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윤정 〈설근체조〉
새롭게 조망된 혀의 운동성, 창의적 몸의 확장
장광열_춤비평가

 설근(舌根). 혀의 뿌리.
 설근체조. 혀의 뿌리가 하는 체조 혹은 혀의 뿌리가 시키는 체조. 안무가 이윤정이 새 작품의 제목으로 들고 나온 〈설근체조〉(11월 21-23일 신촌극장, 평자 23일 공연관람)는 제목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예술가들의 독창성은 늘 평자들의 관심의 대상이다. 안무가가 무용수의 몸과 결합시키는 예술적 상상력, 그것을 풀어내는 새로운 아이디어는 춤비평가와 무용 마니아들에게는 예술적 창조성으로 맞닥뜨려진다. 그 때문에 춤 사회에서 안무가들은 단연 서열 1위, 수많은 춤 직종 중에서도 그 위상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이윤정의 〈설근체조〉는 혀의 뿌리에서 춤 작품의 소스(source)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매우 창의적이다. 안무가들 대부분이 인간의 몸 전체, 팔과 다리 등을 움직임 개발을 위한 원천으로 삼았다면, 이윤정은 인간의 신체 부위 중 혀를 창작의 근간으로 삼았다.






이윤정 〈설근체조〉 ⓒ이윤정




 수년 전 드레스덴에서 열린 독일탄츠플랫폼에서 〈The Face〉란 제목의 춤 공연을 본 적이 있다. 공연 장소는 작은 갤러리로 50명 안팎의 관객들이 그 공연을 지켜보았다. 4명의 여성 무용수가 동서남북으로 마주보며 작은 의자에 앉아 60분 동안 펼친 이 공연은 제목에서 암시하듯 놀랍게도 얼굴의 안면만으로 춤춘다.
 그들은 시종 의자에 앉아 몸 전체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오직 얼굴의 근육과 표정의 변화만으로 춤춘다. 신체가 춤추는 것이 아니라 얼굴이 춤춘다는 표현이 맞다. 그러나 그 얼굴도 몸의 일부분인 것을 감안하면 몸으로 춤춘다는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다.
 4명 무용수들의 눈을 깜박거리는 순서와 눈을 뜨고 감는 속도까지 정교하게 계산(안무)되어져 있었고, 얼굴에 띄우는 미소도 그 강도와 뉘앙스가 각기 다르게 조율되어 있었다. 춤추는 얼굴은 확실히 생경했지만, 그 독창적 아이디어와 안무 감각이 주는 새로운 감흥은 오래 동안 잊히지 않았다.
 〈설근체조〉의 얼굴이 아닌 얼굴 속에 숨어있는 신체의 한 부분을 기저로 한 춤추기 작업은, 그래서 평자에게는 더욱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무대 위 무용수와 관객들 사이는 10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그 가까움은 김명신과 이윤정 두 무용수의 내뱉는 혀의 길이와 색깔까지, 혀의 형체가 각기 다름을 감지하는 시간을 크게 단축시켰다.




  

이윤정 〈설근체조〉 ⓒ이윤정




 작품은 전체적으로 2개 장면으로 분할되었다. 두 명 무용수가 보면대가 세워진 의자에 앉거나 일어서서 춤추는 전반부와 이곳을 벗어나 무대 바닥에 신체를 접촉해 추는 후반부이다. 공연 내내 댄서들은 시종 혀를 이용해 움직임을 발현시키고 있었다.
 그들의 혀는 둥근 모양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잇몸의 위와 아래로 움직이거나 때론 위아래 치아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길게 내뱉어지거나, 다시 목안으로 감아 올려지기도 한다.
 두 개 혀의 놀림이 그 속도와 강도를 다르게 변화시키면 어느 새 두 무용수의 얼굴은 표정이 바뀌고 턱의 선이 바뀌고, 어느새 얼굴의 형태까지도 바뀐다.
 댄서들은 중간에 몇 마디씩 말을 내뱉기도 한다.
 “데킬라” “주세요”.
 각기 다른 외국어, 낫선 언어의 만남은 혀를 이용한 음색과 말투의 변화를 실증한다.




이윤정 〈설근체조〉 ⓒ이윤정




 안무가는 보면대를 등장시켜 이번 공연의 콘셉트가 혀와 혀뿌리의 움직임을 몸의 스코어로 치환하는 작업임을 은연중 암시하고, 말하기를 통해 잊고 있었던 혀의 근육이 만들어내는 언어 발생의 기능을 반추시킨다.
 작품의 전반부가 혀를 이용한 안면 체조였다면, 후반부는 혀를 이용 몸 전체를 움직이는 체조였다.
 안무가는 두 댄서의 움직임을 상하, 좌우로 더욱 확장시키면서 혀의 근육이 턱과 심장, 그리고 전신으로 우리 온몸의 근육과 이어져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관객들은 혀의 길이가 30센티나 될 정도로 길었고, 혀가 단순한 신체 장기가 아니라 몸속에서 꿈틀될 수 있는 근육 덩어리임을 점점 인지한다. 결국 안무가는 종반이 되면 이 작품이 신체에 내재된 혀 근육의 움직임에 의한 몸을 뒤바꾸는 작업임을 드러낸다.
 이런 모든 시도는 결국 안무가가 말하는 ‘혀(뿌리) 운동의 메커니즘에 안무기술을 접목, 운동이 예술작품으로 변형되는 과정을 실험한다’는 작업의 취지가 춤의 확장으로, 그 성과를 얻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평자에게는 전반부의 설근체조가 더욱 창의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혀의 모양새와 그것을 굴리는 속도와 크기에 따라 두 무용수의 안면이 춤추고 그 춤의 형상들은 시각적으로 확연하게 인지되었기 때문이다.
 후반부의 움직임은 혀의 놀림에 따른 신체의 변이나 동체의 움직임이 혀를 이용하지 않았을 때의 그것과 그 차별성을 감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춤추는 댄서들은 몸으로 그 변화를 감지했을 수도 있으나 정작 객석에서 그 미세한 변화를 음미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윤정 〈설근체조〉 ⓒ이윤정




 안무가 이윤정의 이번 작업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정형화된 춤 공연의 양식을 벗어난 독창성은 차치하고라도, 혀를 이용한 움직임의 확장과 예술행위으로서 춤 공연의 영역을 논리적이고(드라마투르그 김재리), 음악적(사운드디자인 피정훈)으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캐나다 안무가 마리 슈나르는 2005년에 초연된 〈Body Remix〉에서 정상적인 무용수들에게 자유로운 움직임을 방해하는 보조기구를 착용하도록 해 새로운 움직임을 창출해내는 파격 구성을 시도했었다.
 〈설근체조〉를 통한 안무가 이윤정의 몸에 대한 탐구는 마리 슈나르의 〈Body Remix〉에 버금가는 창의적인 작업이었다.
 다음 작업에서는 전반부 혀뿌리의 움직임에 의한 안면 부위만으로 50분, 60분 공연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쉽지 않은 도전이겠지만 춤추는 혀, 춤추는 얼굴만으로도 관객들은 충분히 안무가의 독창적 예술성이 담보된 작품을 만나게 될 것이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 ​ ​ ​ 

2019. 12.
사진제공_이윤정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