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2014 창작산실 지원사업 진단
더 달라져야 한다





사회: 오늘 좌담의 주제는 무용분야 창작산실 사업입니다. 아시다시피 처음 발레분야에서 몇 년간 진행되다가 2013년에 현대무용, 한국무용으로 확대됐지요. 작년 말 제2회 사업의 성과물들이 아르코 대극장과 소극장 무대에 올랐습니다. 개인적으로 2013년에 창작산실 심사나 제작과정에 자주 참여했던 입장에서 볼 때는 소관이 문화예술위원회로 넘어가면서 진행방식도 많이 달라지고 여러 가지 추가적인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2013년에는 현대무용은 국립현대무용단이, 한국창작무용은 한국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각각 관리하면서 사업진행 방식도 각자 달랐고 그러다보니 효율성에 대한 논란도 없지 않았는데, 2014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전체를 관장하면서부터는 우려와 기대가 동시에 일어났던 것도 사실입니다.
한편으로는 창작산실 사업이 일반적인 창작지원 사업하고 어떻게 다르냐에 대한 회의론도 있습니다. 대관이나 홍보를 대행해주는 등 일부 편리한 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본질적으로 여타 창작지원 제도와 어떻게 구분해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방희망: 일단 올해 달라진 것은 대극장부문과 소극장부문을 나눠서 진행했다는 점이고, 지원금에서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2014년 사업결과를 놓고 말씀드리면 시범공연 선정에 65개 팀이 지원하여 19개 팀이 선정되었는데 시범공연 제작지원금은 각 1,500만원이었고, 우수작품에 선정된 9개 팀 중에 대극장 4개 팀에 각 5천만 원, 소극장 5개 팀에 각 2천만 원이었으니 약 6억 원 규모의 지원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보다 많은 편수의 작품에 보다 골고루 배분하는 방향이었다 생각합니다.

박나훈: 제가 처음 지원을 할 때 소극장에 할 것인가 대극장에 할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생각을 많이 하다보니까 대극장에는 선생님들께서 지원하고, 소극장에는 젊은 친구들이 지원을 하라고 주최 측에서 방향성을 제시해 준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관처를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일원화시킨 것은 잘한 결정

 

이지현: 사실 대극장, 소극장을 나눈 것은 지난해 2월 한국춤비평가협회가 주최한 “창작산실 지원사업,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한 포럼에서 제안되었던 내용입니다. 역량이 없는 사람들에게 창작산실이라는 이름으로 대극장에 올릴만한 작품을 만들라고 하는 것은 부실한 작품이 양산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막아보고자 했던 것이고, 소극장 지원을 통해 조금 젊은 친구들이 부담 없이 창작 의욕을 갖고 작은 규모에서 알차게 선보이길 바랐습니다.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총괄해서 진행을 한 것은 저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일괄적으로 통일되게 진행됐다는 점에서는 2014 창작산실은 긍정적으로 평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말씀하셨듯이 세 분야 모두 주최가 달라서 혼란스럽고, 주최 기관들도 서로 정보 교류 없이 해서 문제가 있었는데 일단 그 문제는 해결 된 것이죠.

박나훈: 선정을 하는 사업이다 보니까 창작자 입장에서는 작품성을 자신감 있게 내세우는 용기보다는 선정이 될 수 있느냐 아니냐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2013년도 창작산실에서 떨어진 후 다음 창작산실을 기다리면서 생각을 많이 했었고, 2014년도에 대극장과 소극장을 나누어서 진행 하는 것을 보고 소극장에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 네, 저도 박나훈 씨 작품을 잘 봤습니다. 박나훈 씨는 도전정신이 강하고 기성체제에 대한 혁신 마인드를 지닌 예술가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진보적 정신과 지원금이라는 기성의 체제 사이에서 점차 좋은 조화를 이루어가고 있는 것 같아 흥미로웠습니다. 김설진 씨는 어땠는지요?

