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장유경 〈겨울 나그네〉
춤과 음악의 존재방식, 그리고 삶의 관조
권옥희_춤비평가

춤이 음악을 듣는 것, 춤이 하는 이야기를 따라 음악이 풀어지는(그것도 허무한 정조만을 골라), 춤과 음악의 존재방식과 진리에 대해 품고 있었던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의 우울한 서정을 춤으로 엮은 장유경(계명대 교수)의 〈겨울 나그네〉(대구콘서트하우스 챔버홀, 12월26~27일). 대구 춤의 한 맥, 계명대 출신의 무용가들, 예술가, 현직 교수들이 한 무대에 섰다.
  무대 왼쪽으로 피아노(조영훈)와 첼로(구희령). 무대 뒤,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아크릴 판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눈 덮인 산 그림자 보이는 간결한 무대장치, 겨울풍경을 그려낸 수묵화 같다.

 

 장유경 〈겨울 나그네〉 ⓒ옥상훈/장유경무용단



  구조물 사이를 걷는 검정원피스의 장유경의 실루엣.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마지막 24번 ‘거리의 악사’를 춘다. 뒷짐을 진 채, 무대를 걷고,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뒤돌아 앉는다. 손 안에서 난 것 같은 물소리. 얼굴과 손바닥을 무대바닥에 댄다. 얼어붙은 강이 내는 소리. 어두운 숲속에서 겨울 너머를 잠시 보았는데, 그녀가 거기에서 본 것은 겨울 빛이 아니라 얼어붙은 어둠인 듯, 되돌아 갈 수 없게 된 ‘거리의 악사’가 무릎을 싸안고 고개를 묻는다.

 



   김정미의 솔로, 김현태와 서상재가 같이 추는 ‘냇물위에서’와 ‘회고’를 춘다. 허리가 높은 검정색의 긴 치마와 몸에 붙게 입은 상의가 마치 어두운 숲 같다. 두 팔로 몸을 지탱한 채 바닥에 길게 엎드리자, 아크릴판이 얼어붙은 겨울 강처럼 은빛으로 어른거린다. 강바닥에 달라붙은 것처럼 엎드렸다가 서로 옆으로 미끄러지듯 엇갈리고 겹쳐지는 춤. 들었던 팔을 천천히 내린 뒤, 가만히 서있다. 시간 속에 정지화면처럼 ‘그녀 집 앞에 멈춰 서 있을 수 있다면’, 둘의 춤 호흡이 좋다. 김현태의 춤, 깊이가 생겼다.

 



   바리톤 김동섭(대구가톨릭대 교수)의 ‘굿 나잇’에 얹은 이준모(전북대 교수)의 춤. 들고 나온 유리 볼 안에 두 발을 담그고 서 있다가 볼 위에 엎드려 몸을 띄운다. 명상을 하는 듯한 춤, 음악에 잘 스미는가 하더니 느닷없이 두 다리를 들고 뛰고 회전하는 춤을 나열한다. 허나 동작을 채 따라잡지 못하는 춤(몸)에너지. ‘슈베르트’를 추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듯. 바리톤 김동섭의 ‘굿 나잇’의 묵직한 서정이 가볍게 바뀐다. 음악에 금을 내며 돌이킬 수 없게 전환된 무대, 안타까웠다.

 



  박금희(계명대 초빙교수)의 춤. 6번 ‘넘쳐흐르는 물’을 춘다. 피아노 음악에 붉은 색 드레스 의상 그리고 발레. 아름다움을 ‘넘쳐흐르게’ 보여줄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다. 꽃처럼 붉은 사랑이든, 얼어붙은 심장처럼 슬픔을 추든 붉은 드레스에 대한 답이 있어야 했다. 고여 있는 물 같은 춤이었다.

