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연구

1939년 아사히 신문에 기고한 네덜란드에서의 최승희 편지 전문
헤이그 공연 상세 기록, 샤요국립극장 공연 절반 이상 신작
장광열_<춤웹진> 편집장

 유럽 순회공연 중이던 무용가 최승희가 1939년 7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쓴 편지가 입수되었다. 신나라레코드가 최근 일본 도쿄에서 입수해 <춤웹진>에 제공한 이 자료는 호텔 편지지에 일본어로 쓴 4장 분량의 서한이다. 최승희가 일본 아사히신문사에 보낸 '무용통신'이란 제목의 기고문이지만 실제로 신문에 실리지는 않았다.
 이 편지는 지금까지 그 내용이 상세하게 알려지지 않았던 1939년 최승희의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국제음악무용제 참가 공연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는 점, 최승희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브뤼셀 국제 콩쿠르에 대한 이모저모, 파리 샤요국립극장에서 있었던 최승희 공연 작품 중 절반 이상이 새로운 신작이었다는 사실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또한 최승희 자신이 “미숙한 제가 의외의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돌이켜보면 미국에서의 일 년 가까운 나날들에서 적지 않은 고생을 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외에 온 이후 관객들의 저의 작품에 대한 냉정한 눈으로 해주는 높은 평가로 인한 예술적 시련으로 동경시대에서의 저의 작품과 달리 새로운 지금의 작품으로 재탄생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언급한 대목에서는 최승희가 신작을 준비하면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음을 짐작케 한다. 편지의 전문을 번역본으로 소개한다.


 




무용통신
네덜란드에서 최승희

*이 편지는 1939년 7월 1일 최승희가 일본 아사히 신문사에 보낸 기고문이다.

