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몬테카를로발레단 공연에서 만난 발레리노 안재용
세계 무대로 웅비할 젊은 무용수들에 대한 기대
백홍천_재일 최승희무용연구가

 몇 년 전부터 나는 매해 유럽으로 2-3개월 동안 예술여행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세계적인 무용가이자 우리 민족이 자랑하는 무용가 최승희의 발자취, 업적을 마음에 되새기고자 시도하게 되었으나 지금은 여기에 더해 세기의 유명 발레무용가인 니진스키(Nijinsky)와 누레에프(Nureyev), 그 외 많은 무용가들과 각 분야 예술가의 발자취도 함께 찾아다니고 있다.
 동양인 무용수들이 외국의 유명 무용단에 진출하는 것은 이제 새로운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스웨덴왕립발레단과 영국의 로열발레단에서도 재일교포 무용계의 젊은 무용수들이 활약하고 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에서도 세계 유명 발레단에서 활약하고 큰 역을 맡은 새 세대, 차세대 무용수들, 말 그대로 한국을 빛내는 젊은 발레리나, 발레리노들이 자기 재능을 시험하면서 굳건한 의지로 해외 무대에서 마음껏 날갯짓하고 있다.
 올해도 나는 무용가 최승희가 공연을 하고 대 절찬을 받은 프랑스 파리, 칸 등지를 찾게 되었고, 우연히 니스(Nice)에서는 몬테카를로발레단의 공연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나는 수년 전부터 모나코 왕국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Monte Carlo발레단(Les Ballets de Monte Carlo) 예술감독인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jean-christophe maillot)의 작품을 모나코의 전용 극장에서 수차례 보았었다.
 마이요가 재안무 구성한 아주 특이한 〈백조의 호수〉를 감동적으로 보았으며, 현대화한 〈호두까기인형〉 등 몇몇 작품을 보고 참신하고 개성적이란 생각과 함께 발레단 무용수들의 기량에 크게 감탄했었다.

 

 



 올해는 니스에서 열린 William Shakespeare축제에 몬테카를로발레단이 National Theater of Nice에서 초청공연을 하게 되었고, 1월 20일부터 21일까지 3회의 공연 중 나는 21일 낮 공연을 보았다.
 공연작품은 Shakespeare의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을 마이요가 〈LE SONGE〉(공상)으로 제목을 바꾼 것으로 마이요는 특유의 해석을 곁들여 무대에 올렸다. 발레 〈한여름 밤의 꿈〉은 조지 발란신이 1962년도에 발레화, 뉴욕시티발레단이 초연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마이요 안무구성은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자신의 해석을 곁들여 형상화했다.
 공연은 1부와 2부 합쳐 약 120분 동안 이어졌으며, 코믹한 대사와 참신한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무대장치는 아테네를 상징하는 하얀 나무판 기둥 두 개가 무대상하수에 소박하게 놓여 있고 이 두 기둥이 무용 이야기에 따라 긴 의자가 되어 다채롭게 이동한다. 꿈 세계를 형상하는, 높이가 있는 원형 이동무대도 적절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간결하면서도 의미를 담아낸 무대장치였다.
 여기에 당시의 시대성을 살리면서도 아주 모던하고 매력적으로 제작된 무대의상과 특히 현실인물과 숲의 요정들의 대칭적인 인물 구도 설정은 한여름 밤, 꿈의 세계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잘 준비된 몬테카를로발레단 단원들의 세련된 무용언어도 공연의 성공에 힘을 보탰다.

