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무용단 스텝업 & 쌍쌍
예술적 축적을 위한 지속성과 일관성
이지현_춤비평가

스텝업에서 보이는 새로운 회로

스텝업 프로젝트는 국립현대무용단(이하 국현)의 외부 안무가를 초빙해 국현의 레퍼토리로 기능하게 하는데 가장 큰 방점을 둔다. 그래서 예술감독의 신작이나 레퍼토리와 구분하여 ‘픽업스테이지’로 분류된다. 기존작에서 선택하여 재(再)제작과정을 거치는 이 프로젝트는 첫해인 작년에 정철인, 이은경, 배효섭까지 3개의 작품이 최종 공연되었고, 올해는 정철인, 이은경 작품과 올해 최종 선정된 이재영, 최강프로젝트 두 작품이 part 1, 2로 나뉘어 총 4작품이 무대에 올랐다(6. 7-9. / 6. 14-16. 자유소극장). 1부팀은 이재영 〈디너〉, 이은경 〈무용학시리즈 vol. 2.5: 트렌스포메이션〉, 2부팀은 정철인 〈0g〉, 최강프로젝트 〈여집합_강하게 사라지기〉. 작년에 제작된 작품과 올해의 작품이 한 무대에 오른 가장 큰 이유는 올해 응모작(39개)과 선정작(2개)이 적어 단독의 공연으로 올리기에는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이는 의외의 상황이었는데 이 의외의 상황이 어떤 결과로 드러날 지 의외의 기대를 주었다.






이재영 〈디너〉 ⓒ목진우/국립현대무용단




 1부의 이재영 〈디너〉는 과정에서는 가장 큰 발전을 기대하게 한 작품이다. 기존의 이재영의 작품 스타일과 많이 달랐으며, 춤작업을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통찰이 포함되어 있어 안무가로서 깊어져가고 있다는 기대를 하게 하였다. 자신이 해왔던 방식을 벗어난다는 건, 예술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양날의 칼이다. 하나의 스타일로 예술적 경지를 확보했다 하더라도 세세하게 그 과정들은 자신의 형식을 벗어나려는 갈등이 존재하며, 기존의 쌓아왔던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찾는다는 것의 창작적 갈등은 만만치 않은 것이 된다. 하지만 젊은 안무가들은 초기 작품들이 매우 독창적인 안무가 빼고는 과거의 방식을 답습한 내용이 많으므로, 새로운 방식을 선택할 때 그것은 안무가로서의 자의식이 생겼고 창의적 도전을 할 수 있는 힘의 증표로 보여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디너〉는 제목과 더불어 이 ‘먹방’의 시대에 밥을 짓는 과정을 기본 틀로 하고 있어 마치 먹는 것에 대한 것인 줄 착각하게 하지만 전혀 아니다. 이 작품의 출발은 적어도 쓸모없는 것이 어떻게 마지막에 가서야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 쓸모 있는 것으로 되는가에 대한 체험을 하게 하는 것이었다. 전기밥솥의 AI스러운 멘트와 타이머는 결과 정해진 시간의 틀을 제공함으로써 이 작품의 자연스러운 틀이 된다. 마치 주부가 밥을 불에 올리고 그 시간 안에 반찬을 준비하여, 밥이 다 지어지면 상을 차리고 식사를 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이 작품은 밥이 지어지는 동안 마치 아이의 장난감 방에서 반찬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동화의 세계로 우리를 데려간다.






이재영 〈디너〉 ⓒ목진우/국립현대무용단




김소영, 안지형과 이재영은 기타연주와 그 녹음으로 음악을 만들어 놓고 책상, 책꽂이, 행거, 쓰레기통 등 일상의 집기들이 둘러싼 곳에서 그것들과 관계를 시작한다. 곳곳에 있던 양배추와 야채들은 어느새 그들의 손에 들어오게 되고 그들은 그것을 썰면서 자연스럽게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해나간다. 메커니컬한 사물들의 연결과 그것을 작동시키거나 함께 작업하는 퍼포머의 행위는 마치 ‘사물과 함께 춤’(dance with stuff)을 보는 것처럼 이 시대 우리의 일면이다. 우리는 이젠 사물 없이 살 수 없고, 이 획일화된 ‘공산품’들은 생활 깊숙이 들어와 이젠 우리 몸의 일부가 되어 있다. 이 현상을 자연스럽게 〈디너〉는 드러내 준다. 연결이 부드러울 만큼 충분히 연습되고 계획되어 보이고 그 안에 위트가 동동 떠있는 것은 이 작품의 미덕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의 말미에 우리가 충족받게 되는 것은 안무자가 애초에 다가서려고 했던, 쓸모없는 것들과 어떤 행위를 통해 쓸모 있는 것이 드러나게 되는 터 일텐데 바로 그 종결에서의 종합되는 깨달음이 약했다는 것은 이 작품에서 조금 더 욕심내고 싶은 부분이다. 이 작품은 동화같이 보여도 상당히 예민하고 고급스러운 작품의 틀을 갖고 있다. 잘 다듬고 공을 들이면 매우 세련된 작품이 발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은경 〈무용학시리즈 vol. 2.5: 트렌스포메이션〉 ⓒ목진우/국립현대무용단