 나는 파리에서 제 2회 공연을 끝내고 지금 2번째 순회 공연지인 네덜란드에 와있습니다.
 헤이그의 세계적 명소라 할 수 있는 [스케브닝겐]의 극장 [쿨하우스]에서 2일간의 공연을 마침 오늘 끝냈습니다.
 6월부터 8월에 걸쳐 [쿨하우스] 주최 하에 크라이슬러, 코르토, 루빈스타인, 후베르만 등 세계적인 연주가의 공연이 약 70번 정도 있어, 마치 세계의 주된 음악 무용계의 숙도와 같은 감을 느낍니다.
 무용공연은 이본 게오르키, 마뉴엘 데를리오, 크로이츠 베르그, 네덜란드의 무용가 타지아 코우린 그리고 나를 포함한 5명의 공연이 진행됩니다만 헤이그가 무용 애호가가 많은 도시이기에 대단한 성황을 이루고 있습니다.
 나의 공연이 열리기 일주일 전에 마침 코로이츠 베르그의 공연이 있었는데, 유감스럽게도 볼 수 없었습니다.
 헤이그는 인구 50만 명 내외의 크지 않은 도시이지만 안나 파블로바가 오랫동안 활동한 곳이고 그곳에서 마지막을 보낸 곳이라 파리나 런던 못지않게 무용이 왕성하며 무용이란 공연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도시입니다.
 나는 봄철의 제 1회 공연과 합쳐서 헤이그에서 6일간의 공연을 했지만 이번에는 첫 공연보다 초만원의 성황을 이루어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파블로바와 아르헨티나가 자주 춤을 추었던 같은 무대에서 춤춘 나로서는 돌아가신 대선배들의 모습이 생각이나 감개무량했습니다.
 제 2회 헤이그에서의 저의 무용공연에 대한 각 신문사의 평은 저와 아르헨티나의 공연을 비교하면서 이 대선배와 같이 높은 평가를 받아, 저로서는 이렇게 단순히 기쁘게만 생각해도 좋을지? 지금까지의 소망이 그냥 이루어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파리와 런던에서의 그 이상으로 헤이그의 무용 평론가들은 유럽에서 높은 수준의 평가와 진지한 평가를 함께 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습니다.
 참고로 파리, 브뤼셀, 헤이그 기타 각지의 대표적인 신문의 무용 평론 기사를 같이 보내드리오니 함께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6월 15일 파리에서 저의 제 2회 무용 공연은 새로 지은 [샤이요궁 국립극장]에서 진행되었습니다만 여러모로 저의 해외 공연에서 가장 의의 있는 공연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샤이요궁 국립극장]은 트로카데로에 있는 현재 유럽 최대의 극장이며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입니다.
 5월부터 6월까지 파리의 음악회는 좋은 시즌인 만큼 큰 인물들의 공연이 많아 예술적으로 흥분을 느끼게 합니다.
 저의 공연 종목은 데뷔 공연시와 달리 프로그램 절반을 신작으로 하였습니다.
 이번 공연이 대성황을 이루었고, 관객들 중에는 무용 관계자와 피카소 등 파리의 저명한 예술인들이 많이 와 있어 관객층의 수준이 대단히 높았습니다.
 무용이 국제적으로 수준이 높은 속에서 저의 무용 공연이 생각보다 훨씬 더 높은 평가를 얻게 되어 아르헨티나 이후 독무가가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저의 무용 공연이 파리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상상이상의 반향을 일으킨 것을 생각하면 7년 전 제가 동경에서 초연을 했을 때 “나의 무용 공연을 세계 무용계에서 발을 절면서라도 그 꽁무니에도 따라가고 싶다”라고 쓴 글을 생각하게 됩니다.
 미숙한 제가 의외의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돌이켜보면 미국에서의 일 년 가까운 나날들에서 적지 않은 고생을 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외에 온 이후 관객들의 저의 작품에 대한 냉정한 눈으로 해주는 높은 평가로 인한 예술적 시련으로 동경시대에서의 저의 작품과 달리 새로운 지금의 작품으로 재탄생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제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국제적 비판 속에서 저 자신의 작품의 보다 좋은 점을 살리고자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파리에서는 지금 봄 시즌이라 저는 사카로프, 테레지나, 리후아르 등을 중심으로 한 파리 오페라극장의 발레 그리고 저의 공연 직전 [샤이요궁 국립극장]에서 발레뤼스 드 몬테카를로 등 많은 무용공연을 관람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스완의 첫 공연을 보았습니다만 올 가을에는 동경에서 공연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파리와 각국에서 여러 사람의 공연을 보아 세계의 주된 무용가의 공연을 대부분 다 본 셈입니다만 그에 대한 인상은 다음 기회에 기고하겠습니다.

 앞 통신에서도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브뤼셀의 국제 무용 콩쿨의 심사를 하러 심사위원으로 갔을 때 제 자신이 많은 공부가 되어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2예선에서 남은 100명에 가까운 독무가들과 10개 조를 넘는 무용을 심사를 하였으나 16살 이상의 조와 그 이하의 조로 나뉘어져 있어 약 반은 발레 무용가이며 그 외 절반은 현대무용의 여러 유파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으나 젊고 대단한 열정을 가진 그리고 우수한 무용가가 많아 심사하기가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각각 3종목에 출연하는데 몇 백 종목이나 되는 무용을 심사하면서 제 자신이 배운 점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각국의 참가자들 속에 폴란드의 참가자가 많고 수준은 높지 않지만 현재 네덜란드의 무용계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발전하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심사위원 중에는 비평가와 저명한 무용가들이 각국에서 오고 있습니다. 이번 콩쿨에서는 파리의 스테파노바라는 젊은 무용가가 우승했다는 것만을 알리겠습니다.
 이번 콩쿨 기간 중 콩쿨을 축하하며 테레지나, 알렉산더 스완 그리고 저 3명의 각자의 단독 공연이 콩쿨 전후로 열렸습니다.
 제가 봄 계절에 예정했던 베를린, 런던, 로마의 공연은 가을철로 연기되었습니다. 지금은 도시에서의 공연 시즌이 끝나고 예술계가 해안가로 이동하고 있으니 나는 이 여름 해안가에서 공연을 하면서 가을 시즌의 작품 준비에 집중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7월 1일) 

2016. 1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