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레지나 〈달구벌 백희(百戱)〉
과거 연희(춤)를 보는 방법적 시선
권옥희_춤비평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완전히 자의적인 직관은 전통연희의 춤과 노래, 놀이와 연극의 역사 그리고 우리 춤의 특별한 존재이유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선물하기도 한다. 이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활력을 불어넣는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안무자 오레지나(대구가톨릭대 교수)가 〈달구벌 백희(百戱)〉(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9월 8일)로 전통연희의 역사를 우리 춤으로 되짚어보는 작업을 무대에 올렸다. 짐작컨대 그녀는 우리 춤 교육에 대한 꿈을 전통연희의 역사에서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꿈꾸고 있는 그것은 춤 교육자이자 안무자인 그녀의 세계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기에.
 〈달구벌 백희〉. 달구벌은 대구의 옛 지명, 백희(百戱)는 고대의 전통 연희로 즉 악가무희(樂歌舞戱), 음악과 노래 춤과 연극 등 공연예술을 총칭하는 말로 한자 뜻 그대로 해석하면 전통연희다. 《삼국사기》 악지 편에 수록되어 있는 최치원의 시 〈향악잡영오수〉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 기예를 춤으로 풀었다. 다섯 가지 기예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연희로 금환(공, 방울춤), 월전(풍자 해학춤), 대면(액막이 춤), 속독(난새춤), 산예(사자춤). 춤을 본다.






오레지나 〈달구벌 백희(百戱)〉 속독-난새춤




 춤을 돋보이기 위해 조명이나 의상, 소품의 형태와 색을 결정할 때 우리는 그것을 미학적이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무대에서 재주를 부린다. 이를테면 4장의 ‘속독-난새춤’. 승무고깔 꼭지에 깃털을 꽂았다. 고깔에 깃털을 단 이 모자는 무엇일까. 색의 극치인 붉은 색과 원초의 단순함으로 모든 것을 담아내는 청색 깃털을 단 모자는 우리를 승무와 농악무 이전 춤의 세계로 훅 데려간다. 흰색 의상의 간결한 디자인과 몇 가닥의 붉고 푸른색 끈으로 남아 있는 옷고름은 춤을 따라 흩날리며 춤을 아름답게 만든다. 고깔에 단 빨강과 파랑색의 깃털. 농악무의 고깔에 탐스러운 꽃으로 환하게 앉았다가 마음을 내려놓듯 승무고깔에서 가만히 내려 온 것은 아닐까. 다섯 명의 춤이 아홉 그리고 열둘로 춤이 더해지면서 악기 소리도 더해진다. 북 가락에 징이 이어 꽹과리가 따라 들어온다.
 음악이 화려해지면서 춤에 힘이 실린다. 손을 뒤로 하고 고개 짓을 하는 춤에 해학이 읽힌다. 장단을 춤 호흡으로 절제하며 안아 들이듯 추는 춤, 놀이에 흥이 더해지는 춤의 기교가 돋보였다. 징과 꽹과리 소리가 빠지면서 북장단이 홀로 남아 춤을 오롯이 받쳐낸다. 고깔 쓴 고개만 까닥이는 춤짓. 빠르게 몰아치는 장단에 어느덧 중앙에 모여 선 무용수들을 비추는 한 줄기 빛. 연희의 춤 역사를 상상하며 따라다닌 장이었다.
 푹 익은, 세련된 춤이 돋보이는 연출이었다.




오레지나 〈달구벌 백희(百戱)〉 금환-공놀이




 1장의 금환-공놀이. “달은 돌고 별은 떠다녀 눈 안에 가득하네, 의료의 재주인들 이보다 나으랴, 동해 바다 파도 소리 잠잠하겠네.” 최치원의 글이 참으로 아름답다.
 푸른색 조명아래 둥글게 모여 앉은 군무진. 종이로 만든 달 모양의 둥근 공. 민소매의 흰색의상과 춤동작이 간결하다. 접은 부채처럼 납작한 종이가 춤을 추는 사이 환하게 불이 켜지는, 별을 상징하는 공을 움직임들이 이채롭다. 반면 한 명을 따라 도미노처럼 따라 움직인다거나 놀이하듯 공을 위로 들어 돌리고 다시 처음으로 되돌려 놓는 (공)놀이로 푼 춤은 다소 긴장감이 떨어졌다. 2장의 ‘월전-풍자 해학춤’. 흰색 탈을 쓰고 도포를 재해석한, 앞섶을 풀어헤친 술에 취한 한량의 모습으로 객석에 난입한 무용수들. 이들 여덟 명이 무대에 올라 한바탕 춤을 추는 춤. ‘풍자와 해학’를 상징하는 탈은 좋은 장치였으나, 무대에서 춤으로 심화되지 않았다. 3장의 대면-액막이 춤. 사슴뿔을 닮은 높은 금색 관은 춤을 추기에 불안하게 높았고, 술이 달린 채찍은 에너지를 얻지 못하고 흔들렸다. 오히려 이들의 춤이 군무진의 좋은 춤이 가렸다. “황금색 가면”을 쓰고 “귀신을 부리는 채찍”으로 귀신을 부리듯 신기가 실린 춤이었어야. 아쉬운 장이었다.




오레지나 〈달구벌 백희(百戱)〉 월전-풍자 해학춤


오레지나 〈달구벌 백희(百戱)〉 대면-액막이 춤




 산예(사자춤), 사자 갈기를 의미하는 베이지색의 의상을 입은 일곱 명이 뛰고 구르고 회전한다. “멀고 먼 사막을 건너 만리길을 오느라고 털옷은 다 찢어지고 먼지를 뒤집어썼네”라는 싯구를 그대로 풀어낸 정직한 춤이다. 욕심을 더하자면 왜 우리 땅에서 보지 못하는 사자(춤)를 보여줬을까? 에 대한 유추와 그에 따른 춤 혹은 사자가 “머리를 흔들고 꼬리를 치며 인덕을 길들이는” 것에 대한 상상력이 발현되는 춤이었으면 하는 바람.
 춤의 정직함에 대해 말하자면, 춤의 역사에 대해 처음도 끝도 알 수 없는 관념이 여전히 유지되려는 자리를 다시 차지하고 들어오는 춤. 그 순간 춤이 사라진 곳에서 다시 시작되는 춤은 이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레지나 〈달구벌 백희(百戱)〉 산예(사자춤)




 오레지나의 〈달구벌 백희〉. 다섯 가지 기예를 비교적 춤으로 잘 풀어낸 무대였다. 하지만 춤은 춤의 언어가 정직하게 도달할 수 있는 표현의 한계에서부터 시작한다. 춤은 순간마다 멈추는 곳에서 순간마다 초월해야 한다. 흥미로웠던 4장 ‘속독-난새춤’은 전통연희를 거슬러 올라 현재 춤을 쓰고자 하는데 있어 하나의 모범이다.
 색을 덜어낸 의상의 간결한 선과 조명과 음악에서 변화와 발전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무엇보다 무용수들의 춤이 좋아졌다. 춤적 자산이 쌓이면서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 명철한 안무자가 시간과 초읽기를 할 때, 어느 시간의 공격에도 분절되지 않는 정열과 노력과 그 끝없음보다 더 깊은 것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 대구, 부산 공연을 많이 보고 있다.​ ​ 

2019.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