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박은화 〈Tuning-xvi, 꽃〉
자연을 통해 그려낸 자아의 현대적 지각
권옥희_춤비평가

 ‘꽃’, 강력하고 아름다웠다.
 빛을 반조하는 꽃들이 빛을 뿌리며 피어날 때, 무대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의자(자아). 산산 조각난 그 자리에 만다라가 환했다.
 여느 소통 방법의 한계를 초월하는 상징체계가 들어 있는 만다라를 단순하게 어떤 의미나 정의로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박은화(부산대교수)는 〈Tuning-xvi, 꽃〉(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10월24일)으로, 자기라고 믿었던 것을 비우고 순수하고 절대적인 어떤 것을 영접하는 자리 굿으로 풀어냈다. 작품을 본다.




박은화 〈Tuning-xvi, 꽃〉 ⓒ박병민




 무대 위에 흰색의 원(圓) 공간, 그 가운데 의자가 놓여있다. 의자에 앉은 박은화가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주문을 외는 듯, 소리를 낸다. 박은화가 몸을 일으키자 매달려 올라가 공중에 걸리는 의자. 가느다란 줄이 의자를 붙들고 있는 공간 아래로 스미듯 들어오는 무용수들. 그들이 쓰고 있는 검정색 고깔, 불두화를 닮았다. 정적 속에 무대를 스쳐 밟는 소리, 빛처럼 피어나는 무대, 검은 불두화(고깔)를 머리에 이고 추는 춤이 빛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흡수하며 꽃을 피우는 듯하다. 모든 삶이 죽음을 흡수하여 그렇게 성장하듯이, 또는 모든 죽음이 삶을 끌어안고 그렇게 만발하듯이.
 어쩌면 죽음 속의 삶, 또는 살아 있는 죽음이 훨씬 더 활달하게 개화할 수 있는 것은 자아의 깨어짐. 말하자면 논리적 선회에 의지하는 교훈적 경구가 아니라 춤의 변용에 의해, 자아가 마련해주는 사고의 환경 속에서 자아가 깨지는 것과 같은 본질적인 자기 변화를 그리는 춤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은화 〈Tuning-xvi, 꽃〉 ⓒ박병민




 머리와 양손에 고깔을 들고 춤을 추는 무용수들이 끊임없이 이미지-환상을 만들어내면서 모든 현실적 시간을 토막 낸다. 춤의 미감이 좋다. 박은화의 걸음을 따라 무대 바닥에 일렁일렁 꽃이 피어나는가 하면 어느덧 길이 생기고 공중에 떠 있던 의자는 흔적 없이 사라진다. 한 걸음, 길 위에 서 있던 박은화가 어둠속으로 발을 내딛는다. 뒤이어 길에 들어서는 무용수의 또 한 걸음. 그들이 어디를 가는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길은 다시 원 판이 된다. 원 가장자리에서 양팔을 위로 들어 모은 뒤 무릎, 팔꿈치, 이마를 바닥에 댄 뒤 팔을 모아 길게 엎드리는 오체투지. 꽃을 그리듯 차례로 여덟 명이 원 가운데를 향해 엎드린다. 만다라가 핀다. 만다라. 지상에 실현되는 천계의 질서를 안무자는 세계의 창조, 그 중심과 축의 상징을 흰색 원의 형태로, 5개의 점을 여덟 명의 무용수의 오체투지로 해석해낸다.



박은화 〈Tuning-xvi, 꽃〉 ⓒ박병민




 박은화가 들고 나온 붉은 보자기. 색이 보석처럼 붉다. 보자기 안에 담아온 나뭇조각을 맞춘다. (자아)의자다. 앉아본다. 부서진다. 허약한 자아다. 흩어진 조각으로 의자(자아)를 만드는 과정이 수양을 하고 있는 것이라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의자(자아)의 형태를 갖췄다고 그것(자아)이 확대되어 아상을 견뎌낼 만큼 세계와의 연대를 이룬 것도 아닌 것이다.
 네 명의 춤으로 시작되는 장. 오체의 조합은 만다라의 중심 주위를 회전하는 네 개의 기점으로 시간과 공간속에서 스스로 회전하는 자아의 상징으로 읽힌다. 만다라의 중심과 네 개의 기점으로 이루어지는 다섯 개의 점은 바닥에 뜨는 다섯 개 꼭지를 가진 별 모양의 영상으로, 인체의 다섯 부위가 바닥에 닫는 오체투지와 시바신의 다섯 개의 얼굴에 각기 대응하는 적, 흑, 백, 녹, 노랑의 다섯 가지 색의 불두화 고깔로 풀어냈다.
 춤을 배열하고 가다듬은 작업에서 안무자의 깊은 공부를 본다.






박은화 〈Tuning-xvi, 꽃〉 ⓒ박병민




 검정고깔을 쓴 박은화, 흰색 원판 안에 들어섰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춤이 필요한가. 민소매의 붉은색 의상을 입은 안선희와 조현배의 춤인 듯, 호흡인 듯 가슴을 젖히는 동작. 다시 박은화가 흰색의 긴 겉옷에, 흰색고깔을 쓰고 흰색 원판 무대의 가장자리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숨(호흡)으로 움직임을 조절한다. 정적 속, 맨발로 무대를 스치며 걷는 소리, 그녀를 보고 서 있는 두 무용수. 자아를 본래의 위치로 복원해줄 춤 언어? 추는 이들만이 알 것이다.
 일어나고 스러지는 마음이 모여 꽃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풀어놓는 영상이 춤과 함께 무대를 수놓는다. 무용수가 들고 추는 고깔 꽃 무더기가 뭉글뭉글 무대에 인다. 다섯 가지 색의 꽃이 서로 섞였다가 자신의 본래 색을 찾아들고 추는 춤. 단순한 춤동작의 반복이 길고 지루해질 때, 샤막 뒤의 춤은 이승의 것이 아닌 듯 아득해진다.
 명상을 부르는 종소리와 꽃 영상으로 환한 무대. 어느 사이에 공중에 내려 걸린 의자. 빛을 반조하는 꽃들이 빛을 뿌리며 피어날 때, 무대 바닥으로 툭, 떨어져 깨지는 의자. 산산조각 난 자리에 만다라가 환하다.




박은화 〈Tuning-xvi, 꽃〉 ⓒ박병민



 박은화는 여느 안무자와는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 시선으로 세상 여기저기에 평화로운 상생의 웅덩이 같은 것을 파놓고 거기 들어가 우리가 잊고 있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바쁘게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것은 거기 있지도, 있을 것 같지도 않은 것이지만 그것을 보았기에 그의 시선은 환시적이고 주술적이다.
 살아가는 것이 곧 춤이라 말하는 박은화(안무자)에게 자연은 더 넓은 생명의 예감이자 끈질긴 춤의 요소이고 삶의 변환이다. 자연을 대하는 맑은 눈이 있는 것이다. 미학적이자 삶의 성찰 또한 담아낸 더 없이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 대구, 부산 공연을 많이 보고 있다.​ ​ ​ 

2019. 11.
사진제공_박병민, 박은화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