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밝넝쿨 〈부앙부앙〉
놀이를 부르릉한 〈부앙부앙〉
김채현_춤비평가

오마이라이프의 안무자 밝넝쿨은 몇해 전 〈공상물리적 춤〉(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놀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구현해 보였다. 그후 〈공상물리적 춤〉을 모티브로 해서 지난 가을 〈부앙부앙〉을 올렸다.
 〈공상물리적 춤〉에서 공상은 일상과 생활 주변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물건들에서 아이들이 품는 연상(聯想)과 상상을 말하고, 물리적(物理的)은 몸 기능에 따라 작동하는 힘의 물리적 차원을 가리킨다. 공상과 물리적 활동이 아이들에게서 합칠 때에만 어른들은 그것을 장난 또는 놀이라 부른다.(어른들은 그렇게 놀고 장난치는 경우가 없지 않은가?) 〈공상물리적 춤〉의 그 공간에는 경운기, 선풍기, 광선검, 훌라후프, 장난감 등속이 잔뜩 널부러져 있었고 출연진들은 아이들을 대리하여 갖가지 호기심을 마치 아이들이 된 양으로 두서없이(즉발적이기 일쑤인 아이들의 놀이에 굳이 두서가 있을 필요가 없다) 열어나갔다.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 〈공상물리적 춤〉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 〈공상물리적 춤〉 ⓒ옥상훈




 〈부앙부앙〉은 예정된 극장 공연(대학로예술극장 9. 5~6.)을 코로나로 인해 취소하고 12월 초 온라인 송출하였다. 〈공상물리적 춤〉에 등장하는 춤들 가운데 선택된 하나씩을 출연자가 자기대로 3분가량 재현하는 10편의 춤이 〈부앙부앙〉의 기본 포맷을 이룬다. 여기에다 전체 출연진들이 집단으로 춤추는 대목이 두어 차례 덧붙여진다.
 부앙부앙에서 부(르)릉을 연상하기 쉬운데 실은 그런 뜻이 아니고, 호남 지역에서 ‘과장하다, 과시하다, 오버하다’의 뜻으로 쓰이는 사투리라 한다. 사투리의 의미가 그럴지라도, 아이들의 놀이와 인접한 이번 작품의 소재는 사투리 부앙부앙에서 과장의 의미에 더하여 부(르)릉의 느낌도 받도록 한다.
 10명의 출연진 즉 무용수들이 자기대로 춤을 추는 〈부앙부앙〉의 포맷은 독특하다. 무용수들은 〈공상물리적 춤〉에서 특정의 춤을 가져와 자기대로 추었다.
 초연 이후 〈공상물리적 춤〉은 그간 아시테지 행사 등에서 수차례 재연되며 오마이라이프의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는데, ​여기서 〈공상물리적 춤〉 속의 춤들이 ​제나름 레퍼토리로 활용될 여지도 있을 것이다.​ 특이하게도, 〈공상물리적 춤〉 안무자 밝넝쿨이 춤을 제공하였지만 〈부앙부앙〉에서 이미 그의 손을 떠나 춤은 각 무용수의 해석에 맡겨졌다. 

 춤 무대뿐 아니라 예술에서 창작자의 메소드와 출연자의 해석 사이의 관계가 〈부앙부앙〉에서는 출연자에 맞추어 ‘자율적으로’ 진행된다. 이것이 무용수들이 집단으로 출연하는 일반적 갈라와 다를 바 없다면 이 자리에서 굳이 강조할 일이 아니다. 과거(또는 이전)의 춤(레퍼토리)을 재현하는 갈라 공연의 경우 해당 레퍼토리를 충실히 재현하는 게 일반적이어서, 갈라 출연자는 과거(원작)에 머물거나 과거를 따르는 게 상례이다. 이에 비하여 〈부앙부앙〉에서 각 춤들은 원작을 준수하지 않았고, 일테면 해석본에 속할 것이다. 다만 〈공상물리적 춤〉의 당연하면서도 매우 뚜렷한 공상과 물리적의 두 특성 그리고 움직임의 양태는 〈부앙부앙〉의 춤들에서도 살아 있었다. 이는 출연자들이 원작의 메소드만큼은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춤 해석을 진행했음을 말해준다.
 어느 안무자의 작품에서 특정 부분을 타인이 가져오는 것은 해당 경위를 밝히지 않으면 표절(剽竊)일 것이고, 밝히면 인용(引用)일 것이다. 밝넝쿨의 작품에 밝넝쿨 자신의 춤을 가져왔으니 일테면 이번 경우는 자기 인용에 해당한다. 〈부앙부앙〉에 인용된 해당 춤들은 그것들이 원래 〈공상물리적 춤〉 속에서 가졌을 맥락과는 사실상 무관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각각의 춤을 인용 처리할 적에 밝넝쿨은 각각의 무용수들에게 해석을 맡겼다. 이런 경우는 밝넝쿨의 자기 인용에 해당하는가,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인가.




