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배정혜의 新전통 V
배정혜의 연륜과 경험이 풀어낸 신전통춤
김영희_전통춤이론가

‘2021 배정혜의 新전통 V’ 공연이 6월 18~20일에 강동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열렸다. ‘신전통’이라는 타이틀로 II (2016), III (2017), IV (2018)가 있었고, 다섯 번째 공연이다. 이 공연은 2014년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4시간 넘게 진행된 ‘배정혜의 춤 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을 퇴임하고 고희(古稀)를 맞이하고 보낸 후, 그간 추었고 창작했던 춤 중에 대표작들을 선별하여 독무 22작품으로 무대에 올렸다. 무용단 감독 재직시 창작품 중에 독무화한 작품, 신무용 스타일의 작품, 신전통 스타일로 만든 작품들이었다. 그야말로 1955년 12살에 올린 첫 무용발표회부터 2011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시기까지 배정혜의 춤 역정(歷程)과 자산(資産)이 당시 최고의 무용수들을 통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친 공연이었다. 배정혜 개인의 춤 역정이면서 20세기 중반부터 21세기 초까지 한국 근현대춤 역사의 일면을 발췌한 공연이었다.
 그러한 맥락이 ‘신전통 V’에서도 이어졌다. 6월 18일에 태혜신의 〈연화경 승무〉, 최은규의 〈한영숙류 태평무〉, 김정민의 〈춘설〉, 홍은주의 〈부채현금〉, 김수현의 〈흥푸리〉, 김민아의 〈사랑가〉, 김재득의 〈한량무〉, 김보연의 〈불새〉, 이계영의 〈풍고〉, 19일에 현임숙의 〈궁〉, 김하나 홍지영 한지혜 안소연의 〈입춤〉, 홍정아의 〈교태〉, 김연신의 〈강선영류 태평무〉, 곽시내의 〈사랑가〉, 김현미의 〈한풀이〉, 이희자의 〈풍류장고〉, 김용철의 〈바라춤〉, 김지은의 〈북춤〉, 20일에 심숙경의 〈춘앵전〉, 김민아 홍지영의 〈연산조〉, 김향의 〈心살풀이〉, 이경숙의 〈부채현금〉, 한지혜의 〈말하다〉, 조윤아의 〈수련무〉, 장래훈의 〈동래한량무〉, 전진희의 〈흥푸리〉, 정은숙의 〈풍류장고〉가 추어졌다. 필자는 18일과 19일 공연을 관람하였다. 공연 타이틀은 ‘신전통’이지만, 전통춤, 신전통춤, 신무용, 한국창작춤의 작품들이 구성되었다. 전체 시리즈로 보았을 때 큰 변화는 없지만, 이번 공연에서 전통춤, 신전통춤 종목들이 조금 늘었다.




홍은주 〈부채현금〉 ⓒ변문규




 신전통 작품으로, 우선 〈부채현금〉은 부채를 들고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에 추는 산조춤이다. 홍은주(울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가 2014년 초연했으며, 이번 공연에서도 춤추었다. 초연에 비해 궁중 여인의 설정이 좀더 강화되었으니, 짧은 저고리가 원삼으로 바뀌었고, 올린 머리도 풍성해졌다. 부채 역시 화려했는데 주로 펼쳐서 사용했고, 어깨 위에서 놀림이 많았다. 펼친 부채 위에 손을 얹는 듯하여 지긋이 놀리거나, 천천히 부채로 얼굴을 가리기도 했다. 마무리는 부채를 접어서 가슴에 품었다. 부채놀음은 화려했으나 춤사위의 흥취는 절제했다. 상체를 뒤로 젖히며 늘린다거나 높은 시선은 신무용 기법이지만, 대체로 전통춤의 춤결을 구사하며 산조 음악과 어울렸다. 홍은주는 〈부채현금〉에서 중저음 느낌의 거문고 가락에 진중하면서 세련된 품위를 보여주었다.




