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파리 현지취재_ 호페쉬 쉑터의 신작 〈Sun〉
<Sun>은 그냥 무용작품 이었다
정다슬_<춤웹진> 유럽 통신원

 지난 1월 13일 호페쉬 쉑터 무용단의 신작 <Sun>이 프랑스 파리의 테아트르 드 라 빌(Theatre de la Ville)에서 공연되었다. 이스라엘 출신의 안무가 호페쉬 쉑터는 2008년 런던에 무용단을 설립한 이래 현대무용계에 자신의 이름을 뚜렷이 각인시키며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주목 받고 있는 안무가이다.
 그의 신작 <Sun> 역시 이미 초연 이전부터 그 트레일러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기대를 불러모았다. 새하얀 배경 안에서 하늘거리는 흰색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은 호페쉬 특유의 손동작을 심플하고 절제되게 춤추고 있었다. 작품에는 바람을 연상시키는 음악이 입혀졌고, 모든 요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몽환적으로 촬영한 영상은 신작 <Sun>에 대한 기대를 한층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필자 역시 이 아름다운 트레일러가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많은 궁금증을 갖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신작 <Sun>은 매우 독특하게 시작되었다. 영화나 문학작품에서나 볼 수 있는 ‘플래쉬-포워드(Flash-forward)’ 기법을 무용작품에 사용한 것이다. ‘플래쉬-포워드’는 이야기 도중 미래의 한 장면을 삽입하는 표현 기법으로, 화면 등이 뒤의 장면으로 갑자기 건너뛰어가는 것을 말한다. 호페쉬는 친절한 목소리로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을 잠깐 보여드릴께요”라고 말한다. 10초 가량의 짧은 춤이 선보여지고 “이제 우리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아시겠죠. 다 괜찮을 거예요. (You know that where we going. Everything will be ok.)” 라고 관객들을 안심시키며 신을 암전으로 마무리한다. 아주 간단한 기법을 사용하여 클라이막스의 찰나를 보여주는 이 신이 주는 인상은 실로 전체의 작품보다 강렬하게 다가왔다.


 

 전체적으로 무대는 트레일러에서처럼 아주 하얗고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무용수들은 18세기를 연상시키는 바로크 풍의 실크 블라우스와 바지를 입었고, 종이로 만든 양들을 데리고 무대 위로 등장했다. 종이 양들 사이에 갑자기 종이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나고 객석 앞쪽에 앉아있던 여인이 일어나 ‘꺄악’하는 고함을 길게 내지르며 위험을 알린다. 이 여인은 작품에서 시종일관 위험이 감지될 때마다 일어나 고함을 지르는 역할을 했다.
 곧 이어 지휘자를 연상시키는 스토리 텔러가 탬버린을 들고 등장한다. 그는 장면 사이사이에 등장하며 각 신들을 연결하고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역할을 한다. 마치 우리네 창극에서 ‘도창’과 같은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내고 있었다.
 장면의 연결과 분리를 하는 장치로는 ‘암전’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신이 바뀔 때는 물론이거니와 무용수들이 정지된 포즈로 연출하는 사진 같은 이미지들이 자주 연출되었는데 그 때마다 암전이 빠짐없이 사용되었다. 호페쉬는 약 70분간의 작품에서 소리를 지르는 여인, 스토리텔러, 암전 등 3가지의 장면 연결 요소를 이용했다. 장면을 아주 잘게 나누고 재빠르게 이어붙이는 방식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주었으나 간극이 좁아질수록 작품의 전체 흐름을 방해하기도 하여 다소 아쉬웠다.
 

 



잘 훈련된 댄서들에 의한 출중한 군무
 

 

 

 호페쉬 쉑터의 작품에서 관객을 가장 동요시키는 것은 잘 단련된 무용수들과 그들이 보여주는 출중한 군무라고 할 수 있다. 둥글게 구부러진 몸통, 경련이 일어난 듯한 손과 팔에 안무가 집중된다. 아프리칸 댄스에서 볼 수 있는 경쾌하게 구르는 발, 라틴 댄스에서 나타나는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몸통, 이스라엘 민속 무용의 손동작 등이 다방면으로 절충되어 있다. 신들린 듯한 움직임 안에서도 모든 리듬을 하나하나의 움직임으로 표현해내고자 안무가의 출중한 탐구력을 엿볼 수 있었다.
 한편 <Sun>은 태양이라는 자연적 요소가 지니고 있는 물성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자 하였다. 태양은 모든 인간이 갈망하는 눈부신 빛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그 이면의 위험천만함과 존재의 웅대함으로 감히 함부로 다가가갈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호페쉬는 태양 앞의 인간을 왕 앞에 서있는 광대로 설정하고 전체 작품을 통해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양들 사이에 나타나는 늑대, 인디언들 사이에 나타나는 총을 든 군인에게서 감지되는 위험이 늘 우리의 등 뒤에도 서있다는 것, 그리고 늘 도사리는 위험에 둔감해진 인간에게 경고하고 있다.




