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장은정 〈매스?게임!〉
이심전심의 축연을 상상하는 매스?게임!
김채현_춤비평가

매스게임은 이벤트를 다지는 구실을 한다. 이벤트가 사회적으로 규모화할수록 매스게임의 비중은 커진다. 이런 맥락에서 현대의 대형 이벤트에서 매스게임은 규모와 구성 면에서 다양해지는 추세다. 이벤트 현장으로부터 심지어 범세계적으로 생중계되는 현란한 매스게임 장면을 오늘날 누구나 한 가지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매스게임의 시대답게 매스게임은 사람들에게서 대개는 미의 결정체로 인상을 남기며 또 그런 목적으로 제작되기 마련이다. 매스게임은 이벤트의 꽃인 동시에, 이벤트의 스펙터클이다. 기억되는 매스게임은 잠재의식으로 작용하고 매스게임에 대한 관념과 태도를 주도한다. 안무작 〈매스?게임!〉에서 장은정은 매스게임에 휘둘리는 주변 현상을 향해 메스를 들었다(1월 26~27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장은정 〈매스?게임!〉 ⓒ김채현




 〈매스?게임!〉에서 일단 매스게임은 집단이 하나의 거대한 형상을 만들어내는 집단체조로 정의된다. 이를 단서로 〈매스?게임!〉은 매스게임을 사회 곳곳에 스민 현상으로 다시 주목한다. 말하자면 개인이 일개 부품으로서 사회를 작동시키면서도 사회의 집단성을 벗어나면 낙오자로 처분되는 그런 세태가 〈매스?게임!〉의 단서이다.
 매스게임을 매스?게임!처럼 매스에 물음표 치고 게임에 느낌표 쳐서 파자(破字)하는 발상은 유머스럽고 기발하다. 이를 바탕으로 〈매스?게임!〉에선 다음의 이항대립(二項對立)이 설정된다. 매스가 함축하거나 거기서 연상되는 집단, 획일, 효율성, 통제, 폐쇄 같은 속성들은 게임의 개인, 다양, 자유, 개방, 즉발성 같은 속성들과 대립된다.






 



 




 〈매스?게임!〉 공연 전부터 옥외 (거리) 행진곡의 대가 수자(J. P. Sousa)의 금관악기 위주의 경쾌한 행진곡 〈The Stars and Stripes Forever〉가 극장에 울리고 메트로놈의 흔들 막대 같은 대형 추가 무대 좌우를 왕복하는 장면에서부터 매스게임의 매스 속성이 각인된다.
 공연이 시작하면, 스타디움 램프 라이트가 비춰지는 아래서 매스게임이 펼쳐진다. 매스게임 출연자들은 뽐내듯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들이다. 매스게임이 끝나는 암전 후에 통제된 견고한 집단의 무리가 엉킨 형상을 드러낸다. 이 집단이 일그러지면서 개인들은 저마다 배회하는 여러 모습을 무대 곳곳을 전전하며 노출한다. 집단이 일그러지는 순간부터 〈매스?게임!〉 공연 내내 시종일관 집단과 어울리지 않는 한 인물이 설정된다. 이 인물은 집단과 개인을 주시하고 관찰하는 목격자 또는 감시자로 받아들여진다. 방황, 신음, 피신과 같은 움직임을 거듭하는 사람들은 몸이 기진맥진하는 상황에 놓인다. 마침내, 어느 순간 태평소 소리가 날카롭게 울리고 사람들은 정신을 두들겨 맞은 듯이 정신 차리는 기색들이다. 매스가 강요하는 강박증을 벗어난 모두들 자유분방한 춤으로 어울리고 무대엔 연대의 물결이 일렁인다.
 공연 도입부에서 스타디움의 램프 라이트가 비치는 그 아래에서 〈The Stars and Stripes Forever〉에 맞춰 의기양양한 자태로 행진하는 인간들은 즐거움과 기쁨을 전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과 자태가 일률적이고 규격화된 탓에 그 즐거움과 기쁨은 가식적이며 또 그들만의 것에 그친다. 그들은 즐거움과 기쁨을 기계적으로 뿜어대는 마리오네트들 같다. 우리 사회의 고도성장이 잉태한 집단성은 〈매스?게임!〉에선 이처럼 매스게임에 순응하는 맹목적 세태로 치환된다. 이어서 이지러지는 집단에서 삐져나온 개인들이 분열하는 세포나 야생의 포유동물 무리 같은 몇 안 되는 자세로 단속적(斷續的) 음향에 단순하게 반응하는 부분에서도 문제의 세태가 재현된다.




 


 


 




 공연 중반에 등장하는 주황색 고층 구조물은 시중에서 보는 플라스틱 운반 상자를 층층이 쌓아둔 것으로서 우선 무대에서의 조형미가 뚜렷하다. 여러 개가 겹겹이 조성된 고층 구조물은 고압적인 사회 체제처럼 거대한 장벽으로서 무대 배경을 이루고 공연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컸다. 이 구조물은 그 고층만큼이나 고도성장 사회의 어떤 억압성을 강력하게 암시하는 편이다. 그런 가운데, 몸이 구렁텅이에서 신음하는 세태를 매스게임에서 유추하는 안무자의 발상을 뒷받침하도록 몸의 폄하 내지는 훼손 현상이 무대에 더 구현될 필요가 있었다.
 게임!이 펼쳐지는 대목에서 좀 이색적인 2가지 장치를 보게 된다. 사람들이 하회 양반탈을 얼굴에 착용해서 어울림의 춤을 펼칠 동안 그 앞의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비닐백 재질의 장승들이 나부낀다. 현대무용 장르에서는 생소한 장치들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양반탈과 장승은 〈매스?게임!〉을 통해 현대무용 장르에서는, 과문의 탓인지 몰라도, 처음 등장한 의의가 있는 듯하다. 두 장치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연상시키듯이 공연에다 뿌리 있는 질감을 입혀 주었다. 하회탈의 눈웃음과 너털웃음, 색동옷을 입은 장승들이 자유롭게 출렁이는 〈매스?게임!〉의 결말부는 이심전심의 축연(祝宴)으로서 대미를 장식한다.




 


 




 결말부에서 사람들은 각자 검정 옷을 뒤집어 붉은 옷으로 갈아 입는다. 이처럼 매스게임은 사람들과 집단을 새롭게 태어나도록 하는 바가 있으며, 공동체의 의례로서 매스게임의 참뜻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자발적 이심전심’에 기초하지 않은 매스게임은 허위의식의 장이자 파멸의 장이라는 것을 〈매스?게임!〉은 말한다.
 지난 수년 사이 우리 사회 일각에서 집단의 요구와 관행을 강요하고 그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것을 도리어 정상으로 치부하는 풍조가 드세지는 것이 목격된다. 사회의 건전한 합리성을 코너로 몰아넣는 것이 갈수록 심해지는 형편이고, 그간 축적된 고도성장의 결과 그 틈바구니에서 개인들이 파탄나도 해결책은 더욱 요원하지 않은가. 〈매스?게임!〉에서 새삼 환기되는 것은 자발성과 상생에 기초해서 연대의 사회로 가는 길이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9. 03.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