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은희 〈당신의 별은 안녕하십니까?〉
누가 별을 앗아가는가
김채현_춤비평가

비유컨대, 머리 위 저 창공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동영상이 언제나 있다. 밤하늘에서 달과 별이 지어내는 동영상은 굉장하다. 항해사, 순례자, 운전자들이 달과 별에서 나름 터득하는 네비게이터도 아마 어마어마할 것이다. 지금도 과연 그러할까. 언제부턴가 달과 별은 춤 무대에서는 희귀해졌고, 세상은 밤하늘의 달과 별에 무심할 정도가 되었다. 도심의 불빛이 밤하늘의 별을 앗아가는 세태 속의 사람들에게 오은희는 안무작 〈당신의 별은 안녕하십니까?〉로 한 편의 동화(童畵)를 선사한다(이대 삼성홀, 11. 13~14.).
 〈당신의 별은 안녕하십니까?〉에서 야밤 정경과 별의 이미지들은 마치 만화경(萬華鏡, kaleidoscope)처럼 흐른다. 〈당신의 별〉은 막이 열리면 객석을 풀벌레 소리가 유성이 스쳐가는 소리, 우주 운행의 소리와 섞이는 칠흑(漆黑)의 야밤으로 데려간다. 쏟아지는 별무리에 휘감기는 그 누군가가 꿈과 서정에 젖는 행복감은 객석에서도 고스란히 감지된다. 샤막에 이미지로 비치는 별무리와 우주의 광경들은 잊힌 세계를 선뜻 되살리며 곧장 상상을 자극한다.

 




 〈당신의 별〉은 저마다 별을 품던 시절이 우리네 곁에서 사라진 현상황을 상기시킨다. 이 상황은 추상적으로 그려져 은유적 상징성을 갖는다. 〈당신의 별〉이 전반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 점이며, 이를 위해 작품은 10개의 장을 제시하였다. 각 장마다 2글자의 한자어로 표기된 표제들이 시선을 끈다. 진옹(辰擁, 신옹?), 탁시(柝時), 혼우(混雨), 설묵(雪黙), 궤적(軌跡), 자영(庛影), 유빙(流氷), 파도(波濤), 오열(嗚咽), 방하(放下)가 그것들이다. 궤적, 유빙, 파도, 오열, 방하를 제하면 좀체 접하기 희귀한 표제들이지만서도 작품을 수용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서두에 별무리가 사람을 휘감는 부분에 설정된 장의 표제 진옹(辰擁)에 ‘별을 품다’는 뜻이 병기된 것처럼, 전체 표제들은 한글로 다시 번안되었다.
 진옹에 이어 전개되는 탁시(柝時)는 소개되기를 ‘갈라진 시간’이다. 연초록색 화초가 흐드러진 가운데 어느 아씨가 자연과 더불어 노는 이슥한 밤은 청랑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그 청랑한 밤에 강선(鋼線)의 망 같은 이미지들이 바닥으로 서서히 밀려들고, 둥근 모양에 이어 사각형으로 바뀌며 이동하는 강선망 이미지들을 따라잡으면서 아씨들은 꿈을 좇듯이 살가운 놀이에 몰두한다. 그럴 동안 벽과 바닥은 지진을 맞은 것처럼 순식간에 쩍쩍 갈라지고 아씨들은 강철망의 벼랑 위로 내몰린다.



 

 〈당신의 별〉에서는 별이 사라진 세상의 여러 양상들이 묘사된다. 별이 사라지지 않은 세상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테지만, 일례로 알퐁스 도데가 19세기에 발표한 단편소설 〈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느 시골 목동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자리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사이 아가씨가 목동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자 그는 가장 아름다운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려와 자기 어깨에 기대어 잠든다고 생각했다. 별이 꿈과 고귀함을 상징한다는 보편적 사실은 이번 공연의 토대를 이루는바, 〈당신의 별〉은 별에 기대어 그런 상징이 말뿐인 세상을 환기하였다. 이를 통해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부각되는 것은 마음속 혼란스런 심사나 짓누르는 중압감 등등의 정서들이다.
 도심의 불빛과 미세먼지가 밤하늘의 별을 앗아간다지만 그건 구실에 불과하다. 〈당신의 별〉이 조명하려는 것은 별이 사라지도록 재촉하는 총체적 현실일 것이다. 동화 같은 작품은 바로 이 지점에서 동화를 넘어섰다. 그렇더라도 〈당신의 별〉이 세상을 향해 투사하는 시선은 시종일관 온기를 유지한다.





 〈당신의 별〉은 우선 고답적이지 않아서 객석이 동행하기에도 어렵지 않았을 것 같다. 또한 디지털 그래픽과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삽입되어 한국무용 계열의 움직임을 뒷받침함으로써 춤 움직임의 의미를 명료하게 만드는 동시에 풍부하게 하는 효과가 작지 않았다. 특히 무대 정면과 바닥을 하나의 스크린인 듯이 통째로 연결해서 투사되는 디지털 그래픽은 상당히 장대한 스케일부터 인상적이었던 데에다, 애니메이션처럼 이동하면서 연초록의 화초 수풀, 강선의 망, 무너져 떠도는 유빙 같은 이미지들을 실감나게 연출하였다. 여기서는 얼마간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따라 관객들은 일상과는 다른 별세계를 느꼈음직하다. 늘 말해지는 대중성 측면에서 참고할 만한 점이 아닌가 한다.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에서 엇비슷한 소재들이 이어진 때문에 단조로운 감이 없지 않다. 전체적으로 보아 〈당신의 별〉에서 세상은 삭막하되 아름다움을 잃지 않도록 묘사되었다. 다시 말해, 비록 세상이 황량할지라도 저마다의 가슴에 별을 품을 가치가 있어 새삼 삶의 의지를 챙겨볼 것을 〈당신의 별은 안녕하십니까?〉는 강조하였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8. 12.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