직접 작곡한 음악, 안무와의 뛰어난 조합보여
 

 

 호페쉬는 한마디로 세련된 안무가이다. 초현실적인 감각이 느껴지는 무대가 그러하고, 보기만 하면 호페쉬 스타일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토속적이고 역동적인 그 만의 춤 언어가 그렇다. 또한 클래식한 포메이션을 통해 안무를 정교하게 풀어내는 영리함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가장 큰 몫을 해내는 것은 단연 음악이다. 호페쉬는 작곡가로도 활동하며 거의 모든 작품의 음악을 직접 작곡하는 열의를 보이는 등 음악에 큰 비중을 싣는다. 공연장 로비에서 늘상 이어플러그를 관객들에게 나누어주는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의 전작 <Polotical Mother>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그가 만들어내는 익숙치 않은 타악기의 비트와 독창적인 일렉트로닉 음악들은 공연장을 가득 매우고 음악 콘서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Sun>에서도 그는 거의 모든 음악을 직접 쓰고 현악기 연주자들과 공동작업을 진행했다. 이러한 음악은 무용수들의 에너지를 한계치로 끌어올리는 것을 돕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그의 안무가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게 해주었다.

 

 

 영국에서 온 관객 휴 모리슨(Huw Morrison,29)씨는 “스코틀랜드 전통 음악의 향기가 느껴지는 음악과 초원에서 뛰노는 것 같은 종이 양 등의 무대 연출과 소품들이 매우 영국적이었다. 안무가는 영국의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가적 풍경을 담아내고 싶어한 듯 했다. 에너제틱한 무용수들의 움직임도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호주 ‘발레코’지의 평론가 조르단 반 빈센트는 “호페쉬는 정치,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길 두려워하는 안무가가 아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화두를 던져준다. <Sun>은 다양한 움직임 모티브와 아이디어를 담고 있어 모든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도록 개방된 작품이다. 내 기억에서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공연 중 하나이다”라며 <Sun>속 호페쉬의 말을 인용하여 “그리고 난 그것이 괜찮은지 모르겠다”라고 적었다.
 안무가 호페쉬 쉑터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관객들이 이상하리만큼 강렬한 경험을 하고 가길 바란다. 그리고 그 경험을 개인의 감정, 느낌과 연결시켜 그들의 뇌 안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길 희망한다. 그러나 사실 이건 큰 욕심이다. <Sun>은 그냥 무용 작품이다.” 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듯 <Sun>은 움직임 그 자체에 목마른 관객들을 충족시켜주는 무용 작품이었다.


 

인터뷰_ 한국인 무용수 김예지

안무가가 원하는 것 다방면으로 시도하는 것이 댄서의 몫

 


호페쉬 쉑터무용단의 한국인 무용수 김예지는 당돌했다. 그녀가 인터뷰에서 말했듯 김예지를 정의하는데 무용수라는 말 이외의 수식어는 필요하지 않다. 그의 춤은 무대를 휘어잡았고 관객의 눈은 그녀를 쫓기에 바빴다. 파리에서 9일 동안 15회가 넘은 공연이 이어졌고 이후 그녀의 바쁜 투어 일정 때문에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어떻게 춤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떤 계기로 현재 활동 중인 영국으로 가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활동적인 분야에 늘 관심이 많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춤을 접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춤을 시작한 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내가 한예종에서 공부할 때 많은 선배들이 외국에서 활동 중이었다. 선배들이 가끔씩 계절학기 수업을 위해 학교에 오셨다. 후배들이 외국에 나갈 수 있도록 많은 현지 정보와 도움을 주었고 그 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영국 런던에 있는 ‘The place’ 에 지원했다. 아무래도 영어권 나라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과 경험을 쌓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호페쉬 쉑터 컴퍼니는 전세계가 주목 하는 무용단 중 하나다. 어떻게 무용단에 입단하게 되었나.
한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외국으로 나갔다. 당시만 해도 호페쉬 무용단에 대한 정보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우연하게도 그 때 유일하게 있었던 오디션이 ‘The Place’와 호페쉬 무용단이었다. 3-4일 간의 수업, 레퍼토리, 즉흥, 인터뷰를 통한 오디션을 거쳐 입단하게 되었다.

