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1회 젊은춤축전
젊음은 마술이다
이지현_춤비평가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는 노인과 더불어 청년이다. 노인은 사회가 보살피고 책임져야할 과제라면, 청년들은 우리의 생명력을 담보하는 현재이자 미래이다. 그런데 청년들이 건강하게 자기의 생각과 행동을 맘껏 펼치도록 보호받아야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이 사회를 앞으로 살아가게 할 텐데 안타깝게도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춤에서도 마찬가지다. 청년을 배려하는 공공지원금이 많이 늘었지만 그들 모두에게 혜택이 가기에는 모자라는 형편이고, 돈 이외의 다른 정신적인 자양분과 환경도 필요한데 그것들이 잘 갖춰져 있는지 본다면 춤청년예술가들의 현실도 만만치는 않다.
 그 중 민족춤제전 2019의 젊은춤축전이 반가운 이유는 그들이 장르의 구분없는 큰 판에서 만날 수 있으며, 개념적 판은 크지만 극장은 매우 소박한 극장이어서 다른 부담은 없이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환경 때문이었다. 공모를 통해 출전한 팀은 모두 18개 팀으로 7월 2일 공연한 8팀은 전통춤을 원형 그대로 공연하거나, 전통을 근간으로 현대적 창작을 하거나, 재구성을 한 팀으로 구성되었고, 3, 4, 5일은 현대무용과 댄스 씨어터, 뮤지컬 기반의 현대적 작품 등이 다양하게 출품하였다(7. 2-5. 동양예술극장).

 90년대 후반부터 2005년까지 열정적으로 축제를 이어가던 한국민족춤협회는 세월호 광장에서 춤행동을 하기 전까지 근 10년을 대외적인 활동을 멈춘 채 휴지하였고, 그들을 다시 구성하고 행동하게 한 건 광장에서 춤출 수 밖에 없는 2014년의 현실이었다. 광장에서의 춤행동을 2017년부터는 민족춤제전으로 이어오고 있으며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이 제전은 젊은춤축전을 축제 안에 새롭게 만들고 젊은 춤꾼들을 위한 무대를 열어 주었다.
 우선 전통분야 8개의 작품들은 〈살풀이춤〉 (이유진), 〈장한가〉 (김민종), 〈태평무〉 (송윤아) 등의 원형을 그대로 살린 춤들이 있었고, 〈보현보살〉 (김연수_재구성: 김해춘, 김연수)과 〈설장고춤〉 (복영선_재구성:성윤선)은 흔히 볼 수 없는 신선한 레퍼토리로 눈길을 끌었다. 장단의 힘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재구성된 복영선의 〈설장고춤〉은 관객을 완전히 사로잡고 숨 쉴 틈을 주지 않았으며, 〈보현보살〉은 분단 환경에서 최승희의 춤을 만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매우 반가운 마음이었으며, 분단으로 나뉜 반쪽의 춤에서 벗어나는 춤판이 민족춤제전에서 앞으로도 이어지길 기대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신소연 〈신.쿵!〉 ⓒ한국민족춤협회


문다솜 진도북춤〉 ⓒ한국민족춤협회




 풍물춤을 뿌리로 갖는 춤들로 설장고를 맨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그때의 사랑〉 (윤진아, 강대현_재구성: 이하경)은 풍물이 드라마로 승화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었고, 진도북춤을 여성 솔로로 재구성한 〈진도북춤〉 (문다솜)과 권명화류 소고춤과 진도북춤을 섞어 신명나게 엮은 〈신.쿵!〉 (신소연, 김민지, 이재섭)은 풍물춤의 대동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특히 〈진도북춤〉은 태평소와 사물의 생반주의 힘을 여성 홑춤으로 받아내는 대범한 여성 솔로로 관객과의 교감력을 잘 보어 인상적이었다.
 이 중 흥미로운 건 〈그때의 사랑〉이었는데, 80년대부터 풍물이 대학생들의 문화가 되었지만, 그것이 어떤 이야기를 담는 데에는 고민은 많았지만 성과를 내지는 못하였다. 〈그때의 사랑〉은 물론 리틀엔젤스 류의 미화되고 가벼운 스토리이지만 평상복을 입은 남녀의 감정을 드러내기에는 풍물이 어색하지 않음을 보여주었고, 풍물과 연기가 자연스럽게 하나로 엮여 다른 각도로 풍물을 경험하도록 하는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권교혁, 신원국 〈개같은 인생〉 ⓒ한국민족춤협회




