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트리스탄 샵스 워크숍 & 공연 〈Face to Face〉
공간을 깨운 퍼포먼스
김인아_<춤웹진> 기자

 지난 7월 19일 문화역서울 284에서 영국의 드림씽크스피크 컴퍼니 예술 감독 트리스탄 샵스(Tristan Sharps)의 퍼포먼스 〈Face to Face〉가 진행되었다. 문화역서울 284의 시즌 두 번째 아트플랫폼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번 공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ㆍ디아츠앤코가 주최한 ‘댄스랩 서울 2014’과 연계된 작업이다.
 ‘댄스랩 서울‘은 이론과 실습을 통합한 현장 중심의 리서치 과정을 통해 무용 창작의 새로운 접근 방법을 모색하는 리서치 워크숍이다. 올해 첫 번째 리서치 랩을 위해 장소특정적 공연 연출의 세계적인 거장으로 알려진 트리스탄 샵스를 초청, 지난 7월 15일부터 19일까지 5일에 걸쳐 문화역서울 284 본관에서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무용ㆍ연극ㆍ마임 등 실연예술 아티스트들 30명이 참가한 이번 워크숍은 5일에 걸친 집중과정의 결과물로 무용 움직임과 영상작업 중심의 퍼포먼스를 도출해냈다. 워크숍의 마지막 날인 7월 19일에 공개한 〈Face to Face〉는 트리스탄 샵스와 한국의 퍼포머들이 공동 창작한 워크-인-프로세스 퍼포먼스이다.

 



 트리스탄 샵스는 문화역서울 284 본관 전체를 활용한 장소특정적(Site-specific) 공연을 선보였다. 구 서울역사인 문화역서울 284는 한국의 근현대사가 담긴 역사적 건물인 동시에 건물 밖 광장에서는 현시대의 쟁점을 놓고 시위 또는 집회가 열리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특수한 장소이다. 건물 구조에서도 독특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100여 년 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내부 공간은 여러 개의 방으로 설계되어 있는데 각각의 방이 각기 다른 분위기를 띠고 있는데다 건물 안팎, 방과 복도 사이에 유난히 창문이 많아 숨을만한 공간이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건물에 겹겹이 내재된 역사ㆍ정치ㆍ사회문화적 의미의 맥락들, 건물이 가진 구조적 특이성은 곧 ‘공간을 깨우는’ 이번 작업에 유효하게 적중됐다.
 〈Face to Face〉의 핵심주제는 ‘감시’(surveillance)이다. 관객 스스로 문화역서울 284 본관 전체를 탐험하면서 퍼포머를 ‘보는’ 존재인 동시에 퍼포머들로부터 ‘감시당하는’ 상태에 직면하도록 만든다. 이런 상반되고 이중적인 체험을 유도하기 위해 샵스와 퍼포머들은 여러 가지 연출적 장치를 동원하고 있었다.

 



 퍼포머들은 자신을 사회의 안녕을 위한 정보기관이라고 소개하면서 1층 중앙홀에 모인 관객 중 두 명씩을 선택해 지정된 장소로 데려간다. ‘범죄행위를 저지른 적이 있습니까?’, ‘출국 또는 입국을 거부당한 적 있습니까?’ 다소 위압적인 질문이 쏟아지면, 취조대상이 된 듯한 관객은 고개를 저으며 ‘아니요’를 연신 반복한다. 일종의 보안체크와 같았던 인터뷰를 통과하고 나니 문화역서울 284의 곳곳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자격을 쥐어준다. 통제에서 벗어나 드디어 건물 곳곳에 배치된 공연자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관람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받은 것이다.

 



 관객은 다른 곳을 보기 위해 건물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2층 중앙홀에는 정지동작과 다름없는 포즈 위주의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다른 곳의 퍼포먼스를 관람하기 위해 이동하려는 순간 차가운 시선이 감지된다. 복도 끝, 반대편 창가, 코너의 뒤편…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무표정하고 때로 섬뜩했던 퍼포머들의 시선이 조금씩 불쾌해질 즈음, 관객들은 그것이 곧 자신을 통제하기 위한 ‘감시’임을 알아차린다.
 인터뷰 장면은 웹캠에 촬영되어 건물 곳곳에 배치된 노트북에서 재생되었고, 자유롭게 관람했다고 생각한 2층 중앙홀도 수십개의 CCTV가 설치되어 녹화 중이었다. 관객은 퍼포머와 카메라의 응시에 사로잡혀 그 어떤 곳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감시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1층의 뒤편, 좁고 길다란 서측복도에서 공연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이 한 줄로 늘어서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2층 중앙홀에서 보여주었던 조형적인 움직임이 퍼포머의 모습이 담긴 파노라마 영상과 함께 펼쳐진다. 관객을 감시한 주체(퍼포머)가 관객에게 감시를 당하는 대상으로 전복되는 순간이다. 감시는 이내 죽음의 상흔을 이미지화한 퍼포먼스로 귀결된다. 죽음의 순간에서 느껴질 법한 고통이나 감정들, 장식적이거나 감각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제한 느리고 단순한 움직임으로 적막한 죽음을 그려낸다. 감정적이고 극적인 퍼포먼스는 강렬하다. 그러나 간결하게 정제시킨 움직임이야말로 이 공연이 지향한 장소특정성을 세련되게 부각시킨다.
 트리스탄 샵스의 〈Face to Face〉는 건축-관객-퍼포머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문화역서울 284가 갖고 있는 다원적 맥락의 장소성을 상기시키고, 관객과 퍼포머의 고정된 역할을 대상이자 주체로 확장시켜 창작의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

2014. 08.
사진제공_디아츠앤코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