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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슬 & Johannes Karal 〈당신이 그것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
움직임을 따라오는 언어, 아름다움의 격차에 대하여
양은혜_기획가.드라마투르그

 “제 팔꿈치 주름이 아름다운가요?”
 정다슬 안무가와 요하네스 칼(Johannes Karal)배우의 〈당신이 그것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에 나오는 대사 중 하나이다. 낯선 듯 보이지만 어딘가 낯익은 느낌이다. 그들은 아킬레스건, 꼬리뼈, 손금, 인중, 관자놀이 등 평상시 지목하지 않는 신체 부위를 주목하며 그것이 아름다운지를 관객에게 되묻는다.
 독일에서 활동 중인 정다슬과 요하네스 칼은 지난 3월 25일 서울무용센터 국제레지던스 해외아티스트로 초청되어 6주 동안의 리서치를 마치고 스튜디오블랙에서 오픈콜리허설과 피드백라운드를 개최했다. 30여명의 관객들이 리허설을 보기 위해 센터를 찾았으며 35분간의 리허설보다 1시간가량 더 길게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나갔다.

 

 



 이 작업에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하게 된 것은 작년 여름 잠시 한국에 들어온 정다슬 안무가와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부터였다. 우리는 덕원예술고등학교의 동문으로 대학시절까지 함께 춤을 추던 관계였고 대학 졸업 후 정다슬 안무가는 독일로, 나는 안무가로 활동하다 무용글을 쓰는 길로 접어들었고 그새 10년의 시간이 지났다. 함께 작업을 해보자는 이야기는 2년 전 겨울부터였다. 서로 멀리 있어 드문 만남과 메일로 안부를 나누던 시간이 작품으로 처음 이어진 듯하다. 정다슬 안무가와는 오래 축적된 시간 때문인지 어떤 주제든 작업으로 함께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독일에서 건너온 배우 요하네스 칼과 함께 셋이 만나 6주간의 작업에 돌입했다.
 〈당신이 그것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의 소재는 성(性)으로 둘러싼 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성에 관한 세 편의 해석』을 기본 텍스트로 삼았다. 안무가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 그가 보낸 이 책이 먼저 나에게 도착했으며 각자 사전 정독 후 한국에서는 한 편씩 기간을 정해 내용과 중심이 되는 키워드들을 정리하는 과정으로 시작했다. 안무가와 배우는 텍스트를 분석하고 내용에 중점을 둔 반면 드라마투르기를 맡은 나는 각 편에서 다루는 개념을 서사구조 혹은 무대에서 극의 형태로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 것인지에 중점을 두고 분석했었다.
 세 편의 해석의 러프한 정리가 모두 끝나고 이론을 창작으로 넘기는 지점에서 한계를 느꼈으나 나는 작가가 창작의 과정으로 넘어가는 현상을 관망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지켜보고 말을 아꼈다. 결국은 창작자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안무가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저희 오늘 장례식 치렀어요.”
 “무슨 장례식?”
 “홀에서 요하네스랑 무릎 꿇고 프로이트 책에게 안녕을 고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본격적인 창작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것에 대하여

 ‘그것’이라고 할 때, 사람들은 다양하고 무수한 것들을 떠올리는 것 같다. ‘그것’은 이미 인지되어 있거나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감추기 위해 사용하는 지시대명사이기도 하다. 우리가 처음에 성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때 성은 감추거나 은폐되고 공유되지 않는 사적인 역사를 지닌 점에 주목하였다. 그것을 무대라는 공개된 장소에서 드러내었을 때 퍼포머들은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할 것이며 관객은 어떻게 읽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것’은 추상적일 것이라고 생각되었으나 그것이 명시하는 것은 명확했으며 그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 되었다. 때문에 피드백라운드에서는 그것이 무엇이며 이를 관객의 몫으로 돌리려면 성의 중심을 통과하여 단순하게 정화된 그것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또한 그것은 작품에서 많은 장면들의 해석을 방해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관객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I got you!'하는 순간 퍼포머들은 그 내용으로부터 비껴나간다.
 그러나 흥미로웠던 것은 관객이 ‘그것’에 대해서 피드백라운드에서 퍼포머와 함께 열띤 토론을 했다는 것이다. 관객은 이미 성에 대한 경험과 기억, 개념과 생각 등의 명확한 테마를 각기 가지고 있었으며 작업은 이 테마들을 끌어내어 충돌시키는 매개체의 역할이 되었던 듯 보였다.