김설진: 작년에 한국 들어와서 알게 되었고, 좋았던 점은 예전에는 안무자가 홍보, 대관, 무용수 관리까지 모든 것을 다했어야 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문제에 있어서 다 알아서 해주시니까 온전하게 작품 만드는 것에만 신경 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대극장, 소극장 나눈 것의 의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몇 명이 출연하느냐를 물어보시던데 1명이 출연해도 대작이 될 수 있고 10명이 출연해도 소규모의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연하는 무용수의 수가 아닌 순전히 작품의 구조만을 가지고 대극장용이냐 소극장용이냐를 판단해주시면 조금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유명한 안무가들도 소극장 작품을 하기도 하고, 막 데뷔한 신인 안무가가 대극장에서 대규모의 작품을 올리기도 합니다. 요리사가 요리를 하는데 뷔페를 준비하느냐 한 사람만을 위한 요리를 하느냐를 가지고 요리를 잘 한다 못 한다로 판단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나훈: 전년도의 지원 결과가 나오면, 즉 어떤 선생님들이 대극장에 선정되었고, 어떤 안무자들이 소극장에 선정됐는지를 보게 되면, 그 다음에 지원하는 안무자는 나는 어디에 지원을 하는 것이 더 선정 가능성이 높은지 만을 따지며 지원을 하게 되는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대극장ㆍ소극장 구분에 대한 가이드라인 필요


이지현: 김설진씨는 이번에 소극장 공연을 준비하면서 어디에 초점을 두고 작업을 하셨나요?

김설진: 사실 저는 이 작품은 창작산실에 선정이 안 되어도 진행하려고 생각했습니다. 만들어서 외국에 팔아야지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판다는 말이 안 좋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파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회의감이 들었던 것이 1년에 신작을 7~8개를 해야 겨우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순수하게 작품 활동만 한 다면요. 이런 점이 소모적으로 느껴지고, 자기복제도 하게 되고. 이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해외 활동을 생각하게 됐고, 그래서 첫 아이디어가 70cm 큐브 안에 모든 세트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비행기에 실었을 때도 추가 비용이 나오지 않도록 무게까지 계산을 해서 진행했었습니다. 출연 인원도 그러한 것들을 고려해서, 해외 극장들도 손실이 없길 바라기 때문에 작은 작품을 먼저 부르는 편이라 그러한 것에 맞게 이동이 용이한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했었습니다. 외국에서 도와주기로 한 친구들이 있어서 도움을 받을 예정이고, 이제부터 컨택을 하게 되면 올해 연말쯤에는 공연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지현: 잘 되었네요. 그것이 원래 창작산실이 의도하던 바이니까요.

박나훈: 저는 웹툰을 소재로 했었고, 재미있게 했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전에 했던 작품들에 비해서는 조금 심심한 면도 있지만 친절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불친절한 작품만 했다면 이번에는 친절한 작품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쇼케이스 때 재미있었고 무용수들과 하모니도 좋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제가 작년에 활동을 많이 해서 다작을 했다고 생각하시는데 냉정하게 따져보면 신작은 이번에 했던 공연 하나였습니다. 대신 국내에서 많이 공연할 수 있도록 부지런하게 지원 신청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 작품은 원래는 실내용 작품이지만 실외에서 할 수 있도록 균형판도 4개로 늘린다면 시민들도 그 위에서 놀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이 빠지고 나면 무용수들이 공연을 하는 형식으로 변형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해외 투어를 가기에는 어렵겠지만 국내투어를 하기에는 용이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해외 투어도 완전히 불리한 것은 아니니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설진: 한 가지 방법을 말씀드리자면 세트를 하나 더 만들어서 배로 보내고 해외 공연용으로만 돌릴 수 있습니다. 각 나라마다 지방으로 가면 훨씬 싼 가격으로 창고에 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방법이 용이할 수 있습니다.

