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故 한상근 선생 추모 특집
상근이 형
이종호

상근이형!
늘 부르던 이름인데 생사의 갈림길은 산자와 죽은 자의 소통이 없으니 슬프군요.
세상 무대에 만족을 못하셨습니까.
세상 무대가 그리도 좁아 하늘 무대에 작품 만들러 가셨습니까.
너무 욕심을 부리신 건 아닌지요
형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린 20대 초반의 앳된 청년이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공연 단원을 뽑는 신당동에 있는 옛 구청자리였지요.
하얀 바지저고리를 입고 난로 주변에서 익숙지 않던 한국무용 동작을 하며 강렬하게 빛나던 눈빛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그 눈빛을 지금 믿을 수 없는 형의 영정 사진에서 보게 되는군요.
문일지 선생님께서 형의 영정 사진을 손으로 쓰다듬고 가시는 모습을 뒷전에서 보았습니다.
형과 서울시립무용단 입단동기로 인연을 맺고 삼십 여년이 넘는 세월이 흘렸네요. 그동안 쉽지 않은 무용 세계를 지나오며 무용계를 떠나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형에게 지금까지 표현한 적은 없지만 제가 힘들 때 형을 떠올리며 많은 힘을 얻었고, 학생들에게 무대의 열정을 가르칠 때 형의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형!
형은 모를 겁니다. 연습할 때 특히 소품을 갖고 연습할 땐 형 주변에 가는 것을 모두 꺼려했지요. 어떤 연습이건 연습만 시작했다 하면 형은 미친 사람이었으니까요. 검무를 할 때 검을 휘두르다가 검이 형 손을 빠져나가 천정에 부르르 떨며 칼이 꽂힐 때 주변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바라춤을 할 때 바라를 넘기면서 여자단원의 이마에 피가 흐르던 일을 기억하시는지요. 북춤을 할 때 체머리를 흔들며 땀을 사방으로 분사시키는 열정을 따라하다가 머리가 어지러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우린 포기 했었지요.
형! 그 열정을 이제 다시 보여주지 않으시려는지요.
우린 연습이 끝나고 술자리도 늘 같이 했습니다. 예술이 뭔지 끝도 없는 토론으로 밤을 지새웠지요. 모든 것이 어려웠던 시절 한 잔의 술은 우리의 끈끈한 우정을 이어주는 좋은 벗이었습니다.

 

 



형!
수지가 벌써 스물여덟이라 네요. 수지가 겨우 뛰어다닐 때 쯤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분장실에서 지하로 신발을 떨어뜨리면 형은 그것을 주워다 주고 수지는 재미있어하며 형을 끝도 없이 오르내리게 하고 땀을 뻘뻘 흘리게 했던 장난꾸러기 수지가 형이 떠난 자리 눈물로 지키며 있습니다.
지금 수지가 찾아도, 형수가 찾아도, 형을 오래했던 모든 이들이 형을 찾아도 형은 없네요. 공연장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형이 서있던 자리에는 이제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본 추모사는 타 매체에도 게재될 수 있음을 전제로 기고 받았음을 밝혀둔다 - 편집자

​이종호
​국립국악원무용단 안무자, 서울시립무용단 지도단원 역임
2013. 05.
사진제공_이종호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