  



밝넝쿨 〈부앙부앙〉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




 대부분의 갈라에서는 출연자가 원작자에 비해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다. 그것은 출연자가 원작에 충실한 나머지 해석이 미미했거나 해석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이럴 적에 출연자는 수동적인 위치에 서기 마련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부앙부앙〉에서 그들은 능동적인 자율성을 발휘하였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부앙부앙〉의 구성 틀거리는 독특하고 드물었던 때문에 제각각 다른 10가지의 그 해석 의도들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출연자 박명훈은 타인의 메소드도 결국 춤추는 자신의 해석이라 한다. 손지민은 남성 무용가의 춤추는 방법을 여성 무용가가 해석하는 춤을 추었다. 최원석은 소리내며 춤추면 이미지가 상상되고 상상의 이미지는 언어로 돌아온다고 한다. 임정하는 왼손에 에너지를 완전히 내맡기고 나머지 몸 기관들이 왼손을 따라가는 춤을 소개한다. 이영례는 일본인 어머니 딸인 자기처럼 그런 모양으로 춤추는 사람이 전주에선 없었다고 하며 일본 엔카를 부르며 춘다.
 주하영은 남자 축구가 재미있어 그런지 무용 테크닉도 남자들처럼 수련하지만 자기는 여자 무용가라며 남성성 속의 여성성, 여성성 속의 남성성을 왕래하며 춤을 진행한다. 김은경은 마초솔루션으로 해석된 〈공상물리적〉 춤에다 〈카페 뮐러〉의 피나 바우쉬 차림의 바우쉬를 불러들인다. 김주희는 여행길에서 요가를 수행하며 출연진들과 함께 집단적인 만다라의 시간을 그린다. 류진욱은 무용만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며 몸이 안 보여도 춤인가고 묻고선 머리 헬멧에 끼워진 웹캠이 무대를 어지럽게 중계하면서 유령의 시선을 대신하도록 한다. 김승록은 하얀 마네킹 상체와 주절주절 투의 이야기를 나누지만 움직임은 슬렁슬렁 많지 않다.
 10가지 춤들 사이에는 전후 순서도 인과 관계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들은 전체적으로 〈부앙부앙〉으로 묶였고 각각 〈공상물리적 춤〉에서 인용되었다는 관계만 가질 뿐이다. 그래서 공연 전체는 두서가 없이 어수선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장난 같은 놀이에서 보이는 투의 두서 없음이 〈공상물리적 춤〉의 라이트모티브였음을 상기하면, 〈공상물리적 춤〉에서나 〈부앙부앙〉에서나 ‘의도적으로’ 설정된 두서 없음이 일관되게 작동하고 있음을 간파하게 된다. 의도적으로 설정된 두서 없음은 두서 없음에 해당하지 않는다.