 

 




 파편적인 성(性)

 오픈리허설에서 발표한 〈당신이 그것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은 각기 다른 성의 관점의 진술을 나열한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열된 장면들을 통해서 무엇을 인지하는가?’라는 질문은 퍼포머와 관객에게 공감을 이룬다.
 파편적인 장면들을 묶어줄 수 있는 장치를 『성에 관한 세 편의 해석』에서 ‘뫼비우스의 띠’로 찾았으며 어디에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어쩌면 프로이트의 성에 관한 해석의 한계이자 한 신체와 환경이 만나며 이뤄지는 화학반응의 무한한 현상에서 무대 위에 선 두 퍼포머의 신체 자체는 신체의 상징이자 두 개의 우주로 연상되기도 했다.
 이 경우 성은 문화와 경계, 환경, 지위 등을 걷어내고 이뤄지는 화학적 반응의 대화, 이성을 뒤로 한 채 그 대화가 이끌어내는 몸의 행위와 몸의 감각을 표현하는 관점에서 연속성이 아닌 파편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움직임과 서사의 경계에서

 무용기반의 정다슬 안무가와 연극기반의 요하네스 칼 배우는 작업에 접근하는 요소가 움직임과 텍스트로 대립을 이뤘다. 퍼포머에게 주어진 키워드와 관계성을 몸의 움직임으로 찾아가는 것과 텍스트에 대한 치밀한 분석으로 시작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길이었다. 몸과 머리, 감각과 논리, 추상성과 구체성, 내부로부터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의 방향 등 모든 것이 달랐다. 이들이 함께 만나 협업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각자에게 훈련되고 익숙한 프로세스를 서로에게 오픈하고 받아들이며 유연성을 가져야 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예를 들어, 배우가 움직이며 대사를 해야 할 때에는 왜 움직이며 무슨 감정이고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가라는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데에 초점을 맞췄으며 안무가가 대사를 하고 움직일 때에는 안무가가 시작한 움직임으로부터 공간의 성격을 신체와 함께 만들어나갔다.
 한국어와 독일어, 영어로 진행되었던 작업은 각 언어가 지니고 있는 문화의 해석으로까지 심층적인 대화를 나눠야 할 때도 있었다. 작품 중에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그러했는데, 한국말의 ‘아름답다’는 본래 ‘아답다’로 이때 ‘아’은 ‘나’라는 뜻으로 ‘나답다’라는 본래 의미를 가진다.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표현은 아니며 흔히 경치나 미적으로 초월적인 무언가를 볼 때에 사용한다. 그러나 독일어 ‘schön’은 ‘아름답다’라는 뜻으로 경치 외에 음식, 사물 등 일상에서 매우 잦은 표현으로 사용된다. 프로이트는 ‘아름다움’을 성적 흥분, 쾌감으로 바라보는데 이러한 표현이 일상에서 보고 먹고 듣는 모든 대상에 적용된다는 점을 안무가는 주목하였다.

 

 




 레지던시, 플랫폼으로서의 역할

 서울무용센터가 주관하는 국제레지던스는 해외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는 한국 아티스트에게 국내의 무용계와 연결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하여 국내외 교류를 돕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정다슬과 요하네스는 6주 동안 제공된 숙소와 연습실 그리고 센터 스탭들의 배려와 깨끗한 시설이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최적화된 환경이었다고 한다. 더욱이 쇼케이스를 하는 것은 아티스트들의 선택으로 성과위주의 과정 속에서 부담을 가지고 작업하지 않아도 되어 부담감을 갖지 않고 능동적인 작업의 진행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센터에서 만난 국내 무용인들과 다른 레지던시 아티스트들과의 교류는 자연스러웠으며 해외 생활을 오래한 한국인아티스트들에게는 잠시나마 국내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국내 무용계를 이해해 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정다슬과 요하네스에 의하면 서울무용센터의 시설은 해외 레지던스와 비교하였을 때 청결도와 편리함 면에서 상위권에 든다고 한다.
 단, 작업을 진행하다보면 센터에서 접하게 된 소식과 네트워킹 외에는 국내 무용계 소식이나 네트워킹을 확장해 나갈 수 있는 데에 한계가 있는데 플랫폼으로서 이러한 기능들이 구체화된다면 일회성의 레지던시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닌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구 홍은예술창작센터가 서울무용센터로 재개관된 것이 1년이 채 되지 않는 시점이다. 많은 국내 아티스트들이 해외로 나가 활동 후 귀국하여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어려움에 버팀목이 되고자 하는 본 국제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앞으로 잘 자리 잡아 나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




