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국악원 무용단 〈처용〉
자료 검토부터 미흡했던 진부한 나열
송성아_춤 이론, 부산대 강사

국립국악원 무용단은 고려의 대악서, 조선의 장악원, 일제강점기의 이왕직아악부를 계승한 국가공식기구로, 전통의 올바른 계승과 당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한국춤 창출에 역점을 둔다. 무용극 〈처용〉은 지난 3월 새로 부임한 신임 예술감독(박숙자)의 신작으로, 10월10일과 11일 이틀간 국악원 예악당에서 진행되었다.
 작품은 『삼국유사』 권2에 수록된 처용랑망해사조(處容郞望海寺條)를 소재로 삼고 있다. 이것은 민간 전승된 설화이며,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헌강왕(875-886) 시대가 번영과 풍요의 전성기인 동시에 쇠락의 길목임을 경고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망해사라는 사찰을 창립하게 된 내력을 밝히는 것인데, 여기서 핵심적으로 다뤄지는 것이 동해용왕의 아들 처용에 관한 것이다.
 처용 이야기의 기본 줄기는 처용이 왕을 따라 경주에 와서 관직과 아내를 얻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역신(疫神)과 아내의 통정을 목격한다. 처용은 갈등의 최정점에서 분노로 적을 척살하지 않고, 춤과 노래로 역신을 감화시켜 무릎 꿇게 한다. 그리고 물러나는 역신은 처용 형상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이 일을 계기로 나라사람들은 처용 모습을 문 앞에 붙여 벽사진경(闢邪進慶)을 기원했다는 것이다.
 무용극 〈처용〉은 역신을 천연두와 같은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악(惡)으로, 처용은 역병을 다스리는 의무주술사인 동시에 선(善)으로 상정한다. 그리고 미모의 아내에게 가야라는 이름을 새롭게 붙여 설화를 재구성한다. 작품은 처용, 역신, 가야가 주요 인물임을 암시하는 짧은 프롤로그 이후에 본격화되며, 4막으로 구성된다. 무대 뒤편에는 상수 쪽으로 갈수록 점점 높아지는 비탈이 설치되어있다. 옛 이야기를 간직한 채 쓸쓸하게 남아 있는 처용암(울산시 기념물 제4호)을 암시하는 듯하다.




국립국악원 무용단 〈처용〉 ⓒ국립국악원




 제1막은 ‘음악과 춤으로 백성을 살피다’란 표제를 갖는 발단부로, 환영식과 혼례식이 주를 이룬다. 화려한 복식의 왕이 관직을 상징하는 붉은 띠를 처용에게 하사한다. 노란나비와 꽃잎의 휘날리는 영상이 나오고, 연화대, 검무, 무애무를 연상시키는 춤들이 대규모의 대형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어 신라시대 길쌈놀이에서 유래한 회소곡(會蘇曲)을 재현하는데, 무대 중앙에 큰 기둥을 세우고, 여러 가닥의 천을 엮어가며 회무(回舞)한다.
 춤의 향연은 혼례 장면에서도 계속된다. 어여쁘게 지저기는 새소리와 함께 청소하거나, 항아리나 물지게를 든 사람들이 등장하고, 이리저리 대형을 지어가며 춤을 춘다. 말미에 신혼부부의 초야를 몰래 훔쳐보던 구경꾼들이 처용과 함께 무대에서 나가고, 어둠 속에서 꽃이 피는 영상이 나온다.




국립국악원 무용단 〈처용〉 ⓒ국립국악원




 제2막은 ‘꽃보다 고운 님이여’란 표제를 가지며, 처용과 역신의 대립이 본격화되는 전개부이다. 타악기 소리에 맞춰 처용과 머리에 깃털을 꽂은 사내들이 춤을 춘다. 화랑을 연상시키는 군무가 마무리되면, 버나(대접 돌리기)와 같은 여러 기예가 펼쳐지고, 놀이판의 끝자락에 역신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역병에 걸린 양 하나둘 쓰러지고, 붉고 차가운 시각이미지가 허공을 떠돈다. 역신의 퇴장 이후에 처용이 재등장하고, 쓰러진 사람들과 함께 살풀이를 하듯 한삼춤을 춘다.
 이처럼 처용과 역신의 대립양상을 순차적으로 보여준 다음, 처용과 가야의 이인무가 전개된다. 밖으로 뻗어나가는 움직임은 시각적이고 유려하며 여성적이다. 그러나 두 남녀가 전달하고자 하는 표현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채기 쉽지 않다.




  

국립국악원 무용단 〈처용〉 ⓒ국립국악원




 제3막은 갈등이 극대화된 절정부로, ‘용서와 관용으로 감화되다’란 표제를 달고 있다. 무대 앞 샤막(shark-tooth curtain)이 내려오면, 역신은 처용의 옷을 훔쳐 입고 가야와 동침한다. 현장을 목도한 처용은 펀치를 날리고, 역신 또한 맞받아친다. 이 같은 싸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화 같은 방법을 사용하는데, 주먹이 나가는 방향에 따라 레이저 광선 같은 영상을 첨가하는 것이다. 한동안 주먹다짐이 오가다가 역신이 물러간다. 내려와 있던 샤막이 올라가고, 처용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홀로 남은 가야는 그의 옷을 들고 흐느낀다.