밝넝쿨 〈부앙부앙〉 ⓒ옥상훈




 〈부앙부앙〉의 원천인 〈공상물리적 춤〉에서는 과장, 왜곡, 착시 같은 기법들이 작품 구성과 춤태, 양면에서 현저하였다. 〈부앙부앙〉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노이즈가 간간이 섞이고 타악 위주의 사운드가 배경을 이루는 가운데 각각의 출연자들은 자기 순서에서 과장이 예사인 움직임을 짙은 기운의 몸부림으로 쏟아내다시피 하였다. 코로나 재앙으로 무대를 차단당한 사람들이 춤에 한이 맺혔나 싶은 짐작이 들 정도로 춤 기운을 가식 없이 쏟아내었다. 더 곁들여 보면,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를 때 지랄발광 같은 말을 쓴다는데, 〈부앙부앙〉에서 쏟아지는 춤들이 그런 인상을 주었다고 할 법하다.
 출연진들은 아이들이 아니라 춤으로 수련한 성인들이어서 아이들이 장난에 도취되는 정도에 비해 일순간들이나마 춤에 몰입하는 정도가 훨씬 높았다. 그들의 잘 다듬은 몸부림은 그 같은 몰입의 정도를 대변하는 한편으로 그들의 춤이 움직임에서조차 장난(아이와 어른을 막론하고 추구하는 장난)의 정서, 장난의 자유로움과 맞닿아 있음을 나타내는 것은 물론이다.
 〈부앙부앙〉에는 장난기가 그득하다. 오늘날 보편적으로 춤 무대에서 웬일인지 희미해진 장난이라는 것을 새삼 음미해본다. 예술이건 놀이이건 장난이건 재미(fun)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이 세 가지 활동이 재미를 공통점으로 한다는 뜻이겠다. 재미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예술의 기원을 제의(祭儀)에서 잡을지 아니면 재미에서 잡을지 설들이 오락가락하지만, 놀이가 예술의 기원일 것이라는 짐작으로 미루어 보면 놀이를 잘 다듬어서 행할 때 만끽하는 재미(와 만족감)에서 예술이 기원하였을 가능성은 아주 유력하다. 갖가지 유형의 재미는 놀이의 기본이며, 놀이 가운데서도 가장 느슨하고 가장 규모가 작은 것이 장난일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과 장난은 결코 서로 먼 것들이 아니며, 〈부앙부앙〉의 장난기는 그렇게 나름 의의가 분명하다.
 뜬금없고 두서가 없는 것이 아니라 두서가 뚜렷하게 〈부앙부앙〉은 수미일관한 바가 있다. 춤꾼들은 때로는 괴성을 질러대고 몸짓에서 꾸밈새의 가식을 벗어던지고선 자연스럽게 분출하는 듯한 움직임을 상당히 모나면서도 격렬하게 발산하였다. 또한 그들의 과장된 춤과 연기는 아이들의 장난에서나 놀이에서는 부재하기 마련이고 기대하기도 어려운 패러디의 의미를 갖는다. 이런 상황에서 마침내 보는 이들은 카타르시스나 해방감을 피할 수 없었을 것 같다.







  

밝넝쿨 〈부앙부앙〉 ⓒ옥상훈




 2019년 11월에 인정주와 함께 밝넝쿨은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공연물 〈과일·악기·그림책〉(성수아트홀)을 제작하였다. 과일, 악기, 그림책이 소재로 활용되어 동심의 세계를 그린 공연물이다. 전문 무용수들이 전문성을 갖춘 춤으로 동심의 세계를 그려내는 경우가 드문 현실에서 억지스럽지 않은 구성과 매끈한 무대 분위기로 꾸며내었고 어린이뿐 아니라 부모 세대도 함께 보아도 좋을 공연으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아이들의 천진스러움과 성인 춤 무대에서의 가식없음, 즉발적 반응은 통하는 면이 있다. 밝넝쿨이 아동의 세계를 꽤 집요하게 천착하는 이면에는 이러한 공통점이 작용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감각을 자연스럽게 발현하는 활동으로서 안무자가 아이들의 놀이에 주목하고 특히 장난기를 확대해서 무대화하는 의도는 관심을 모은다. 덧붙여, 출연 춤꾼들이 해석 작업을 능동적으로 수행하도록 하여 〈부앙부앙〉의 내용을 키워나간 점은 다시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21. 1.
사진제공_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 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