박나훈: 이번 작품은 아직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고 35분에 맞춰서 조금 늘려놓은 것뿐입니다. 2013년도 쇼케이스 때 제 작품이 기승전결이 아닌 ‘기승’하고 바로 ‘결’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20분을 넘기면 안 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습니다. 이번에 남자 3인 군무는 제 안무에 필요한 구성 방법이었고 세 남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야 만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 균형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에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일반관객과 놀 수 있는 형태의 작품으로 발전 되고 세트문제도 해결이 된다면 제에게는 어쩌면 창작산실이 새로운 기회가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 합니다.






창작산실과 창작지원 사업의 차별점 모색

 

사회: 창작산실 사업 초기부터 제기됐던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가 다른 창작지원 사업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 이었습니다. 대관이나 홍보 업무를 대신 해주는 것은 창작자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지만 좀 더 욕심을 내자면 국내외 유통까지 앞장서줘야 하지 않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유통까지 연결되지 않으면 또 하나의 창작지원 사업에 불과한 거죠.

김설진: 저도 그것이 정말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모르시니까 도움을 못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서울공연예술마켓(PAMS)을 운영하는 예술경영지원센터나 개인적으로 국제교류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민간인 전문가들과 손잡는 것도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설진: 만약 그것이 어렵다면 외국에서 팔아주는 사람들은 이케아 카탈로그처럼 무용단 작품 카탈로그가 있어서 무용단의 규모라든지 작품 설명이 적힌 카탈로그를 극장에 뿌리기만 해도 도움이 됩니다.

박나훈: 제가 하면서 느꼈던 것은 프로모션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데 아직은 그렇게까지는 힘든 것 같습니다. 이번에 동영상도 만들어주는 등의 제작지원은 좋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데, 단점은 아카이빙 작업에 너무 공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공연이라는 것이 그 시간에 관객들하고 교류를 하는 것인데,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주최 측하고 갈등이 있었던 부분은 사진촬영 때문이었습니다. 프레스리허설 때 일반 관객도 있어서 다음날 촬영해달라고 부탁을 드렸었는데 그냥 진행하셨습니다. 자료를 남기고자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공연예술은 그 순간을 보존하는 것이 우선이고 자료를 남기는 것이 그 다음인데 그런 점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쇼케이스는 강동아트센터에서 하고 공연은 대학로에서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세트를 다시 제작해야 하는 안무가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연습 홀을 빌려주었는데 바닥이 댄스플로어가 아니었습니다. 홀은 너무 넓고 좋았는데 전문적인 부분에 신경 쓰지 못한 점이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사회: 이런 진행상 문제점이나 기술적인 부분들은 솔직하게 지적을 해주면 주관처에서도 적극 개선할 것이라고 봅니다.

방희망: 이번에 주최 측에서 안무가 인터뷰 동영상을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렸던데 어떻게 보셨습니까? 그러한 작업이 홍보에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설진: 일반관객들을 생각한다면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쉬웠던 점은 작업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텍스트들이 적힌 것 이었습니다.

방희망: 인터뷰를 30분가량 진행하고 1~2분 분량으로 편집인데 정작 작품 내용에 대한 핵심들은 빠진 채 정신없이 잘게 쪼개진 단편적인 내용들이라 해놓고도 부실한 느낌이 컸습니다. 그리고 팜플렛을 봤을 때도 구성을 맡은 담당자가 다 다른가 싶을 정도로 그저 공간을 메우기 위한 방편으로 이런저런 내용을 끌어와서 맥이 잡히지 않더군요. 사실 시범공연 때부터 우수작품 선정까지 상당한 기간이 주어지므로 주최 측에서도 작품 내용을 파악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가진 셈인데, 엘지아트센터나 두산아트센터 등 민간 극장이 기획공연을 준비하면서 내놓은 책자가 작품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이해도를 가지고 있는데 비하면 많이 아쉬운 부분입니다.