 안무가에서 드라마투르기로

 무용과 문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두 갈래의 기로에서 많은 고민을 했었다. 두 가지 장르는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으로 매우 대립되는 관계였다. 동시에 진행하기에는 너무도 다른 장르였다.
 문학을 함께 전공한 탓에 스승으로부터 무용대본을 써보라는 제안을 받았고 그렇게 2007년부터 공연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의뢰받는 공연대본은 주로 안무가가 작품을 시작하게 된 하나의 이미지 혹은 소리, 메시지 등으로 다양했으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 속에서 텅 빈 무대 위에 안무가의 이야기와 나의 상상으로 하나씩 무대를 채워나가야 했다. 대본을 완성하고 안무가와의 작업이 마무리된 후 공연 소식이 들려오면 나는 객석에 앉아 내가 글로 그렸던 무대와 눈앞에 펼쳐지는 무대의 모습을 대조하며 글의 흐름과 언어들을 무대에서 찾아내었다. 이는 안무가와의 짜릿하고 보이지 않지만 매우 점성이 높은 관계로 무대에서 둘만이 공유할 수 있는 비하인드였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공연이 어땠는지, 나의 글이 무대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물어보는 안무가의 질문이 있을 때에도, 혹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 눈빛으로만 많은 말을 주고받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대본을 쓸수록 대본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가져가지 못한다는 공허함이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연극의 조연출을 맡게 되었고, 드라마투르기라는 존재와 역할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때 만난 드라마투르기를 했던 정진새 연출가는 내가 무용과 문학의 기로에서 많은 고민을 하며 불안정할 때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면서 동시에 냉철하고 분명한 대화로 안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사실 그는 모를 것이다. 지금도 그는 나에게 좋은 선배이자 동료이며 친구이다.
 무용을 글로 쓰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20년 가까이 했던 무용의 기본 동작인 플리에(Plié)는 몸의 근육에서 논리적으로는 알지만 이를 글로 표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작업이었다. 움직임을 글로 옮기기 위해서는 무용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했으며 움직임이 과한 감정으로 함몰되지 않고 일반적인 소통으로 이뤄질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로써 드라마투르기로 안무가와 함께 작업을 진행하며 리서처와 기록자로서도 작업이 한 번의 작품 생산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시켜나갈 수 있도록 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어쩌면 무용과 글이라는 점, 더 함축해서는 무용을 글과 충돌시켜 무용성을 더 분명히 해나가는 작업을 해나가는 듯하다. 무용을 전공하여 안무가로 활동했었던 점에서 작업의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 안무가와 무용수들의 컨디션을 신속히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다는 점, 무용인들의 말과 움직임의 소통방식에 익숙하다는 점에서 안팎의 시선으로 작품을 대할 수 있는 이 일은 매우 매력적이다. 무용기자로 활동했었던 경험 또한 외부 흐름과 작품의 흐름을 조율하고 해석을 안무가와 공유해 나가는 데에도 이점이다.
 글에서 문장은 그것이 갖고 있는 공간성과 문장이 표현하고 있는 무대와 신체라는 소재로 연결되어 다른 방향을 향하는 문장들의 나열, 장면전환의 단락 등으로 무용무대와 동행한다.
 또한 매체보다 좀 더 유연한 아티스트들의 담론 형성과 기록 축적, 리서치로 인한 공연의 재생산 등 무용의 다양한 해석과 활동영역을 장려하며 심화하는 과정 중에 있다.

 

 




 응! 아름다워.

 무대 위의 요하네스는 어리숙한 한국말로 대답한다. “응! 아름다워.”
 〈당신이 그것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은 몸이 말하는 아름다움, 타자화된 몸의 이야기를 생소하게 듣는 것으로 일상의 행동과 무대 위에서의 행위, 자신을 규정하던 기준의 지반을 흔들어 그 ‘아다움’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양은혜
성균관대에서 무용학, 러시아어문학, 영어영문학 전공. 대학원에서 러시아어문학을 전공했다.안무가, 무용작가, 무용월간기자를 역임하였다. 현 서울무용센터 웹진 〈춤:in〉 편집위원, 기획자이자 무용 저술가, 드라마트루그로 활동 중이며 무용인들의 담론화 형성과 무용기록, 무용공연의 재생산에 초점을 맞춘 choreographyview를 운영하고 있다.

2017. 04.
사진제공_조현우, 서울무용센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