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부산국악원정기공연 〈舞我, 바람 딛고 오르다〉
樂(악)과 風(풍)의 헐거운 만남
- 다시 고민하는 전통 기반의 창작
송성아_춤비평가

지난 4월23~24일 국립부산국악원의 정기공연이 있었다. 연악당에서 펼쳐진 신작 〈무아, 바람 딛고 오르다〉는 2018년 부임한 예술감독(정신혜)의 두 번째 창작물로, 춤을 비롯한 우리 악(樂) 일반이 담고 있는 여러 의미를 이미지화한다. 4장으로 구성되며, 앞과 뒤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두고 있다.
 프롤로그의 소제목은 “있음은 없음으로부터”이다. 무(無)이면서 유(有)인 존재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태극(太極)의 이미지화라고 할 수 있다. 어둠 속에 떠 있던 “舞我”란 글자가 산산이 흩어지고, 이내 작은 불씨 마냥 피어오르면, 무대 바닥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영상을 활용한 이 같은 상황이 한동안 지속되고, 세상이 열리듯 별빛 가득한 하늘 영상이 펼쳐지면서 마무리된다.




국립부산국악원 〈舞我, 바람 딛고 오르다〉 ⓒ국립부산국악원




 1장의 소제목은 ‘바람을 만나다’이다. 풍(風)은 자연현상인 동시에 한국과 중국인의 사유 속에서 여러 의미를 갖는 은유(metaphor)이다. 작가는 세계를 움직이는 근원적 원리(原理)로 해석하는 듯하며, 이것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꿈틀대던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바람을 상징하는 여인이 등장한다. 길고 긴 한삼을 휘날리며 주변을 에돌던 여자는 주인공 무아(더블 캐스팅: 서한솔, 배민지)와 대면한다. 둘은 특별한 관계 짓기 없이 제각각 움직이다가 허망하게 사라진다. 이로써 세계의 원리를 상징하는 바람(한삼을 든 여자)과 이를 마주 대한 인간(주인공 무아)의 모습이 모호하게 표류한다.

 2장은 ‘여덟 바람(八風), 세상의 숨결’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근원적 원리를 바람으로 치환하고, 이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징 소리와 함께 원형 프레임 안에 있던 이들이 하나 둘 퇴장하고, 한 사내만이 남아 하늘을 향해 너울거린다. 그 위로 바람을 암시하는 영상이 지속적으로 쏟아지고, 순간 돌 하나를 바닥에 던진다. 이후 지루하고 긴 솔로 춤이 계속되는데, 바람(세계 원리)과 인간의 삶 간의 상관관계를 해석해 볼 여지를 발견하기 어렵다.




국립부산국악원 〈舞我, 바람 딛고 오르다〉 ⓒ국립부산국악원




 3장의 소제목은 ‘바람이 악이어서 내가 춤이 되었다’이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예(禮)와 악으로 사람들을 교화시킴으로써 이상적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예악사상이 널리 펴져 있다. 특히, 음악뿐 아니라 시, 춤, 연극, 놀이 따위를 총칭하는 악은 세계 원리를 담지 한다고 믿었다. 3장은 이러한 악의 실례를 파노라마식으로 보여준다.
 먼저 많은 수의 여성 무용수가 등장하여 경쾌한 가야금 산조에 맞춰 춤을 추고, 이내 고무줄놀이를 하며 껑충거린다. 즐거운 놀이는 다시 청어 엮기나 강강술래로 변모하고, 아정한 움직임과 더불어 무대 이곳저곳을 가로지른다. 군무진이 사라지고 나면, 한 춤꾼이 크고 긴 고무줄을 잡고 홀 춤을 추기 시작한다. 가야금과 같은 현악기를 타는 모습을 형상화한 듯한데, 이후에 몇몇이 합세하기도 한다.










국립부산국악원 〈舞我, 바람 딛고 오르다〉 ⓒ국립부산국악원




 휘몰아치는 산조 말미에 대나무 피리를 연상시키는 대형 세트가 내려온다. 이어 관악기 소리와 함께 군무진이 대거 출현하여 일렬로 도열하고, 주인공과 두 여자의 춤이 전개된다. 특정한 컨택 없이 제각각 진행되던 삼인무가 마무리되면, 배경막처럼 서 있던 군무진의 춤이 펼쳐진다.
 이후 암전과 함께 대북 소리 울리고, 바람 영상과 더불어 주인공이 재등장한다. 이어 검은 옷을 입은 춤꾼의 이인무, 삼인무, 이인무, 군무가 순차적으로 나열되고, 알 수 없는 괴로움 속에서 홀로 춤추던 무아만이 무대에 남는다.








