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 〈당신이 나의 신데렐라예요?〉를 보고
제주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춤 공연의 변신
이민정_시인‧방송작가

<춤>이라는 월간잡지가 있다. 권두시를 청탁 받아 ‘나비의 꿈’라는 시를 지면에 실었었는데 껍질을 벗고 새로 태어나는 나비의 비상을 춤으로 연상하며 썼던 기억이 난다. <춤웹진>이 그 <춤>과 연관이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대목이 있어 춤 관련 글을 써 달라 하심에 흔쾌히 응했다.

(전략).../너무 뜨거워서 손짓도 녹겠지/너무 날카로워서 날개도 찢겠지/그래도 나는 날 거야/한 꺼풀을 벗어/또 한 줌의 눈물을 뿌리고/세상을 버리고/세상을 얻는/나도 아니고/너도 아닌/아름다운 노래가 될 거야/슬픈 시가 될 거야/가볍고 가벼운 날개로/나비의 춤을, 꿈을 출거야 ─ <춤> 지면에 발표했던 ‘나비의 꿈’ 中 부분 발췌

 2013년, 강남의 한 복판에서 춤추는 제주남자 김설진을 만났다. 벨기에 피핑톰 무용단의 내한 공연은 객석을 꽉 매운 관객들의 숨소리조차 빨아들이는 압도적인 에너지를 뿜었고 그 가운데 그가 있었다. 2014년, 방송매체를 통해 그가 ‘갓설진’으로 불리기 시작할 무렵 두 번째로 그를 만났다. 그가 나를 제주로 이끌었다. 제주의 오름과 바다, 밭담 사이를 누비는 그의 춤을 보고 싶었다. 가까이서 꽤 긴 시간 바라본 그는 수줍고 건강한 청년이었다.
 이제와 고백하자면 글과 사진을 업으로 먹고 살던 필자에게 그는 그야말로 멋진 피사체이자 취재원이었기에 그를 만나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는 표현이 그 당시 가장 솔직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기대와는 사뭇 다르게 흘러가는 것이 삶인지라 짧은 수다와 막연한 약속만을 남기고 훌쩍 3년이 흘렀다. 춤은 그렇게 다시 멀어지는 듯싶었다.

 제주에서 음악방송을 기획, 구성하면서 방송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고 나니 크고 작은 공연의 초대가 심심찮게 이뤄진다.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의 정기공연 <만덕>을 관람했었다. 다시 춤과의 만남이었다. 만덕은 제주를 만들어가고 이끌어가는 몇몇의 콘텐츠 중에 이미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제주에서는 너무나 익숙한 고전의 재해석인지라 마치 신파인줄 알고 손수건을 준비하는 것처럼 당연한 감동으로 받아들였다.
 새봄의 기획이라는 <당신이 나의 신데렐라예요?> 공연 초대가 왔을 때 호기심이 일었다. 이미 수작으로 호평을 받은 전작의 재해석이라는 점이 흥미를 불러일으켰고 재탕인가, 재발견인가의 기로에 선 안무자의 선택이 궁금해졌고, 도립이라는 거창하고 무거운 이름을 내려놓은 춤이 과연 가능한가에 방점을 찍고 보았다.

 

 



 공연은 제목이 주는 동화적인 기대를 현실을 드러내는 날카로운 비판이 깨부수고 다시 꿈을 꾸게 하는 진행 방식이었는데 전체의 흐름을 관통하는 스토리가 살아 있는 구성에 한 점을 주고 싶고 다만 각각의 작은 주제 간의 연결이 다소 산만해진 것은 준비기간의 촉박함에서 만들어진 결과라 짐작하여 아쉬운 점으로 남긴다.
 무게감을 깊게 두는 정기공연이 아닌 이벤트 기획공연이었던 만큼 대극장이 아닌 소극장의 공연이었으면 더 극대화된 효과를 얻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넓게 펼쳐진 구성으로 인해 비어보이는 부분이 여타의 효과적인 방식(조명이나 무대 설치)으로 채워지지 않아서 어떤 의미로는 순전히 무용수들의 춤에 의존한 공연이었지만 덕분에 군무 위주였던 전작 <만덕>에 비해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더 활발해져서 각각의 개성 있는 움직임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제주를 소재로 한 콘텐츠에서 벗어난 공연이라는 평도 있고 전작을 재탕했다는 이유로 도립이라는 이름값을 못한 공연이라는 평도 있었지만 이는 기획자나 안무자의 의도를 간과한 평이라 여겨진다. 대중화와 일반화를 목표로 접근한 공연에 당연히 물어야 할 것은 전문가의 비평이 아닌 일반 관객의 반응이다.
 실제 현장에서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의 반응은 신선하고 재미있었다는 얘기들이 주였고 ‘이렇듯 편안하고 즐거운 공연을 더 많이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이다. 공연의 앞과 뒤를 채운 이벤트에 대한 반응들도 그간의 제주공연에서 볼 수 없었던 적극적인 다수의 관객참여를 보여주었다.
 전작을 관람한 경험이 없어 딱히 더 나은 공연이라 주장하기는 어렵겠지만 무엇보다 제주에서 접하기 어려운 현대무용이라는 무대실험만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과 적어도 우려했던 전작의 재탕은 확실히 아니었다고 판단할 만한 새로운 장치들이 각 소제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안무자의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개인적인 감상과 소회로 지면을 다 채울 수 없어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하는 관객의 당부를 앞세우고자 한다. 고전은 고전으로서의 가치 위에 재발견과 재해석을 기반으로 계속 발전하는 동력을 얻는다. 수작이었던 전작을 한 번 보고 마는 공연으로 버리는가, 계속적인 재해석으로 또 다른 시작을 만드는가는 전적으로 안무자와 기획자의 몫이다.
 <당신이 나의 신데렐라예요?>는 전작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재해석을 보여줌으로써 안무자의 대표작임과 동시에 고전이 될 기회를 얻었다. 도립이라는 무겁고 진중한 이름의 값에 새것을 향한 지속적인 시도와 실험의 계기가 되어주길 기대하는 제주 관객들의 희망도 포함되어 있길 바란다. 

이민정
시인, 방송작가, 사진가로 활공하고 있다. 웹툰 <마녀일기>의 작가이며, 저서로 <밥집여자의 시> <그리운 이름은 눈물로 써도 소금기가 없다>가 있다.
2017. 04.
사진제공_제주사진문화공동체 '비춤'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