김수현 〈흥푸리〉 ⓒ변문규




 김수현(배정혜아카데미 대표)의 〈흥푸리〉는 민요에 맞춰 춘 신전통춤이라 하겠다. 낮은 징 소리로 도입한 후 “에헤용 에헤요옹. 어라 우겨라 방아로구나. 얼싸좋네. ~ ”로 노랫소리와 함께 춤이 전개되었다. 처음에 손춤을 추다가 길지 않은 붉은 수건 두 개를 들고 추었다. 노래 가사는 디딜방아 이야기, 나막신 이야기, 이웃집 총각 이야기 등이 이어지는데, 가사에 따라 살짝 뛰어올랐다가 디딜방아에 오르거나, 뒷발로 차고 앞발은 뒤꿈치로 쿡 딛는 동작, 또는 수건을 가슴에 안아서 새침하게 뒤돌아 어르기도 한다. 또 돈주머니를 줏는다는 가사에서 수건을 천천히 집어올리고, 바닥에 떨어진 수건에다 발놀림으로 어른거리기도 했다. 일상의 모습과 감정들을 보여주면서 수건 사위도 색다르게 구사되었다. 양손에 쥔 수건을 좌우로 흔들다 잡아 번갈아 뿌리거나, 수건을 뿌렸다 빙글 돌려서 잡아채는 동작은 맛깔스럽다. 장단이 빨라지자 수건놀음은 더욱 다양하고 흥겹다. 수건을 발로 툭 쳐서 날리거나, 짧게 움켜잡아 번갈아 무릎을 치기도 했다. ‘수건춤’ 하면 계면조로 추는 여인의 살풀이춤이나 흰 수건을 떠올리지만, 〈흥푸리〉는 수건춤의 전혀 다른 표현과 정조를 보여주면서 수건의 쓰임새와 표현을 확대하였다. 이전에 곽시내가 추었던 이 춤이 상큼하고 발랄했다면, 김수현의 〈흥푸리〉는 농익고 여유가 있다.




이희자 〈풍류장고〉 ⓒ변문규




 〈풍류장고〉는 이희자(리을무용단 단장)가 추었다. 신무용(최승희 조택원이 1930년대 중후반에 만들어낸 좁은 의미의 신무용을 말한다.)의 대표 레파토리인 장고춤으로, 역시 배정혜 안무작이다. 도입부에 짧은 청송곡이 있은 후 태평가과 경복궁타령의 노래가락에 맞춰 추었다. 장고춤이 만들어졌던 1930년대 민요 곡조를 그대로 사용했으며, 치마를 감아붙이고, 저고리에 스팡클은 아니지만 화려한 수(繡) 장식을 곁들였다. 뒷모습의 포즈를 자주 보이고, 상체를 젖혀 길게 늘리는 동작, 여성의 고혹적인 미감들은 신무용 스타일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더불어 굿거리에서 까치발 돋음이나 잦은모리에서 장고채로 채편과 바닥을 번갈아 찍는 장면이 돋보인다. 현행 장고춤들은 후반에 설장고를 붙이기도 하는데, 배정혜의 〈풍류장고〉는 끝까지 열채로만 춘 점과, 장구의 채편과 열편에서 감칠맛을 돋구는 채발림들은 배정혜 안무의 고유성을 보여준다. 장고춤은 최승희가 처음 춘 이후에 다양하게 변주되었고, 군무화되었다. 배정혜의 〈풍류장고〉는 장고춤 초기의 구성과 기법의 틀을 유지하며 장고놀음의 멋과 포인트를 추가하면서 유연하게 정제되었다.




김재득 〈한량무〉 ⓒ변문규




 그리고 이계영(조갑녀전통춤보존회 서울지부장)의 〈풍고(豊鼓)〉는 끈소고로 추는 소고춤이다. 풍(豊)이라는 컨셉에서 알수 있듯이 이삭을 들고 등장하여 가을 추수의 상황을 연상케 했다. 대개 농악의 채상소고나 고깔소고춤을 무대화한 경우가 있으나, 〈풍고〉는 아낙네의 캐릭터로 소고춤을 추었으며, 농악 소고춤의 여러 동작들과 춤의 멋도 한껏 풀어내어 흥과 신명이 넉넉했다. 다양한 소고춤들이 있지만 평범치 않은 작품이다. 한편 배정혜의 신전통춤 시리즈 공연에 여러 작품으로 출연했던 김재득(둠빔예술원 대표)은 〈한량무〉를 선보이면서 이제야 자기 색깔을 보여주었다. 김지은( 사)리을춤연구원 이사)의 〈북춤〉은 모티브를 좀 더 보강할 필요가 있다.