 1부의 이은경 〈무용학시리즈 vol. 2.5: 트렌스포메이션〉은 작년 프로젝트와 올해 그 사이에 이은경의 임신 그리고 무용수의 변화 등 많은 구성요소들의 변화가 있었다. 여성 안무가나 무용수의 임신은 우리가 창작과정에서 밥을 먹고 일상을 살면서 하는 것처럼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 큰 변화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물론 당사자인 안무가가 가장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일 테지만 이 사실을 모르고 공연을 보러갔던 나 역시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퍼포머의 자연스러운 이런 상태는 작품에 자연스럽게 반영되기도 하고 다뤄질 수도 있는 공연의 자연스러운 요소이다. 특히 이은경의 이 작품은 무용수들의 춤에 얽힌 이야기를 쏟아내어 꾸미는 작품으로 생생한 활어들을 보는 그런 맛이 있는 공연성이 강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번 〈무용학시리즈 vol. 2.5: 트렌스포메이션〉에선 안무가 신상의 이런 변화가 주제인 ‘무용학’과 ‘트랜스포메이션’과 아무런 관계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작품을 본 후 마음은 허전하고 답답했으며 조금 멍해졌다. 이은경의 ‘무용학시리즈’의 생생함과 현장성과 활어의 생동감은 이번엔 많이 사라져버렸다. 이 작품이 그것들을 잃으면 무엇으로 자신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정철인 〈0g〉 ⓒ목진우/국립현대무용단




 2부팀은 정철인 〈0g〉는 작년에 이어 한번 더 작품을 발전시킬 기회를 가졌다. ‘쾅프로그램의 최태현(기타·보컬), 김영훈(드럼)이 라이브 연주를 해서 현장성을 강화시켰고 밴드와의 협업의 느낌을 짙게 하였다. 이 부분은 이 작품에서 마치 독백을 하다가 보다 설득력있는 대화를 보여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냈으며 적어도 이들이 내뿜는 ‘검은색 열정’의 묘한 매력을 아낌없이 발산하여 보여주었다. 시종일관 무용수들의 에너지가 꽉꽉 차는 이 작품의 특성이 작품의 배열을 정돈함으로 해서 조금은 숨 쉴 틈이 생겼다. 이 작품의 숨 쉴 틈없는 성실함의 촘촘함은 깊이로 가거나 증폭되기 보다는 균등하고 수평적이다. 열정의 크기는 큰데 그 열정을 붙잡고 있는 ‘검은’ 그림자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스텝업의 취지인 작품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무엇일까? 예술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높인다는 것은 무엇일까? 결과 관객과 미적으로 무엇을 나눌 것인지를 정돈하고, 그 미적 배열을 점검하면서, 마무리가 거칠 었던 부분은 잘 다듬어 선세하면서도 묵직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닐는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택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아닐는지….
 그럼에도 정철인의 움직임에 대한 집요함과 낙하와 균형감에 대한 물리적 관심은 앞으로를 기대하게 한다.






최강프로젝트 〈여집합_강하게 사라지기〉 ⓒ목진우/국립현대무용단




 최강프로젝트 〈여집합_강하게 사라지기〉는 현장적 수행성이 매우 강한 작품이다. 움직임은 그들에겐 중심이지만 발단이고 수행의 시초일 뿐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건 작품으로서 완결되지 않고 관객에게 도착해서야 의미생성이 일어난다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이지점이 이 작품을 관객과 함께 생성해나가는 작품으로 카메라의 등장과 그것의 관람은 오로지 관객을 향해있다. 그들의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무표정한 움직임은 이제 움직임이 춤예술에서 중심이 아님을 선언하는듯하다.
 볼품없고 미적인 고려가 전혀 되지 않은 움직임은 하나씩 친구들을 데려오기 시작한다. 카메라와 카메라를 든 퍼포머, 시간의 차이를 갖고 드러나는 모니터속의 움직임과 자잘한 도구들… 그리고 그 두 가지 차원을 동시에 보게 되는 관객까지 자연스럽게 그 아무 것도 아닌 움직임에 초대되는 친구들이다. 교집합에만 관심을 갖고 그 외의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면 제목 ‘여집합’이 갖는 의미는 크다. 교집합이 주로 눈과 귀로 보여주려는 것만을 보는데 쓰였다면, 여집합을 본다는 것은 관객의 기존의 습관을 흔들고, 교집합 아닌 것에 시선을 돌리게 하고는 거기에 또 하나의 현실을 만들어 무대에서 벌어지는 것에 대해 그것의 참과 거짓을 물어 혼돈 시킨다. 그 사이에 감각은 혼란스럽고 머리는 새로운 생각의 회로를 구성하느라 바쁘다.
 이 작품이 매우 간단하지만 이전의 작품들과 전혀 다른 이유는 춤이 지각되는 것에 대한 질문을 지속적으로 놓치지 않고 던지는 것에 있고 하나의 작품으로 완결되었다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 그리고 관객에게 그 미적 체험은 매우 짜여진 회로를 벗어나는 매우 시원하고 새로운 지점을 알려주는 그런 것이었다.




