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국립현대무용단 1세대 현대무용가들의 렉처 퍼포먼스 〈우회공간〉
역사와 시간이 중첩된 재구성
김혜라_<춤웹진> 편집위원

 

 

 

 국립현대무용단의 2014년 시즌제 프로그램인 ‘공간사랑 컨템포러리 프로젝트’ <우회공간>(7월 25-26일)이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진행되었다. 1977년부터 약 10년간 현대예술과 춤 소극장 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던 ‘공간사랑’을 재조명하면서, 당시 열연했던 현대춤 1세대인 남정호, 안신희, 이정희의 작품들이 재연되었다. 당시 현장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작품을 만날 기회였고, ‘공간사랑’ 소극장의 자유와 도전정신 그리고 한국현대춤사의 맥을 회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국립현대무용단 안애순 예술감독은 컨템포러리한 현대춤이란 “과거와 현재의 예술방식에 대한 새로운 모색이다”라는 의도로 <우회공간>을 ‘렉처 퍼포먼스’ 방식으로 구성하였다. 출연자가 직접 이야기도 하면서 단순한 회상이 아닌 과거 작업들의 실험성과 정신을 환기시켜 컨템포러리 춤에 대한 고민과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고자 한 것이다. 올 시즌의 주제는 ‘역사와 기억’이며 5가지의 소주제로 구분하였다. 소주제는 각각 ‘전통의 동시대적 탐색’, ‘근대와 그 너머의 시간’, ‘현재의 고고학’, ‘크로씽 댄스’, ‘댄스 커뮤니케이션’으로, <우회공간>은 ‘근대와 그 너머의 시간’에 해당되는 첫 번째 작업이다. <여전히 안무다>(8월31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결정적 순간들>(10월 17일-11월 30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이 연계된 프로그램이다.

 



 남정호는 편안한 작업복 차림으로 무대로 나와 당시 ‘공간사랑’ 바닥 사이즈를 보폭으로 측정한 후 그 면적만큼에서 작품을 시작했다. 제 1장 ‘직선 혹은 대각선으로’라는 문구와 함께 <대각선>(1982년)을 실연하는 그는 무겁게 걷기, 빠르게 뛰기, 분절해서 걷기 등 다른 어휘의 베리에이션을 반복적으로 시도했다. 남정호는 “미니멀리즘과 즉흥기법을 이용해서 대각선에서 가능한 움직임을 시도해봤다”고 회상했다.
 두 번째 작품 <계속>은 트리샤브라운의 어큐밀레이션(accumulation)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바닥에 다섯 지점을 정해놓고 중심잡기, 뛰기, 돌기, 쓰러졌다 일어나기, 일상적인 제스처를 순환하며 각각의 형태를 변형·반복함으로 전체가 동작지점에서 선으로, 나아가 축적된 조형물로 되가는 과정을 보인 것이다. 남정호는 <계속>이란 작품은 현재도 진행 중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마지막 작품인 <안녕하세요>(1982)는 무대 중앙에 배치된 의자에 앉은 자신만만한 여자의 포즈로 시작했다. 당당한 자태 뒤에 숨은 불안한 내면이 비춰지는데 의자 아래로 숨거나 의자 위로 올라가 공포스런 포즈를 대비시켜 인간의 양면성을 묘사한 것이다.

 