국립부산국악원 〈舞我, 바람 딛고 오르다〉 ⓒ국립부산국악원




 4장은 ‘하늘과 사람, 일무의 말’이다. 일무(佾舞)는 조선시대 예악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례라 할 수 있다. 역대 왕을 모시는 종묘제례와 공자를 비롯한 여러 유학자를 모시는 문묘제례에서 연행된 의례의 춤으로, 8줄, 6줄, 4줄, 2줄로 열을 짓는 대열무(隊列舞)이다. 4장은 신에게 폐물과 절을 올리는 전폐(奠幣) 절차에서 연주되었던 희문(熙文)과 여덟 줄의 팔일무(八佾舞)를 재현한다.
 본격적인 춤에 앞서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를 든 춤꾼들이 등장하여 무대를 에돌며 흥취를 돋운다. 무대 중앙에 주인공 무아와 또 다른 춤꾼이 마주 서 있고, 후면에 국립부산국악원 기악단과 성악단이 빼곡히 앉아있다. 그리고 백스테이지에 설치한 높다란 단상 위로 팔일무의 무원들이 서있다. 전폐희문의 선율과 노래가 장중하게 울러 퍼지고, 신에게 바치는 일무가 시작되는데, 단상의 팔일무는 위용을 드러내지 못한 채 병풍에 머문다. 대신 덩그러니 일무 동작을 함께 하는 중앙의 둘만이 장엄한 음악과 부조화를 이루며 돌출된다.








국립부산국악원 〈舞我, 바람 딛고 오르다〉 ⓒ국립부산국악원




 에필로그의 소제목은 ‘다시 있음은 없음으로부터’이다. 의례의 춤과 음악이 마무리되고, 무아만이 홀로 남는다. 작가는 주인공을 하늘과 땅, 세계와 인간, 이상과 현실을 연결하는 우주목(宇宙木)으로 설정한다. 그리고 없음(無)에서 있음(有)이 만들어지고, 있음이 다시 무로 되돌아가면서 인간을 비롯한 세계의 역사가 진화하듯, 무아도 없음으로 되돌아간다고 밝힌다. 우주목과 순환적 진화는 여러 함의를 갖는 복합적 개념이다. 이들을 어떻게 표현한다는 것인가? 모호한 솔로 춤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작품은 마무리된다.

 예술감독 정신혜는 전통에 기반을 둔 현대적 창작에 주안점을 둔다. 악보를 통해 시대마다 변화의 추이를 살필 수 있는 음악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전통은 다양한 교류 속에서 꾸준히 변해왔다. 중국에서 수입된 당악은 토착화의 과정을 거쳐 여러 모습으로 변모했고, 자국적인 것과 외래적인 것을 섞어 〈여민락〉과 같은 창작물을 만들기도 했으며, 다시 여러 형태(여민락만, 여민락, 여민락령, 해령)로 재창작되었다.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처용무〉의 경우에도 외래의 영향 속에서 일인무에서 오방처용무로, 학연화대처용합설로, 다시 오방처용무로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다. 때문에 전통의 보존과 더불어 당대성을 반영한 새로운 창조는 국립국악원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의욕적으로 선보인 〈무아, 바람 딛고 오르다〉는 전통 악이 담지하고 있는 여러 사상, 즉 태극사상, 바람(風, 八風)에 대한 인식, 성리학의 예악사상, 천지인삼재사상과 샤머니즘의 우주목 개념, 천부경의 중요 개념 중 하나인 순환적 진화(一始無始一 一終無終一) 등을 담아내고자 했다. 1시간 가량의 작품 속에 이 모두를 다룬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명료한 주제 전달을 위해 제재(subject-matter)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물론 세계 원리를 바람으로 치환하고, 이를 중심으로 바람과 만나는 인간(1장), 바람과 함께 하는 인간의 삶(2장), 바람이 된 악(3장, 4장)을 이미지화한다. 중국은 물론이고, 『악학궤범』을 비롯한 여러 기록에서 바람‧악‧세계원리의 상관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여러 의미 맥락을 가지고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 생경하고 어려운 이것을 설득력 있게 온전히 표현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작업이었다.
 더욱이 당대성을 반영한 세련된 조명과 영상은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했지만, 움직임 표현방식과 군무 배치는 진부했고, 재현된 일무는 소재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전통에 기반을 둔 새로운 창조에서 보다 속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표제인 동시에 주인공 이름인 무아(舞我)를 풀어 보면, 춤이 곧 나라는 것이다. 자아와 춤이 일치된 상태란 온몸을 바쳐 춤춰 마침내 무아지경의 황홀경에 도달할 때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은 춤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는 이것을 통해 세계 원리를 알고, 천지와 소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같은 춤은 오늘을 지상낙원으로 변모케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될 수 있을 터이다. 여기로 진일보하는 다음 행보를 기대한다.

송성아

춤이론가. 무용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전통춤 형식의 체계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2016)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와 경상대학교에서 현대문화이론과 전통춤분석론을 강의하고 있다.​ ​ ​ ​​​

2021. 6.
사진제공_국립부산국악원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