 



   반면 5번, 익숙한 ‘보리수’를 부르는 바리톤과 함께 무대에 선 김우석(구미시립무용단 안무자)의 춤. 검정색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채 걸었다가 깊고 크게 쓰는 상체, 사랑에 실패한 젊은 청년의 고통과 고독한 정서를 근사하게 잘 추었다.

 



   최두혁(계명대 교수)이 군무진과 함께 춘 10번 첼로 연주, ‘휴식’. 흰색 셔츠에 검정 슈트를 입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대사를 하며 등장하는 김민준의 이채로운 춤(몸)에 이어 최두혁의 솔로, 겨울의 침묵이 고요하게 차올라 오는 듯한 춤이었다. 예술가의 의지, 상처 입은 몸(춤)으로 추는 춤, 뭉클하다. 뒤이어 합류한 군무, 현대춤의 구조적인 형태로 잘 보여준 춤이었으나 무대크기에 비해 많은 인원이 주는 산만함으로 집중력을 떨어트렸다.

 



  ‘우편마차’와 ‘늙은이의 머리’를 춘 서상재와 김정미의 춤이 이어지는 가운데 옆문을 열고 바로 연결되는 김현태의 춤, 이야기와 동시에 의미가 일어나는 춤 배치가 좋다. 한 줄로 늘어서 있다가 돌연 여자(김정미)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남자(서상재)를 향해 몸을 접자 남자가 주춤 뒤로 물러선다. 김현태와 서상재의 듀오. 춤. 무대바닥을 내려다보고 서있다. 정적. 그리고 다시 춤, 바리톤의 노래. 호흡을 들었다가 몸을 반으로 꺾고 다시 일어서자, 서상재가 같은 동작, 연결하여 둘이서 같은 동작을 거듭한다. 호흡을 들었다가 내리며 천천히 바닥에 스며들 듯, 엎드린다. 이별에 전하는 슬픔의 춤, 묵직했다.

 



 

   첼로 솔로와 피아노와 바리톤의 노래로 이어지는 ‘이정표’와 ‘여관’을 추는 김용철(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 피아노 뒤에 서 있다. 관계를 설정하는 일은 이별과 거기서 오는 침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듯, 검정색 상의를 올려 입을 가린다. 몸을 감싼 검정색 천이 꼬리처럼 길게 따라 나온다. 가슴께의 천을 들어 입에 문 뒤, 춤. 천을 머리까지 뒤집어쓴 채 검정사물이 되어 정지. 겨울나무. 죽음. 바리톤의 노래를 들으며 가만히 서 있다가 툭, 호흡으로 내려앉는다. 다시 일어서고 내려앉기를 거듭. 노래를 하고 있는 바리톤 뒤에서 이리저리 상체를 내민다. 바리톤의 다른 자아, 노래가 되어 춤을 추는 듯하다. 피아노 옆에 서서 상의를 뒤집어 벗은 뒤, 조명이 떨어져 가리키고 있는 곳으로 툭, 던진다. 마치 사랑하는 이의 아름다움을 남겨두는 것은 나와의 이별밖에 없다고 말하는 듯. 춤이 예술이 되는 아주 미세한 그 순간을 아는 이(김용철)다.  

 

   무용가가 모두 예술가일 수는 없다. 이번은 음악 해석이 까다롭고 조명도 거들어주지 않는, 다소 전위적인 춤 공연의 형식일 수도 있는 무대였다. 고뇌한 흔적이 없는 춤을 추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무용가에게는 무의미한 형식일 수도 있는. 하지만 춤추는 이가 원하는 만큼, 천천히 그리고 우아하게, 혹은 미욱하고 단정하게 감정의 품성을 이용하여 슈베르트를 춤춘 장유경의 〈겨울 나그네〉. 춤의 미세한 균열들 사이로 음악이 흐를 때, 음악을 따라 흐르면서 춤으로 삶을 관조해보고자 한 의도를 품격 있게 보여준 무대였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 대구, 부산 공연을 많이 보고 있다.
2019. 01.
사진제공_옥상훈/장유경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