국립국악원 무용단 〈처용〉 ⓒ국립국악원




 제4막은 대단원에 해당하고, ‘역병이 지나간 자리’란 표제를 갖는다. 처용을 찾아 헤매던 가야는 바닷가 마을에 당도한다. 핏빛의 역신이 또 다시 등장하고, 그녀와 마을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병자들의 무리 속에서 가야가 무언가를 그리자, 무대 전면에 처용형상이 떠오른다. 이어 처용암을 암시하는 비탈 위에 흰옷을 입은 처용이 등장한다. 가야는 현행 처용무의 몇몇 동작(垂揚手五方舞)을 천천히 반복하는 그를 향해 걸어가고, 사람들은 그녀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본다.






국립국악원 무용단 〈처용〉 ⓒ국립국악원




 에필로그는 학연화대처용합설(鶴蓮花臺處容合設)로 시작된다. 궁중 굿인 나례(儺禮)에서 행했던 것으로, 학무, 연화대무, 오방처용무를 합쳐놓은 것이다. 등장(平進), 창사(唱詞), 인사(前拜, 相拜, 相背), 사방작대무(四方作隊舞), 좌선회무(左旋回舞)를 생략하여 약식으로 진행하며, 한배(tempo)를 빨리하여 흥겨움을 강조한다. 이후 현대적 복장을 한 처용, 역신, 가야가 조우하는데, 다소간 생경한 끝맺음이다.

 무용극 〈처용〉에서 갈등은 선악의 대립으로 단순 묘사되며, 시간의 경과에 따라 순차적으로 나열된다. 처용과 역신 사이에 있는 가야 역시 갈등하는 입체적 인물이 아니라, 아름다운 희생양으로 등장한다. 더욱이 갈등 해소의 핵심 요체인 처용 가무를 너무도 빈곤한 펀치 게임으로 연출한다. 이 점에서 작품은 새로울 것이 없는 옛 이야기의 진부한 나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작품에서 이야기 전개는 프롬프터를 통해 소개된 표제, 마임조의 연기, 의상이나 소품 따위에 의존한다. 이를 통해 상황이 설정되면, 군무의 버라이어티한 나열에 주력한다. 화려한 볼거리에서 산출되는 움직임은 우아하고 여성적이다. 그러나 톤이 일정하고, 표현이 다채롭지 못하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단순한 이야기 구조, 화려한 볼거리의 제공, 우미(優美)한 움직임의 강조는 한국적 발레를 지향한 초기 국립무용단의 전형적 방식이다. 이 점에서 작품은 지난 시대의 낡은 방법론을 안일하게 답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팸플릿 인사말에서 작가는 무용극 〈처용〉을 통해 선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를 성찰하고, 처용이 실천한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고 밝힌다. 그런데 작품을 통해 핵심적으로 감지된 이미지는 관용의 처용도, 사악한 역신도, 갈등하는 가야도 아닌, 화려한 춤의 퍼레이드이다. 이로써 작품 의미에 대한 해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고, 주제 파악에도 어려움이 있다.




국립국악원 무용단 〈처용〉 ⓒ국립국악원




 천 년이 넘는 세월을 한국인의 삶과 더불어 전승된 처용무는 궁중 정재의 하나로 전승되고 있다. 어떤 경로로 울산 인근의 향토춤이 궁중으로 유입되었는지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고려시대 궁중 나례의 춤으로 편입되었고, 조선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전해지는 정재 처용무 역시 나례 처용무를 복원한 것이다.
 그런데 이 춤은 연산군과 같은 왕, 중앙 관료나 지방 선비, 교방청 여기(女妓)들에 의해서도 연희되었으며, 양식에 있어서도 일인무, 이인무, 오인무, 학연화대처용합설로 다양하다. 뿐만 아니라, 동해안 지역 광인굿과 진주 오광대놀이 두 번째 과장(오문둥놀음)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으며, 민간풍습으로 세화(歲畫)와 제웅치기가 있다.
 처용은 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어려울 만큼 끈질기고 집요한 전승력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것에 대한 새로운 해석 내지는 재구성은 자료에 대한 충분한 검토 속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무용극 〈처용〉은 이러한 성실함에서 출발했는가라는 의구심을 남긴다. 국립국악원은 오랜 전통을 가진 국가공식기구로 권위와 품격을 갖는다.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보다 진중하고 치열한 다음을 기대한다.

송성아

춤이론가. 무용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전통춤 형식의 체계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2016)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와 경상대학교에서 현대문화이론과 전통춤분석론을 강의하고 있다.​ 

2019. 11.
사진제공_국립국악원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