최강프로젝트 〈여집합_강하게 사라지기〉 ⓒ목진우/국립현대무용단




 스텝업 프로젝트가 두 번째를 맞으면서 이재영과 최강프로젝트 작품을 통해 확인되는 것은 국현이 국내 컨템퍼러리 창작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며, 그에 맞게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월등히 길고, 상대적으로 풍족한 6개월이라는 제작기간과 창작에 대한 물적 자원 제공은 단지 국립이기 때문에 당연한 어떤 것이 아니라, 국립의 ‘역할’을 위한 것임을 국현 안팎에서 모두가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국현 스타일을 만드는 것과 무관할 뿐 아니라, 예술감독의 성향으로부터도 독립된 영역이다. 내적으로는 이전의 경향으로부터는 충족 받지 못했던 한국현대춤의 새로운 경향을 탐색하게 하고 그것의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일과 한발 더 나아가 세금을 내는 시민과 국민에게 그렇게 공들인 현대춤을 만나게 하고 새로운 체험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매우 적은 수의 응모작이었지만, 올해 선정된 작품들은 꽤 값진 질문을 던졌다.


깊은 실망감 남긴 〈쌍쌍〉과 픽업스테이지

마르코스 모라우와 그가 이끄는 ‘라 베로날’ 무용단은 스페인에 기반을 두고 세계 메이저 무대에서 꽤나 자주 초대되는 무용단이다. 이번에는 마르코스가 내한하여 우리 댄서들과 함께 〈쌍쌍〉이라는 작품을 약 8주간 준비해서 기존 레퍼토리인 〈코바〉와 두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7. 19-21. CJ토월극장). 아이디어, 컨셉, 무대연출을 마르코스 모라우가, 안무를 마르코스와 〈코바〉의 안무자이자 출연자인 로레나 노갈, 마리나 로드리게스가 함께 맡았으며, 13명의 우리 무용수와 무대디자인 여신동, 의상디자인 최인숙이 한 팀으로 창작을 하였다.






국립현대무용단 〈쌍쌍〉 ⓒAiden Hwang




 이 작품을 보면서 최근에 해외 안무가에게 국립무용단 급에서 작품을 의뢰한 경우로 2015년부터 한불이 함께 준비한 국립무용단의 〈시간의 나이〉를 떠올리게 한다. 조세 몽탈보를 초대하여 한국을 주제로 한 안무를 맡기고, 그가 즐겨 사용하는 무대의 영상을 프랑스 팀에게 맡겼으며, 그 외에서는 모두 한국적 자원으로 ‘공동작업’을 한 예이다. 물론 1년 넘는 제작과정이 걸렸다. 그래서 이번 국현의 픽업스테이지 해외안무가 초빙 프로젝트에서 안무가를 선정하고 그에게 대부분을 맡기는 것과는 다른 점이 많지만 이번 작품이 한국을 주제로 했다는 것 때문인지 LG아트센터가 피나 바우쉬를 초청해 만든 〈러프 컷〉도 생각나게 한다.
 유명 해외안무가가 우리의 상황을 만나 예술적으로 결과물을 내놓는 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우리의 흥미를 끈다. 안무가들도 세계의 각 나라나 도시에 관심을 갖고 시리즈를 창작을 하고 싶은 욕구와 자국의 자원을 갖고 좋아하는 국제적 수준의 안무가에게 작품을 제작하고자 하는 욕구는 매우 잘 맞아 떨어진다. 하지만 우리 관객은 〈러프 컷〉에서도, 〈시간의 나이〉에서도 그리고 이번 〈쌍쌍〉에서도 먼저 느낀 것은 깊은 실망인 거 같다. 이 현상을 자신의 객관적인 모습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으로만 보기에는 그리 단순치 않아 보인다. 한 나라의 관객과 애호가가 자신을 소재한 작품을 만날 때 미리 전제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그것을 맡은 예술가에 대한 애정과 신뢰이다. 하지만 무슨 관광상품이 아닌 바에야 예술가들은 우리를 즐겁게만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의 예술가적 진실성은 새로 부딪힌 색다른 문화에 솔직하게 반응하고 그것을 자신의 스타일대로 무대에 올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제작국인 우리 관객에게 애정과 신뢰도 없는 상태에서는 여러 가지로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게 된다.