 

 



 작품의 주인공인 오베론(Oberon)으로 등장한 무용수는 놀랍게도 대한민국 출신의 안재용(Jaeyong An)이었다. 지금까지 일본 출신, 중국 출신의 무용수가 출연하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공연은 보았지만 대한민국의 무용수가 출연하는 공연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안제용이 무대에 첫 등장을 한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외국의 무용수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신체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큰 키와 긴 팔과 다리 라인이 무엇보다 돋보였고 몸은 아주 예술적으로 단련이 되어 있었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발레 무용수가 갖추어야 할 이상적인 체격조건을 겸비하고 있었다.
 자신의 특출한 그 신체조건을 공연에 맞추어 자유자재로 빈틈없이 활용할 수 있는 것 또한 대단했다. 큰 키와 긴 팔을 잘못 사용해 오히려 춤추는데 걸림돌이 되어 버리는 무용수들을 적지 않게 보았기 때문이다.
 숲속 요정의 왕인 오베론은 1막, 2막을 통하여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권위와 위엄성을 드러내야 하며, 열렬한 사랑과 애수의 표현, 분노, 여기에 코믹한 연기표출 등이 요구된다. 고전발레와 달리 컨템포러리 발레의 색채가 농후한 이 작품에서 주인공 오베론은 거의 쉴 사이 없이 무대에 등장한다. 그만큼 강한 체력을 필요로 한다.

 

 



 안재용의 춤은 출중했다. 솔로 춤에서 모든 발레동작들을 안정감 있게 해냈으며, 빼어난 테크닉과 개성적인 자태, 오묘한 향취로 무대를 빛냈다. 이번 작품에서 특히 중요한 연극적인 요소를 포함한 마임(mime)과 강렬한 눈빛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뒷모습 어깨와 팔의 사용을 곁들여 무대를 당당하게 교차하는 동작을 할 때는 무용수로서 그의 신체조건이 얼마나 좋은지 한눈에 알 수 있게 했다. 하체는 말할 것도 없고 든든하면서도 유연한 상체 동작, 단련된 가슴골격은 오베론 역이 요구하는 춤과 표현수단을 남김없이 보여줄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다.
 특히 숲의 여왕과의 2인무 장면에서는 신비로운 선율을 타고 열렬한 사랑과 관능적인 매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또한 숲속 요정 남성무용수와의 2인무 장면도 재치 있고 속도감이 있는 상하체동작과 유연한 리프팅 등으로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두 시간 동안 주역 무용수로 작품을 이끌어 간다는 것은 특별한 능력이 요구된다. 안재용의 춤과 연기에서 아쉬운 것은 아직 많은 작품에 출연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작품에서 요구하는 문학성을 터득하는 노력이 더 필요해 보였다. 전막 작품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무용수들은 한번 무대에 등장하면 퇴장할 때까지 그 역에 빠져 들어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부분적으로 오베론이 아니라 안재용이 보일 때가 더러 있었던 것은 옥의 티였다.
 안무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요구를 소화하고 남다른 연습을 통해 수준 높은 춤과 연기를 보여주는 무용수가 있다면, 더없는 소중한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발레단에 입단한지 1년 조금 넘은 무용수에게 비중 있는 역할을 선뜻 맡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예술감독이자 안무가인 마이요의 엄격한 지도와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믿음을 안재용은 이번 공연에서 충분히 보여주었다.
 안재용은 선화예술고등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후 2015년에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정단원이 되었다. 입단 후에는 〈백조의 호수〉에서 사냥꾼,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패리스 역,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데지레 왕자 역을 맡았다. 2월 11일부터 이어지는 스페인 투어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티볼트 역을 맡을 예정이다.

 

 



 초만원의 객석을 메운 관람자들의 우렁찬 기립박수, 몇 번이나 이어지는 커튼콜 은 안재용에 대한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과 이번 공연에 대한 성공을 확신시켜주었다. 무용가 최승희는 세계를 무대로 활약한 역사에 남을 무용가이다. 그녀의 뒤를 이어 전도유망한 내일의 젊은 무용가들이 국제무대에서 더욱 더 활약하고 명성을 떨쳐주기를 기대한다. 

 

2017. 02.
사진제공_Monte Carlo Ballet(Alice Blangero), 김윤식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