곽시내 〈사랑가〉 ⓒ변문규




 이 공연에서 또한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는 같은 작품을 다른 춤꾼들이 추게 한 점이다. 신무용의 무용극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사랑가〉를 18일에는 김민아(한예종 무용원 전문사)가, 19일에는 곽시내(리을무용단 수석)가 추었다. 배정혜 안무의 〈사랑가〉는 이도령과 춘향의 2인무로 추던 극적(劇的) 구성을 춘향의 몸짓과 상상으로 풀어낸 여성 1인무로 각색한 작품이다. 김민아가 수줍고 연연(軟娟)한 춘향을 춤추었다면, 곽시내는 적극적이고 풍부한 상상을 떠올리는 춘향으로 춤추었다. 같은 춤이라도 춤꾼마다 다르게 소화하는 춤의 감상은 참으로 흥미롭다. 〈부채현금〉과 〈흥푸리〉, 〈풍류장고〉도 이 공연에서 배정혜의 경험이 풍부한 제자들이 더블 캐스팅으로 춤추었다.




김향 〈心살풀이〉 ⓒ변문규




 그리고 3일째 프로그램에 김향의 〈心살풀이〉이 있었다. 이번 공연에서 관람하지 못했으나, 2016년에 안무자 배정혜 본인이 풍류사랑방에서 춘 〈心살풀이춤〉을 보았었다. 짧은 커트 머리를 그대로 한 채 흰 바지에 흰 노방의 앞트임 치마를 겹쳐입고, 수건 역시 노방 천으로 사용했다. 이 당시 배정혜의 살풀이는 극적(極的) 표현으로 감정을 극대화한 살풀이춤이 아니라, 여유있게 관조하는 듯한 살풀이춤이었다. 춤사위도 빽빽하게 풀어내지 않았다. 마지막에 수건을 스르르 놓으며 바라보는 장면은 비워냄으로써 자신과 대상을 달관(達觀)하는 정조(情調)와 연륜을 짙게 보여주었다. 지속적으로 창작 작업을 했던 배정혜의 예술이력이 배어나온 살풀이춤이었다. 살풀이춤의 원로 춤꾼들이 여럿 있지만, 배정혜의 〈心살풀이〉에서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 감각이 공존하는 살풀이춤을 보았었다. 이 〈心살풀이〉가 어떻게 소화되었을지 궁금하다.
 전체적으로 ‘배정혜의 신전통 V’는 배정혜 춤의 예술 역정이 그대로 반영된 춤판이었다. 춤의 기법이나 스타일이 엄연히 다른 전통춤, 신전통춤, 신무용, 창작춤이 함께 추어졌다. 이것이 가능한 배경은 배정혜가 신무용 절정기에 춤을 학습하고 수업했기에 신무용 기법이 농후하며, 창작춤 시대의 복판에서는 전통춤과 신무용을 토대로 한 창작 작품들을 극장무대에 치열하게 올렸었기 때문이다. 시대의 흐름과 감수성을 오감으로 체감하며 춤춰왔던 것이다.
 배정혜는 2014년 ‘배정혜의 춤 70년’ 공연을 전후하여 한국 춤의 마르지 않는 샘으로 전통을 다시 돌아보고자 했다. 당시 공연에서 “현대춤, 소위 한국 창작춤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후배 무용가들에게 하나의 징검다리를 놓는 심정으로 이번의 공연을 준비하였습니다. 될 수 있는 한 전통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지난날의 모습을 제대로 알아야 튼실한 앞날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모든 일상의 근저에는 우리네 전통의 고귀함이 절절이 배여 있기 때문입니다.” (2014년 공연 리플렛 ‘모시는 글’에서) 라고 그 의도를 표했었다. 그리고 ‘신전통’이라는 주제로 공연을 이어가며 제자들에게 남길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김영희춤연구소 소장. 역사학과 무용학을 전공했고, 근대 기생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춤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 『전통춤평론집 춤풍경』을 발간했고, 『한국춤통사』를 책임편집하고 공동저술했다. 전통춤의 다양성과 현장성을 중시하며, 검무의 역사성과 다양성을 알리기 위해 ‘검무전(劍舞展)’을 5년째 시리즈로 기획하고 있다.​​​ 

2021. 7.
사진제공_변문규 *춤웹진