국립현대무용단 〈쌍쌍〉 ⓒAiden Hwang




 마르코스는 한복을 우리 디자이너와 함께 재디자인해서 입히고, 흰부채를 들게 하고 단을 쌓아 그 위에 원으로 무용수들을 세우고, 그것을 조금씩 돌게 해서 마치 무슨 인형이 위에 있는 것 같은 그림을 연출했으며, 거울을 들고. 그것으로 무용수 자신과 관객을 향해 빛을 반사시키는 사건을 연출했다.
 하체를 거의 쓰지 않는 전반부의 장면은 흰 의상과 빛의 연출로 시각적 충족을 주는가 싶더니 이내 그것을 향할 곳을 찾지 못한 채 미궁으로 빠지게 했다. 단이 해체되고 무용수들이 아래로 내려온 후에도 우리의 자화상이라 보여주는 낯선 동작과 잔 발걸음은 이 안무가가 아시아에서 우리와 일본, 중국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은 그 ‘난독증’에 걸린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만들었다. 겨우 8주라는 짧은 연습시간에 낯선 무용수들을 만나 그가 잘한다는 새로운 움직임 방식으로 움직임을 고안하고, 훈련하고 표현하게 하는 것, 그것은 무리였다. 형식적으로도 그런데 그것에 한국의 모습을 보고 그것을 담으려 한다는 것은 그의 기획이 유럽에서는 매우 잘 펼쳐졌으나 보다 생소한 우리 문화에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 역시 2010년부터 〈러시아〉, 〈모스크바〉, 2013 〈시에나〉, 2014 〈일본-코쿠〉 〈포틀랜드〉, 2017 〈툰드라〉 등 도시와 이국에 대한 작품을 꾸준히 올려 많은 신선한 충족감 특히 시각적으로 그것을 잘 드러내어 인기가 있지만 이번 〈쌍쌍〉은 여러 가지 쫓기는 가운데 일본 냄새가 짙은 작품을 만드는 큰 실수를 했다.




국립현대무용단 〈쌍쌍〉 ⓒAiden Hwang




 국현의 해외안무가 초빙 프로젝트는 2011년 조엘 부비에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채 지속되고 있다. 적지 않은 공을 들여 제작되는 이 프로젝트는 자기 작품 하기도 바쁜 예술감독들이 번번히 국제적 감각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자리였고, 뿐만 아니라 국현 내 국제적 레벨의 안무가 선정 능력, 제작능력의 빈곤과 허점을 드러내 관객들은 상대적으로 더 불편해했고, 한국 안무가들을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게 만들었다. 작은 일이 아님에도 이 프로젝트가 매번 소홀하게 다뤄지는 이유는 능력의 문제도 있지만 지금의 체제에서 예술감독이 자기의 신작에 비중을 두어야 예술가 정체성만을 갖고 있는 현실을 본다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 지점이 바로 적지 않은 예산이 해외안무가에게 흘러가고, 국내 관객은 불만족스럽게 되는 이 프로젝트 시스템의 단면을 보여준다.
 한불 수교 130주년 때, 파리의 국립무용극장인 샤이오의 예술감독들은 제작과정은 말할 것도 없고,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우리 작품을 선정하는데 예민했다. 그 이유를 그들에게 물었고, 공연을 보러 파리에 가서 확인한 건 그 극장이 1948년도 증축을 하여 국립무용극장으로 재개관될 때 명패에 커다랗게 이 극장은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에 따라 이 나라의 People을 위한 것임을 천명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예술감독의 미션이었고, 그 미션의 성공여부는 관객의 반응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 선정은 심하게 말하면 그 나라의 시민에게 보여줄 것을 보여줬느냐에 대한 그들의 문화적 도덕성을 가늠하는 자리이기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예술감독에게 신작기회를 주고 예술감독이 바뀔 때마다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하는 개인성 짙은 무용단에서 벗어나 국립으로서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미션을 위해 지속성과 일관성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큰 질문이 남는다.

이지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춤비평가로 등단했다. 2011년 한국춤비평가협회의 정회원이 되었으며, 최근 비평집 『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 왕성한 비평 작업과 함께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강사, 서울무용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9. 08.
사진제공_목진우, Aiden Hwang (국립현대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