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무용단 〈가무악칠채〉
전통과 만난 테크놀로지, 악가무의 빼어난 앙상블
장광열_춤비평가

유럽이나 미국의 안무가들과 달리 국내 안무가들의 초연 작품이 재공연을 통해 완성도가 높아지는 사례를 목격하기란 쉽지 않다. 재공연의 기회도 적을뿐더러 설령 다시 공연할 기회가 주어졌다 하더라도 초연 때의 댄서들이 온전히 다시 출연하거나 충분한 연습시간과 예산 확보가 그리 녹녹치 않기 때문이다.
 국립무용단(예술감독 손인영)이 11월 20-22일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한 〈가무악칠채〉(안무 이재화)는 초연 후 세 번째 공연에서 몇 가지 새로운 시도를 더해 레퍼토리로서의 경쟁력을 한층 강화했다는 점에서 2020년 주목할 만한 작업으로 꼽힐만하다. 〈가무악칠채〉는 2018년 국립무용단 차세대 안무가 발굴 프로젝트 ‘넥스트 스텝Ⅰ’에서 30분가량으로 창작된 소품을 2배 분량으로 확장, 발전시켜 같은 해 말에 국립무용단 정규 레퍼토리로 선보였던 작품이다.
 이번 세 번째 작업에서 가장 달라진 것은 무용수의 움직임에 따라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인터랙티브 영상 기술을 접목해 칠채를 시각화시킨 새로운 연출, 훨씬 다양해진 음악 구성과 질적인 업그레이드, 악가무 파트에서 쏟아내는 예술적만 에너지들이 더욱 탄탄한 앙상블로 구현되었다는 점이다.
 곧 춤 공연에서 중요한 높아진 음악 배합력, 몸을 매개로 하는 무용과 테크놀로지의 결합을 통한 극장공연으로서의 확장성, 여기에 특별한 호흡이 더해진 무용수들의 질 높은 움직임으로 작품은 한국적 컨템퍼러리댄스로서의 경쟁력이 한껏 높아졌다.








국립무용단 〈가무악칠채〉 ⓒ국립무용단




악가무, 홀로그램 영상, 레이저 조명으로 버무린 ‘칠채’ 장단

〈가무악칠채〉는 칠채 장단의 빠르고 유동적인 리듬이 핵심이다. 안무가 이재화는 칠채 장단의 자유로움을 7명 무용수의 몸으로 또 춤으로 이입해 풀어내었다. 작품은 직사각형의 통들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무용수 한명이 춤을 추면서 시작한다. 사각통은 소리의 울림판, 곧 스피커를 의미한다. 퍼포머들은 그 스피커를 무대 위에 쌓거나 정열하거나 던지거나 얼굴에 뒤집어 쓰기도 한다.
 칠채 가락에 맞춰 한바탕 춤이 추어지면 무용수 이재화는 상수 뒤쪽에 앉아 홀로 실험을 한다. 장구를 치고 그 장구 가락 위에 북을 얹어 가락을 맞추고 그 위에 징을 얹어 또 다른 가락을 만들어낸다. 무용수이지만 실제 연주를 통해 음악 만들기에 심취해 있는 이재화의 창의적인 시도, 새로운 가락 만들기의 핵심은 칠채 장단의 변용이다.
  ‘칠채’는 농악 행진에 쓰이는 빠르고 현란한 장단으로, 한 장단에 징을 일곱 번 치는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칠채는 농악이나 판굿에 주로 쓰이는 장단이지만 3:3, 3:2 등으로 변화무쌍하게 변주되기에 음악적 다양성만큼이나 움직임도 다채롭게 접목하기 용이하다. 다양하기 때문에 또 자유로운 리듬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작품은 ‘칠채’라는 컨셉트 외에 특별한 것은 없다. 한 무용수가 움직임으로 칠채를 만들자 소리꾼 김준수가 덩더쿵 장단으로 움직임에 소리를 맞춘다. 소리와 움직임이 어우러지자 자연스레 흥이 발현되고 관객들은 서서히 춤 보는 재미에 빠져든다.
 칠채는 느려졌다 빨라지고 무용수들의 움직임 또한 이에 상응한다. 모든 무용수들이 나와 각자 소리와 움직임을 더욱 다양하게 매칭시킨다. 안무자는 무용수들을 열로 세워놓고 3과 2를 이용 해쳐 모여를 시도한다. 템포는 점점 빨라지고 공간은 더욱 많은 볼거리로 채워진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김준수의 소리와 만나면서 솔로, 듀엣, 칠 군무로, 더 다양하게 변주되고, 상수, 하수, 센터 등 잦은 공간적 변화도 눈에 들어온다.
 7명 무용수들(송설 황태인 박혜지 이요음 조승열 최호종 이태웅)의 춤은 동일한 장단을 다채롭게 변주했기 때문인지 움직임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럽다. 생음악 연주는 중반으로 넘어가 또 다른 소리와 겹쳐지면서 그 호소력은 더욱 강해진다.
 박민희의 정가가 등장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음악과 춤 뿐 아니라 비주얼, 악가무와 테크놀로지의 콜라보가 빚어낸 미장센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어지는 아쟁 솔로에 실린 7인무, 여러 명 남성 구음에 실린 무용수들의 허튼춤과 공간의 변화 역시 안무가로서 이재화의 만만치 않은 예술적 감각이 빛을 발한 장면이다. 국악과 현대음악이 적절하게 조합된 라이브 연주와 움직임 조합은 춤 공연에 문외한인 관객들의 대중적인 취향마저 저격한다.   