 남정호의 공연이 끝나고 안신희, 이정희가 무대로 나와 얘기를 나눴다. 제 2장 ‘컨템포러리 댄스’에 관한 문제를 연출자(방혜진)가 질문하고 출연진은 답을 하는 방식이었다.
 첫 번째 질문은 컨템포러리 댄스와 모던댄스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었다. 두 번째는 미술계와는 달리 춤계에서만 유독 컨템포러리 댄스와 모던댄스의 미약한 구분에 대한 이유와 마지막으로 소극장 운동이 ‘공간사랑’ 이후 활성화 되지 못한 이유를 물었다.
 안신희는 “컨템포러리와 모던댄스는 용어적 차이 일뿐 굳이 구분 지을 필요성이 없다. 미술과 다른 상황은 몸이라는 표현매체의 차이가 이유”라고 답했다. 이정희는 “모던 댄스가 대학으로 유입되면서 획일적인 교육 중심이 되면서 컨템포러리적인 정신에는 덜 집중해 예술성 있는 작가를 길러내는 일에는 미약했다”며 한국에서 컨템포러리댄스가 아직도 새로운 동력을 찾지 못하는 이유로 답하였다.
 남정호는 “모던댄스가 테크닉을 중심으로 표현을 했다면, 컨템포러리 댄스는 자기형식을 찾아가는 춤”이라고 답하였다. 소극장이 활성화 되지 못한 이유로는 “당시 대중들이 스펙터클한 대극장을 선호한 이유도 있었고, ‘한국현대무용인의 밤’으로 연계되어 운영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어지는 안신희의 공연은 제3장으로 ‘기억하는 몸, 감각하는 몸’이었다. 안신희는 당시 <교감>(1981년)이란 작품을 머리로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며, 그러나 몸과 감각으로 기억하여 추어보겠다고 했다. 무대에는 그 당시 <지열>(1983년)영상이 나오고 무대에선 안신희의 동일한 듯 하지만 재해석된 춤이 교차되며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다. “과거와는 다른 제 몸으로 과거의 동작은 할 수 없지만 지금 몸에서 가능한 것으로 해석해 보겠다” 며 춤춘 안신희는 아직도 탄탄한 테크닉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중첩되는 몸의 실존을 보였다.
 제 4장은 ‘불투명한 공간, 병렬적 구성’으로 꾸려진 무대에는 공간사랑극장의 설계도가 뒷배경으로 자리했다. 건축가 김정후씨가 나와 공간사옥에 대한 건축적 특징을 설명하였다. 공간사옥은 6층 건물로 건축과 무용 분야가 어울리게 된 계기점이 된 곳이라며 몇 가지 특별한 특징을 설명하였다. 전통 건축 방식을 활용하여 공간은 작지만 내부에서는 넓게 보이는 기법이며 하나의 공간에서 여러 역할을 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당시 외벽의 디자인은 근접한 창덕궁의 경관을 고려해 철저하게 절제되어 설계되었다고 했다. 반면 외피와는 달리 내부에서는 어디에 위치해 있던지 간에 자기중심적으로 공간들이 에워싸는 내향적 공간구성 형식이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어진 제 5장 ‘실내에서 거리로’라는 문구와 함께 이정희의 <실내>(1986년)가 시작되었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이정희는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천장에서 계속적으로 떨어지는 긴 줄에 몸을 맡겨 감기고 쓰러지길 반복했다. 테크닉이 배제된 그녀의 강한 표현성 짙은 춤에서 80년대 당시를 짐작할 수 있는 사회적 저항의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검은 영혼의 노래>(1988년)는 긴 머리 가발로 얼굴을 가린 채 그는 서서히 만지작거리며 암울한 분위기를 연출해내었다. ‘분노’, ‘처절’ 등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이정희는 “80년대 한국은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대모와 휴교령 등 암울한 사회적 현실이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내 방식으로 시대의 아픔에 동참한 것이었다”며 작품에 대해 회고했다.

 



 또다시 출연진이 무대로 나오고 연출자는 질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제 6장 ‘어디로 향하는가’라는 파트로 예술과 사회적 관계와 김수근이 군사정권과 관계가 있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김정후는 “예술과 사회적 역할은 중요한데 당시 시대가 어려웠으나 김수근이 사회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했다면 더욱 발전적인 모습을 보였을 것”이라며 마무리를 했다.
 무대는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며 네 출연진들의 모습은 마치 과거의 그곳 공간으로 돌아간 듯 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막을 내렸다.

 전체 공연을 통해서 관객은 한국현대춤의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시발점이 된 ‘공간사랑’소극장의 창작정신을 재인식하며 세 춤꾼의 진솔한 이야기와 재연, 아니 재해석된 춤을 보는 것으로 공감대를 갖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안애순 감독이 말하였듯이 현대춤이 늘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에서 우회하여 과거를 회귀하고 현재 고착된 사고를 각성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반면 여러 의문점이 제기된다.
 먼저 의문이 드는 점은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소극장이 아니라 밀도감이 떨어지는 대극장에서 하였는가? 이다. 다음은 ‘공간사랑’에 대한 자료가 부족할지라도, 김정후의 설명과 팸플릿에 담긴 자세한 내용만으로도 충분한데 국민의 세금으로 굳이 무대배경에 대형 설계도를 설치한 충분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점은 ‘렉쳐형식’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이다. 연출자와 출연진의 대답은 현장적인 상황에 역행하였다. 일방적인 질문들은 무료하고 닫힌 구조에서 진행된 방식이어서 신선한 기획의 취지를 의심하게 하는 지점이다. 특히 연출자의 질문은 거의 여기가 학술세미나라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아직도 모던과 컨템포러리에 대한 규정이 진행 중이고 아니 그러한 규정은 컨템포러리적 시각에서는 용인하지 않는데도 작품내용과는 거리감이 있는 질문을 긴 시간동안 해야 하는 것이었을까? 김수근의 군사정권과 사회적 관계 같은 내밀한 이야기를 과연 관객들이 질문하고 싶은 내용이었을까? 적어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진중하게 다루고 싶었다거나 컨템포러리한 렉처를 원했다면 관객의 입장에서 충분히 숙고했어야 한다. 공연을 마친 후 관객과의 대화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면 모를까….
 이는 국립현대무용단의 기획의 정당성을 포장하는 듯 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다시 말해 소통의 시대에 일방성을 강조한 팸플릿에 쓰인 내용 정도의 단조로운 강의 방식은 프로그램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렸을 뿐만 아니라 관객을 무시한다는 불쾌함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다.

 전체적으로 <우회 공간>은 역사적 시간이 중첩된 오늘의 작업으로 해석해 내는 1세대들의 실연자체 만으로도 충분하고, 그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전에는 30분을 했는데 이젠 6분도 못하겠어요…”라는 공감의 언어가 중언부언하는 소위 렉쳐보다는 삶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의도한 ‘역사와 기억’의 한 줄기로서 본 <우회공간>의 기획 방식의 신선함은, 유효했다.

2014. 08.
사진제공_국립현대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