이지현: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홍보가 일반 관객에게 영향을 미쳤는가라는 것입니다. 홍보의 결과를 객석 점유율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작 기간은 어떠셨습니까?

박나훈: 거의 1년이 주어졌는데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에만 몰두하기에는 부족한 지원체계

 

김설진: 정말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작지원금이 작품을 만들기에는 많은 돈은 아니지만 부족하진 않은데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외국에서는 7~8개월 정도 연습실에서 작업을 하면 월급이 나오기 때문에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안무가에게 생활이 가능한 월급개념의 지원이 아니기 때문에 생활을 위해선 겸업을 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작업에만 몰두하기에는 힘든 점이 있습니다.

이지현: 제가 궁금했던 점도 그 부분입니다. 지원금이 정말 제작에 실질적인 것들을 보장해 주는지 였습니다. 정말 창작자들에게 창작 작업에만 몰두하게 하기 위해서는 안무자에게는 월급 개념으로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나훈: 이번에 쇼케이스 때는 안무비가 책정이 되어있었는데 본 공연 때는 없었습니다.

김설진: 제가 작업을 위해 개인 연습실을 마련해서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규정상 연습실이 제 이름으로 되어 있어서 연습실 지원비를 못 받았고, 안무비도 안나와서 저는 오히려 마이너스였습니다.

사회: 이런 문제는 전형적으로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거죠. 조금만 애쓰면 얼마든지 개선 가능하다고 봅니다. 창작지원금 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지원금에서도 똑같이 겪게 되는 문제입니다.

박나훈: 이러한 문제점들이 지속 된다면 편법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이지현: 안무가들에게 안무비가 책정 안 되는 문제는 시정이 되어야합니다.

김설진: 지원해주시는 입장에서는 ‘너희가 좋아하는 작업하면서 왜 돈을 바라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이는 예술가를 직업으로 안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예술을 직업으로 할 수 있어야 전문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계별 지원이 창작 작업에 탄력을 주는 계기

 

사회: 옳은 말입니다. 예술은 너희가 좋아서 하는 것인데 좀 도와주면 됐지 뭘 그리 따지느냐는 발상이지요. 이 문제는 한 나라 예술행정가들의 의식수준과 밀접히 관련돼 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개선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지속적인 설득이 필요합니다.

방희망: 박나훈 님은 2013년도에 시범공연까지 지원을 받으셨는데 안무가 입장에서 시범공연까지라도 지원 받은 것이 어느 선까지 도움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창작산실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단계별 지원이라는 것인데 우수작품까지 선정되지는 않았더라도 시범공연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은 것이 창작 활동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는지가 실효성 측면에서 중요하니까요. 다른 안무가들의 경우에도 이후 작품 활동으로 탄력을 받는지요?

박나훈: 도움이 됩니다.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지 않더라도 작품의 기본은 나왔으니까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 작품을 완성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럼 점에서 쇼케이스에 선정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좋은 제작 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지속가능하도록 하려면 유통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고, 그것을 통해 더욱 탄탄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지현: 박나훈씨는 작년에 쇼케이스를 했기 때문에 서울무용제에 <쉬어가는 고개>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쇼케이스까지만 했다 해도 인큐베이팅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도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남진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재작년에 쇼케이스까지만 했었는데 그 작품 <바늘>을 다른 무대에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박나훈: 그 부분은 맞습니다. 재작년에 쇼케이스했던 것이 서울무용제 출품작 <쉬어가는 고개>의 모태가 됐고, 서울무용제가 공인된 무대에 오르지 않았던 작품만을 받는다고 되어있어서 저도 이 쇼케이스가 공인된 무대인지에 대해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상 여부를 떠나서 사장될 수 있었던 작품이 대극장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서 행복했습니다. 아직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2년에 걸친 작가의 고통을 통해 완성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지현: 우수작품을 뽑아서 다시 재공연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나훈: 제가 알기로는 최소 4천만원을 준다고 알고 있습니다. 재공연 지원에서는 어떤 기준이 적용될지는 모르고, 심사위원이 바뀌면 이번 공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한 작품들이 많이 고려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회
: 이제는 제도보다도 작품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지요. 2014년 창작산실 작품들을 어떻게 보셨는지요?