 


-호페쉬와 작업하는 방식과 과정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호페쉬는 주로 즉흥 작업을 위주로 아이디어를 연구한다. 그 후 아이디어를 세분화 시키고 발전시키는 작업에 시간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된다.

-호페쉬와 작업한 작품들 중 가장 기억에 남거나 본인에게 특별한 작품이 있는가?
많은 작품이 있지만 그 중 <폴리티컬 마더>(A Political Mother)가 기억난다. 이 작품에는 오리지널 버전(Original Version)과 안무가 편집 버전(Choreographer’s cut version)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안무가 편집 버전이 특별하다. 오리지널 작품보다 딱 4배 더 힘든 것 같다. 육체적으로 많은 체력과 에너지, 동시에 지구력까지 요구하는 작품으로 무용수로서 한번 쯤 경험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나도 몇 년전 호페쉬의 <Political Mother>의 안무가 편집버전을 관람한 적이 있다. 그 작품보다 <Sun>에서 김예지씨가 더 빛을 발했다고 생각한다. 무용수로서 꾸준히 지켜가고 있는 자신의 철칙 혹은 자신만이 하고 있는 노력이 있나?
그저 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것이 가장 지키기 어렵고 힘든 일인 것 같다.

-약 70분간 진행되는 <Sun>공연 동안 모든 무용수들의 에너지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커져가는 것을 느꼈고 놀라웠다. 이 작품을 춤추고 연기하며 어려움도 즐거움도 많았을 것 같다. 단순히 안무 테크닉을 익히는 것 외에 리허설에서 중점을 둔 부분이 있었나?

무용수는 항상 정신적, 육체적으로 안무가를 도울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안무가가 다양한 시도를 하려 했기 때문에 그가 원하는 것들을 찾기 위해 나를 포함한 모든 무용수들이 부단한 노력을 했다.

-이제까지 한국을 포함 영국 혹은 유럽에서 함께 작업한 안무가들은 누가 있나?
한국에 있을 땐 주로 학교에서 주최하는 작업에서 많이 활동을 했고 영국에선 호페쉬 컴퍼니 외엔 작업한 경험이 아직 없다. 하지만 내가 계속 춤을 추고 있다면 댄스 씨어터(Dance Theater)를 중점적으로 하는 컴퍼니도 경험해 보고 싶다.

-한국 안무가와 유럽 안무가의 작업 방식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다르게 느껴지는 점은 무엇이었나? 그리고 그런 차이점을 어떻게 극복하거나,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다.
나라 간의 차이가 존재한다기 보다는 안무가마다 특유의 작업방식에서 오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안무가와 작업하던 최대한 안무자가 원하는 것을 다방면으로 시도하는 것이 무용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 무용수로 활동하는 환경 역시 다르리라 생각된다. 극장과 무용단 시스템 등 다양한 점들이 있을텐데 한국의 춤환경에서 개선 시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유럽에서는 무용단 자체가 하나의 기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모든 일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세분화돼있다. 특히 무용수들에게 춤에만 몰두할 수 있는 쾌적한 환경과 조건이 제공된다. 다소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한국도 천천히 부족한 점들을 개선하고 보완한다면 언젠가는 풍족한 문화환경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많은 무용수들이 외국으로 진출하고 싶어하고 실제로 오디션 등을 하러 오는 무용수들도 적지 않다. 이런 후배들에게 해 줄만한 조언이 있다면?
영어를 준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외국에서 무언가를 경험하고 싶다면 의사소통은 필수다.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놓치는게 많을 것이다.

-무용수 이후의 삶에 대한 미래의 계획이 있나?
글쎄… 아직 뚜렷하게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무용수 이후에 하고 싶은 일은 있다. 정확한 건 춤을 추는 무용수는 아닐 것 같다.

-무용수 김예지에게 춤이란 무엇인가? 또 무용수 김예지를 어떻게 정의 할 수 있을까?
나에게 춤이란 이제까지 나의 시간과 노력을 가장 많이 들인 것이다. 무용수 김예지는 ‘무용수 김예지’라는 말 이외에 따로 정의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2014. 0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