 현대무용분야 10개의 작품에서 매우 고무적이었던 것은 한국현대무용이 오랫동안 빠져있던 추상적 모호함과 단순한 표현성의 그림자가 많이 사라지고 나름 자기만의 구성과 방식으로 개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개같은 인생〉 (권교혁, 신원국)은 유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경계선에 서서 성인으로서 미래에 대한 현실인식이 매우 예리하게 살아있는 작품으로 허술한 듯 하지만 결코 허술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장면마다 살아나는 유희성과 아직 남아있는 놀이본능은 추억의 세포를 깨우면서 그 시기를 지난 관객을 흡입했을 뿐 아니라 동년의 관객에게 뜨거운 공감을 얻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어느 성인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 사회의 힘(권력)의 문제와 돈의 문제는 그들 앞에서 한 낫 종이장 처럼 쉽게 던져질지는 유쾌한 마법을 볼 수 있었다.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로다〉 (백상하, 이준원) 역시 고승의 깨달음 게송을 쉽게 비틀고 부정하는 것이 이미 출발점이다. 캠핑 온 두남자의 일상에서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각자의 놀이에 빠져있으나 서로를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서 새로운 관계의 규범을 발견하고 그것을 지켜본다는 것은 기성세대가 느낄 수 있는 소통의 기쁨인데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그들은 본다는 것은 아주 뿌듯한 일이었다. 위트있게 삽입된 살풀이 음악을 다루는 얼굴 표정 연기는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들이 우리 전통 역시 새롭게 다룰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남겼다. 관계 속에 있으나 관계에 메이지 않고 공존을 인정하는 방식에 머리가 청량해지는 경험은 이 작품의 힘이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이이슬, 하지혜) 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퍼포먼스의 폭발력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으로 이질적인 두 명의 퍼포머의 등장과 춤의 결과 더불어 근원적이고 실존적인 주제의식을 담은 질문의 나레이션은 관객의 머릿속을 파고들만큼 집요하고 강력한 것이었다. 안타깝게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Color full〉 (김혜지, 김서현) 역시 여성듀엣으로 매우 섬세하고 독특한 사물과 세계에 대한 시선을 보여주었는데. 새로운 감각의 여성안무가의 출현이 기대되는 두 작품이었다.
 순위권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모앙모앙〉이 보여준 순수한 감성에 묻어나온 이 시대 청년의 자화상은 약하고 섬세하지만 이미 우리의 심정 깊숙히 들어와 호소력을 갖기에 충분했으며, 〈혀….ㄹ〉은 댄스시어터 형식으로 요즘 언론을 혀로 의인화시켜 결국엔 혀를 자르며 사회의 문제를 자신의 몸으로 안아버리는 선택을 결행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순수한 용기와 젊음의 힘을 볼 수 있었다.
 으뜸상을 받은 〈한의 항거〉 (박지원 안무 외 7명 출연)는 여성군무의 강력한 파워와 새로운 여성 이미지의 창출로 주목을 끌었다. 전통 장단과 ‘징’이라는 오브제는 현대적인 움직임과 매우 잘 녹아있었으며 격조있는 걸크러쉬에 흡수되어 새로운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거기엔 한에 지쳐 울던 여성은 이미 없으며 그들은 이제 일체형 작업복으로 무장하고 남성이 들기도 무거운 징을 들고, 밀거나 그 위에 올라서 밟고 일어선다. 그리고 개인이 아닌 거침없는 군무로 춤추며 일어서고, 구르다가 다시 서는 힘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추는 춤이 한국춤인지 현대춤인지 구분은 이미 의미없었다.






박지원 〈한의 항거〉 ⓒ한국민족춤협회




 제1회 젊은춤축전이 신선했던 지점은 요즘의 다른 무대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어떤 거르는 힘이 작용하지 않은 순수한 그들의 작품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구성은 미완적이고 거칠었지만 그들 작품에서 보이는 그들의 진솔한 모습과 감각은 다른 어떤 더 좋은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에너지 가득한 것이었다. 그들보다 상대적으로 순수하지 못한 어른들이 괜히 손대지 않고, 그들이 편히 자기의 것을 꺼내 보이고 그 다양한 모습들이 머물 수 있는 넘치지 않는 환경만 만들어 준다면, 그들의 자연스런 성장은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이지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춤비평가로 등단했다. 2011년 한국춤비평가협회의 정회원이 되었으며, 최근 비평집 『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 왕성한 비평 작업과 함께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강사, 서울무용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9. 08.
사진제공_한국민족춤협회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