이지현: 분야별 작품 안배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발레부문의 열세가 문제로 보입니다. 창작발레 역량이 너무 없다 보니까 다른 문제가 있어도 균형상 진행할 수밖에 없고 현대무용이나 한국창작춤의 현대적 열기 앞에서 발레가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장르 안배를 하면 작품별 편차가 너무 생기고, 안하면 어느 한 장르가 고사될 수도 있는 문제가 이번에 발견되었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작발레의 열세가 극복할 과제

 

사회: 정말 아이러니컬한 것이 창작산실 사업이 발레에서 시작되었는데 정작 발레는 열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최근 몇 년 동안 괜찮은 발레 작품이 없었습니다. 창작산실 사업이건 다른 기획공연이나 개인공연 통틀어서 창작발레라고 부를만한 것이 거의 없었지요. 우리나라 발레가 댄서들은 이미 세계적 수준에 이르러 있고, 이제는 안무 쪽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마땅한 안무가가 없는 겁니다. 젊은 세대에는 안무가적 소양을 가진 친구들이 좀 있지만 이들은 큰 지원금을 받기엔 아직 역량이나 경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고, 그러다보니 발레가 불과 몇 년 만에 전멸사태에 도달한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발레를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현대무용만큼 좋은 창작물이 나오지 못한다 해도 꾸준히 육성해주는 수밖에 없지요.

이지현: 발레에 대한 것은 구분을 해서라도 배려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각 장르별 창작을 하는 사람들 중 발레분야가 조금 미진하니 그들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방안이 저희의 숙제로 아직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작품의 질에 대한 또 다른 문제는 창작 기간, 작업여건 등이 좋은 조건이었음에도 작품이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작품이 정돈이 거의 안 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마지막 정리과정 혹은 다듬는 과정이 빠져 있는 미완성의 작품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안무가들이 마지막 작업에 집중할 수 없었던 어떤 환경이 있었나 궁금할 정도였습니다.



김설진: 이번에 리허설이랑 프레스콜, 셋팅을 하루에 하는 것이 무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2~3일은 투자를 하고 어떤 것들이 부족한지 보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시간에 쫒기다 보면 놓치고 가는 부분들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박나훈: 아까도 말씀드렸었는데 아카이빙과 같은 사업 결과물 제작에 너무 중점을 두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담당자분께 지금 일어나는 공연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었는데 합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공연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진행방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지현: 7개월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어도 안무가에게 월급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안무가들이 다른 생업을 하면서 작업을 해야 했고, 이러한 환경이 작품에 몰두하거나 작품의 질을 끌어 올리는 데는 다른 지원과 큰 차별점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극장 리허설 시간이 너무 짧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공연 완성도라는 것은 현장에서 준비할 시간이 확보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 자체가 일반 공연과 별다르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김설진: 초연할 때 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일주일은 있어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데 하루는 너무 짧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카이빙보다는 작품의 완성도에 집중할 때

 

