연장이다. 마스단자 페스티벌은 스페인 카나리아제도에서 지난 20년간 10월에 2주간 열려온 대규모 춤 행사로서 인디 무용가들을 국제적으로 연계하는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엔디에이가 행사를 여는 데 그치지 않고 참가 무용인들을 지속적으로 연계하면서 국제적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있음을 챌린지는 실증한다.

 올해로서 엔디에이는 4회째이고 광진여름축제 때부터 치면 7회 째이다. 지난 몇 해 엔디에이는 춤계에서 아시아 춤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네트워크와 베이스캠프로 뿌리를 내려 왔고, 행사 내적으로는 상당한 역량을 축적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 기반으로 향후에 엔디에이가 산출해낼 성과가 무엇일지는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그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고서라도 엔디에이의 향방에 대한 제언은 필요할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아시아 무용인들과의 교류와 소통으로 기반을 다지는 단계를 벗어나 이제는 엔디에이만의 주제 의식으로 ‘개성과 초점’을 갖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엔디에이가 아시아를 중심 배경으로 한다는 명분은 제대로 조명 받을 만한 일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아시아가 서구에 의해 침탈 받음으로써 그 세월 동안 아시아의 문화가 얼마나 지리멸렬했었는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물리적으로도 침탈받은 경험이 전무한 일본을 제외하면 아시아 나라들의 공통된 문화적 기억은 단적으로 전통 문화의 멸실, 새 문화의 탐색으로 요약될 법하다. 외부(서구)의 자극을 주체적으로 수렴소화할 여유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가히 정신분열 상태를 겪어야 했던 사정들에 비추어 이제 아시아의 문제를 풀려는 의지는 그 자체로도 값지다.
 아시아는 생각보다 다종다양하여 아시아가 무엇인지는 지리적 위치를 빼놓으면 한 마디로 답하기도 곤란하다. 이런 터에 아시아 춤 문화를 공통 관심사로 묶고선 예술적 성과를 기하라는 권고는 과욕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지난 70년간 한국의 춤문화는 1980년대까지는 미국 학습, 2010년대까지는 유럽 학습 태도를 보여왔다. 이제는 아시아권으로 넓혀 학습보다는 네트워크를 통해 문제 의식과 해결 방식을 공유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미 90년대 이후, 아시아의 춤 작품들을 백화점 식 또는 딜레탕트 식으로 나열하는 폐단이 없지 않았지만, 더러 예술제 등으로 조직된 국제 행사들에서 아시아의 춤 현안을 살피고 참조하려는 차원에서 아시아권 춤 단체를 초청하였다. 그 연장선상에서 2010년대에는 아시아 네트워크라는 형태로 보다 조직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춤 행사에서 어떤 통일성을 내세우면 일사불란한 추진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 각지를 대상으로 함께 소통해야 하는 엔디에이 같은 행사에서 통일성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 같다. 통일성을 억지로 내세우기보다는 중요한(가치 있는) 합치점을 향해 상호 소통해가는 전략이 더 효율적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한국 춤계가 당면한 문제와 아시아 춤계가 당면한 문제 가운데 공통 함수를 찾아 매년 하나씩 엔디에이의 주제로 삼는 것쯤은 생각해볼 일이다. 가령 움직임의 메소드, 춤의 지향점, 사회적 이슈와 춤의 상호 연결 같은 주제를 그해의 중심 주제로 설정하여, 아시아 각국의 무용인들이 춤으로 소개하고 풀이해낸 성과를 짚어가며 자기 것으로 참고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침탈당하기만 했던 역사를 뒤로 하고 아시아가 주체로 일어서려는 새로운 지평 위에서 그 일어서는 방법을 보다 적극적으로 모색해보자는 뜻이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8. 09.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