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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 블랙텐트극장 춤 공연의 의미
무용가들의 예술적 행위를 통한 정치적 대응
박성혜_무용평론가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 뒤에 위치한 블랙텐트극장은 2017년 1월 13일 갑자기 등장한 불법 점거 극장이다. 예술가에게 행해진 블랙리스트 검열 사태에 저항하는 광장극장으로 예고 없이 광장에 세워졌다. 이 극장의 의미는 정부 지원사업 배제 예술가 리스트에 대항하여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극장이다. 그들은 부당한 정치권력에 의해 배제되었고 이에 잃어버린 공공 극장의 대안적 모색으로 등장한 공간이다.
 130여개 좌석의 블랙텐트극장은 간단한 조명과 기본적인 음향은 설치되어 있었지만 방음과 방한, 방습처리가 전혀 되지 않는다. 광화문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 소음과 추운 한겨울의 냉기가 그대로 들어오는 공간이다. 그러한 공간에서 무용인들은 기꺼이 춤을 추기로 했다. 이러한 결정과 과정 속에는 수많은 무용인들의 협력과 헌신이 필연적으로 따랐기에 가능했다.

 

 



 블랙텐트극장이 개관한 이후 연극 <빨간시>를 시작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주일 단위로 여러 극단들이 공연을 시작했다. 토요일은 정기적인 광화문 집회가 진행된다는 이유로, 일요일은 다음 공연을 위한 준비를 위해 공연이 진행되지 않았다. 블랙텐트극장에서의 춤 공연이 논의된 것은 극장 설립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초기부터 진행되었다. 극장 자체가 불법이므로 언제든지 해체되거나 설립 자체가 재제를 당할 수 있는 상황이라 극장 건립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프로그램에 대한 구성을 운영위가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다.
 연극 쪽에서는 극단 중심으로 블랙텐트극장에 들어와 5일씩 공연을 하는 형태였다. 따라서 극단의 실질적인 대표의 결정이 중요했고 같은 이유로 빠르고 쉬운 결정이 날수 있었다. 더욱이 극단 단위로 올라가는 공연이었기에 무대 스텝들의 문제와 같은 것은 극단의 인력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쉽게 해결되었다. 하지만 무용의 경우에는 문제가 달랐다. 춤공연은 이제까지 하루나 이틀 정도의 짧은 공연이 관행이고 장기 공연이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점과 안무가와 무용수 외의 다른 스텝들은 모두 외부인이라는 특성이 있어 공연의 실행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따라서 춤 공연을 가능하게 하려면 무대감독, 조명, 음향 등의 무대기술 스텝도 섭외해야하고 기획과 홍보 역시 무용인이 아닌 외부인의 인력이 따로 동원되어야만 했다. 여기에 부가적으로 따르는 공연 현장 진행, 티켓 관리와 행정 담당까지 포함하면 상당한 전문 인력들이 무용수 외에도 더 많이 필요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될 수 없다는 암울한 생각에 섣부른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물론 이번 사태에 공감하는 무용인들은 매우 많아 250여명의 서명을 24시간 내에 받았고 5개월 동안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지속해 왔지만 공연은 보다 더한 참여와 희생이 요구되는 것이었다. 물론 블랙텐트극장에서의 공연 참여 의사를 밝히는 무용인들도 많았지만 실질적으로 극장 공연은 단순히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무용수들만 있다고 공연이 가능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모두 완비한 후에 공연 참여 의사를 결정해야만 했다.
 이러한 이유로 블랙텐트극장 무용공연의 결정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기획공연의 맨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합류했다. 4주의 1차 프로그램이 나가고 그 다음으로 진행된 2차 프로그램의 마지막 주인 4주차(2월 27일-3월 3일)의 프로그램으로 무용공연이 결정되었다. 그 과정 중에 민예총 무용분과 프로그램이 합류 의사를 밝혀 4일차인 목요일 프로그램으로 들어가고 금요일은 유진규마임팀의 경력한 참여 의사에 프로그램이 완성되었다.

 

 



 완성 후 그 모습을 살펴보니 무용 공연은 단순한 한 단체나 개인의 참여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된 페스티벌의 형식이 되었다. 1주일의 프로그램이었지만 공동 화두는 ‘몸’과 ‘블랙리스트’였다. 1주인 동안 100명은 족한 예술가들이 동원된 페스티벌이었다.
 단 하루도 같은 공연이 진행되지 않고 매일 밤마다 프로그램이 바뀌었다. 그 성격들 또한 다양했는데 이해하기 힘든 아방가르드한 현대무용에서부터 전통무용, 마임, 심지어 일반인까지 무용수로 참여하는 참여형 무용 공연물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올랐다. 여기에 대통령 탄핵 선고 발표일이 공지되고 탄핵 찬반 집회가 양쪽에서 첨예화된 시점에 공교롭게 공연을 하는 셈이 되었다. 더욱이 운영위 측에서는 블랙텐트 기획 공연을 무용공연 주간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면서 자유 공모한 작품들을 자유롭게 공연하게 한 후 극장을 퇴거하겠다는 결정이 나왔다. 아마도 탄핵 결정에 따른 극장의 거취를 정리하자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탄핵은 인용으로 결정이 났고 자연스럽게 이 명예의 불법 극장은 3월 18일 퇴거했다.