사회: 그게 바람직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일주일까지 기대하긴 어렵고, 다른 공연들과 차별화시키려면 적어도 3일 정도는 기간을 두어서 완성도를 높이려는 노력을 해야겠지요. 아까 말씀하신 아카이빙의 문제도 사실 무용가들과 예술위원회가 상호 의논하면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입니다. 예술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지원기관들의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현장을 너무 모른다는 점인데, 이건 뭐 하루아침에 해결될 건 아니고, 현장인들이 자꾸 행정가들에게 일깨워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행정가들이 전문성과 현장성이 떨어지다 보니 지원사업을 할 때 지원대상자들과 지원대상 분야가 정확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이 됩니다. 이것은 과거 문예진흥원 시절부터 계속 지적받던 문제였습니다. 공연행정가들 가운데 공연장에 꾸준히 오는 사람도 극소수에 불과하지요. 이런 것들이 우리와 선진국들과의 큰 차이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지현: 현재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이 사업을 진행 하고 있고, 그것이 긍정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르코 극장을 기반으로 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훌륭한 조건이죠. 극장에서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의 이점을 누려야 하는데, 극장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대관 시스템과 다를 것이 없이 진행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문제는 마음만 먹으면 개선될 수 있는 문제이지 여건이 안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아까 잠깐 이야기가 나왔던 제작 후 유통 문제에 대한 제안 혹은 개선점을 이야기 해주시면 도움이 될 듯합니다.

김설진: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정당한 대우를 받고 나가는 것을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개인이 마케팅을 할 경우 아직도 가끔 말도 안되는 조건으로 해외공연을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소문이 돌고 관행이 되면 아시아인들은 대우 안해줘도 된다는 인식이 생겨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과물을 축제와 연결해 적극적으로 유통시켜야

 

사회: 한국을 포함해서 아시아인들은 아직 불리한 게 사실이지요. 하지만 그건 시장의 원리라는 측면에서 볼 때 불가피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값어치를 올리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수밖에요. 바로 그런 점에서 아까 얘기한 예경이라든가 혹은 몇 안되는 민간인 국제교류 전문가들을 활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무용가들이 최근 들어 해외활동을 본격화하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을 국제무용계와 연결해주고, 행정적 사무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별로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 시점에서 창작산실이 할 수 있는 일은 팜스같은 마켓이나 SPAF, 시댄스 같은 국제 규모의 축제와 연계를 해서 창작산실의 성과물들을 적극 홍보하고 마케팅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창작산실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을 팜스 기간에 집중 소개하거나 축제들이 갖고 있는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 해외에 연결시키는 등등.



이지현: 그렇다면 창작산실 주최측에선 어떠한 방법으로 팜스라든지 시댄스에 접근할 수 있을까요?

사회: 창작산실을 통해 나온 작품 가운데 일부를 팜스나 시댄스, 스파프에서 재공연할 수 있도록 상호협력하는 게 우선이겠지요. 그리고 이를 통해 외국의 초청을 받게 되면 그 무용단체에 항공료를 제공해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해외 루트를 계속 개척해야지요. 국내에서는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에서 무용작품을 뽑아도 지방문화예술회관에서 무용 공연을 올리려 하지 않습니다. 창작산실의 작품을 지방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을 할 경우 가산점을 주는 등의 방법으로 국내 유통을 활성화시키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설진: 지방극장이 놀고 있는 날이 많은데 그런 극장에서 공연을 올릴 때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제도가 정책적으로 있다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박나훈: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문화예술회관은 솔직하게 지역민을 위한 사업이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추상성을 근간으로 하는 작품은 혐오하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사회: 이번에 올려진 공연들에 대해 작품적 평가를 해볼까요?

방희망: 저는 2014년 창작산실 지원사업에 선정된 작품의 공연들을 모두 보았습니다. 대극장 작품의 경우 80분까지 늘어지는 작품들도 있었는데 1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까 김설진 씨가 말씀하신대로 외적인 규모만 가지고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대극장, 소극장 부문을 나눠서 받을 때 작품길이까지 필수 옵션으로 고정시킬 것이 아니라 내용에 따라 융통성을 두고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설진: 사실 대극장 작품도 20분짜리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고, 소극장 작품도 1시간 반짜리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가에서 융통성 있는 기준제시가 필요

 