국립무용단 〈가무악칠채〉 ⓒ국립무용단




 초연 때 〈가무악칠채〉는 한국무용과 음악, 영상 기술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레이저빔을 활용 악보의 오선지와 악기의 현을 연상시킨 장면, 오선지를 나타낸 듯 한 레이저빔 사이로 붉은 슈트를 입은 무용수들이 음표가 된 듯 현란한 움직임을 펼치는 장면은 기술을 통해 예술적 상상력을 끌어내는 시도로 호평을 받았었다.
 이번 공연에서 테크놀로지가 접목된 장면들은 새로운 시도가 더해졌다. 가장 큰 변화는 움직임과 소리에 따라 유기적으로 반응하는 홀로그램을 활용한 인터랙티브 영상을 구현한 것이다. 무용수의 신체를 그래픽으로 표현한 영상이 샤막에 투사되면, 무용수의 움직임에 따라 촘촘하게 나열된 점과 선들이 허공에서 모였다 흩어지는 식으로 반응했다. 또한 무대 위 스크린을 다섯 겹으로 설치해 칠채 장단을 보다 입체적으로 시각화했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무대는 칠채 장단의 이미지를 더욱 감각적으로 표출해냈다.
 초연 때는 칠채라는 한 장단이 끊이지 않고 연주되면서, 속도와 악기에 의해 장면이 변화되었다면, 세 번째 공연에서 안무자는 소리를 시각화하는 쪽에 공을 들인 듯 보였다. 소리에 반응할 수 있는 영상을 도입하였고, 칠채를 모티브로 연주자와 무용수들은 새로운 공간으로 계속 이동하지만 관객들은 시각적으로도 칠채라는 장단을 계속 달라진 공간 속에서도 체감한다.
 〈가무악칠채〉에서는 가무악 전문가들이 전통 장단인 ‘칠채’를 무한 변주시킨다. 농악의 장단을 소재로 한 작품인 만큼 음악의 비중이 강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초연과 가장 달라진 점은 더 다양하고 세밀해진 음악(음악감독 허승은), 안무가가 이를 춤과 접목시키는 과정에서 길놀이와 연결시키고, 정가를 통해 조용하고 섬세하지만 지루하지 않는 강한 집중력을, 아프리칸 비트를 접목해 더욱 흥겨움을 살려냈다는 것이다.
 〈가무악칠재〉는 일단, 재미가 있다. 춤은 재미가 없다는 기존의 인식을 불식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관객을 한시도 심심하게 하지 않는다. 아니 관객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이재화의 첫 안무 작품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해 본 작품이 될 것이다.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는 것은 차후의 문제이다. 국립무용단이 가진 다소 고답적인 분위기를 상쇄한 작품으로 앞으로 국립무용단 단원들의 다음 안무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 작품의 차별성은 우리나라 농악의 칠채 장단을 기저로 악가무를 통해 무한한 변주를 시도한 것이다. 그것들이 음악으로 춤으로 그리고 테크놀로지와 성공적으로 접목되면서 유쾌함으로 잘 버무려진 것이다. 외연으로 드러나는 퍼포머들의 흥을 다소 과도하게 전달하려는 시도(객석의 박수를 유도하는 행위 포함)와 박스형 오브제의 활용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연출이 더해진다면 레퍼토리로서의 경쟁력은 배가될 것이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 ​ ​ ​
2021. 1.
사진제공_국립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