 

 



 춤공연이 진행된 2월 27일부터 3월 2일 중 가장 긴박했던 공연일은 두 번째 공연이었던 28일의 공연과 3일째 되던 3월 1일의 공연이 아니었나 싶다. 28일은 블랙텐트극장 입구 쪽에 비치되어 있는 박근혜 조형물을 탈취하기 위해 친박 그룹 쪽에서 결사대를 조직해 들이닥친다는 소식이 들려 왔기 때문이다. 공연 도중 맞아 죽거나 불에 타 죽는 것 아니냐는 농담 섞인 우려가 들려왔고 극장 관계자 모두 긴장감 속에 공연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한 경찰 측에서 보안과 감시 인력을 증강해 배치해 이날의 공연은 극장을 에워싼 경찰들 속에서 무사히 진행되었다.
 다음 날 3월 1일의 공연은 더더욱 극적이었다. 광화문과 시청 쪽으로 나뉜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 쪽의 시위가 최고조를 달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블랙텐트 극장의 전체 공연 중 유일하게 대중 집회와 날이 겹친 공연이었고 그 규모와 대립의 정도가 최고조에 달한 공간에서 공연을 하는 셈이었다. 실제로 극장 입구를 나오면 바다와 같은 하얀 태극기의 물결을 바로 마주할 수 있었는데 그 소리와 인파가 언제라도 덮칠 것 같았다.
 다행히 광화문 광장을 에워싼 차벽 덕분에 두 집회 그룹 간의 불상사는 없었지만 정작 광화문 광장으로의 진입이 매우 어려웠다. 공연을 보러 오시는 분들이 차벽 밖에서 진입을 못해 힘들었다는 하소연을 연신 하셨으니 말이다. 다행히 공연 시작 1시간 전에 미리 대기표를 선착순으로 배표하고 공연 시작 20분 전부터 입장을 하는 시스템이어서 늦게 온 이유로 대기표를 못 받은 분들이 입장을 할 수는 있었다. 그래도 끝내 입장을 못한 관객들이 너무 많아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공연을 진행한 극장 안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비는 계속 오고 방수가 전혀 되지 않는 극장 덕분에 출연하는 무용수 모두는 당연히 물에 젖어야만 했다. 이를 조금이라도 해결해 보려는 무대 스텝들은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했다. 누수에 따른 방전과 감전사고 예방과 떨어지는 빗물을 일일이 받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빗물이었다. 지반 공사가 당연히 되어 있지 않은, 광장 바닥에 그냥 고무판만 깔아 놓은 극장인지라 무용수들이 춤이 추어야하는 무대에 물이 그대로 차올랐다. 아무리 닦고 쓸어 내도 이내 금방 차올랐다.
 이날의 첫 프로그램으로 공연한 정영두의 두댄스씨어터 무용수들은 양말부터 젖기 시작하더니 이내 바지 밑에서 상체로 점점 젖기 시작했다. 마치 무대가 아니라 목욕탕이나 냇가에서 춤추는 것 같았다. 결국 마지막 팀인 최보결의 보결댄스라이프 팀에서는 무용수가 미끄러 넘어지기까지 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일반 극장처럼 춤춰준 무용수들과 심지어 무대에 영상 프로젝트까지 작동시키는 놀라운 기적을 보여 준(그 말도 안 되는 전압과 전기 용량에도 불구하고) 무대스텝들이 이 모든 공연을 가능케 했다. 덕분에 공연에 영상을 성공적으로 작동시킨 유일한 공연물이 되었다.

 

 



 상황은 모든 것을 해결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 말도 안 되는 누추한 텐트 극장에서 지원금 한 푼 없이, 자발적으로 나서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 혹자는 춤공연의 작품성을 논하기도 하고 또 혹자는 참여한 사람들의 성분과 의도를 살펴 볼 것이다. 하지만 이 날의 공연은 정부 시책에 무응답으로 응했던 무용계가 처음으로 예술적 행위를 보인 건국 이래 아마도 첫 공식적 대응이었을 것이다. 무용인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정치적 대응을 예술적이고도 자발적으로 행한 첫 사건이다.
 예술은 이데올로기를 넘어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를 구현하는 고유한 행위이다. 무용인들이 그간 보여준 서명운동과 1인 시위, 블랙텐트극장에서의 공연은 예술을 세속적인 이해관계와 정치적 편 나누기의 방편으로 전락시키는 천박한 사고와 행위에 분노한 나름의 실천이고 반응이었다.
 이에 대한 방증으로 이번 서명운동, 1인 시위, 블랙텐트 공연에 참여한 상당수의 무용인들은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르지 않은 분들이셨다. 그들은 오로지 예술을 위해 평생을 종사하거나 앞으로도 활동할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권력이 일방적으로 재단하는 폭력에 맞서, 예술가답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대응한 것의 결정체가 바로 블랙텐트극장 공연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는 예술의 본연의 목적과 이를 실천하는 무용인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고,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었으며,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박성혜
무용평론가. 숙명여대 무용과 박사. 무용전문지 『몸』 편집장과 국립현대무용단 선임연구원을 역임하였다. 현재 단국대, 중앙대, 한예종에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2017. 0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