방희망: 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에 공지로 올라온 심사위원의 평을 읽어보았습니다. 단체의 역량에 대한 평가가 30%라고 되어있던데 이것은 아무래도 경력이 많은 중견 무용단에게 유리할 수 있는 평가항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평가항목에서 실연을 했을 때 극장에서 어떻게 가장 잘 구현하는지 최우선으로 고려한다고 되어있었는데 이러한 기준으로 봤을 때는 대극장 공연의 작품들은 아르코에서만 공연을 하고 폐기될만한 작품으로 보였습니다. 다른 곳에서 공연하기에는 무대 장치와 규모가 너무 과하게 만들어진 작품들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원금을 많이 받는 만큼 과감한 투자도 좋지만, 레퍼토리화를 염두에 둔다면 현실적인 면도 고려해야 할 듯 합니다. 물론 대극장 무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시각적, 음향 효과도 있겠지만 민간 무용단이 그 작품 규모를 계속 끌고 다니기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규모라 이런 경우 국공립 무용단이 레퍼토리를 흡수하던지 해야 창작산실의 의미가 있을 듯한데 그것은 현실적으로도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소극장 부문에서 한국무용이 빠졌기 때문에 이경옥 무용단의 <심청>이나 김선미 무용단의 <천> 등은 그나마 한국무용의 균형감을 맞춰줄 작품들이었지만 사실 한국춤은 동작의 펼침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큰 무대에선 춤이 묻히기 쉽습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한국무용은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소극장용 창작 작품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춤의 중견 안무가들이 스케일 있는 작품만 다루지 않고 눈높이를 내려 관객에게 보다 친밀하게 다가왔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소극장 공연은 대극장 작품보다는 신선한 안무가들의 등장으로 부문을 구별을 한 것이 예전보다 도움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재도 그렇지만, 안무가들 역시 이동이 용이한 방향으로 세트와 소품을 짜기 위해 고심하다보니 좋은 아이디어도 나왔고 상대적으로 무용수들이 펼치는 춤 자체나 주제의식에 보다 집중한 것 같고요. 하지만 창작에 있어 현대무용 쪽이 우세이다 보니 현대무용 쪽 여타 많은 지원 제도와 구별될 만한 색깔은 부족해 보입니다. 한국무용이나 발레 쪽 창작품 특히 소규모의 창작 작품을 어떻게 장려할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지현: 소극장의 경우는 신선한 경우도 있는데 편차가 너무 심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창작 여건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제는 예술적인 완성도를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합니다. 여건만으로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우리 모두가 암묵적으로 물질적 기반만 가지고 창작산실이 잘 될 것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진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 내년에는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 부탁드립니다.




장기적 안목으로 안무가를 지원할 체계적 구조 필요

 

김설진: 작품에 대한 지원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한데 조금 더 길게 보는 시각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지원해줬는데 안무가가 잘못했다고 해서 영영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아닌 좀 더 길게 보고 이 안무가가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이 장점인지를 고려해주시면 지원을 해주면 계속 발전해 가지 않을까 합니다. 또 하나 모든 지원 사업들이 신작을 원하는 구조라서 안무가들이 압박을 받게 되고 불가피하게 자기 복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같습니다.

박나훈: 안무가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재공연 지원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재공연 지원 사업은 서울문화재단이나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에서 지원을 하면 지원 받을 수 없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창작산실에서 만든 작품은 재공연 지원에 선정되어야만 재공연이 가능한 작품이 됩니다. 그래서 제가 다년간 지원 사업처럼 택일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을 드렸었는데 어렵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다년간 지원 사업과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의 경우 둘 다 지원을 하고 둘 다 선정이 됐을 경우 하나만 선택해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한 작품이 계속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작산실을 통한 재공연 지원이 안되어도 이 작품을 계속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줘야하는데 그것이 제도적으로 막혀있습니다.

사회: 비판할 점도 많지만 그래도 시행착오를 거쳐 가며 꾸준히 발전할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오늘 말씀들 감사합니다.

2015. 0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